第百十章 아(哦)! 일홀도(一忽刀)! (2)
“그림이 완성되었습니다.”
일부 부사가 보고했다.
“완성? 확실해?”
“확실합니다.”
일부 부사가 자신 있게 말했다.
전보영주 허굉우는 미간을 좁혔다.
그림은 전임 전보영주 탁호가 그리기 시작했다. 허도기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사실을 감지하면서 바로 은밀히 그림 그리기 작업에 나섰다.
허도기에게 동조하는 장군들의 명단을 작성하는 일이다.
허도기가 직접 손을 내민 주요 장군은 누구이며 촉수 뻗어 나가듯이 나무뿌리가 어떻게 이어져 나가는지 한 폭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첫 출발점은 병부우시랑 우기찬이다.
허도기는 왜 병부상서를 제쳐놓고 병부우시랑에게 손은 내밀 것일까? 기왕 포섭할 바에는 병부를 총괄하는 병부상서를 끌어들이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우습게도 병부의 실권은 병부우시랑에게 있다. 병부상서는 병부우시랑이 조종하는 대로 끌려가는 형국이다. 물론 병부상서는 자신이 잘난 줄 안다.
바로 이런 점들이 반심(叛心)을 끌어냈다.
능력이 없는 자는 거침없이 내쳐야 하는데 황상은 내치지 않는다. 병부만 해도 병부상서를 내치고 병부우시랑을 상서로 승진시키는 것이 합리적이다. 무능력한 자에게 높은 녹봉을 지급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러니 갈아엎자고 들고 일어선 것이다.
그 그림이 드디어 뿌리 밑바닥, 잔가지까지 그려졌다. 그림이 완벽히 완벽하게 완성되었다.
“굵은 줄기는?”
“서른일곱입니다.”
“서른일곱? 너무 많잖아. 확실해?”
“확인에 확인을 거듭했습니다. 확실합니다.”
전보영주는 그제야 일부 부사가 내민 그림을 받아서 활짝 펼쳤다.
병부우시랑 우기찬을 정점으로 수많은 가지가 뻗어 나가 있다. 그리고 가지 밑에는 직책과 이름이 적혀 있다. 현재, 위치한 장소까지 정확하게 기재되었다.
“호기장군(虎騎將軍)? 음!”
허굉우는 침음했다.
그림에는 전혀 예상치 않았던 사람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호기장군은 황상은 종친이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황상을 배반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반골을 늪은 의외로 깊었다.
“용케도 그림을 그렸네.”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렇겠지.”
전보영주 허굉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봐야 하나?”
“네? 무슨 말씀을……?”
“접지.”
“네?”
전보영주는 뜻밖에 말에 눈을 부릅떴다.
“어차피 모두 짐의 신하들이야.”
“폐하!”
“이제 와서 뭘 어떻게 하겠다고?”
“접을 건 접고 자를 건 잘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공부와 친하게 지낸 게 잘못은 아니잖아. 군대를 선동한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그 사람들…… 지금 변방에서 한참 전쟁 중이야. 전쟁 중인 사람을 뒤에서 칠 수는 없지.”
“폐하! 이 사람들은 반심을…….”
“덮자니까.”
“폐하!”
“쿨룩! 쿨룩!”
황제가 거세게 기침했다. 그리고 간신히 기침을 추스른 후, 묘한 말을 했다.
“이제 다 끝났어.”
“무슨 말씀이신지……?”
“사건을 일으킨 사람들은 모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소리지. 이 사건을 만든 사람은 공부가 아니야. 나지. 책임을 지라면 응당 내가 져야 하지 않겠나.”
“폐하!”
“나 이제 곧 갈 것 같은데. 그렇게 보이지 않아?”
“황공하옵니다. 폐하!”
전보영주 허굉우는 납작 엎드렸다.
황제의 말을 받들기 어렵다. 황제가 자신의 입으로 곧 승하한다고 말하니 이를 어떻게 받아들인단 말인가.
“전보영주.”
“네. 폐하.”
“전보영에서 그린 그림보다 더 재밌는 걸 보여줄까?”
“네? 무슨……?”
황제가 오음절맥의 영향으로 덜덜 떨리기 시작한 손을 들어서 어떤 서신을 집어 들었다.
“읽어봐.”
전보영주는 황급히 다가가 황제가 내민 서신을 받아들었다.
- 아걸. 생(生).
간단한 글자다 아걸이 살아났다는 소식이다.
“아니! 이게 정말입니까! 폐하!”
전보영주가 깜짝 놀라서 되물었다.
전보영도 파악하지 못한 일을 황상이 알고 있다. 이는 황상이 아걸을 항시 주시하고 있다는 뜻이다.
전보영은 아걸 곁에 사람을 두지 않는다. 그러니 아걸 쪽에서 소식을 보내오면 그제야 접한다. 하지만 황상은 아걸에게 최대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아걸의 생사를 즉각 알아챌 정도로 바로 옆에 사람을 두었다.
아걸 곁에 황상의 사람이 있다.
“중부가 살아났으니…… 중부와 공부가 거세게 부딪히겠지?”
“…….”
전보영주는 대답하지 못했다.
아걸이 살아났다면 그들은 또 부딪힌다. 둘 중 한 사람이 쓰러지기 전에는 끝나지 않는다. 혹은 혈무대 싸움에서처럼 둘 다 쓰러질 수도 있다.
“두 사람이 부딪히면 둘 다 무사하지 못할 거야. 하지만 난 아걸에게도, 공부에게도 미안하지 않아. 두 사람 모두 무인이니, 반역 문제가 아니더라도 두 사람은 부딪칠 거거든. 실제로 두 사람이 또 부딪친다고 해도 그건 나와 연관된 일은 아니니까.”
“꿀꺽!”
전보영주는 마른 침을 삼켰다.
이 순간, 그는 황상의 마음을 헤아리려고 애썼다. 황상이 어떤 마음으로 두 사람의 싸움을 지켜보는 것일까? 아걸이 공부를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나?
황상이 말했다.
“공부도 이 죗값에 휩쓸린 사람이니 책임을 져야지. 대장군도 죽고, 나도 죽고, 공부도 죽고…… 그러면 끝나. 공부 편에 섰던 사람들? 전부 추측이잖아? 이 사람들이 뭘 했어? 내버려 둬. 모두 짐의 신하들이야. 태자의 신하들이고.”
황제가 웃으면서 말했다.
‘공부가 죽으면!’
허굉우는 황상의 마음을 헤아렸다.
황상은 두 사람이 다시 싸우면 아걸이 이길 것이라고 확신한다. 완벽하게 이기지는 못해도 최소한 양패동사할 것으로 생각한다. 허도기가 죽는 것이다.
허도기만 쓰러지면 반역은 없던 일이 되어버린다. 지금, 누구도 반역을 드러낸 사람이 없다. 어떤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전보영이 그린 그림은 휴지가 되어 버린다.
문제는 아걸이 공부를 쓰러트려야 한다는 것이다.
황상에게는 죄송하지만, 전보영주는 반대로 생각한다.
아걸이 허도기를 쓰러트리기보다 허도기가 아걸을 벨 가능성이 훨씬 크다.
그런데…… 전보영주는 웃고 있는 황제를 봤다.
황제의 얼굴에 웃음기가 번져 있다. 아걸이 이길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황제는 공부가 이기도록 내버려 두지 않아. 무슨 일인가를 벌인 게 틀림없어.’
황제는 아걸이 식물인간이 된 후에도 그의 곁에 사람을 붙여 놓고 있었다. 그런 만큼 아걸에게 관심이 높았다. 생사는 황제도 어쩌지 못해서 지켜보기만 했다. 하지만 싸움이라면 어떤 식으로든 간여할 수 있다.
황제는 허도기가 무너지도록 방법을 모색한 것 같다.
“폐하! 폐하의 뜻을 받들겠습니다.”
전보영주가 고개를 숙였다.
전임 전보영주 탁호가 그리기 시작해서 거의 십여 년 만에 그림이 완성됐는데…… 활짝 펼쳐보지도 못하고 다시 묻힌다.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웃!”
전보영주는 눈을 부릅떴다.
전보영에 돌아온 즉시 아걸에 대한 정보를 모두 취합했다. 그리고 사실만 열거했다.
아걸이 의식불명 상태에서 치료받은 전 과정, 의식을 회복한 후에 벌어진 일들이 상세하게 열거되었다. 별다를 게 없는…… 지독한 부상과 기사회생이다.
그런데 그런 사실들을 주시하다 보니 퍼뜩 깨달아지는 것이 있었다. 아걸이 행한 움직임 속에 황제가 웃음을 흘리게 한 요인이 숨겨져 있었다.
덜컹!
등 뒤에서 문이 열렸다.
나통은 깜짝 놀라서 즉시 검을 뽑았다. 그리고 상대가 누구인지 분간할 틈도 없이 살검을 쳐냈다.
아걸이 누워있는 방에서 문소리가 났다.
아걸이 깨어났을 리는 없다. 불과 반 시진 전에 아걸 얼굴을 보고 나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해서 오늘을 넘길 수 있을까 우려했다.
인기척? 침입자다! 누군가가 침입했다!
나통은 사전절광검을 벼락같이 쏟아냈다.
청성파의 검학인 사전절광검은 아걸의 일초무적도 탄궁도의 영향을 받아서 한층 빨라졌다. 초식을 전개함과 동시에 전신 진기가 검첨에 응축되어 터진다.
파앙!
소축십검 중 쾌속 제일로 일컬어지던 신도파와도 견줄 수 있는 빠름이 터졌다.
나통은 오직 한 생각만 했다.
죽인다!
아걸이 누워있는 방에서 빠져나오는 자, 아걸을 죽이러 온 자, 어쩌면 벌써 목적을 달성했을지도 모르는 자…… 이런 자가 무사히 도주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지 않나.
그래서 그가 뻗어낸 검은 그 어느 때보다도 신랄했다. 날카롭고, 강하고, 한 치의 인정도 포함되지 않은 말 그대로 벼락처럼 빠른 살검이 터져 나갔다.
그런데 침입자가 가볍게 손을 들어서 손가락으로 검신을 튕겨냈다.
타앙!
사전절광검은 가볍게 쳐낸 손가락에 퉁겨져서 옆으로 밀려버렸다.
“욱!”
나통은 하마터면 검신을 두들기는 타격에 충격을 받고 검을 놓칠 뻔했다. 침입자는 가볍게 손가락을 튕겨냈지만, 나통은 손아귀가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나예요. 나 죽일 겁니까?”
아걸이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엇! 너! 너!”
나통은 자신의 검이 어떻게 무너졌는지 생각하지 못했다. 아걸이! 아걸이 깨어났다! 멀쩡한 모습으로 걸어 나왔다! 세상에 기적이 벌어졌다!
나통은 아걸이 다시 살아난 것이 더할 나위 없이 기뻤다.
“뭐야? 너 깨어난 거야? 정말 깨어난 거야? 이게 꿈은 아니지?”
나통은 와락 달려들어서 아걸을 껴안았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장면이다. 무심히 흘려버리기 딱 좋은 일화다.
‘나통의 사전절광검…… 이 검은 신도파의 일사검광과 버금가. 이런 검을 손가락으로 퉁겨냈다고?’
허굉우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이 세상에서 어느 누가 이런 경지에 이를 수 있나? 허도기는 그렇게 할 수 있을까? 허도기는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또 누가? 없다.
아걸과 허도기는 무인들이 말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이미 인간이 능력을 초월했다. 두 사람은 이미 소축십검이나 은거 무인들 정도는 눈 아래 굽어보고 있다.
식물인간 상태에서도 무공을 수련했나?
아걸은 쓰러지기 전보다 훨씬 강해졌다. 아니, 말도 안 되게 강해졌다.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서 나타났다.
이런 보고가 황상에게 올라갔다.
아걸에게 모든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는 황상이 이토록 큰 변화를 몰라볼 리 없다. 양패동사로 쓰러지기 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해졌다는 사실을.
그러니 다시 싸우면 허도기가 죽는다고 자신한 것이다.
황제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황제가 아걸을 주시한 것은 사실이지만 어떤 조처를 하지는 않았다. 단지 사실을 사실대로 파악한 결과, 이제는 이긴다고 본 것이다.
아마도 황제의 판단은 옳을 것 같다.
그 누구보다도 무공에 대해서 잘 아는 분이니 아걸의 행동 속에 녹아있는 무공을 못 볼 리 없다.
“이래서…….”
전보영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걸이 초도성으로 가고 있다. 몽설이 초도성에 있으니 그녀를 찾으러 가는 것이겠지만…… 허도기 역시 초도성에 머무르고 있으니 두 사람은 곧 부딪칠 것이다.
이번에도 혈첩을 전하고 혈무대에서 도검을 맞댈까? 아니면 기습전을 취하려나? 어찌 되었든 아걸도 이번에는 전처럼 쉽게 무너지진 않을 것이다.
‘아걸이 허도기만 베어주면 걱정할 게 없는데. 그때는 폐하의 명령대로 모두 묻어버릴 수 있는데.’
전보영주는 아걸이 이기기를 간절히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