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홀도-598화 (598/600)

第百十章 아(哦)! 일홀도(一忽刀)! (3)

밤이 깊었다.

멀리서 자정을 알리는 인경 소리가 울린다.

잔잔하고 은은하게…… 잠을 깨우지 않을 정도로 아늑한 종소리가 밤하늘에 번져나간다.

사령은 인경 소리가 끝날 즈음 청석 바닥을 밀치고 위로 올라섰다.

구릉! 구르릉!

돌바닥이 밀리고 닫혔다.

사령은 허도기가 머물던 공부 집무실로 들어섰다.

“후우!”

집무실로 올라서자마자 진한 한숨부터 토해졌다.

공부는 자신의 집무실에서 황상의 침전까지 미로를 뚫어놨다. 한 사람이 간신히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좁은 굴이지만, 곳곳에 야광주가 박혀 있어서 어둡지는 않았다.

하루 이틀 사이에 만든 굴이 아니다. 장장 십여 년에 걸쳐서 만든 최후의 칼이다.

이 굴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없다.

굴을 판 사람은 땅귀신, 지귀(地鬼)라고 불렸던 사파의 거마 노동군(盧董郡)이다.

사령은 땅굴 속에 마련된 휴식처에서 시신 한 구를 찾아냈다.

살은 이미 다 썩어버렸고 뼈만 남은 시신이었다. 시신은 옷도 입지 않은 듯했다. 아랫도리를 가리는 가죽 고의 한 장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하지만 시신 곁에 시신이 지녔던 것으로 보이는 지삭도(地削刀)가 놓여 있었다.

지삭도는 땅을 파는 칼이다. 지귀 노동군의 병기로 유명하다. 도첨이 세 갈래로 갈라져 있어서 삼설도(三舌刀)라고도 불린다. 결코, 흔한 병기가 아니다.

지귀는 삼설도 한 자루만 들면 세상 어디든 굴을 뚫지 못하는 곳이 없었다. 암벽도 거침없이 뚫었다. 본인 말로는 용암굴도 뚫은 적이 있다고 한다. 물론 거짓말이겠지만.

- 내가 가지 못하는 곳은 없어. 갖지 못하는 것도 없고.

지귀가 갖는 것 중에는 사람 목숨도 포함되어 있다. 그가 노린 사람 치고 죽지 않은 사람이 없다.

그런 자가 전력을 다해서 땅굴을 팠고 목적을 이뤘다. 황제가 잠자는 모습을 바로 지척에서 쳐다볼 수 있게 되었다. 손만 뻗으면 천자를 죽일 수 있었다.

지귀가 죽은 것은 그즈음일 것으로 생각된다.

아직은 황제를 죽일 시기가 아니다. 황제를 암살로 죽이면 많은 동요가 일어난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군대를 몰아쳐서 정변으로 누르는 것이 낫다.

암살은 최후의 수단이다.

그것을 몰랐던 지귀는 자신이 판 땅굴 한구석에서 죽임을 당했다.

이제 그 명령은 사령에게 이어졌다. 혈무대 싸움이 벌어지기 전, 황상을 죽이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리고 이 땅굴을 알게 되었다. 동영 유음류처럼 번잡하게 싸울 필요도 없이 조용하게 들어갔다가 나오면 그만이다.

사령은 언제든 황상의 목을 벨 수가 있다.

황상 주변에는 금군들이 그물처럼 깔려 있지만, 사령을 잡아내지는 못한다.

실제로 황상이 잠들었을 때 조용히 침전 바닥에서 튀어나와 잠든 모습을 쳐다보기도 했다. 그러니 독심만 품었다면 황상은 이미 죽은 목숨이다.

그런데도 죽이지 않은 것은 굳이 죽여야 할 이유가 없어서였다.

허도기가 혈무대 싸움에서 쓰러졌다. 그리고 생사를 알 수가 없다.

그러면 지금 황상을 죽여서 무엇하나?

황상이 죽으면 태자가 뒤를 잇는다. 공부가 나설 계제가 전혀 없다. 허도기가 다시 황위를 꿈꾼다면 이번에는 황제가 된 태자를 죽여야 한다.

그때 또 땅굴을 팔 것인가?

지귀도 없고, 십 년 세월도 기다려주지 않는다.

황상을 죽이면 누군가는 이득을 봐야 하는데, 이득 볼 사람이 아무도 없다.

이럴 경우, 살행을 멈춘다.

흑살 같으면 받은 명령을 충실히 이행하겠지만, 사령 정도 되면 큰 그림을 볼 줄 알아야 한다. 황상을 죽이는 일은 공부가 깨어난 후에 실행해도 늦지 않다.

그래서 황상을 죽이지 않고 기다렸다.

지금이라도 허도기가 온전한 상태라는 게 확인된다면 즉시 땅굴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그동안 사령은 미로 곳곳을 탐지했다.

지귀가 남긴 지삭도를 들고 그가 어떤 식으로 땅굴을 파고 들어갔는지, 땅속에서 방향을 어떻게 잡았는지, 수로는 어떻게 피했는지를 상세히 조사했다.

이런 미로는 마유에게도 힘이 되어줄 것이다.

당연히 모든 생활은 땅굴 속에서 했다. 먹고, 자고, 숨 쉬면서 황제의 동정을 살폈다. 간혹 식량이 필요할 때면 지금처럼 자정이 넘을 무렵에 공부로 기어 나와 음식을 가져갔다.

오늘도 음식을 가져갈 생각이다.

한데…… 오늘은 뭔가 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다. 공부의 집무실로 올라와서 한숨을 돌리는 것까진 좋았는데, 느낌이 쎄하다. 뭔가 거미줄에 걸렸다는 느낌이 든다.

‘이거 좋지 않은데…….’

사령은 불길한 느낌이 일어나는 곳, 등 뒤를 향해서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제야 어둠 속 깊은 곳에 그림처럼 앉아 있는 한 사람을 봤다.

“웃!”

사령은 깜짝 놀랐다. 하지만 당장 수비태세를 갖추는 것이 급선무다. 그는 어느새 양손의 단검을 쥐었다. 그리고 매서운 눈길로 상대를 노려보았다.

“누구냐!”

혹여 문밖에 사람이 있을까 봐 조용히 물었다.

“여기 있을 줄 알았다.”

차분한 음성이다.

“공부님?”

사령은 즉시 단검을 허리춤에 찔러 놓고 부복했다.

“쓰러지셨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상당히 위중하시다고…… 괜찮으신 겁니까?”

“내일 밤 황제를 죽여라.”

허도기가 싸늘하게 말했다.

“내일 밤입니까?”

“그래.”

“알겠습니다.”

사령이 대답했다.

허도기가 사령 앞에 비급 한 권을 던졌다.

만약집성방(萬藥集成方)!

“이건!”

사령이 덜덜 떨리는 손으로 비급을 받아들었다.

“내가 네게 약조한 것.”

“마, 만약…… 만약…… 집성…… 방.”

사령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비급을 품에 안았다.

세상에 나병과 수포증을 고칠 방법은 없다. 온갖 방법을 모두 취해봤고, 의원을 불러봤고, 좋다는 약을 써봐도 마찬가지다. 전혀 차도가 없다.

유일하게 희망을 찾는다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약초를 정리해 놓았다는 만약집성방이다. 그 속에 해답이 들어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지만 일단 유일한 희망거리다.

마유가 만약집성방 때문에 허도기 수족이 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언젠가 농담처럼 황궁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다며, 기회가 닿으면 구해주겠다고 했다.

그것을 지금 건네준 것이다.

“공부님!”

“황제를 죽이면 향후 십 년간 마유를 건드리지 않겠다. 지금처럼 야천을 농락해도 좋아. 허락한다. 하고 싶은 대로 해라. 십 년간은 확실히 뒤를 봐줄 테니까.”

“공부님!”

사령이 격정으로 어깨를 떨었다.

“내일 몽설을 죽일 것이다. 몽설을 죽이고 아걸도 죽이고. 후후! 식물인간이든 아니든 내일 모두 끝낸다. 그러니 넌 이곳 일을 끝내. 죽여 모레 아침에는 새날이 되어야 한다.”

“알겠습니다.”

사령이 대답했다.

허도기가 떠난 후, 사령은 고민했다.

오늘 절대자 두 사람을 만났다. 한 사람은 모든 사람이 ‘짐의 수하’라며 과거를 덮으라고 했다. 반역자들을 일망타진할 수 있는데도 일부러 감췄다.

사령은 황제 곁에서 전보영주와 나누는 대화를 소상히 들었다.

또 한 사람은 역심을 드러냈다.

한데, 허도기는 아걸이 깨어난 사실을 모르는 것 같다. 황제도 아는 사실인데. 아걸이 식물인간 상태로 누워있는 줄 안다. 진실을 알았다면 몽설을 베기 전에 아걸부터 베려고 했을 것이다.

허도기의 눈과 귀가 막혔다.

사령은 황상이 한 말을 떠올렸다.

아걸과 공부가 싸우면 아걸이 이길 것이라고. 허도기가 죽을 것이라고.

딱 부러지게 그런 식으로 말한 것은 아니지만, 그런 내용이었다.

다른 때 같으면 만약집성방까지 구해줬으니 의리로 보답했을 것이다. 하지만 마유의 존폐가 걸려 있는 상황이니 신중하지 않을 수 없다.

‘암살은 상황을 봐서…… 맛있는 떡도 급하게 먹으면 체하는 법이니까.’

* * *

몽설은 산속 산신각에 머물렀다.

취화원 원주쯤 되면 편안한 객사에 쉴 수 있다. 그녀가 원하면 외따로 떨어진 별채를 얻어서 지낼 수도 있다. 그녀에게는 중원 오대 거상에 못지않은 재력이 있다.

취화원이 거둬들인 재물은 절대 적지 않다.

그런데도 그녀는 편안함을 취하지 않았다. 외유할 때는 늘 산신각이나 토지묘 같은 곳에서 비바람을 피했다. 한여름이면 모기가 소낙비처럼 달려들지만, 쑥 한 덩어리 태우는 것으로 참고 견뎠다.

아걸이 그렇게 하고 있지 않은가.

아걸은 늘 노숙을 한다. 돈이 없어서 노숙하는 것이 아니다. 무인의 감각을 늘 날카롭게 세워놓기 위해서 육신을 거친 환경 앞에 드러낸다.

몽설도 아걸의 마음에 동감한다.

무인은 늘 검을 날카롭게 세워놔야 한다. 감각이 한시도 흐트러져서는 안 된다. 그래서 일부러 몸뚱이를 거친 환경 속에 내몬다.

피곤하면 생살을 씹어 먹고 잠이 든다. 기름진 음식이 먹고 싶으면 꿩이나 토끼를 잡아서 구워 먹는다. 결코, 다른 사람이 만든 음식을 먹지 않는다.

타닥! 타닥! 타닥!

그녀는 차가운 산속 공기를 모닥불 하나로 견뎌내는 중이다.

허도기가 살아있다. 이미 상처에서 회복이 되었다.

‘그러면 오빠가 받았던 바로 그 검을 받아야 한다는 거네. 이길 수 있을까? 질 거야. 하지만 그래도 싸워야 해.’

몽설은 질 것을 뻔히 알면서도 싸울 생각이다.

그녀는 비로소 아걸이 허도기와 싸우기 전에 어떤 상태였는지 이해했다.

아걸도 바로 이런 무서움 속에서 떨었을 것이다.

죽음! 이별!

자신이 죽는 것보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다는 아픔이 더 컸을 것이다. 좋아하는 사람을 이제 영원히 보지 못한다는 데 가슴 시리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나.

아걸은 칼에 미친 사람이니 일홀도만 생각했을까? 아니다. 아걸은 틀림없이 그녀와의 이별을 안타까워했을 것이다.

허도기와의 싸움은 이런 것이다.

‘오빠가 하는 고민…… 난 전혀 몰랐어. 이렇게까지 겁이 날 줄은 몰랐어.’

싸워봐야 승패를 아는 강적, 이길지 질지 모를 자…… 이런 자와의 싸움을 앞둔 것과 싸우면 반드시 지는 상대와 싸워야 하는 심정은 완전히 다르다.

‘이렇게 겁나는 줄 알았으면 오빠 곁에 있어 주는 건데. 오빠를 편하게 해준다는 게…… 오빠 혼자 이런 아픔 속에 있게 만들었네. 옆에서 손이라도 잡아주었으면 한결 편했을걸.’

몽설은 눈을 감았다.

아걸이 그립다. 식물인간이 되어서 누워만 있는데…… 회복할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데…… 그런 사람을 놔두고 떠나도 되나? 당분간은 할배가 보살펴 주겠지만 할배가 죽은 이유는 누가 보살펴 주나. 적랑대가 보살필까? 아니, 취화원이 보살펴 줄 것이다.

취운 언니라면 아걸을 보살펴준다.

하지만 그것도 취화원이 멀쩡할 때 얘기다. 허도기는 결코 취화원을 용납하지 않는다.

‘오빠, 불쌍해서 어떡해.’

또르르르!

눈가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걸만 생각하면 불쌍해서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적랑대가 허도기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가져오면 그의 상태가 어떻든 성검문으로 잠입한다. 허도기가 완치되었어도 죽여야 한다. 공부를 죽이지 못하면 자신도, 아걸도, 취화원도 모두 사라진다.

그때, 그녀의 눈앞에 검은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어!”

몽설은 깜짝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누군가가 이토록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어떤 느낌도 받지 못했다. 의식과 감각의 총집합체인 니환궁조차도 침묵했다. 이런 일은 처음이다.

아걸 생각을 너무 깊게 하는 바람에 경계심을 늦췄나? 감각이 이렇게 둔해졌나?

스읏!

그녀는 검을 잡았다.

하지만 상대방은 이미 코앞까지 들이닥쳤다.

‘훗! 너무 빨라!’

상대를 확인하지도 못했는데, 어느새 접전이 벌어지고 있다. 벌써 타격이 이루어진다.

쓰윽!

그녀의 손이 상대에게 잡혔다.

기겁할 정도로 놀랄 일이다. 이토록 빠르다니.

몽설은 온몸에 식은땀이 흘렀다. 소름이 돋았다. 너무 강하지 않나. 도대체 누구이기에.

그때, 그림자가 말했다.

“몽설. 이젠 나도 못 알아보는 거야?”

매우 다정한 음성이다.

“오빠? 오빠!”

몽설은 깜짝 놀라서 고개를 쳐들었다.

아걸이 보인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죽은 듯이 누워있던 아걸이 멀쩡한 모습으로 눈앞에 서 있다.

“오빠…… 오빠, 혹시 죽은 거야? 지금 귀신인 건 아니지?”

몽설은 덜덜 떨리는 손을 들어서 아걸의 얼굴을 만졌다.

그런데 살의 감촉이 만져졌다. 따뜻한 온기도 느껴졌다. 아걸은 너무도 멀쩡하다.

“몽설, 나야. 나 깨어났어. 그리고 한달음에 달려왔지. 널 죽게 놔둘 수는 없잖아. 오면서 얼마나 애간장 탄 줄 알아? 혹시 먼저 잠입했으면 어쩌나 하고. 사람을 왜 이렇게 걱정시켜?”

아걸이 부드럽게 말하면서 몽설을 껴안았다.

“저, 정말 오빠지? 정말 오빠 맞지? 깨어난 것 맞지?”

몽설은 아걸의 품에 안기면서도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듯 연신 되물었다. 묻고, 묻고, 또 물었다. 정말 깨어난 거냐고, 혹여 귀신은 아니냐고.

아걸은 더욱 힘주어 그녀를 안았다. 그리고 말했다.

“나 정말 깨어났다니까. 깨어났어. 믿어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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