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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599화 (599/600)

第百十章 아(哦)! 일홀도(一忽刀)! (4)

스으읏! 스읏!

적위군은 마구산(瑪球山)을 밟았다.

초도성에서 삼 리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작은 산이다. 생김새가 마노처럼 둥글다고 해서 마구산이라 부르며, 산 입구에는 성검문의 무운을 비는 영불사(靈佛寺)가 있다.

성검문도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산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예전처럼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내놓고 들어설 수 없다. 지극히 은밀하게…… 모든 기척을 완전히 숨긴 채 잠입해야만 한다.

스읏! 스스스슷!

적위군은 옛날의 움직임을 잊지 않았다.

적진에 들어서면 매 걸음마다 죽음이 도사린다는 사실을 그들보다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단신으로 수십만 명을 뚫고 들어갔다가 뛰쳐나온 경험이 있다면 저절로 조용해진다.

그들은 조용히 산에 올라갔다.

산길을 타는 동안 풀잎 하나, 나뭇잎 하나 건드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 오르는 속도는 매우 빨랐다. 거의 보통 사람이 달음박질하는 수준으로 산을 탔다.

스스! 스스! 스슷!

어둠이 일렁거린다.

눈에 보이는 것은 없다. 무엇인가 움직인다는 느낌도 일어나지 않는다.

적위군의 움직임은 완전히 어둠 속에 묻혔다.

탁!

팽팽하게 당겨졌던 신경의 끈이 끊어졌다.

‘왼쪽!’

비석 장태전은 왼쪽이 수상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의 왼손은 느낌보다도 훨씬 빨랐다.

어느새 비석이 손에서 튀어 나갔다.

타다다닥! 타타탁!

작은 돌멩이들이 나무에 틀어박히고 풀을 휩쓸었다. 바위를 뚫고 들어갔다.

풀썩!

돌이 딱딱한 물체를 두드릴 때와는 사뭇 다른 소리가 울렸다.

‘그렇지!’

육중한 몸집이 쓰러진다. 그는 마지막 순간에도 소리를 죽이려고 애썼지만 그러지 못했다. 비석이 워낙 빨랐다. 워낙 불의의 순간에 들이닥친 공격이어서 미처 소리를 죽이지 못했다.

“적이다!”

“급습이군.”

은거 무인들은 당장 적들의 침습을 알아챘다.

성검문이 몽설의 위치를 모른다고 생각하면 대단한 오만이다. 몽설이 초도성 근처에서 얼씬거리는데 설마 눈치채지 못했겠나. 저들에게는 수많은 눈과 귀가 있는데.

적랑대와 취화원이 생각하지도 못하는 눈과 귀들이 저들에게 소식을 알려준다.

몽설의 위치가 발각되었다는 것쯤은 진작에 눈치챘다.

그래서 은거 무인들이 마구산에 잠복해 있는 것이다. 몽설을 노리는 자들이 반드시 있을 테니까. 물론 그자는 허도기다. 은거 무인들은 막지 못한다. 굳이 저들을 막지 못해도 괜찮다. 최대한 자신들 손에서 저지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그들 뒤에는 몽설과 아걸이 남아 있다.

적위군 중 몇 명이나 두 사람이 머무는 있는 산신각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을까? 허도기는 막지 못하지만 다른 자들은 어림도 없다. 한 명도 못 보낸다.

“후후후!”

장태전은 웃었다.

아걸은 완전히 달라졌다. 허도기도 승부를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솔직히 혈무대 싸움이 있기 전에는 아걸이 상대도 하지 못할 정도로 강한 고수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걸은 인간이다. 인간인 이상 따라갈 수 있다.

아걸에게 분명히 몇 수 늘어지기는 하지만 영원히 쫓아가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어쩌면 영원히 틈새를 좁히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역시 차이는 몇 수 정도다.

그런데 생사지경을 뚫고 나온 아걸은 완전히 달랐다. 아걸이 인간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인간이 펼칠 수 없는 무공을 펼친다고 여겨진다.

이제는 거리가 얼마나 멀어졌는지도 모르겠다. 너무 멀리 떨어져서 도저히 따라잡을 수가 없다.

아걸의 일홀도는…… 글쎄? 이쪽은 막대기를 들고 덤비는데 저쪽은 금속도 두부처럼 베어내는 보검을 들고 나타난 격이다. 그만한 차이가 벌어진다.

“키키키! 이 새끼들! 어딜 기어들어 와!”

쌍겸이 낫을 들고 숲으로 뛰어들었다.

쌍겸도 침입자들을 눈치챘다.

저들이 아무리 전장에서 격전을 치를 용사들이라고 해도 은거 무인들의 감각은 따돌리지 못한다. 한데,

“물러서라.”

“한 수 부탁을.”

“죽는다.”

숲에서 심상치 않은 대화가 들려왔다.

“나도 귀하 못지않게 빠르다고 생각합니다만.”

“경고는 했다. 와라.”

분명히 다른 곳과 다른 대화 내용이다.

은거 무인들은 일제히 손을 멈추고 좁은 소로가 굽어진 곳을 쳐다봤다.

쾌검의 달인 나통이 허도기와 맞섰다.

예상했던 대로 적위군을 이끌고 온 사람은 허도기다. 현재 성검문에서 몽설을 벨 수 있는 사람이 본인밖에 없으니 직접 오지 않을 수 없었을 게다.

적위군은 길을 안내하는 충견일 뿐, 싸움에 투입할 생각은 없었던 듯하다. 몽설이 마구산 어디에 있는지 안내하고 말 잘 듣는 개처럼 주인이 돌아올 때까지 앉아서 기다리면 된다.

스읏!

나통이 허도기를 향해 검을 겨눴다. 그때,

“물러서세요.”

나통의 뒤에서 나직한 음성이 들렸다.

“미안하지만 문주하고 다섯 수 차이가 벌어집니다. 지금의 사전절광검으로는 안 돼요.”

아걸이 고개를 저었다.

그 말에 나통은 ‘쳇!’하고 헛바람을 차며 검을 거뒀다.

허도기가 하는 말은 듣지 않지만, 아걸이 하는 말은 듣는다. 아걸이 보는 눈은 틀리지 않는다.

“잠시.”

아걸이 몽설을 보며 말했다.

“알았어. 죽지 마.”

몽설이 말했다.

“이런 말, 하고 싶지 않아서 다시는 안 하겠다고 다짐했거든. 그런데 오빠는 어떻게 된 게 눈만 뜨면 죽지 말라는 말을 하게 만드네. 이것도 참 대단한 재주야.”

“안 죽을게.”

“안 죽는다고 하고는 꼭 검을 맞더라. 명심해. 이번에도 쓰러지면 나 신랑 바꿀 거야. 매번 몸 상하는 남자하고는 못 살아. 분명히 경고했어.”

“알았어.”

아걸이 웃으며 말했다.

“걸을까?”

허도기가 말했다.

“그러죠.”

아걸이 담담하게 말했다.

두 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었다.

“그때 그거 내 최고의 필살초였다. 직격운소라고 하지.”

“그때 그 칼, 최선을 다한 칼이었습니다. 일홀도라고 합니다.”

“일홀도 중에도 이름이 있지 않나? 본인들이 깨닫고 본인들이 작명한 이름. 네 일홀도 이름은 뭔가?”

“일홀도는 일홀도일 뿐, 이름이 있을 리 없죠.”

“그렇군.”

허도기가 웃었다.

싸움 잘하는 자에게 네 싸움 방식은 뭐냐고 묻는 것과 같다. 발을 잘 쓴다, 오른손이 강하다, 몸이 빠르다…… 정말 강한 자는 어디서 뭐가 튀어나올지 모른다. 몸 자체가 무기다. 반철도 자체가 일홀도라는 말이 성립된다.

“한평생 잘 사셨습니까?”

아걸이 문득 물었다.

허도기는 눈빛을 번뜩이며 아걸을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그 역시 평범하게 말했다.

“잘 살았지. 이만하면 잘 살지 않았나?”

“후회는 없습니까?”

“그 일을 말하는 것 같은데…… 내가 그 일을 벌이지 않았다면 성검문주는 허도강이 되었을 거야. 허씨 문중 장남. 그랬다면 오늘처럼 성검문이 단단해졌을까? 후후! 내가 쓰러졌다는 소리를 듣고도 중원 무림이 앙복하는 것을 봤잖아? 이게 현재 성검문의 위치야. 후회? 그런 것을 하기에는 너무 멀리 왔어.”

“그렇습니까? 그런데 전 어쩐지 문주가 말한 성검문의 위치라는 게 모래성 위에 지어진 것처럼 보여서.”

“그런 말은 내가 죽으면 다 끝장난다고 바로 말하는 게 알아듣기 쉽지.”

“그렇습니까?”

“그런데 나한테 존대를 하는 이유가 뭐지? 영 듣기 거북해서.”

“그때 그날 혈무대에서…… 문주의 검을 봤죠. 문주의 검은 뜻밖에도 생검(生劍)이었어요.”

“생검?”

“생검이란 말은 제가 만든 겁니다. 딱히 뭐라고 부를 게 없어서. 후후! 문주의 검은 삶에 절실한 검이었어요. 너무 절절해서 절대로, 절대로 죽지 못하겠다고 말하는 검.”

“그런가?”

“오히려 제 칼이 사도(死刀)였어요. 목숨을 생각하지 않은 칼. 목숨을 걸고 싸움을 하게 되면 본성이 나온다고 하는데, 혈무대 싸움에서 문주의 본성을 처음으로 봤습니다. 문주도 그 싸움에서는 목숨을 걸었다는 거죠.”

“그래서?”

“이제는 문주의 검이 보입니다.”

허도기가 아걸을 쳐다봤다.

“후후! 내 검이 보인다?”

“네.”

“믿지 못하겠군.”

“곧 보여드릴 겁니다. 제 존대는 목숨을 걸고 제 칼을 받아들이는 사람에 대한 예우입니다.”

두 사람은 걸음을 멈췄다.

두 사람을 쫓는 사람은 없다. 몽설도, 은거무인도 두 사람을 따르지 않았다.

적위군과 은거 무인들 간의 싸움도 멈췄다.

그들은 모두 한 사람을 기다린다. 허도기가 나타나면 몽설을 비롯한 은거 무인 모두가 척살당한다. 반대로 아걸이 나타나면 적위군이 몰살당한다.

그들의 운명은 누가 나타나느냐에 따라서 결정지어진다.

“내 검을 보았다는 말은 조명십해를 꿰뚫어 볼 수 있다는 말인데, 그것도 조명십해를 전혀 모르는 외인이 봤다니. 이 세상에 그런 사람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모두가 포기한 조명십해인데 말이야. 후후!”

스읏!

허도기가 두 다리를 낮게 구부리고 앉았다.

발검술 예비식이다.

슷!

아걸은 허리에 꽂힌 뭉툭한 반철도를 뽑아 들었다. 그리고 휘릭! 허공에 한 번 크게 휘둘렸다.

“조명십해…… 사실 별거 아니지 않습니까? 진개가 분뢰절맥만 잘 썼다면 능히 조명십해를 대체했을 텐데. 그러면 조명십해가 딱히 탁월하다고 할 수는 없고. 조명십해가 강한 이유는 문주가 강해서겠죠. 궁금한 점이 있는데…….”

“뭐냐?”

“제 아버지 이초결검 허도강. 선친이 병으로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문주가 과연 소축에서 나올 수 있었을까 궁금해서요. 절망감, 처절함, 나락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발버둥이 검에 묻어있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게 생검으로 표현된 것이고.”

“음!”

허도기가 침음했다.

아걸의 물음은 정곡을 찔렀다.

허도기는 형이 살아있을 적에는 소축에서 한 걸음도 나서지 못했다. 형의 무공이 확실히 허도기를 앞섰다. 너무 차이가 크게 벌어져서 따라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사실, 형과 그의 무공은 엇비슷했다.

형의 무공이 급신장한 것은 동생에게 암살당할 뻔한 일이 있고 난 뒤다. 그때 일홀문주가 나서는 바람에 실패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두 사람의 무공은 엇비슷했다.

그 사건 이후, 형은 비약적인 발전을 했다. 조명십해를 한눈에 꿰뚫어 보는 기연을 얻었다.

형의 검은 혈육이 자신에게 검을 겨눴다는 비감(悲感) 속에서 피어난 꽃이다.

자신의 검 역시 비감 속에서 피어났다.

일홀문주를 능가하지 못한다는 절망감, 형이 있는 한 소축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자괴감…… 이런 비감을 떨쳐내고자 검에 몰입했고, 조명십해에 눈을 떴다.

그렇구나. 조명십해는 수련만 해서는 이룰 수 없다. 감정의 처절함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인생의 밑바닥에서 처절하게 울부짖어야만 탄생할 수 있는 꽃이다.

소축십검과 하원랑, 사구정이 조명십해의 진수를 깨닫지 못한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들은 비감을 느끼지 못했다.

아걸에게 몇 번 지기는 했지만, 그것이 인생을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뜨리지는 못했다. 비감이 형성되지 못했다. 처절한 절망 속에서 몸부림친 적이 없다.

그런 비감은 오히려 진개에게 찾아왔다.

그때 진개에게 분뢰절맥을 전수하지 않았다면, 팔을 잃은 상태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면…… 그랬다면 어쩌면 진개는 조명십해를 깨달았을 수도 있다.

“후후후! 너한테 좋은 걸 배웠군.”

허도기가 웃었다.

저벅! 저벅!

아걸이 걸어갔다.

허도기는 움찔거리면서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아걸이 이토록 거침없이 걸어올 줄 몰랐다.

아걸은 완전히 무방비 상태로 칼을 축 늘어뜨린 채 걸어온다.

방금 그가 말한 대로라면…… 아걸은 식물인간 상태에서 처절하게 발버둥 쳤다는 말이 된다. 마음은 번잡한데 몸은 움직이지 않고…… 그런 비감 속에서 칼을 얻었다. 일홀도!

저벅! 저벅! 저벅!

아걸이 거침없이 검권 안으로 들어섰다.

‘미친!’

허도기는 전력을 다해서 직격운소를 터뜨렸다. 아걸을 무시하지 않고, 최고의 적을 맞이하는 심정으로 검을 썼다. 이번에는 아걸을 유인하기 위해서 틈을 드러낼 필요도 없었다. 온 힘만 집중시키면 되는 거였다.

쒜엑! 쒜에엑!

직격운소가 혈무대에서 싸웠을 때보다 적어도 두 배는 빠르게 달려나갔다.

철컥!

앞으로 뻗어 나간 검이 다시 검집으로 돌아왔다.

빠르다. 됐다. 만족한다.

한데, 만족한다는 마음이 일어나면서도 뭔가 허전한 느낌이 일었다.

그렇구나. 검이 허공을 쓸었다. 아무것도 닿지 않았다. 아걸이 검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그 순간, 허도기의 몸에 격렬한 격통이 전해졌다.

혈무대에서 느꼈던 바로 그 격통!

칼이 몸을 베고 지날 때의 아픔!

털썩!

허도기가 무릎을 꿇었다.

아걸의 반철도가 오른쪽 빗장뼈를 뚫고 들어와서 심장을 갈랐다.

허도기는 아걸을 쳐다봤다.

“말했잖습니까. 검이 보인다고.”

“그…… 래.”

“문주가 없었다면 제 일홀도는 만들어지지 않았을 겁니다. 문주가 만들어준 칼입니다. 문주와 싸우면서 얻은 칼입니다. 목숨을 걸고 싸웠기에 문주를 이해할 수 있었고, 그래서 존대를 한 겁니다. 문주, 이게 제 일홀도입니다.”

“좋…… 군.”

풀썩!

허도기가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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