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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왕비는 네가 아니라 네 언니 (2/733)

<제2화> 왕비는 네가 아니라 네 언니2020.12.09.

체자레는 이제까지는 남들 앞에서 그녀를 타박하는 법은 없었다. 그의 약혼녀가 모자라 보이면 그도 같이 부족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섭정공이 된 이후로 그는 점점 더 언행에 거침이 없어졌고 사람들이 있건 말건 본인의 불쾌함을 표시하는 데에 거리낌이 없었다.

16550979884032.jpg“저 사람들 심기 거스르지 마, 아리아드네. 처신 똑바로 해.”

체자레는 이번에는 확실히 목소리 크기를 누르지 못했다. 그의 힐난하는 목소리가 순간 응접실 전체를 가득 채웠다. 그리고 중앙 귀족들은 이를 놓칠 위인들이 아니었다. 체자레가 자기 여자를 끼고돌 생각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백작 부인이 기회를 재빠르게 붙잡아 한 마디를 더 얹었다.

16550979884039.jpg“섭정공은 약혼녀 관리를 철저히 하시기 바랍니다.”

그녀는 머리카락이 흐트러진 아리아드네를 경멸스럽다는 눈빛으로 대놓고 위아래로 훑었다.

16550979884039.jpg“손부터 먼저 나가면서 날뛰는 것이 아주 귀부인은커녕 목장에서 키우는 늑대개인 줄 알았습니다.”

백작 부인과 그녀의 파인 귀부인들이 맞장구를 치며 맹공을 퍼부었다.

16550979884039.jpg“기품이…….”

16550979884039.jpg“교육이……. 혈통이…….”

16550979884039.jpg“저 머리, 엉킨 꼬락서니가 정말 양치기 개 같지 않아요?”

아리아드네의 손이 절로 머리로 올라갔다. 손빗으로 어색하게 엉킨 머리를 풀어 내리는 그녀를 앞에 세워 놓은 채 산 카를로의 귀부인들은 혀로 칼질을 했다.

16550979884039.jpg“섭정공께서 원활하게 돌아가는 사교계와 중앙 귀족의 지지를 원하신다면 약혼녀 관리를 잘하시기 바랍니다.”

백작 부인을 위시한 귀부인들은 혼자 오도카니 서 있는 아리아드네를 위아래로 훑었다.

16550979884039.jpg“아니면, 아예 혼처를 바꾸시는 건 어떨까요? 이 여자로는 도통 어려울 것 같군요.”

- 너는 온당한 상류 사회의 일원이 아니야. 그녀들의 속마음이 왕궁 안을 가득 울리는 것만 같았다.

16550979884039.jpg“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선 왕비께서 돌아가시고 궁정의 주인이 바뀌고 나니 맞을 각오 없이는 왕궁 출입도 못 하겠군요. 교양 없기는. 흥!”

백작 부인이 먼저 응접실 밖으로 향하자 나머지 귀부인들도 혼자 자리에 남은 그녀를 위아래로 쳐다보면서 일제히 퇴장하기 시작했다. 아리아드네의 머리칼에는 테이블을 넘어 뛰어들다가 묻은 설탕 조림이 끈적하게 달라붙어 있었고 드레스는 엉망으로 흐트러져 있었다. 티파티장은 휑했고 그녀의 친구는 아무도 없었다. 그 몰골을 그녀가 사랑한 남자가 경멸하는 눈길로 일별했다. 비참했다. 그 뒤로 대놓고 체자레의 출생에 대해서 왈가왈부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지만, 대신 아리아드네는 늑대개 같은 여자, 무어인 노예, 농장 하녀 등 많은 악명을 얻었다. 그녀의 출생이 비천해서, 어미를 닮아서 그렇다, 결혼 못 한 노처녀라서 그렇다는 비아냥 또한 물론 따라왔다. 그녀는 사교계의 관리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 자신과 결혼을 하면 안 되냐고 체자레에게 거듭 부탁했지만, 그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16550979884032.jpg“당신이 이렇게 평판 관리를 못 해서야 내가 어떻게 당장 당신을 섭정공비로 올리겠어. 난 흠이 있는 여자와 함께할 수 없어.”

그의 주문은 구체적이었다.

16550979884032.jpg“지금보다 공부도 더 열심히 하고 류트 연주, 명화 감상, 라틴어에 능해져 봐. 남들 앞에 내놓기 부끄럽지 않은 재능 있고 현숙한 귀부인이 되어 보라구. 그러면 그때 내가 당신을 섭정공 부인으로 삼지.”

그래서 그것만 해내면 될 줄 알았다. * * * 체자레 섭정공이 체자레 1세가 되는 것은 오래 걸리기는 했으나 결국에는 시간문제에 불과했다. 군사도, 금화도 모두 그의 손아귀에 있었다. 그에게 모자란 것은 오직 하나, 정통성뿐이었다. 그런 것은 시간이, 정확하게는 시간에 실려 오곤 하는 기회가 치유를 해주는 법이다. 아리아드네는 아직도 체자레의 즉위를, 정확하게는 즉위식 전날을 기억했다. 그녀가 30살이 되던 해였고, 그는 36살이 되던 해였다. 그날을 생각할 때마다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16550979884032.jpg"나는 너그러운 왕이지. 폐세자의 세력도 내 품으로 끌어안아야 해."

체자레는 아리아드네의 침대에 걸터앉아서 그녀의 목덜미에 입술을 묻었다.

16550979913874.jpg“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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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분대는 그의 숨결이 야살스러웠다. 아리아드네는 몸을 뒤로 뺐지만 체자레는 한 손으로 그녀의 두 손목을 동시에 잡아 올려 누른 상태로 침대에 힘있게 눕혔다.

16550979884032.jpg“얌전히 있어야지.”

그는 입술로 그녀의 목덜미를 탐닉했다. 아리아드네의 가장 큰 장점은 그녀의 고혹적인 분위기였다. 아리아드네는 이목구비가 눈에 띄게 예쁘다거나, 청순미가 있는 편은 아니었지만 키가 크고 가슴이나 엉덩이의 살집이 보기 좋게 잡혀 퍽 매력적이었다. 매혹적인 분위기 역시 한몫했다. 여자들보다 남자들이 미인이라고 치는 스타일이었다. 서른 살의 아리아드네는 만개한 꽃이었다. 본인이 원하지 않을 때도 뇌쇄적인 농밀함을 내뿜었고, 그것은 요구사항이 많았던 체자레가 유일하게 그녀에 대해 칭찬으로 일관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16550979884032.jpg“옳지.”

내밀한 점막이 와 닿는 온기에 머리가 멍해진 아리아드네의 귀에 체자레의 여상스러운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16550979884032.jpg"그래서, 왕비로는 이사벨라가 책봉될 거야."

이사벨라 마레 데 카를로, 아리아드네 데 마레의 배다른 언니이자 폐세자 알폰소의 왕세자비였다. 아마빛 머리카락에 자수정 같은 눈빛이 반짝이는, 아리아드네와 하나도 닮지 않은 완벽한 언니. 그 청순한 아름다움으로 이름이 높았고, 언제나 그 기품이 드높았으며, 귀족적인 여자였다. 아리아드네는 갑자기 정신이 들어 체자레를 밀어내었다.

16550979913874.jpg“뭐라고요?”

잘못 들은 것이 틀림없었다.

16550979913874.jpg"체자레……? 언니는 죽은 알폰소 왕자의 왕세자비였어요."

아들이 없는 미망인은 수도원으로 들어가 여생을 보내는 것이 관습이었다. 재혼도 불가능했고 친정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체자레는 자신을 밀어낸 아리아드네의 가슴팍에 재차 입술을 묻으며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16550979884032.jpg"속 좁게 굴지 마. 당신은 당신 친언니가 가엾지도 않아?"

지금 내가 무슨 말을 들은 건가. 나 대신 우리 언니와 결혼하겠다고? 아리아드네는 그를 다시 한번 밀어냈다. ‘나는? 내가 당신을 위해 했던 모든 일은 뭐가 되는데?’라는 말이 입가를 맴돌았다. 아리아드네가 순순히 그의 즐거운 놀이에 동참할 의향이 없어 보이자, 체자레는 그제야 입맛을 다시며 몸을 똑바로 일으켜 세웠다.

16550979884032.jpg"당신은 내 약혼녀일 뿐이었으니까 아직 좋은 혼처를 구해서 지방에서 유복하게 살 수 있어. 하지만 불쌍한 이사벨라는 내가 거두지 않으면 차가운 수도원 바닥에서 여생을 보낼 수밖에 없겠지."

뭔가 착각한 것이 분명했다.

16550979913874.jpg"일가친척의 미망인과의 결혼은 불가능해요."

체자레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대답을 내놨다.

16550979884032.jpg"성황청에 죽은 알폰소 데 카를로와 이사벨라 데 마레의 이혼 확인을 받으면 되오. 이사벨라는 결혼 생활 내내 순결했기 때문에 성황청의 이혼 불가 방침의 예외사유에 해당하지."

아리아드네로서는 어이가 없었다.

16550979913874.jpg"체자레, 언니는 순결하지 않아요. 결혼 첫해였던 1128년에 이미 형부의 아이를 뱄다가 유산했어요."

16550979884032.jpg"조용히 하시오!"

이사벨라의 순결성이 그의 역린이었나 보다. 뻔뻔하게 이야기를 잘하고 있던 체자레는 급작스레 시뻘겋게 흥분해서는 벌떡 일어나 아리아드네에게 삿대질을 했다.

16550979884032.jpg"거짓말! 여자의 적은 여자라더니, 친자매 간에도 예외가 없으니 암컷이란 이 얼마나 저열한가!"

아리아드네는 기가 차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저열하지 않다는 사실을 체자레에게 최대한 설득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목소리를 가라앉히고 자분자분한 톤으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16550979913874.jpg"체자레. 중상모략이 아니라 사실이에요. 그 당시 왕세자비를 모셨던 시녀들은 모두 알고 있어요."

16550979884032.jpg“시끄럽소!”

체자레는 지금 말이 통하는 상태가 아니었다. 귀를 일부러 막은 사람한테는 그 어떤 합리적인 이야기도 가서 닿지 못했다.

16550979884032.jpg“내 당신을 어여삐 여겨 상인과 결혼시켜 안온한 삶을 보장해주려고 하였으나 이런 간악한 여자를 어찌 살려둘 수 있단 말이오!”

상인? 안온한 삶? 듣기만 해도 어이가 없었다. 나에게 사랑한다고, 영원히 함께할 거라고 약속했잖아. 그래서 나는 당신을 위해 무슨 짓이든 다 했는데. 나에게 흠이 있어서 왕비가 되는 날을 미루는 거라고, 열심히 배우고 정진하라고 했잖아. 그런데 그 결론이, 당신이 찾는 '흠 없는 여자'가, 왕자의 미망인인 내 언니야?

16550979913874.jpg“당신은 나를 사랑한다고 했잖아요. 나를 왕비로 삼아서 영영 함께할 거라고 했잖아요.”

바보 같은 말이지만 이것밖에 할 말이 없었다. 체자레는 경멸 어린 눈으로 코웃음을 쳤다.

16550979884032.jpg“나는 당신이 대업을 방해할 이런 시시한 여자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군.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 양보하는 미덕이 없어. 어쩜 동생의 행복을 위해서 혼처마저 양보한 이사벨라와 이리도 다를꼬?”

이제야 숨이 가쁘게 차올랐다. 눈물이 먼저인지 분노가 먼저인지 가릴 수가 없었다.

16550979913874.jpg"내가 방해가 된다고요? 이사벨라 언니가 양보를 했다고요? 난 당신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했어요. 평판도, 혼기도 포기했고, 심지어 알폰소 왕자까지 내 손으로 사지에 몰아넣었어요. 그동안 이사벨라가 한 게 뭐가 있나요?"

알폰소 왕세자와 이사벨라가 성대하게 결혼식을 올리고 이사벨라가 축복의 결실인 아이를 유산했던 그 겨울에, 아리아드네는 체자레와 내밀한 시간을 가질 때마다 피임약으로 쓰이는 리드풀 잎사귀를 씹어야 했다.

16550979913874.jpg- “생명의 탄생 가능성이 없는 정교는 천신님 보시기에 죄예요. 더는 리드풀을 복용하고 싶지 않아요.”

16550979884032.jpg- “싫으면?”

16550979913874.jpg- “……제가 혼전에 아이를 배는 것이 싫으시면 결혼을 하시고 저를 취해 주세요.”

16550979884032.jpg- “아리, 날 사랑하지 않아? 사랑하면 증명해 봐. 어서. 이리 온.”

용기 내어 한 거절은 간단하게 무시당했다.

16550979884032.jpg- “결혼하기도 전에 배가 불러오면 얼마나 쪽팔리겠어? 사생아와 사생아가 만나서 낳은 사생아, 난 그런 건 딱 질색이야. 날 사람들 앞에서 부끄럽게 하지 마.”

체자레를 잃고 싶지 않으면 그녀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체자레가 칼을 갈며 쿠데타를 준비하던 1129년에, 아리아드네는 미혼의 귀족 영애의 몸으로 매일 심야에 눈길 속을 걸어서 몰래 성안과 성 밖의 전령 역할을 했다. 아무도 곱게 자란 그녀가 군사행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16550979913874.jpg“당신을 위해 매일 밤 월담을 하며 양치기 소년과 사랑에 빠진 흉내를 냈어요.”

체자레 때문에 피임풀을 씹으면서도 다른 남자를 만난다고 둘러대고 담을 넘었다. 우습게도. 그때 퍼진 그녀가 부정한 약혼녀라는 소문은 체자레의 집권 9년 차인 지금까지도 그녀의 발목을 잡았다.

16550979913874.jpg“정당한 왕좌의 주인도 내 손으로 사냥개들에게 던져 주었습니다.”

늘 상냥하게 대해주던 선량한 알폰소 왕자는 성벽 위에 매달려서 갈까마귀의 밥이 되었다.

16550979913874.jpg“이 손가락은! 당신 대신 독을 마시고 썩어 떨어져 나간 것입니다.”

아리아드네는 썩어 문드러져 한 마디가 짧은 왼손 약지를 들어 보였다. 1132년, 섭정공 재위 4년 차, 체자레를 노린 비소에 당해 쓰러진 그녀는 목숨을 건진 대신 배독했던 손가락을 잃었다. 왼손 약지로 배독을 하라고 명한 것이 체자레 섭정공이었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았다. 오해였겠지, 어쩔 수 없었겠지, 왼손 약지가 최선이었겠지. 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체자레를 위해서라면 할 수 있었다. 내가 그를 사랑하는 만큼 그도 나를 사랑할 것이므로. 그녀는 그를 위해 희생했기 때문에 불구였고, 그에게 헌신한 시간만큼 늙었고, 젊고 빛나고 아름다웠던 과거에 비해서 이제는 약하고 추했다. 이제는 그의 보살핌을, 보답을 돌려받아야 할 시간이었다. 체자레는 냉막한 표정으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훤칠한 키가 위압적이었고, 붉은빛이 도는 짙은 갈색의 머리카락과 강렬하게 대비되는 조각상 같은 이목구비는 이 순간에마저도 너무도 아름다웠다. 그는 투명하고 매끄러운 얇은 입술을 열었다.

16550979884032.jpg"누군가는 자기 손으로 알폰소를 해쳐야만 했지. 고귀한 이사벨라에게 그런 일을 시킬 수는 없잖아?"

아리아드네의 두 눈이 커졌다.

16550979913874.jpg"당신 설마 알폰소 왕자가 살아 있을 적부터 언니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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