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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집안 내에서의 나의 위치 (8/733)

<제8화> 집안 내에서의 나의 위치2020.12.30.

아리아드네는 공식적으로는 시골 촌구석에서 15살까지 자란 아이이기 때문에, 그녀에게 가르칠 라틴어와 산수는 정말 간단한 것들이었다. 그녀는 지루한 수업 한 가운데에 앉아서 앞으로의 일을 고민하고 있었다.

16550980694139.jpg‘뭘 어떻게 해야 체자레와의 약혼을 피하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

제일 먼저 염두에 둔 것은 다른 남자와의 결혼이었다. 하지만 아리아드네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16550980694139.jpg‘순순히 결혼을 시켜 줄 리가 없지.’

아리아드네는 이사벨라를 체자레 백작의 청혼으로부터 구해주기 위해 농장에서 데리고 올라온 아이였다. 체자레와 결혼을 시키지 않을 거라면 본성에서 키우는 쓸모가 없었다.

16550980694139.jpg‘돈이라도 벌어서 도망가 봐? 저 북쪽 포르토 공화국에서는 작위와 상관없이 금화가 왕이라던데.’

그러나 돈은 농지에서 나왔고 작위가 없는 소녀인 아리아드네로서는 기초 자금을 만들 수도, 그것을 불릴 수도 없었다. 상업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아 땅과 농노를 가진 귀족 남자만이 돈과 권력을 가질 수 있는 시대였다.

16550980694139.jpg‘……그가 나를 사랑하는 해피엔딩은 일어나지 않겠지.’

체자레와 약혼을 하고, 체자레가 그녀를 아껴주며 결혼을 하고 왕비로 책봉되는 그런 달콤한 종류의 삶. 아리아드네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그렇게 순진하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16550980694139.jpg‘죗값을 치르게 할 테야.’

한 번 일어난 배신은 핏값을 받지 않고는 용서할 수 없다. 14년간이나 달콤한 약속을 켜켜이 쌓아 올리고 마지막에 그녀의 아름다운 언니를 위해 아리아드네를 처참하게 내팽개쳐버린 체자레 데 코모. 가족의 정도, 아니 인간으로서의 양심도 없이 아리아드네를 처음부터 끝까지 본인 전용의 액세서리로만 대하다가 위협이 되자 목숨까지 앗아가 버린 이사벨라 데 마레. 거기에 아비라면 응당 자식을 보호하고 보살펴야 하거늘, 루크레치아와의 사이에서 낳은 자식들을 위해 아리아드네는 체스판의 장기 말로만 취급한 데 마레 추기경.

16550980694139.jpg“가만두지 않을 거야.”

16550980694177.jpg“아리아드네, 집중해.”

무심코 입 밖으로 나온 다짐에, 딸기코 조반니가 득달같이 나무막대기로 책상을 치며 그녀를 나무랐다.

16550980694177.jpg“멍청하면 열심히 하기라도 해야지.”

이는 매우 억울한 말이었다. 아리아드네는 전생에 섭정공의 실질적인 부인으로서 라틴어로 각종 공문서를 작성했고 조반니가 가져온 학습 자료는 아주 기초적이었다. - auctor  

16550980694177.jpg“이 단어의 뜻이 뭐지?”

16550980694139.jpg“창시자, 저자라는 뜻입니다.”

조반니의 미간이 좁혀졌다. - officium  

16550980694177.jpg“이 단어는?”

16550980694139.jpg“직무, 의무라는 뜻입니다.”

아리아드네가 틀리지 않고 술술 답을 맞추자 조반니는 기분이 나빠 보였다. 아리아드네는 조반니를 흘긋 보고는 평이하게 질문했다.

16550980694139.jpg“선생님. ‘divitiae’를 반드시 여성형 명사로 사용해야 합니까? 중립적으로 지칭할 방법이 없는지요.”

16550980694177.jpg“쓸데없는 잡소리 하지 말고 단어나 외워. ‘부유함, 재산, 보물’이 항상 여성형이지 언제 그걸 탈격으로 지칭해! 멍청한 것.”

divitiae의 탈격은 divitiis였다. 조반니 선생은 라틴어 단어만 대충 외운 자이고 문장 구조로 가면 까막눈이 되는 자가 틀림없었다. 아리아드네는 이자를 한 번 떠보기로 했다.

16550980694139.jpg“선생님, 한 달 뒤에 자매들이 돌아와도 계속 가르쳐 주실 거지요?”

조반니 선생은 흠칫했다.

16550980694177.jpg“한 달 동안 가르칠 거다. 그 기간이 끝나면 난 번 돈을 가지고 산 카를로에서 좀 놀다가 돌아가야지.”

16550980694139.jpg‘이곳 사람이 아니군.’

그의 억양에서는 희미하게 남부 악센트가 묻어났다.

16550980694139.jpg“많이 버시나 봐요. 추기경의 딸들을 가르칠 정도면 명성도 높으시고 가정교사의 보수도 금액이 좀 되겠어요.”

단순하게 추어올려 주었을 뿐인데 조반니 선생은 바로 신이 나서 자랑을 하기 시작했다. 평소에 어디서 높임을 받던 자가 아닌 것이 틀림없었다.

16550980694177.jpg“고향에 돌아가면 이게 이력이 돼서 일이 좀 들어올 거다. 바깥에 나가면 대접 좀 받겠지. 넌 규중 규수라 모르겠구나. 카람판에 있는 코르티잔한테도 갈 만하지.”

조반니의 으스댐에 아리아드네는 인상을 찌푸렸다. 역시, 인생을 올바로 사는 위인이 아니었다. 카람판은 유흥 지대의 이름이고 코르티잔은 고급 창녀를 높여 부르는 말이었다. 카람판 코르티잔과 하룻밤 놀려면 10 두카토(약 천만 원)도 대수롭지 않게 깨졌다. 제아무리 추기경의 딸들이라지만, 초급 라틴어 교사한테 지급할 액수가 아니었다.

16550980694139.jpg“선생님 참 대단하시네요. 멋있어요.”

아리아드네는 역겨움을 누른 채 못 알아들은 척, 순진한 존경의 눈초리를 가장해서 조반니 선생을 올려다보았다. 어린 껍데기는 참 쓸모가 있었다. 어른이 이런 표정을 지었으면 가식적이라고 욕을 먹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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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데 마레 추기경 관저의 저녁 식사는 여느 때와 같지 않았다. 아직 발목이 낫지 않은 이사벨라는 방에서 따로 식사했고, 아라벨라는 근신 중, 이 집의 장남인 이폴리토는 유학 중. 식탁에 남은 자녀가 없었다. 루크레치아는 보통 자리를 지켰지만, 오늘은 몸이 아프다며 저녁을 따로 들었다. 즉, 완벽한 독대의 기회였다. - 달그락달그락. 식기 소리만 울려 퍼졌고 저녁 식탁은 고요했다. 데 마레 추기경은 아리아드네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 아리아드네는 먼저 입을 열었다.

16550980694139.jpg“추기경 예하, 훌륭한 선생님을 붙여 주신 것 감사드려요.”

데 마레 추기경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16550980724819.jpg“그래, 공부는 좀 잘하고 있느냐.”

16550980694139.jpg“에고 하베오, 페르 팍스 우니베르살리스.”*

대뜸 읊은 아리아드네는 자랑스럽다는 듯이 웃었다.

16550980694139.jpg“선생님이 알려 주신 라틴어 문장이에요. 암기했어요. 잘했지요?”

데 마레 추기경의 인상이 팍 찌푸려졌다.

16550980724819.jpg“누가 그런 엉터리 라틴어를 가르쳐. 네가 제대로 외운 것 맞느냐?”

16550980694139.jpg“아니에요, 정말 제대로 외웠어요. E-g-o, h-a-b-e-o…….”

16550980724819.jpg“그럼 선생이 이상한 거겠지.”

16550980694139.jpg“아니에요! 조반니 선생님은 유명하신 분이에요. 어머니가 조반니 선생님을 모셔오느라고 10 두카토나 쓰셨다고 하던걸요.”

16550980724819.jpg“뭐? 1년에?”

16550980694139.jpg“한 달만 가르치신대요. 다음 달에는 남쪽으로 돌아가신대요.”

16550980724819.jpg“뭐라고? 그 작자 이름이 뭐냐!”

16550980694139.jpg“성함은 조반니예요. 성은 안 가르쳐주셨어요.”

데 마레 추기경은 영민한 사람이었다. 평소의 루크레치아라면 지출을 아까워할 만한 서출 딸에게 책정된 과도한 과외비, 선생이란 작자의 형편 없는 실력, 루크레치아의 동향 사람이라는 선생의 출신. 대충 돌아가는 상황을 감을 잡은 데 마레 추기경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졌다.

16550980724819.jpg“루-크-레-치-아!!!!”

  * * * 이렇게 대놓고 일러바치는 건 자주 하면 약발이 떨어지겠지만 한두 번 정도는 가능할 터였다. 다섯 살 정도 어린아이로 회귀했으면 일 년 내내 우려먹을 수 있었을 텐데, 라고 생각하면서 아리아드네는 히죽 웃었다. 집안은 아주 제대로 뒤집어졌다. 수전노인 데 마레 추기경은 루크레치아에게 뛰어가서 가계부를 내놓으라고 닦달을 했고, 루크레치아의 가계부에는 과연 ‘교육비—10 두카토’가 적혀 있었다.

16550980694139.jpg‘액수는 어림짐작으로 찍었는데 그만 맞춰버렸네.’

16550980724819.jpg“아들도 아니고 딸, 그것도 이사벨라도 아니고 아리아드네 교육비로 10 두카토(약 천만 원)를 한 달에 지출하는 게 말이나 돼!”

16550980739722.jpg“좋은 선생을 모셔오느라고…….”

16550980724819.jpg“좋은 선생이 라틴어 조사도 제대로 못 붙이나! 어디서 수학한 누구야!”

루크레치아는 어물대며 대답을 하지 못했다.

16550980724819.jpg“산 카를로 사람도 아니던데 대체 누가 라틴어 선생을 수도가 아니라 시골에서 데려와! 그자 대체 누구야! 남부 사람이지, 어?”

조반니의 고향은 루크레치아와 동향인 남부 타란토 영지였고 성은 로시, 루크레치아의 처녀 적 성씨였다. 즉, 루크레치아의 친정 사람이었다. 루크레치아가 친정 식구들에게 돈을 보태주고 싶었는데 데 마레 추기경이 서슬 퍼렇게 눈을 뜨고 감시를 하고 있으니, 자격이 없는 자를 과외 선생으로 초빙해서 월급을 비정상적으로 높게 책정해 준 것이었다.

16550980724819.jpg“당신이 정신이 있어? 없어!”

16550980739722.jpg“예하……. 예하……. 제가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할게요.”

16550980724819.jpg“가만히 두지 않을 테요!”

16550980694139.jpg‘루크레치아네 친정이 찢어지게 가난한 몰락 귀족이었지, 아마.’

친정 식구들이 전부 성직자의 첩으로 들어가 팔자 고친 루크레치아 하나만 바라보며 매달려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16550980694139.jpg‘그 가계부 잘 뒤져보면 엄청난 거 많이 나올 거다.’

루크레치아의 처지는 한 번 걸렸다고 친정에 돈을 그만 보낼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온 식구들이 그녀만 바라보며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딸려 있었다. 관련 사고는 계속해서 일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조반니는 월급을 몰수당하고 몽둥이찜질을 당하고 쫓겨났다. 루크레치아는 한 달 동안 가계부의 모든 항목을 데 마레 추기경에게 일일이 허락을 맡아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16550980694139.jpg‘이 정도 했으면 좀 알아서 내버려 둬줬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아리아드네는 루크레치아와 속을 허심탄회하게 터놓고 협상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데 마레 가의 가족들과 식솔들은 그렇게 쾌적한 거래가 가능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 * *

16550980755298.jpg“세탁한 옷은 옷장에 넣어두었습니다. 갈아입고 저녁 식사하러 가세요.”

빨강 머리 하녀 말레타는 아라벨라의 근신 사건 이후로 약 사흘 정도는 아리아드네의 눈치를 보더니,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 버렸다. 처음 보았을 때는 알아보지 못했지만, 아리아드네와 말레타는 구면이었다. 이사벨라의 측근 하녀, 빨강 머리 말레타는 전생에서는 이사벨라를 왕궁까지 따라 들어갔다가, 유부남인 왕궁 관리와 사고를 쳐서 그 정부로 들어앉았었던 위인이었다.

16550980694139.jpg“일이 많니?”

16550980755298.jpg“네.”

하녀의 목소리가 퉁명스러웠다. 아리아드네는 기회를 한 번 더 준다는 생각으로 순진한 척 말레타에게 물어보았다.

16550980694139.jpg“갈아입는 것은 안 도와줘?”

아가씨의 하녀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말레타는 던져 주는 기회를 알아채지 못하고 도리어 짜증을 팩 내며 돌아섰다.

16550980755298.jpg“아가씨가 애도 아니고 그런 거 하나 혼자서 못 하세요? 농장에서는 맨날 혼자 하셨을 거 아니에요!”

16550980694139.jpg‘농장?’

아리아드네의 인내심이 뚝 끊겼다.

16550980694139.jpg‘이것이 나를 아주 만만하게 보는구나.’

제 원래 주인과 꼭 닮은 하녀였다. 한 번 만만하게 보이면 걷잡을 수 없다. 전생이 아리아드네에게 알려준 교훈이었다. 돼먹지 않은 것이 벌써 아가씨 행세야, 라고 소리 내어 투덜대는 말레타의 뒤통수에 뭔가가 날아들었다. - 퍽!  

16550980755298.jpg“악!”

둔탁한 소리를 내며 말레타의 뒤통수에 꽂힌 것은 아리아드네가 항상 들고 다니던 성황서였다. 말레타가 뒤통수를 싸안고 고개를 돌리자 싸늘한 표정의 아리아드네가 보였다.

16550980694139.jpg“위아래를 알아야지, 대체 누굴 믿고 그리 방자하게 구느냐?”

아리아드네는 열다섯 살치고는 큰 키에 아이답지 않게 차가운 눈이 위압적이었다. 하지만 말레타는 할 말도 있었고, 믿는 구석도 있었다.

16550980755298.jpg“저기요, 하녀한테서 태어났으면 아가씨도 우리랑 똑같은 처지 아니에요?”

16550980694139.jpg“하?”

16550980755298.jpg“솔직히, 아버지도 자수성가한 성직자시잖아요. 엄밀히 따지자면 성직자도 귀족은 아니니 아가씨는 귀족의 서출조차도 아니시죠.”

튀어나온 하녀 말레타의 본심에 아리아드네는 말레타를 지긋이 응시했다. 어디까지 가나 한번 보자는 생각이었다.

16550980694139.jpg“그래, 계속해 봐.”

말레타는 통통하고 육감적인 본인의 가슴을 내밀며 말을 이었다.

16550980755298.jpg“막말로 내일 당장 내가 추기경 예하 눈에 들면 내 자식이나 아가씨나 그게 그거 아닙니까?”

말레타는 목소리를 높였다.

16550980755298.jpg“이사벨라 아가씨나 아라벨라 아가씨는 루크레치아 마님께서 귀족이시니까 그러려니 하지만, 아리아드네 아가씨가 두 분이랑 맞먹으려고 드는 거야말로 위아래가 없는 거죠!”

  - 짝! 말레타의 눈앞에서 별이 튀겼다. 아리아드네가 말레타의 따귀를 날린 것이었다. 더 들어줄 필요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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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50980694139.jpg“그렇다면 나의 아버지는 혈통이 비천하여 존귀하지 않다는 뜻이냐?”

아리아드네는 차갑게 일갈했다.

16550980694139.jpg“이것은 내 아버지를 모욕한 데에 대한 벌이다.”

말레타가 제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아리아드네는 재차 말레타의 다른 쪽 따귀를 쳤다. - 짝! 오른쪽 뺨을 그러쥔 채로 왼쪽 뺨을 호되게 맞은 말레타에게 아리아드네는 준엄하게 일렀다.

16550980694139.jpg“이것은 네 질투심에 대한 벌이다.”

아리아드네는 떨어진 성황서를 집어 들어서 그것으로 말레타의 따귀를 마지막으로 쳤다. - 척!  

16550980755298.jpg“아악!”

두꺼운 책에 맞자 뺨에서 나는 높은 소리가 아니라 두개골이 울리는 둔탁한 소리가 났다. 말레타는 한 걸음 뒤로 휘청이다가 주저앉고 말았다.

16550980694139.jpg“게다가, 넌 지금 감히 모시는 주인마님의 남편을 뺏고 그 자리에 들어갈 꿈을 꾸는 것이냐? 이것은 집안의 사용인이 분수를 모르고 감히 윗전들의 사생활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한 벌이다.”

말레타가 부어오른 양 볼을 싸안고 이를 악물고 아리아드네를 노려보았다. 바닥에 무너진 말레타를 내려다보며 아리아드네는 친절하게 한마디를 덧붙였다.

16550980694139.jpg“오늘 네가 입 밖으로 낸 말들은 다른 사람이 들었으면 경을 쳤을 일이다. 혓바닥을 조심하렴.”

부들부들 떠는 말레타에게 아리아드네는 축객령을 내렸다.

16550980694139.jpg“나가.”

그녀가 방문을 가리키자, 말레타는 허겁지겁 아리아드네의 다락방 밖으로 뛰쳐나갔다. 혼자 남은 아리아드네는 그제야 이를 악물었다.

16550980694139.jpg‘너와 나의 본질적인 차이는 혈통 따위가 아니야.’

말레타의 말은 맞는 면도 있었다. 아리아드네는 지금 수도에서 권세를 누리는 아버지 덕에 호가호위할 수 있을 뿐이지, 신분제를 엄격하게 따지자면 평민과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말레타의 말마따나 누가 얼마나 예뻐서 어떤 남자를 유혹할 수 있는지의 문제 역시 아니었다. 인생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아리아드네는 이미 전생에 잘난 남자에게 운 좋게 얹혀가는 인생이 어떤 비참한 결말을 맞을 수 있는지 몸소 깨달았다.

16550980694139.jpg‘너와 나의 진짜 차이는 목표를 설정하고 얼마나 참을 수 있는지의 문제다.’

아리아드네의 턱 근육에 크게 힘이 들어갔다. 말레타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 내 존엄을 내 손으로 지키고 싶었다. 침해당하지 않고, 공격당하지 않고, 존중받고 존중하는 삶. 내 목숨줄이 남자 한 명에게 매달려 있지 않은 삶.

16550980694139.jpg‘이번에야말로, 짓밟히지 않기 위해서 정상에 서고 말겠어. 망할 하녀, 망할 집안, 다 치워버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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