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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화> 너도 데뷔탕트 무도회를 치러야 하지 않겠니 (30/733)

<제30화> 너도 데뷔탕트 무도회를 치러야 하지 않겠니2021.03.17.

문제의 성찬 미사는 아라벨라가 수정한 버전의 미사 브레비스로 문제없이 치러졌다. 작곡가 이름은 ‘이사벨라⋅아라벨라 데 마레’로 수정되었고, 협연 연습 첫날에 있었던 약간의 추태는 크게 소문이 나지 않고 잘 넘어간 것처럼 보였다. 성찬 미사 당일에 사람들은 데 마레 가문 자매들의 뛰어난 재능을 칭송했고 루크레치아는 딸들을 향한 치하를 대신 받으며 주목을 만끽했다. 하지만 친구들을 볼 낯이 없었던 이사벨라는 주목을 좋아하는 평소의 습성에 비추어 볼 때 극히 이례적으로 성찬 미사 당일 대성황당에 나가지 않았고, 그 이후로도 한참 동안 집에서 두문불출했다. 카멜리아 데 카스틸리오네 남작 영애는 사교계에 신나는 소문을 하나 퍼트렸다. 줄리아 데 발데사르 후작 영애는 교우 관계 하나를 완전히 정리하는 데에까지 이르지는 않았지만 약간의 거리를 두기로 결정했고, 성찬 미사 날 맨 앞자리에서 기세등등하게 나서는 루크레치아를 보고 피식 웃으며 자기 어머니인 후작 부인에게 약간의 귀엣말을 했다. 그해 여름 아라벨라는 루크레치아에게 근신을 당해 오도 가도 못 했다. 산 카를로에 온 뒤로 마르그리트 왕비를 비롯해 어머니 뻘 귀족 부인들과 안면은 텄을지언정 아직 또래 친구는 만들지 못한 아리아드네도 서재에 틀어박힌 채로 지내, 가족은 비교적 조용한 여름을 보냈다. 그러던 와중에 오랜만에 가족들에게 초대장이 도착했다. 마르그리트 왕비의 측근인 치보 후작 부인이 보낸 것이었다. 「아리아드네 데 마레 양에게, 오는 8월 마지막 주 금요일에 젊은이들을 모아 미술작품을 감상하는 살롱을 열까 합니다. 포르토 공화국에서 온 상인들의 주선으로 귀한 작품들을 다수 선보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알폰소 왕자님을 비롯하여 명문가의 귀한 혈통께서 다수 오셔서 자리를 빛내주시기로 하신바, 귀하의 교우 관계를 넓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부디 참석하셔서 담소를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알레한드라 데 치보 후작 부인 드림.」 초대장의 어디에도 이사벨라의 이름은 없었다. 이사벨라는 대경실색해서 급히 말레타를 불렀다.

16550984017452.jpg“말레타! 도착한 초대장은 이것뿐이야?”

16550984017458.jpg“네, 아가씨⋯⋯.”

애먼 하녀를 들들 볶아보았자 이사벨라에게 도착한 별도의 초대장은 나오지 않았다. 사실 치보 후작 부인은 마르그리트 왕비의 최측근인 만큼, 루크레치아의 딸인 이사벨라에게 따로 초대장을 발송하지 않은 것은 자연스러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루크레치아는 원래 왕비의 친위부대와 별 친분이 없었고, 얼마 전에는 왕궁의 미사에서 왕비가 루크레치아에게 축객령을 내리는 해프닝마저 있었다. 하지만 이사벨라는 혼자서 이것이 성찬 미사 때의 작곡가 사칭 사건 때문이라고 지레짐작하고는 두 배로 괴로워했다.

16550984017452.jpg‘다들 날 비웃고 있을 거야. 어떻게든 만회해야 하는데……!’

알폰소 왕자까지 참석하는 살롱에 본인은 초대를 받지 못했다는 사실은 이사벨라의 자존심에 뼈아픈 상처를 냈다. 그래서 내가 갖지 못하면 아무도 갖지 못한다는 일념으로, 이사벨라는 아리아드네도 못 가게 하기로 했다.

16550984017452.jpg“너, 치보 후작 부인의 살롱에 가려고?”

모두가 모여 있는 저녁 식사 자리에서 이사벨라가 짐짓 걱정해준다는 듯이 말을 꺼냈다. 아직 근신 중이어서 식사 자리에 나오지 못하고 방에서 마른 빵만 먹고 있는 아라벨라를 제외한 가족들이 일제히 이사벨라를 쳐다보았다. 이사벨라는 짐짓 상냥하게 목소리를 깔았다.

16550984017452.jpg“아니, 내가 너더러 가지 말라고 하는 건 아니야. 그럴 리가 있니. 그런데 상황이 좀 그래. 넌 아직 데뷔탕트도 아니잖아. 보호자가 없이는 외출할 수 없는걸.”

이사벨라가 하는 이야기 중에선 보기 드물게 맞는 말이었다. 산 카를로의 귀족 영애는 데뷔탕트 무도회를 치르기 전과 후로 그 대접이 크게 나뉘었다. 데뷔탕트 무도회 전에는 아이로 취급해서, 바깥에 나갈 때 보호자의 동행이 없이는 움직일 수 없었다. 데뷔탕트 무도회를 치러야 비로소 어엿한 레이디로 인정을 해주어서 보호자 동행 없이도 교회라던가 소풍, 친구의 집 같은 ‘점잖은’ 곳에 당일치기 방문을 할 수 있었다.

16550984017452.jpg“저번에 너 때문에 왕비의 미사에서 어머니가 그 창피를 당하셨는데, 여기 참석하겠다고 어머니한테 동행해달라고 할 수는 없잖아?”

루크레치아의 인상이 대번에 굳었다. 아리아드네가 치보 후작 부인의 초대장을 받았을 때는 거기까지 생각하지는 못했던 모양이었다. 이사벨라는 달콤한 목소리로 아리아드네를 을렀다.

16550984017452.jpg“설마 그러지는 않겠지? 넌 착한 딸이잖아.”

아리아드네는 거기에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아리아드네가 냉큼 대답을 하지 않자 루크레치아는 열이 뻗쳤다.

16550984017493.jpg‘저것이……!’

루크레치아가 자기는 죽어도 못 간다고 화를 내려던 순간, 식사를 하던 데 마레 추기경이 달그락하고 식기를 내려놓았다.

16550984017497.jpg“그래, 때가 됐지.”

16550984017452.jpg“네?

16550984017493.jpg”무슨 때요?“

데 마레 추기경이 아리아드네를 쳐다보고는 이야기했다.

16550984017497.jpg“작은 애도 데뷔탕트 무도회를 치를 때가 됐다.”

아리아드네는 깜짝 놀라 데 마레 추기경을 쳐다보았다. 얼떨떨했다. 지난 생에는 데뷔탕트 무도회조차 치르지 못한 채 바로 체자레 데 코모와 약혼식부터 치렀었다. 그 뒤로는 유부녀와 마찬가지의 취급이었기 때문에, 아리아드네는 갓 데뷔탕트 무도회를 치른 소녀의 대접을 받으며 사교계 행사를 치러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데 코모 백작의 이름을 빌려서 귀부인들의 각종 사교 행사나 자선 행사에 참석했을 뿐이다. 그런데 단독 데뷔탕트 무도회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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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생과 비교해 아리아드네의 달라진 위상을 압축해서 하나로 모아 보여주는 사건 같았다. 저절로 입가에 조그만 미소가 하나 띄워졌다. 기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는 아리아드네와 반대로 이사벨라는 성이 났다.

16550984017452.jpg“아버지? 얘가 데뷔탕트 무도회를 어떻게 치러요? 올해의 데뷔탕트 무도회는 이미 끝났는걸요?”

이것 또한 맞는 말이었다. 데뷔탕트 무도회는 매해 4월, 꽃피는 봄에 왕궁에 귀족 영애와 영식들이 인사를 하러 가는 행사였다. 지금은 이미 신록이 우거진 8월이었다.

16550984017497.jpg“둘째는 이미 국왕 폐하 내외께 인사를 올렸어.”

아리아드네가 ‘푸른 심해의 심장’을 하사받았던 왕비의 알현을 일컫는 말이었다. ‘데뷔탕트 무도회’는 특별히 제작한 과실주를 마시는 파티와 그 해의 데뷔탕트들이 짝을 맞추어 왈츠를 추는 순서가 있기는 했지만, 사실 그 본질은 국왕과 왕비에게 인사를 올리고 궁정에 출입할 자격이 있는 귀족 자제임을 확인받는 부분에 있었다.

16550984017497.jpg“궁정 출입 자격은 이미 있다는 이야기인데 그럼 남는 건 사교계에 인사하는 것 정도겠지. 그런 건 무도회를 따로 열어서 사람들을 초대하면 된다. 전례가 없는 것도 아니고.”

왕가의 방계나, 어려서부터 왕자나 공주와 놀이 동무로 같이 자란 귀족처럼 누가 보아도 궁정 출입 자격이 명명백백하게 있는 사람이 여행이나 질병으로 데뷔탕트 무도회에 참석을 못 하면 따로 무도회를 열어 사교계 데뷔를 알리고는 했다. 몹시 귀한 사람들만 누릴 수 있는 특례였다. 이사벨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16550984017452.jpg“아버지, 쟤한테 정말 그런 걸 해줄 거에요?”

이사벨라가 지푸라기를 잡는 듯한 표정으로 물어보았다. 언제나 자신만을 싸고돌던 아버지였다. 굴러온 돌에게 자신조차 받지 못했던 특혜를 줄 리는 없었다. 그래야만 했다. 하지만 데 마레 추기경의 답변은 이사벨라의 기대를 무참하게 저버렸다.

16550984017497.jpg“동생과 우애 좋게 지내야지, 이사벨라.”

그는 약간 한심하다는 듯이, 거리를 두고 장녀를 쳐다보았다.

16550984017497.jpg“둘째도 데 마레 가문의 이름을 드높일 구성원이다. 데뷔탕트 무도회를 치르고 나면 둘째의 운신의 폭이 더 넓어질 거다. 더 많은 것들을 할 수 있겠지.”

그는 아리아드네를 돌아보고는 이야기했다.

16550984017497.jpg“요새 아주 잘하고 있다, 아리아드네. 많이 챙겨주지도 못했는데 기특하구나.”

16550984047861.jpg“아닙니다, 추기경 예하. 항상 은혜에 감사하고 있어요.”

아리아드네는 식사를 하다 말고 뱃속이 보글보글한 기분이 되어서 밥이 더는 입에 들어가지를 않았다. 항상 데 마레 추기경에게는 가식을 두 꺼풀 덮은 상태로 응대를 했었지만 오늘의 감사 인사만큼은 조금은 진심이었다.

16550984017497.jpg“데뷔탕트 무도회 전에 한 번 따로 이야기를 하자. 내 관련해서 일러둘 것이 있다. 그때는 루크레치아 당신도 잠깐 같이 오지.”

16550984047861.jpg“알겠습니다, 예하.”

16550984017493.jpg“네, 예하.”

루크레치아가 일그러진 표정으로 아리아드네를 쳐다보았다. 이사벨라와 루크레치아 모녀가 눈빛을 교환했다. 이사벨라가 얄밉게 말을 꺼냈다.

16550984017452.jpg“데뷔탕트 무도회를 따로 연다면 준비할 시간도 필요하니까 빨라도 초가을이겠네요. 어머, 어쩌지? 이 살롱은 8월 마지막 주인데, 그전까지는 보호자가 있어야 밖에 나갈 수 있잖아요?”

루크레치아가 맏딸이 깔아준 판을 날름 받았다.

16550984017493.jpg“예하, 지금 제가 치보 후작 부인의 살롱에 가는 건 도저히 무리예요.”

그녀는 태세 전환을 해서 데 마레 추기경에게 약한 척을 시작했다.

16550984017493.jpg“요새 너무 더워서 그런지 몸도 아프고⋯⋯. 저번에 치보 후작 부인이 왕비의 미사에서 저를 쳐다보던 그 눈빛이 잊히지를 않아요. 제가 두통이 한 번 오면 계-속 머리가 아픈 건 아시죠? 이 몸 상태대로라면 아아 정말로⋯⋯.”

데 마레 추기경은 부인의 징징거림에 본인이 두통이 생길 지경이었다. 아리아드네를 살롱에 꼭 보내야 하니 당신이 한번 참고 같이 가 주라고 강권하면 마누라가 자신을 가만 안 둘 것 같았다. 둘째는 특별히 데뷔탕트 무도회를 열어주기로 했으니까, 왕비의 측근이 여는 살롱 정도는 한 번은 안 가도 괜찮지 않을까? 루크레치아가 그 자리에 가면 꿔다놓은 보릿자루가 될 것은 확실했고, 그녀를 제외하면 딱히 보호자 역할을 맡을 사람이 없는 것은 사실이었다.

16550984047861.jpg“자식 된 도리로서 어떻게 저만 생각해서 어머니께서 불편하신 장소에 데려가 달라고 떼를 쓰겠습니까.”

어떻게 말을 꺼낼지 고민하는 데 마레 추기경을 앞에 두고 아리아드네가 선선하게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이사벨라와 루크레치아는 ‘쟤가 웬일이래’ 하는 눈빛을 서로 교환했다. 이사벨라가 선수를 쳤다.

16550984017452.jpg"그으럼 이번에는 너무나 안타깝지만 못 가겠네? 왕자님도 오시는데 너-무 안됐다."

16550984047861.jpg"그건 아니죠."

아니나 다를까, 아리아드네는 한 번 들어온 기회를 놓치는 법이 없었다.

16550984047861.jpg“갈리코 어 가정교사이신 로마니 부인께서 치보 후작 부인의 먼 친척이 되십니다. 마침 로마니 부인의 자택이 수리공사 중이어서 이번 달 중에는 어차피 치보 후작님 댁에서 지내는 중이시라고 알고 있어요. 제 샤프롱으로 그날 살롱에 동행해주실 수 있으실지 로마니 부인께 여쭈어보아도 될까요?”

루크레치아의 턱이 떡 벌어졌다. 로마니 부인은 예전에 왕비의 측근 귀부인들 사이에 간절하게 끼고 싶어 하던 루크레치아가 혹시 이사벨라의 인맥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구했던 가정교사였다. 로마니 부인을 통해 치보 후작 부인에게 다리를 놓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이다. 다만 로마니 부인이 별로 나서는 성격도 아니고, 적극적으로 뭔가를 주선해 주는 종류의 사람도 아니어서 그런 쪽으로 이득을 본 게 없었다. 급료가 적고 일은 성실하게 해서 굳이 해고까지 하지는 않았고 잊고 있었을 뿐이었다.

16550984017493.jpg‘이걸 쟤가 이렇게 주워 먹다니!’

화가 나서 부들대는 루크레치아의 속도 모르고 데 마레 추기경은 골치 아픈 일이 해결되자 기뻐하며 흔쾌히 허락했다.

16550984017497.jpg“그래, 맞아. 로마니 부인이 치보 후작 부인의 먼 친척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었던 것 같다. 피차 좋은 그림이로구나. 부탁을 한번 해 보도록 해라. 성의 표시도 꼭 하고.”

16550984047861.jpg“예, 아버지.”

아리아드네는 얌전히 고개를 숙였다.

16550984017497.jpg“성의 표시하도록 당신이 애한테 좀 따로 챙겨 줘요.”

가는 것도 눈꼴시려 죽겠는데 돈까지 챙겨 줘야 하게 생긴 루크레치아는 한 방 더 얹어 맞았다.

16550984017493.jpg“……예, 예하.”

16550984017497.jpg“이런 것까지 내가 일일이 챙겨야 해? 아, 말을 맙시다, 말을 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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