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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화> 거짓 사랑의 담보 (70/733)

<제70화> 거짓 사랑의 담보2021.08.04.

체자레는 성큼성큼 인파의 중앙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는 본의 아니게 밀회자의 정체 밝히기의 주동자 비슷하게 되어버린 최초의 발견자 귀족 부부 중 부인에게 다가가 그녀가 가지고 있던 콜레지오네 팔찌를 잡아 뺏었다.

16550989732599.jpg“이건 내 팔찌요. 돌려주시죠.”

체자레의 완력에 귀족 부인은 팔찌를 뺏겼다. 그녀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체자레를 바라보았다.

16550989732605.jpg“이건 여자 팔찌인데 이게 어떻게 당신의 물건이 되죠?”

체자레는 싱글싱글 웃으며 답했다.

16550989732599.jpg“여인에게 주려고 샀는데, 그 여자가 안 받아줬으니 결국 내 물건이지.”

체자레는 귀족 부인에게서 빼앗은 녹색 토파즈 팔찌를 허공에 높이 들어 올려 보였다.

16550989732599.jpg“여러분! 이 팔찌는 이 체자레 백작의 것입니다.”

달빛과 횃불이 동시에 비쳐 붉은 루비가 빠져 빈 이빨이 드러난 녹색 보석이 요요하게 빛났다.

16550989732599.jpg“데 마레 영애의 가면과, 목걸이와, 팔찌는 세트로 제작된 물건입니다.”

체자레는 빙긋이 웃었다.

16550989732599.jpg“확실히, 여러분이 팔찌가 그녀의 것으로 생각하실만한 근거는 있죠. 세 가지는 원래 세트니까요.”

그는 대중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먼저 슬쩍 그들에게 ‘당신들이 잘못한 것은 없다’는 메시지를 던져 주었다. 분노한 대중은 그 자체로서 생명력을 얻어 그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 우호적인 관계로 시작하는 것이 중요했다.

16550989732599.jpg“제가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느냐고요? 둘째 데 마레 영애에게 가면을 선물한 사람이 바로 저거든요.”

체자레는 아리아드네의 바로 옆에 서서 자신의 가면을 벗었다. 그는 자신의 가면을 벗어 높이 위로 들어 올려 가면의 안쪽이 잘 보이도록 모두에게 보여주었다.

16550989732599.jpg“보이시나요? 이 가면의 안쪽이?”

체자레가 쓴 가면은 겉에서는 플뢰르-드-리스 문양이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작게 패턴화되어 촘촘하고 조밀하게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면의 안쪽에는 아리아드네의 것과 똑같은 커다란 플뢰르-드-리스 문양이 있었다. 붉은 루비와 녹색 토파즈를 박아넣은 색 배합마저 같았다. 바로 옆에 서니 두 가면의 무늬가 똑같은 것이 아주 잘 보였다.

16550989732599.jpg“저는 그녀를 무도회에서 만나서 가면과 세트로 제작된 팔찌도 마저 채워주려고 했죠. 깜짝 선물이었어요. 그런데⋯⋯.”

체자레는 연극적으로 고개를 떨궈 보였다.

16550989732599.jpg“도도하기도 하지! 가면 선물까지는 어찌어찌 받아 주었던 아가씨가, 그 가면이 제 것과 세트인 것을 알게 되자마자 받지 않겠다고 하더군요.”

그는 자신에게 집중된 인파의 시선을 즐기며,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을 이었다.

16550989732599.jpg“가면무도회에서 가면을 벗고 다닐 수는 없으니 무도회가 끝나면 가면도 돌려주겠다, 팔찌는 받을 수 없다, 우리 무도회에서 같이 있는 모습이 오해를 살 수 있으니 근방 5 피에디(약 2.5 미터) 안에는 들어오지 말아라, 아주 그냥 어찌나 차갑고 앙칼진지!“

체자레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16550989732599.jpg“그렇지만 거기에서 낙담해서 그만두면 남자도 아니죠! 저는 아가씨에게 무릎을 꿇고 승부수를 던졌습니다.”

그는 말을 잠깐 끊었다가 마저 이었다.

16550989732599.jpg“나랑 결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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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중 속에서 누군가가 스스로를 주체하지 못한 나머지 ‘꺄악’ 하고 비명을 질렀다. 체자레는 반달로 접은 눈으로 소리가 난 쪽을 일별해 자신의 팬에게 인사를 해 주었다. 팬서비스를 마친 그는 다시 관중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비극적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16550989732599.jpg“그런데 깨끗하게 차였지 뭡니까! 꿈도 꾸지 말래요.”

체자레는 양 손을 허공에 들어 으쓱해 보였다.

16550989732599.jpg“그리고 재수 옴 붙었지, 이 쪽팔린 상황을 알폰소 데 카를로 왕자님께서 모두 보셨습니다.”

체자레는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알폰소의 어깨를 툭 쳤다.

16550989732599.jpg“풀숲 속에서 숨어서 보다니, 쥐새끼같이 말이야.”

알폰소를 이를 악문 채로 체자레에게 웃어 보였다. 그는 악문 잇새로 체자레 백작에게 작게 속삭였다.

16550989756054.jpg“그 쥐새끼 같은 짓은 네가 한 짓이잖아.”

16550989732599.jpg“저도 재미 좀 봅시다, 왕자님. 구해주는 사람에게 태도가 그게 뭐예요.”

체자레는 유들유들하게 히죽 웃었다.

16550989732599.jpg“웃어, 이빨 보이게.”

알폰소 왕자는 주먹을 꾹 쥐었지만 차마 그것을 휘두르지는 못했다. 체자레는 외통수에 걸린 알폰소를 내버려 둔 채 유쾌하게 제자리로 돌아와 관객을 위한 공연을 계속했다.

16550989732599.jpg“왕자님이 풀숲에서 소리를 내셨고 우리 고고한 아가씨께서는 왕자님을 발견하셨어요. 그러고는 지금 이상한 남자가 자기에게 지분대고 있으니 도와달라고 요청하셨습니다. 곤경에 처한 아가씨는 왕자님의 에스코트를 받으시면서 절 혼자 두고 떠나셨지요.”

사람들이 다시금 웅성대기 시작했다.

16550989732605.jpg- “뭐야, 왕자님과 같이 있었던 게 그럼 사실이야?”

체자레는 관중의 수군댐을 놓치지 않았다.

16550989732599.jpg“아가씨가 알폰소 왕자님과 무도회 ‘내내’ 함께 있지 않으셨던 것은 사실입니다. 초반에는 저와 함께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전 그녀를 아주 극초반부터 계속 에스코트했습니다. 그녀의 알리바이는 물 샐 틈이 없어요.”

16550989732605.jpg- “근데 그럼 팔찌는 여기에 왜 있어?”

체자레 백작은 거기에도 합당한 설명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16550989732599.jpg“저는 그만 화가 난 나머지 제 사고뭉치 친구들과 어울리러 갔는데, 그 치들은 다들 왕궁 구석 작은 방에 숨어서 도박판을 벌이고 있더군요. 저기, 저 양반도 같이 말입니다.”

체자레는 바닥에 뻗어서 망토를 덮은 채로 코를 골고 있는 캄파 후작을 턱 끝으로 가리켜 보였다. 캄파 후작은 수도에 더 이상 어울려주는 사람들이 없었다. 도박판에서 사람은 누구이든지 상관없으니 돈만 제대로 걸라는 작자들을 제외하면 그랬다.

16550989732599.jpg“판돈을 거는데 현금이 없어서 친구한테 팔찌를 맡기고 담보로 도박자금을 빌렸습니다. 조금 뒤에 거하게 따서 친구한테 빌린 돈을 갚고 팔찌를 회수하려고 보니 그 친구도 도박자금이 모자라서 또 남한테 팔찌를 맡기고 현금을 받아왔다지 뭡니까! 무책임하기 짝이 없게, 남의 담보를 마구 굴리다니.”

체자레는 팔찌를 흔들어 보였다.

16550989732599.jpg“어디로 갔나 했더니 캄파 후작한테까지 흘러 들어갔던 모양입니다.”

그는 턱끝으로 캄파 후작을 가리켰다.

16550989732599.jpg“캄파 후작이 술이 깨거들랑 전해 주시오. 내일 아침에 사람을 보내 담보삼아 빌렸던 도박자금만큼은 갚을 테니, 이 팔찌는 체자레 백작이 가져갔다고.”

완벽한 알리바이였다. 체자레 백작이라면 여자에게 어마어마한 선물을 할 만한 위인이기도 했고, 그 선물을 담보 삼아 도박을 할 만한 위인이기도 했다. 캄파 후작과 어울리게 된 경위도 자연스러웠다.

16550989732599.jpg“그러니 팔찌의 주인이었어야 했을 아가씨에 대한 비난은 멈춰 주시죠. 제 구애도 단호하기 짝이 없게 거절했는데 설마 캄파 후작 같은 양반과 놀아났겠습니까.”

체자레가 잘생긴 얼굴로 대놓고 캄파 후작 쪽으로 비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16550989732599.jpg“저는 실패한 구애를 한 번 더 시도해 볼 테니, 다들 자리 좀 비켜주시겠습니까?”

그는 아리아드네에게로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16550989732599.jpg“아가씨. 가자.”

이번에는 아리아드네도 체자레의 내민 손을 잡았다. * * * 간신히 인파 속에서 벗어나 평상심을 찾을 수 있게 된 아리아드네는 가면을 벗고 얼굴에 가득 찬 땀을 닦아냈다. 비단 가면을 썼던 얼굴뿐만이 아니라 전신이 온통 땀투성이였다.

16550989784354.jpg“고마워요, 데 코모 백작님. 일이 이렇게 지저분하게 꼬일 줄은 미처 몰랐어요.”

16550989732599.jpg“체자레. 고마우면 체자레라고 불러.”

아리아드네는 쓴웃음을 지었다. 혀끝에 시작하는 음절을 올리면 무의식중에라도 끝까지 발음할 수 있는 익숙하기 짝이 없는 이름이었다.

16550989784354.jpg“체자레 백작님. 체자레 백작님으로 하죠. 더는 양보 못 해요.”

16550989732599.jpg“이야, 단호하다. 내가 지금 온갖 오명을 뒤집어 써가며 아가씨를 구해준 지 10분도 안 지났는데.”

16550989784354.jpg“오명? 무슨 오명이요?”

16550989732599.jpg“도박꾼이라던가, 여인에게 차였다거나.”

체자레는 인상을 조금 찌푸렸다.

16550989732599.jpg“아니면 왕자에게 여자를 뺏겼다거나.”

아리아드네는 조금 웃고 말았다.

16550989784354.jpg“다 사실이잖아요? 도박꾼인 것도 사실, 여자에게 차인 것도 사실. 특히 도박꾼이라는 부분은 공지의 사실이에요. 백작님이 말씀하지 않으셔도 다들 알아요. 여자를 왕자님한테 뺏겼다는 부분만 진실과 조금 다르네요.”

체자레는 이상한 포인트에서 반색을 했다.

16550989732599.jpg“이야, 아가씨 내가 도박하는 것도 알아?”

16550989784354.jpg“수도에 그거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16550989732599.jpg“아니 아니, 이거 관심이 있었다는 거잖아! 저번에는 내가 곤봉 차고 다니는 것도 알고 있더니. 그 누구보다도 나한테 관심이 많은 거 아니야?”

체자레는 의심스럽다는 듯이 아리아드네를 자세히 관찰했다. 그는 아리아드네의 얼굴 코앞까지 자신의 얼굴을 들이대더니 숨결까지 느껴질 것 같은 지점에서야 멈췄다.

16550989732599.jpg“아가씨 사실 ‘산 카를로 정보지’ 이런 거에서 ‘체자레 데 코모’ 백작 란만 탐독하고 있는 거 아니지?”

아리아드네는 빵 터지며 큰소리로 외쳤다.

16550989784354.jpg“그럴 리가 없잖아요!”

16550989732599.jpg“강한 부정은 긍정이랬어.”

16550989784354.jpg“아니에요!”

체자레와 한참을 티격태격하던 아리아드네는 이윽고 그에게 말을 건넸다. 한결 누그러진 목소리였다.

16550989784354.jpg“오늘, 고마웠어요.”

그녀의 눈가에 미안함이 서려 있었다.

16550989784354.jpg“본인 입장에서는 굳이 나서주실 필요 없었을 텐데.”

16550989732599.jpg“차인 직후에 말이지, 응?”

체자레가 능글능글하게 말을 받았다.

16550989784354.jpg“아이, 참!”

16550989732599.jpg“고마워할 필요 없어. 아가씨한테 잘 보이려고 해 준 거니까. 그러니까 제발 준 선물은 되돌려주지도 말고, 잃어버리지도 말고 잘 좀 가지고 있어.”

그는 잠깐 멈추더니, 한마디를 덧붙였다.

16550989732599.jpg“집에 있는 그 언니가 눈에 불을 켜고 뒤질 텐데 말이야. 집에서도 간수 잘하고.”

그녀는 실소를 머금었다.

16550989784354.jpg“그게 남자 눈에도 티가 나나요?”

16550989732599.jpg“이 체자레 백작은 아무 남자가 아니라오. 속는 멍청이들과는 달라.”

거짓말. 당신이야말로 속았었잖아. 제대로.

16550989732599.jpg“나랑 커플 아이템인데 잘 가지고 있어야지.”

16550989784354.jpg“이 가면이랑 팔찌 그냥 도로 가져가세요.”

16550989732599.jpg“어허!”

아리아드네의 심장에 쌓인 만년설의 겉에 미세한 생채기가 났다. 체자레가 자신을 위해 나서주었다고 생각한 나머지 마음이 조금 누그러진 것이다. 하지만 막상 그 앞에 선 체자레는 사랑과는 조금 다른 종류의 쾌감을 느끼고 있었다.

16550989732599.jpg‘알폰소 데 카를로, 네가 좋아하는 여자의 호감은 내가 가졌어.’

  * * * 체자레가 좌중을 휘어잡고 떠난 이후 가장 행복해진 사람은 라리에사 대공녀였다.  

16550989821819.jpg“저기……. 모두 오해였나요?”

  애초에 가장 알폰소 왕자를 믿고 싶어 했던 사람은 라리에사였다. 그녀는 황금의 왕자님이 자신만을 위한 왕자님이라는 동화에 푹 빠져 있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실을 재조립할 수도 있었다.  

16550989821819.jpg“하…….”

  가타부타 긍정도 부정도 할 수가 없었던 알폰소 왕자는 헛웃음만 흘렸다. 그의 오늘의 운세를 확인해보면 ‘1105년생 쌍둥이자리라면 침대를 벗어나지 말 것! 이불 밖은 위험해!’라고 쓰여 있을 것이 틀림없었다.  

16550989821819.jpg“에트루스칸 왕궁은 배다른 형제끼리 우애가 참 좋은가 봐요. 저희는 어림 반푼어치도 없었을 거예요. 몽펠리에에서 무슨 일이 있었냐 하면…….”

  라리에사의 눈치 없는 수다는 끝도 없이 이어졌다. 알폰소는 이마를 짚었다. 행복한 라리에사와는 반대로 지금 이 순간 가장 불행한 사람은 이사벨라 데 마레였다. 거의 성공할 뻔했는데. 어디서 굴러온 체자레 백작이 몸을 던져 막았다. 이사벨라는 방해한 사람이 다름 아닌 그녀가 원하는 체자레 백작이라는 점에 약이 두 배로 올랐다.

16550989836001.jpg“에잇!”

이사벨라는 바닥에 널브러진 돌부리를 발로 차 보았다. 체자레가 분수대에서 했던 짓을 무의식중에 흉내 낸 것이었다. 하지만 체자레는 숙련된 기수였고 이사벨라는 그만큼의 복근과 허벅지 근육이 없었다. 그녀는 그만 쿵 소리를 내며 볼썽사납게 넘어지고 말았다.

16550989836001.jpg“아야……!”

넘어진 이사벨라의 손가방 안에서 붉은 루비 한 알이 데구루루 굴러 나왔다. 문제의 플뢰르-드-리스 팔찌에 박혀 있던 바로 그 루비였다.

16550989836012.jpg“이사벨라, 괜찮아요?”

카멜리아 데 카스틸리오네가 넘어진 이사벨라를 발견하고 안부를 물었다. 손을 내밀어 넘어진 이사벨라를 부축해 일으켜주면서, 카멜리아는 밝은 눈으로 이사벨라의 손가방에서 굴러떨어진 루비를 포착해냈다.

16550989836012.jpg“어머, 저건 뭐예요?”

카멜리아는 붉은 루비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물었다.

16550989836012.jpg“세팅도 안 된 나석을 가지고 다니네. 귀한 물건인가 봐요?”

이사벨라는 사납게 으르렁댔다.

16550989836001.jpg“카멜리아, 쓸데없는 신경 끄시죠.”

그녀는 지금 카멜리아 같은 시시한 위인에게 낭비할 에너지가 없었다. 하지만 이런 기회를 놓칠 카멜리아가 아니었다. 그녀는 항상 이사벨라한테 밀리고, 치이고, 비웃음당했는데, 이사벨라의 꼴이 우스워진 지금이야말로 한 방 먹이기에 딱 좋은 기회였다.

16550989836012.jpg“쓸데없는 신경이라뇨, 저는 지금 상처받은 친구를 세심하게 살피는 거예요.”

카멜리아는 어여쁜 얼굴로 비릿하게 웃었다.

16550989836012.jpg“알폰소 왕자님한테는 라리에사 대공녀가 나타났고, 체자레 백작은 여동생이 채 갔으니 우리 이사벨라 양은……. 어떡하죠? 남은 남자가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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