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94화> 알폰소 왕자의 고난 (93/733)

<제94화> 알폰소 왕자의 고난2021.10.27.

르비엥 백작은 혹시나 싶어 편지봉투를 다시 한번 탈탈 털어 보았다. 그러나 편지봉투에서는 편지 본문 외에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두 번이나 일독했지만 르비엥 백작은 이 짧은 편지에서 어떠한 흠도 잡아낼 수 없었다. 그는 라리에사 대공녀에게 반문했다.  

16550993504591.jpg“이 편지 말고 왕자께서 실례하신 것이 있습니까? 편지 자체는 전혀 문제의 소지가 없어 보이는데요.”

  라리에사는 짜증을 내며 소리쳤다.  

16550993504595.jpg“편지가 성의가 없잖아요!”

  라리에사는 편지의 호칭 부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16550993504595.jpg“전 분명히 이 편지를 아침 일찍 보냈는데 거의 열 시가 넘어서야 느지막이 돌아왔어요! 보세요, 아침이 아니라 ‘오전’이라고 쓰여 있잖아요?”

16550993504591.jpg“조찬을 들고 계셨다던가, 오전에 다른 일정이 있으셨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편지도 성에 차지 않았지만 자기편을 들어주지 않는 르비엥 백작은 더더욱 그녀의 화를 돋웠다.  

16550993504595.jpg“밥이 나보다 중요해?!”

  라리에사는 숫제 물건이라도 던질 기세였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는 연약하게 속삭였다.  

16550993504595.jpg“난 이렇게 아침도 못 먹고 오매불망 왕자님의 답장이 오기만 기다렸는데…….”

  감정 기복이 변화무쌍했다. 외드 대공의 둘째 딸의 예민함과 심약한 기질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왔다. 하지만 아무도 그녀가 동시에 이렇게까지 다혈질이라고는 말해 주지 않았다. 직접 접해보기 전까지는 자기가 무슨 지옥 마귀를 수행하고 에트루스칸으로 떠나는지 꿈에도 몰랐던 르비엥 백작은 쩔쩔매며 라리에사를 달랬다.  

16550993504591.jpg“대공녀, 하지만 알폰소 왕자님께선 전에 대공녀께서 타란토 시내 구경을 하고 싶다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셔서 이렇게 먼저 데이트를 청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르비엥 백작은 열심히 긍정적인 신호들을 찾았다.  

16550993504591.jpg“알폰소 왕자님께서도 대공녀께 좋은 감정이 있으신 게 틀림없습니다. 남자는 관심 없는 여자에게는 공을 들이지 않아요.”

16550993504595.jpg“그, 그럴까……?”

  라리에사는 울상이던 얼굴을 들어서 르비엥 백작을 올려다보았다. 라리에사의 밀가루 반죽 같은 긴 얼굴이 울먹이자 마치 고통스러워하는 말 같았다. 외드 대공과 베르나데트 대공비의 잘나지 못한 부분만 기가 막히게 섞어 닮은 얼굴이었다. 르비엥 백작은 여기에 앉아 있는 것이 수잔느 대공녀라면 소원이 없겠다고 생각했다. 울상을 지어도 예뻤을 것이고, 그보다 애초에 멀쩡한 편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같잖은 이유로 울상 같은 걸 짓지 않았을 것이다.

16550993504591.jpg‘평균만 가자, 평균만……! 언니처럼 절세 미녀일 필요도 없고 그렇지 못하다고 세상에서 제일 착할 필요도 없다! 제발 동티만 나지 말아다오!’

16550993504595.jpg“그렇지만……!”

  라리에사 대공녀가 다시 한번 째지는 목소리로 울부짖었다. 르비엥 백작은 자기 속마음이 태도에 드러났나 선뜩 놀라서 라리에사 대공녀에게 다시 한번 신경을 집중했다.  

16550993504595.jpg“나는 ‘라리에사’라고 칭호조차 생략하고 맨 이름을 적었는데 알폰소 왕자님은 나는 ‘발로아 대공녀’라고 부르고 본인은 ‘알폰소 왕자’라고 지칭했단 말이에요!”

  그녀는 편지를 거칠게 들고 흔들었다.  

16550993504595.jpg“친해지려는 마음조차 없는 것처럼 보이잖아요!”

  르비앵 백작은 혼신의 힘을 다해서 라리에사 대공녀를 얼렀다.  

16550993504591.jpg“아직 두 분은 약혼조차 하지 않으신 상태 아닙니까. 그러니 성함을 부르시기에 조심스러우신 것 아니겠습니까. 에트루스칸의 왕위계승자는 젠틀하고 신중한 성격이라는 것이 외교가의 공식적인 평가이기도 합니다.”

16550993504595.jpg“그, 그런가?”

16550993504591.jpg“신사라서 그러신 겁니다. 어서, 대공녀님. 눈물을 닦으시고 몸단장을 시작하시지요. 오후에 왕자님을 맞이해야 할 것 아닙니까. 오늘 피부가 투명하셔서 몹시 아름다우신데 여기서 더 울면 얼굴이 붓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자 라리에사는 깜짝 놀라 눈물을 훔쳤다. 르비엥 백작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휴, 끝났다.  

16550993504595.jpg“르비엥 백작, 이대로는 안 돼. 왕자님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뭐라도 해야겠어.”

  라리에사는 끝난 줄 알고 혼자서 한시름 돌린 르비엥 백작을 굳이 불러 앉혔다. 그리고 그 귀에다 대고 자신의 계획을 속닥거렸다. 르비엥 백작은 그 얼토당토않은 구상에 몹시 놀랐다.  

16550993504591.jpg“예에? 그건……. 그게 과연 효과가 있을까요?”

  라리에사 대공녀가 무슨 생각으로 이런 분부를 내리는지는 이해가 갔지만, 남자로서 단언컨대 그녀가 목적한 효과를 이루지는 못할 것이라고 확언할 수 있었다.  

16550993504595.jpg“그럼 지금 나한테 아무것도 하지 말고 손 놓고 있으란 말인가요?!”

  라리에사 대공녀의 눈가에 눈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다시금 펄펄 날뛸 기세였다. 르비엥 백작은 물건이 방 안을 날아다니기 전에 이 골칫덩어리 대공녀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다. 효과는 없어 보였지만 뭐 남에게 큰 해를 끼치는 일은 아니었다. 역효과가 있을 수야 있겠지만…….

16550993504591.jpg‘에이, 그런다고 큰일이야 나겠어?’

이 혼담은 나라와 나라 사이의 일이었다. 결국에는 레오 3세와 필리프 4세가 최종 결정권자였다. 알폰소 왕자 개인이 라리에사 대공녀에게 정이 떨어진다고 해서 그가 협상 과정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16550993504591.jpg“분부하신 대로 준비해 놓겠습니다.”

  어쨌든, 르비엥 백작이 심기 경호를 해야 하는 상대는 알폰소 왕자가 아닌 라리에사 대공녀였다. * * * 라리에사는 아침에 울었던 것이 거짓말인 것처럼 화사하게 단장하고 알폰소 왕자를 맞이했다. 장미 연지가 그녀의 흰 피부를 생기있게 돋웠다.  

16550993504595.jpg“왕자님! 저를 데리러 와주셨군요.”

1655099353335.jpg“당연한 일입니다.”

  알폰소는 정중하고 단정한 태도를 고수하고 있었다. 타란토의 겨울 궁전으로 내려온 뒤 그의 일과는 대부분 라리에사 대공녀의 에스코트로 이루어져 있었다. 왕실의 공무도 있었지만, 왕실 가족들이 함께하는 일정에는 대개 라리에사 대공녀도 동행했다. 그래서 왕자로서 수업을 소화하는 시간과 개인 운동 시간을 제외하고는 그는 하루종일 라리에사 대공녀와 붙어 있었다.

16550993533354.jpg

  웬만한 또래 남자애들이라면 진작에 도망쳤을 시간표였다. 하지만 그는 묵묵하게 주어진 소임을 다 하고 있었다.  

16550993504595.jpg“아침에는 무슨 일정이 있으셨나요?”

  라리에사는 알폰소 왕자를 떠보았다. 답장이 늦어진 이유를 추궁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알폰소는 평이한 어조로 곧바로 대답했다.  

1655099353335.jpg“오전에는 창던지기 연습을 했습니다.”

  라리에사는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 그래, 우리 알폰소 왕자님이 다른 일 없이 내 편지에 답장을 늦게 하실 리가 없지. 그런데 잠깐, 아침에 편지가 갈 걸 몰랐나? 편지부터 확인하고 답장을 쓴 다음에 운동을 가야 할 것 아니야? 나라면 그렇게 했을 텐데. 서운함이 자가발전하고 있었다. 라리에사는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알폰소를 올려다보았다. 알폰소는 라리에사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상상도 하지 못한 채 그녀를 마주 바라보았다.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그의 잘생긴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16550993504595.jpg‘왕자님이 웃어 주셨어!’

라리에사의 척추를 타고 찌르르한 느낌이 쭉 올라왔다. 작은 폭죽이 머릿속에서 터지는 것 같았다.

16550993504595.jpg‘그도 나를 사랑해!’

알폰소의 얼굴을 보는 순간 모든 서운한 마음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이거면 됐다. 알폰소가 예의상 올린 입꼬리 한 번에 라리에사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인이 되었다. 이렇게 라리에사가 천당과 지옥을 왕복하는 동안에 그들을 태운 마차는 타란토 시내로 향했다. 타란토의 겨울 궁전과 타란토 시내는 몹시 가까운 편이어서, 아주 짧게 마차를 타면 바로 도착할 수 있었다. 라리에사는 몽펠리에에서였다면 가을에나 입었을 분홍색 공단 드레스를 차려입은 상태였다. 마차가 멈추자, 얇은 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우아하게 알폰소 왕자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마차에서 내렸다. 그때, 광장 분수대 쪽에서 거대한 꽃다발을 든 남자가 다가왔다. 라리에사 대공녀의 공단 드레스와 색깔을 맞추기라도 한 듯한 짙은 분홍색 꽃다발이었다. 남자는 과장되게 무릎을 꿇고 라리에사 대공녀에게 꽃을 바쳤다.

16550993504591.jpg“대공녀님을 사모하시는 제 주인님께서 익명으로 보내신 꽃다발입니다! 부디 받아 주십시오!”

16550993504595.jpg“어머나!”

  라리에사는 붉게 상기된 표정으로 꽃다발을 성큼 안아 들었다.  

16550993504595.jpg“어느 신사분인지 참 감사하네요! 마음은 받을 수 없지만……. 꽃은 참 예뻐요.”

  그녀는 ‘인기 많은 나’에게 너무 취해 알폰소 왕자의 표정이 좋지 못하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16550993504591.jpg“저는 전달 드렸습니다!”

라리에사 대공녀가 꽃을 돌려줄까 봐 걱정이 됐는지, 남자는 얼른 꽃을 떠넘기고 광장을 떠났다.  

16550993504595.jpg“세상에, 제가 오늘 타란토 시내에 올 줄 어떻게 알고 이렇게 보냈는지……. 저를 정말 좋아하는 분인가 봐요.”

1655099353335.jpg“그러게요.”

  알폰소 왕자의 대답은 언제나 온유한 알폰소치고는 몹시 시니컬했다.  

1655099353335.jpg“오늘의 일정은 당일 오전에야 결정된 것이고, 대공녀와 제 수하들밖에 몰랐는데 저자가 어떻게 꽃다발을 보냈을까요.”

16550993504595.jpg“제 말이요!”

  질투하나? 질투하겠지? 질투해라! 라리에사는 기대감으로 반짝이는 눈동자로 알폰소를 훑었다. 알폰소는 지끈대는 관자놀이를 누르고 싶은 제 손가락을 간신히 참았다. 저 대공녀는 남들이 머리가 몹시 나쁘다고 생각하는 오만한 사람이던가, 아니면 본인의 머리가 나빠 남들에게는 눈치란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임이 틀림없다. 꽃다발을 건넨 남자는 에트루스칸 어로 라리에사 대공녀에게 주인의 전갈을 전했다. 그리고 에트루스칸 어가 짧은 대공녀는 망설이는 기색조차 없이 정확하게 ‘사모하는 남자가 보낸 꽃다발’이라는 이야기를 알아들었다. 밖에 알려지지 않은 일정, 척척 맞아들어가는 상황, 모르는 언어를 찰떡같이 알아듣는 대공녀. 이건 누가 봐도 자기가 스스로에게 꽃을 보낸 자작극이었다.

1655099353335.jpg‘그렇게 자신감이 없나.’

알폰소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라리에사 대공녀가 품에 안고 기뻐하는 거대한 꽃다발의 꽃잎 끝은 짙은 분홍색이었지만 꽃받침으로 가까이 갈수록 흰색으로 색이 빠지다가 끝에서는 급기야 짙은 녹색으로 변했다. 줄기를 타고 내려가는 녹색, 짙은 녹색 이파리. 녹색 눈. 반짝이는 녹색 눈. 그의 아리아드네. 알폰소는 마른세수를 했다. 모두 내려놓고 도망치고 싶은 충동을 꾹 누르는 손짓이었다. * * * 골칫덩어리들이 타란토로 떠난 뒤, 산 카를로의 데 마레 대저택은 나름 평온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근신에서 풀려난 이사벨라는 데 마레 추기경의 눈치를 몹시 봤다. 그녀는 데 마레 추기경이 집 안에 있을 시간에는 그와 마주치지 않으려고 자기 방 안에 틀어박혀 있었다. 아들에게 주머니 바닥까지 박박 긁혀 가용자금이 없어진 루크레치아 역시 평소의 소일거리이던 쇼핑을 하지 못하고 집구석에 틀어박혀 술을 마셨다. 루크레치아와 이사벨라 두 모녀는 둘이 함께 남의 욕을 하거나, 미래의 계획을 짜거나 하며 있는 듯 없는 듯 지냈다. 그래서 그 반대급부로 아리아드네와 아라벨라는 몹시 쾌적한 일상을 보내게 되었다. 사람이 앉으면 눕고 싶다고, 아라벨라는 일상이 평화로워지자 조금 더 많은 것을 원했다.

16550993546983.jpg“아리!”

16550993546988.jpg“무슨 일이니, 아라벨라?”

16550993546983.jpg“벌써 2월 초하루인데, 혹시 음악대학에서는 내 입학 허가 관련해서 별 얘기 없어?”

아라벨라가 오매불망 기다리던 음악대학 입학 허가통지서 이야기였다.

16550993546988.jpg“그러게? 이제 슬슬 결과가 도착할 때가 된 것 같은데.”

16550993546983.jpg“아리, 있잖아…….”

아라벨라가 다리를 꼬고 질질 끌었다. 부탁을 하고 싶은데 입이 안 떨어지는 모양이었다. 아라벨라가 내적인 어색함을 누르고 기어코 자기 입으로 부탁을 하게 하는 걸 보고 싶은 짓궂은 마음이 들었지만—몹시 귀여울 것이다—아리아드네는 방긋 웃으며 동생이 듣고 싶었던 말을 먼저 해줬다.

16550993546988.jpg“대성황당의 음악 담당 수녀님께 파두아의 음악대학 전형이 어떻게 되어가는지 한번 여쭤보고 올게.”

16550993546983.jpg“진짜?”

아라벨라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아리아드네는 웃으며 아라벨라의 이마에 키스를 해주었다.

16550993546988.jpg“그렇고말고. 안 그래도 오늘 아버지가 대성황당에 가시면서 아랫사람들한테 지급할 급료 주머니를 놓고 가셨어. 큰돈이라 남한테 맡기기 불안했는데, 내가 가져다드리면서 수녀님 계시는지 한번 보고 올게. 어때?”

아리아드네가 편지를 쓰고, 수녀님의 답장을 받고, 또 답장을 보내는 지리한 과정을 각오하고 있던 아라벨라의 표정이 더더 밝아졌다.

16550993546983.jpg“완전 좋아!”

16550993546988.jpg“그럼 언니 바로 다녀올 테니까, 얌전하게 있어야 한다.”

아리아드네는 바로 산차에게 일러 추기경의 은마차를 준비하게 했다. 겉옷을 챙겨 입고 나가려던 아리아드네는 문득 아라벨라를 바라보며 장난스레 콧잔등을 찡긋했다.

16550993546988.jpg“그런데 너, 언제까지 ‘아리’라고 부를 거야?”

16550993546983.jpg“뭐?”

아라벨라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16550993546988.jpg“아주 무엄한 동생인걸, 요거? 원서 작성 도와줬지, 원서접수 도와줬지, 이제는 전형결과까지 알아봐 주는 언니를 자꾸 이름으로 부르네?”

아리아드네의 말이 다 맞아서 아라벨라는 할 말이 없었다.

16550993546983.jpg“몰라! 아리 나빠! 얼른 가!”

아라벨라는 빨개진 얼굴로 아리아드네를 현관까지 밀어냈다. 아리아드네도 아라벨라를 더는 괴롭히지 않고 웃으며 순순히 마차에 올라탔다.

16550993546983.jpg“조심해서 다녀와!”

아라벨라는 손을 흔들어 아리아드네를 배웅했다. 아리아드네도 마주 손을 흔들어 아라벨라에게 인사해 주었다.

16550993546983.jpg‘파두아 음악대학의 입학 허가통지서가 도착하면…….’

아라벨라의 얼굴이 발개졌다.

16550993546983.jpg‘그때는 언니라고 불러주자.’

자격이……. 있다. 그렇게 결심한 아라벨라는 아리아드네에게 뭔가 감사의 표시를 하고 싶었다. 선물이 가장 적합할 것이다. 하지만 품목이 문제였다. 돈이라면 모두 아리아드네 언니에게 있었다. 아라벨라에게 쥐어지는 것은 용돈 정도가 끝이었다. 아라벨라의 용돈은 아리 언니가 외부의 친구들에게 받는 으리으리한 선물들의 액수와 비교하자면 정말로 푼돈이었다. 그때 아라벨라의 뇌리에 은색 조각 하나가 싹 스쳐 지나갔다.

16550993546983.jpg‘철제 죔쇠!’

아리 언니는 뭔가 희한한 물건들을 놓고 골똘하게 생각해보는 것을 좋아했다. 한참 그러고 나면 십중팔구 산차를 공방에 보내 실제로 만들어 보기까지 했다. 아리아드네가 그렇게 만들어낸 물건은 반드시 쓸모가 있거나 저잣거리에서 크게 유행했다. 특이하면 특이할수록, 그리고 만들고 싶은 물건과 비슷할수록 좋아할 것이다. 철제 죔쇠는 해당 조건에 모두 맞아들어갔다. 그리고 아라벨라는 분명히 그것과 똑같은 철제 죔쇠를 본 적이 있었다.

16550993546983.jpg‘이사벨라 언니 물건이었어.’

아라벨라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마침 데 마레 추기경과 아리아드네가 모두 집 안에 없었다. 이사벨라가 자기 방 밖으로 나오는 시간이라는 이야기였다.

16550993546983.jpg“오늘은 그거다.”

아라벨라는 2월 초하루의 일정을 ‘탐험 놀이’로 정했다.

16550993577349.jpg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