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115화> 루크레치아의 최후 (2) (114/733)

<제115화> 루크레치아의 최후 (2)2022.01.09.

하지만 루크레치아에서 입에서 나온 것은 이름이 아니라 침이었다.

16550997045938.jpg“캭, 퉷!”

흰 거품이 끓어오르는 가래침이 아리아드네의 얼굴에 탁 맞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리아드네는 무표정하게 손등을 들어 얼굴에 묻은 뜨끈한 액체를 닦아냈다.

16550997045938.jpg“어떤 어미가 자식을 팔아넘긴단 말이냐! 난 안 해! 난 못 해!”

아리아드네는 바닥에 쓰러진 루크레치아의 머리채를 잡아올려 사정없이 흔들었다. 머리채가 뽑힐 것 같은 고통에 루크레치아가 비명을 질렀다.

16550997045949.jpg“이 들끓는 모정은 당신 아들에게 잘 전해 주지.”

그녀는 차가운 녹색 눈을 들어 루크레치아를 바라보았다.

16550997045949.jpg“그렇지만 내가 못 알아낼 거로 생각하지는 마. 지옥까지 쫓아가서 이폴리토의 더러운 피를 밝혀내고야 말겠어. 당신 아들이 당신에게 고마워할 거라고 생각하지도 마.”

아리아드네는 냉혹하게 말했다.

16550997045949.jpg“내가 여기서 나가면 제일 먼저 할 일이 뭔지 알아? 이폴리토에게 찾아가서 이야기해 줄 거야. 네 엄마가.”

아리아드네는 한 소절 쉬었다가 말을 이었다.

16550997045949.jpg“이폴리토의 아비가 나머지 셋과 다르다는 걸 인정하고 죽었다고.”

루크레치아의 자주색 눈에 두려움이 깃들었다.

16550997045949.jpg“이폴리토는 영영 당신을 원망하겠지.”

루크레치아는 도리질을 쳤다.

16550997045938.jpg“제발, 제발. 내 아들은 가만히 내버려 둬다오. 이폴리토는 착한 아이야. 너한테 해코지 한 것도 없지 않니?”

그녀는 무릎걸음으로 기어와 아리아드네의 치마폭에 매달렸다.

16550997045977.jpg

16550997045938.jpg“너도, 데 마레 가문이 생판 모르는 친척에게 넘어가는 건 싫지 않니? 집안에 남자가 없으면 그 끝은 처참해. 집안에는 남자가 있어야 해. 너한테도 필요해.”

루크레치아는 아리아드네의 공단 치마에 매달린 채 훌쩍이며 울었다.

16550997045938.jpg“내 이폴리토, 내 이폴리토만은 남겨줘.”

그녀의 상상 속에서 이폴리토는 20대 초반의 잿빛 머리카락을 한 청년이 아니었다. 서너 살짜리 아기이기도 했으며 동시에 삼십 대가 넘은 듬직한 모습이기도 했다. 남편이자 아들이자 애인 같은, 그녀의 모든 꿈과 희망의 집약체였다.

16550997045938.jpg“이폴리토는 날 배신한 게 아니야. 우리 아들은 본인도 어쩔 수 없었을 뿐이야. 걸린 내가 잘못한 거지, 어쩌자고 그래 사람을 죽인 걸 들켰을까!”

루크레치아는 아리아드네에게 애걸했다.

16550997045938.jpg“내가 뭘 어떻게 해야 우리 아들을 가만히 내버려 두겠니?”

16550997045949.jpg“…….”

16550997045938.jpg“제발, 뭐든지 말해. 무엇이든 말해 줄게. 저택에 숨겨진 방? 바깥에 꿍쳐 놓은 비상금? 뭐든지 내어줄게.”

16550997045949.jpg“……당신한테 남은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건 당신만큼이나 내가 잘 알고 있어.”

루크레치아는 아리아드네를 보며 큰 소리로 하하하 웃었다.

16550997045938.jpg“우리 사생아 따님께서는 어쩜 이리 똑똑하실까! 모르는 게 아무것도 없네!”

그녀는 목제 탁자로 걸어가 은쟁반 위에 놓인 불투명한 유리병을 집어 들었다. 그 안에 든 보랏빛 액체는 루크레치아가 사람을 죽일 때 애용하던 물건이었다.

16550997045938.jpg“그럼 이걸 줄게. 너는 내가 밉지? 내가 죽이고 싶도록 밉지?”

루크레치아는 유리병의 코르크 마개를 따서 단숨에 들이켰다.

16550997045938.jpg“내 목숨을 줄게.”

보라색 액체가 주르륵, 그녀의 입가에 한 줄 흘렀다. - 쿨럭! 끔찍하게 쓴맛이었다. 위장이 녹아내리는 듯했다. 루크레치아는 아리아드네를 바라보며 마지막 애걸을 했다.

16550997045938.jpg“내 목숨을 줄 테니, 내 아들은 살려줘. 제발, 내 아들이 데 마레 추기경의 아들로서 살 수 있도록 내 사랑하는 이폴리토를 건드리지 말아줘.”

루크레치아는 이폴리토에게 그 아비가 누구인지 미리 알려줄 걸, 깊이 후회했다. 혹시나 데 마레 추기경이 이폴리토의 출생에 대해 알게 되더라도, 친부를 찾아가서 의탁해 볼 수 있었을 텐데. 이 꼬락서니가 된 지금 그녀의 유언을 아들에게 전달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저 밉살스러운 사생아뿐이었다.

16550997045938.jpg“이폴리토에게 전해줘. 엄마가 가장 좋아하던 꽃을 무덤에 가져다 달라고. 네 뿌리는 거기에 있다고.”

이폴리토가 알아들을까. 이폴리토는 못 알아듣고 저 공포스러운 계집아이가 해면이 물을 흡수하듯 다 알아채 버리는 것 아닐까. 루크레치아의 공포에 근거가 있다는 사실을 방증이라도 하듯이 아리아드네의 녹색 눈은 루크레치아를 바라보며 영민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 쿨럭! 점차 정신이 혼미해져 왔다. 삶의 마지막에서 루크레치아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16550997045938.jpg“부탁해.”

그녀는 밉살스러운 사생아 딸을 올려다보며 애걸했다.

16550997045938.jpg“미안해. 널 보면 속이 뒤집혔어. 시몬은 참 좋은 사람이었어. 너만 없으면……. 내 결혼생활은 완벽했다고……. 사랑받았다고…….”

루크레치아의 말 뒤꼬리가 점차 수그러들었다. 그녀는 말을 끝내지 못하고 고개를 떨궜다. 아리아드네는 북쪽 지하실에 혼자 우뚝 서서 루크레치아를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앞으로 수그린 채 쓰러져 있는 루크레치아를 구둣발로 밀어보았다. - 풀썩. 아직 따듯했고, 아직 사지가 유연했다. 하지만 코 밑에 손을 대어보니 숨이 없었다.

16550997045949.jpg‘죽었다.’

루크레치아는 끝까지 이폴리토를 감싸다가 죽었다. 그러나 이폴리토는 그럴 가치가 없는 작자였다. 기분이 저조해진 아리아드네는 바닥에 나동그라져 있는 유리병을 들어 거칠게 바닥에 던졌다. - 쨍그랑! 두꺼운 불투명한 유리가 맑은 파열음과 둔탁한 터지는 소리를 동시에 내며 산산조각이 났다.

16550997045949.jpg‘왜!’

왜 루크레치아는 저렇게 바보같이 배은망덕한 아들을 감싸다가 죽었나. 왜 우리 엄마는 일찍 돌아가셨나. 왜 나를 저렇게 맹목적으로 사랑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남지 않았나. 왜!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이폴리토 새끼는 저런 모친의 사랑을 받고 왜 아라벨라는 홀로 침상 위에서 죽어갔어야 했는가! 불공평했다. 몹시 불공평했다! 아리아드네는 분이 풀리지 않아서 유리 조각을 한 번 더 발로 찼다. 복수는 즐거울 줄 알았다. 아리아드네는 문득 자기의 볼 위가 뜨끈한 것을 깨달았다. 눈물이었다. 루크레치아의 죽음이 슬퍼서는 아니었다. 그녀의 죽음으로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아서였다. * * * 아리아드네는 한참 동안이나 북쪽 지하실에 머무르다가 뒤늦게 돌아왔다. 자신의 처소로 돌아온 그녀는 산차에게 루크레치아의 시신을 수습하라고 일렀다. 루크레치아의 시신을 수습하고 돌아온 산차는 그제야 아리아드네로부터 북쪽 지하실에서 있었던 일을 전해 듣게 되었다.

16550997080238.jpg“예? 뭐라고요?!”

16550997045949.jpg“귀청 떨어지겠어, 산차.”

16550997080238.jpg“아니, 아가씨! 정말로 ‘미스 로시’가 자기 입으로 이폴리토 도련님, 아니 망할 이폴리토 녀석이 뻐꾸기 새끼라고 시인했다고요?!”

16550997045949.jpg“그래.”

울었던 기색도 지우고 창백한 얼굴로 단정하게 자신의 처소로 돌아와 피곤한 듯 소파에 기대 누운 아리아드네는 귀걸이와 목걸이, 기타 장신구를 하나씩 빼서 협탁에 올려놓기 시작했다. 너무 놀란 나머지 아가씨의 몸시중도 잊고 있던 산차는 아리아드네가 손수 귀금속을 빼내자 깜짝 놀라 얼른 아가씨를 도와 의복 탈의를 마저 마쳤다.

16550997045949.jpg“왜 그렇게 놀라니? 말레타의 고백은 우리 둘이 같이 들었었잖아.”

16550997080238.jpg“아니, 그래도 설마 했지요!”

산차는 정교하게 세공된 나무 쪽빗으로 아리아드네의 풍성한 머리칼을 정성껏 빗기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16550997080238.jpg“말레타야, 무슨 말이건 주워섬길 수 있는 애였잖아요. 사실 걔는 그때 아가씨에 눈에 들려면 못 할 소리가 없었을 거예요.”

16550997045949.jpg“그건 그래.”

16550997080238.jpg“아, 진짜 아깝다!”

산차는 발을 굴렀다.

16550997080238.jpg“혼자서 내려가시지 말고 증인을 데려갈걸! 증인이 뭐야, 데 마레 추기경 예하를 모셔가서 지하실 문밖에라도 세워두고 그 이야기를 엿듣게 했으면 한 방에 망할 이폴리토 녀석도 끝나는 건데!”

아리아드네는 피곤하다는 듯이 답했다.

16550997045949.jpg“인생에서 그렇게 공교롭게, 그리고 손쉽게 흘러가는 일이 몇 번이나 있겠니.”

그녀는 산차가 빗고 있는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쓱, 쓸어넘겼다.

16550997045949.jpg“내 아버지이신 데 마레 추기경 예하는 생각보다……. 정이 많은 분이셔. 내가 ‘미스 로시’를 몰아붙이는 걸 들으셨으면 맨발로 뛰어 들어오셨을걸.”

산차가 시무룩해져서 대답했다.

16550997080238.jpg“그건 그래요…….”

16550997045949.jpg“비단 추기경 예하뿐만이 아니야. 믿을만한 내 사람을 문 바깥에 대기시켜놨다면 증언에 신빙성이 없었을 거고, 그렇다고 집사 같이 나름 중립적인 위인을 세워놨다가는 돌발 상황에 대응을 못 했을 거야.”

추기경의 아내 사랑은 아리아드네가 나타나 루크레치아의 허물을 순서대로 발라내어 만천하에 공개하기 전까지는 약 20여 년간 공고하게 지극했었다. 그 덕에, 집안사람들은 루크레치아가 죽기 직전까지 어느 라인을 타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했다. 아리아드네 아가씨가 예하께서 명하신 것보다 네 시간 일찍 루크레치아 마님을 죽이려고 한다고 위층으로 뛰어 올라가기라도 한다면 큰 낭패다.

16550997045949.jpg“내가 괜히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시간이 되기 전에 루크레치아를 해치워 버린 게 아니야. 난 그 양반이 내일 아침에 변덕을 부릴 확률이 절반은 넘는다고 봐.”

16550997080238.jpg“예? 그 난리를 치고서요? 스캄파 씨와 지역협동조합 대표들을 설득하는 데 얼마나 고생했는데요! 설마요 아가씨!”

16550997045949.jpg“우리 내기할까?”

16550997080238.jpg“좋아요! 이건 제가 이겨요.”

16550997045949.jpg“뭘 걸지?”

16550997080238.jpg“음……. 제가 지면, 제가 제일 좋아하는 과자를 드릴게요!”

산차는 ‘라 몽탕 제과점’의 설탕 쿠키에 맛을 들였다. 많이 오른 산차의 월급으로도 자주 먹기는 버거울 정도로 비싼 고급 제품이었다.

16550997045949.jpg“와, 크게 걸었는데?”

16550997080238.jpg“어차피 제가 이길 거니까요.”

아리아드네는 쿡쿡 웃으며 답했다.

16550997045949.jpg“네가 정말로 이긴다면 이번에 새로 맞춘 진주 머리핀을 줄게.”

산차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16550997080238.jpg“아가씨, 그거 이번 대미사 때 착용하시려고 콜레지오니에서 드레스와 세트로 맞춘 거잖아요? 그거 저 주셔도 돼요?”

아리아드네는 빙긋 웃으며 답했다.

16550997045949.jpg“줄 일이 없을 테니까 걸었다.”

16550997080238.jpg“아가씨! 너무 자신만만하신 거 아니에요?”

16550997045949.jpg“두고 보면 알겠지.”

아리아드네는 입가에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자기의 아버지를 아주 잘 알았다. 산차는 아리아드네가 손가락으로 헤집어 놓은 머리카락을 다시 정성껏 빗기기 시작했다.

16550997080238.jpg“15 두카토가 넘는 귀보석을 받을 생각을 하니까 가슴이 두근두근하는데요?”

16550997045949.jpg“예끼.”

16550997080238.jpg“아, 그런데 너무 아쉬워요. 망나니 이폴리토가 씨가 다르다는 얘기를 우리끼리만 알고 넘겨야 한다니!”

아리아드네는 산차를 올려다보았다.

16550997045949.jpg“누가 순순히 그걸 우리끼리만 알고 넘겨준대? 난, 내 손에 들어온 카드는 절대로 안 놓쳐.”

16550997080238.jpg“네?”

16550997045949.jpg“세상에 증거 없는 일이 어디 있느냐. 시간을 두고 찾아보자. 이번에 수소문하면서 루크레치아가 배부른 상태로 데 마레 가문으로 들어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었잖아? 난 로시 가문을 잘 파 보면 뭔가 나올 것 같아.”

16550997080238.jpg“그 사람들은 이폴리토의 친척인데……. 순순히 이야기를 해 줄까요?”

16550997045949.jpg“맨정신이라면 절대로 안 하겠지. 하지만 잘 찾아보면 어딘가 균열이 있을 거야. 시간은 우리 편이야.”

아리아드네는 확신에 찬 눈초리로 고개를 들었다. * * * 데 마레 추기경은 평소에는 아침 첫닭이 울 때 딱 맞춰서 일어났다. 하지만 전날 밤 뒤척이는 바람에 새벽이 다 돼서야 잠든 그는 아침 해가 떠오른 지도 한참이 지나서야 침대에서 일어났다.

16550997137335.jpg“아니, 아니, 역시 안 되겠어.”

루크레치아를 죽여 없애다니. 어젯밤, 계속 고민하다가 어쩔 수 없다고, 이것 외에는 다른 출구전략이 없다고 체념하고 잠들었지만 아침에 일어나 보니 그는 역시 그럴 수가 없었다. 그 여자는 그의 침대 옆을 20년 넘게 데운 여자였다. 이제는 사랑을 넘어 습관이었다.

16550997137335.jpg“지역협동조합 사람들은 루크레치아의 얼굴을 잘 모르잖아.”

집안에 비슷한 여자가 있을 것이다. 대신 죽여서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루크레치아는 신분 세탁을 해서 베르가모 농장에 오래 보내놨다가, 10년쯤 지나서 다시 산 카를로로 데리고 올라오면……!

16550997137335.jpg“여봐라. 루크레치아 마님께 보낼 물건은 어디 있느냐.”

데 마레 추기경의 침실 앞을 지키고 있던 전담 하인은 집사 니콜로를 불러왔다.

16550997137335.jpg“그 물건. 어디 있어. 잠깐 미루거라.”

니콜로는 몹시 송구스러워하며 고했다.

16550997137358.jpg“추기경 예하. 말씀하신 물건이라면 이미 내려갔습니다. 모두……. 끝났습니다.”

16550997137335.jpg“뭐라고?”

그는 창문에 드리워진 커튼을 열어 해가 중천에 걸린 바깥 하늘을 내다보았다.

16550997137335.jpg“무슨 소리야! 지금이 몇 신데!”

16550997137358.jpg“첫닭이 운 지 이미 세 시간은 지났습니다. 물건은 이미 내려갔고……. 시신 수습까지 모두 끝났습니다.”

  - 털썩. 데 마레 추기경이 침대 위에 주저앉았다.

16550997137335.jpg“오, 루크레치아, 이럴 순 없어.”

그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16550997137335.jpg“루크레치아…….”

집사 니콜로는 허드렛일 하인에게 눈짓하고 뒷걸음질로 방 밖으로 나가며 조용히 방문을 닫았다. 아무도 없는 침실 안에서 추기경은 오래 오열했다. * * * 루크레치아의 장례는 간소하게 치러졌다. 밖에는 병사라고 알렸다. 전염병을 핑계 삼아 조문도 사양했다. 산차는 추기경의 변덕을 욕하며 그녀의 아가씨에게 설탕 과자를 사다 날랐다. 아리아드네는 굳이 이폴리토에게 루크레치아의 유언—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꽃을 무덤에 가져다 다오, 네 뿌리는 거기에 있단다—을 전달하지 않았다. 이건 아리아드네의 이폴리토를 향한 분풀이이자 견제였다. 루크레치아의 유언은 아무리 봐도 이폴리토의 아버지가 누구인지에 대한 힌트였다. 아리아드네는 굳이 이폴리토에게 알려줄 것 없이 스스로 천천히 찾아보기로 했다. 그리고, 이폴리토 같은 새끼는 제 어머니의 유언을 들을 자격이 없다. 이폴리토에게 ‘네 어머니가 네 씨가 다르다고 인정하고 죽었다’고 알려줄지 여부는 잠시 고민을 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관두기로 했다. 이폴리토의 반응에 대해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폴리토가 그 이야기를 아리아드네의 입에서 전달받는다면 주눅이 들고 자기 페이스를 잃은 채 실수 연발을 하는 좋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었지만, 반대로 타초경사를 저지르는 형국이 되어 미리 대비를 시켜주는 꼴이 될 수도 있었다. 아리아드네는 이폴리토를 높게 평가하지는 않았으나 그녀는 기본적으로 매우 신중한 사람이었다. 위험을 짊어지고 모험을 하기보다는 시간이 들더라도 확실하게 제거하는 편을 선호했다. 이폴리토는 자신의 출생의 비밀이 들켰다는 사실을 나중에, 훨씬 치명적인 방법으로 알게 될 것이다.

16550997151118.jpg“아이고, 어머니! 엉엉!”

이폴리토는 추도 미사 중 맨 앞자리에서 그 누구보다도 더 큰 소리로 울었다. 용케 진짜 눈물도 뽑아내고 있었다. 그러나 가족 중 누구도 그에게 따듯한 시선을 보내지 않았다. 스캄파 씨와 지역협동조합 대표들은 파올라 스캄파의 죽음이 루크레치아 데 로시와 연관이 있다는 의혹은 오해에 불과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그들은 넉넉한 유족 위로금과 더욱 넉넉한 지역발전기금을 추가로 받았다. 스캄파 씨는 깨끗하지만 검소한 거실 테이블 위에 수북이 쌓여 있는 두카토 금화를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평생 만져보기 힘들 만큼 큰 액수였다. 하지만 그의 딸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는 전 재산을 처분하고, 짐을 쌌다. 멀리 떠날 작정이었다. 노모에게는 충분한 노후자금을 남겨드렸다. 그가 산 카를로로 돌아올 일은 없을 것이다. 데 마레 추기경 관저는 짧은 겨울 동안 두 번의 초상을 치렀다. 그리고 드디어 봄이 왔다. 타란토로부터, 산 카를로 궁정이 돌아온다.

16550997151123.jpg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