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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0화> 입에 쓴 약과 달콤한 위로 (129/733)

<제130화> 입에 쓴 약과 달콤한 위로2022.03.02.

아리아드네는 경계를 풀지 않았다. 그녀는 앞으로 내민 체자레의 손을 잡지 않은 채 반문했다.

16550999643323.jpg“체자레 백작님, 백작님은 본인의 파트너는 어디에 두고 여기서 이러고 계시는 건가요?”

아리아드네는 체자레가 다른 파트너를 구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지 못했지만, 그가 혼자 왔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전생처럼 어떤 여자든, 그게 유부녀이건 말건 가리지 않고 그는 그가 원하는 여자를 데리고 왔을 것이다. 하지만 체자레에게는 완벽한 알리바이가 있었다. 그는 웃으며 턱으로 귀빈석 쪽을 가리켰다.

1655099964333.jpg“오늘은 효도를 좀 했지. 내 파트너께선 저기 앉아 계시오.”

저 멀리 보이는 귀빈석에는 루비나 백작 부인이 화려하게 치장한 채 의기양양하게 포도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1655099964333.jpg“내 모친께서 오늘 산 카를로에서 가장 잘생긴 남자와 입장하시는 호사를 누리셨다오.”

유부녀와 입장한 것은 맞았지만 아리아드네가 상상한 그런 종류의 유부녀는 아니었다. 그녀는 어이가 없어서 짧은 웃음을 터트렸다. 그에 체자레는 한마디 덧붙였다.

1655099964333.jpg“잘생겼을 뿐만 아니라 한참 연하남이기도 하고.”

아리아드네는 얼토당토않은 말에 빵 터졌다. 뭔가 진 기분이었다. 체자레는 함께 웃으며 손을 내밀어 경계심이 한결 내려간 아리아드네의 손을 잡아 플로어 쪽으로 이끌었다.

1655099964333.jpg“자아, 사양하지 마시고.”

아리아드네는 체자레의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알폰소도 지금 저 플로어 위에 라리에사 대공녀와 함께 있지 않은가. 체자레는 자연스럽게 아리아드네의 왼손을 자신의 오른손에 쥔 다음 매끄럽게 춤추며 플로어의 정중앙을 향해 나아갔다. 아리아드네는 알폰소와 라리에사 대공녀에게 접근하는 것이 부담스러워서 스텝이 살짝 느려졌는데, 이를 눈치챈 체자레가 아리아드네 쪽으로 상체를 기울이고 나직하게 물었다.

1655099964333.jpg“왜, 중앙은 싫은가?”

아리아드네는 깜짝 놀라 반문했다.

16550999643323.jpg“네, 네?”

1655099964333.jpg“자꾸 몸에 힘을 주고 있길래. 무서우면 안 갈게.”

그는 유려하게 스텝을 밟으며 아리아드네가 턴을 돌 공간을 마련해 주었다. 충분히 중앙에서 멀어질 자리가 나왔다. 그러나 아리아드네는 오기가 생긴 나머지 체자레의 제안을 거절했다.

16550999643323.jpg“아뇨. 무서울 게 뭐가 있나요.”

그녀는 가볍게 턴을 돈 뒤에 덧붙였다.

16550999643323.jpg“가요, 중앙.”

체자레는 입가에 느릿한 미소를 띤 채 아리아드네를 이끌고 댄스 플로어의 정중앙으로 향했다. 이곳은 체자레 백작이 물을 만난 고기처럼 날뛰는 곳이었다. 그가 아리아드네의 손을 잡고 플로어로 올라오자 귀족들의 시선이 삼삼오오 꽂혔다. 춤을 추던 귀족들은 파트너의 귀에 대고, 자리에 앉아서 댄스 플로어를 구경하던 귀족들은 자리에 앉아 일행에게 속삭이기 시작했다.

16550999657787.jpg- “체자레 백작, 파트너 신청이 거절당했는데도 기어이 데리고 올라오네.”

16550999657787.jpg- “체자레 백작이 저 아가씨를 좋아한다더니, 이번에야말로 진심인가 봐요. 물불 안 가리네요.”

16550999657787.jpg- “저런 남자에게 진심이 어디 있겠어. 함락당할 때까지 공들이는 것뿐이지.”

체자레는 타인의 시선 따위에는 주눅 들지 않고 우아하게 아리아드네를 리드해 나갔다. 그는 사실 타인의 시선을 퍽 즐기는 편이었다. 그는 사람들의 시선을 만끽하면서, 자신의 댄스 파트너에게 툭 던졌다.

1655099964333.jpg“나를 버리고 선택한 발데사르 녀석은 좀 쓸만하신가.”

아리아드네는 웃음기를 머금고 답했다.

16550999643323.jpg“쓸만하다뇨?”

1655099964333.jpg“나 대신 골랐으면 나보다 잘생겼거나, 나보다 재미있거나, 나보다 데리고 다닐 때 더 으스댈 만해야 할 거 아니요.”

그는 저 멀리서 줄리아와 춤추고 있는 은발의 라파엘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1655099964333.jpg“그 셋 중 저놈이 나보다 나은 게 뭐가 있소. 설마, 저렇게 곱상하게 생긴 스타일이 취향?”

체자레는 오타비오의 일침을 은근히 신경 쓰고 있었다. 아리아드네는 빵 터지며 웃었다.

16550999643323.jpg“체자레 백작님, 지금 발데사르 소후작을 견제하시는 건가요?”

그는 뻔뻔하게 그녀의 말을 받았다.

1655099964333.jpg“그럴 리가. 발데사르 녀석은 나한테 비할 바가 못 되지. 하지만 아가씨의 눈이 삐었을 수도 있잖소?”

16550999643323.jpg“번지수 잘못 찾으셨어요, 체자레 백작님. 발데사르 소후작님과 저는 전혀 그런 사이가 아니에요.”

1655099964333.jpg“이런, 이런, 아가씨. 순진하긴. 남자는 모두 다 늑대야.”

그는 아리아드네의 손을 쥔 왼손에 힘을 살짝 주며 그녀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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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5099964333.jpg“라파엘 데 발데사르처럼 흰 양의 껍데기를 뒤집어쓴 음흉한 놈이라면 더더욱 그렇지.”

아리아드네는 체자레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멀리 외곽으로 턴을 돌며, 발데사르 소후작은 교단에 투신해 사제가 될 작정이라 여자에게는 별 관심이 없을 거라고 말을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라파엘에게 비밀을 지키기로 약속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라파엘이 터무니없는 오해를 받는다고 생각한 그녀는 한 마디 덧붙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16550999643323.jpg“세상을 너무 본인의 눈으로만 보시는 것 아닌가요? 발데사르 소후작님은 그런 분이 아닌 것 같은걸요.”

체자레는 크게 코웃음을 치며 팔을 떨쳐 아리아드네를 크게 빙글 돌렸다.

1655099964333.jpg“나같이 정직한 사람은 그저 거짓말을 하지 않을 뿐이오. 가지고 싶은 게 뭔지 대놓고 말을 해서 나빠 보일 뿐이지.”

16550999643323.jpg“나빠 보이는 건 알고 계시네요.”

그는 대답하지 않고, 다만 어깨를 으쓱 해 보였다.

1655099964333.jpg“제일 위험한 건 신실한 척, 착한 척, 고결한 척하는 놈들이야. 자기 욕망이 너무 저열해서 입 밖으로 꺼낼 수조차 없어서 꼭꼭 숨기는 거요.”

16550999643323.jpg“위선이다?”

1655099964333.jpg“착착 알아듣는군! 역시 나의 아가씨야. 그렇다마다. 모두 위선이요.”

아리아드네는 체자레의 손을 잡고 크게 턴을 돌았다. 그녀는 입가에 진한 미소를 띠고 맞받아쳤다.

16550999643323.jpg“그렇지만 언제라도 저는 위악보다는 위선을 고르겠어요. 위선도 결과적으로는 선이랍니다.”

우아한 왈츠의 선율을 따라 불꽃 튀기는 입씨름이 벌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분위기는 가벼웠고 체자레는 나름 이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만인의 시선을 받으며, 길쭉한 팔다리가 사슴처럼 쭉쭉 뻗은 푸른 드레스의 아가씨와 춤을 추며 언쟁을 교환하는 무도회라, 드물게 포식할 수 있는 성찬이었다. 그리고 그가 가장 즐길 시선을 줄 타인은 플로어의 정중앙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16550999686618.jpg‘……!’

보란 듯이 아리아드네를 안은 채 딱 열 발걸음 떨어진 자리에서 왈츠를 추는 체자레를 본 알폰소는 위장이 뒤집어져서 입으로 나오는 줄 알았다. 알폰소는 저도 모르게 아리아드네와 체자레 커플을 뚫어지라 바라보았다. 아리아드네는 어느 순간 분명히 알폰소과 눈이 마주친 것 같았으나, 이내 고개를 돌리고 왈츠의 선율에 몸을 맡겨 버렸다. 그가 자신에게 집중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라리에사 대공녀는 귀신같이 칭얼댔다.  

16550999686625.jpg“알폰소 왕자님……!”

16550999686618.jpg“……라리에사 대공녀.”

  알폰소는 한숨을 쉬며 라리에사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는 비로소 지금 이 일부터 처리하지 않으면 다음 스텝을 밟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16550999686618.jpg“나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요.”

  라리에사는 충격받은 표정으로 알폰소를 올려다보았다. 체력이 떨어져 가는 모양인지, 아니면 이 말을 들은 후 낙담해서인지 스텝을 밟던 그녀의 발이 꼬였다. 알폰소는 남의 눈에 띄지 않게 그녀를 리드해 라리에사 대공녀가 넘어지지 않도록 배려하면서, 나머지 말을 이었다.  

16550999686618.jpg“사랑하게 될 것 같지도 않습니다.”

  알폰소는 정직하게 ‘다른 사랑하는 여자가 있다’라고 라리에사에게 말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의 성정을 생각해보면 라리에사 대공녀는 아리아드네를 해코지하려 들 것이 뻔했다. 알폰소는 꾹 참고 단어를 고르며 최대한 오해가 없도록 자신의 마음을 전했다.  

16550999686618.jpg“당신이 내 곁으로 오게 된다면 당신은 깊이 불행해질 겁니다.”

  남편의 마음을 얻지 못하고 쭉정이처럼 그 겉껍질만 끌어안고 있는 여자. 알폰소는 그 여자, 그의 어머니가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라리에사 대공녀는 쉽게 승복하지 않았다.  

16550999686625.jpg“왕자님, 부부간의 정은 세월이 지나며 쌓여 가는 거예요! 전 그때까지 잘할 수 있어요!”

16550999686618.jpg“당신은 정으로 만족할 수 있나요?”

  알폰소의 반문에, 라리에사는 말문이 막혀 버렸다.  

16550999686618.jpg“불타는 열정과 깊은 애정 없이, 왕비에 대한 존중과 부부간의 정으로만 평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까?”

  라리에사가 생각하기에도 그녀는 알폰소와 몸과 마음, 찰나 간의 시선까지 모두 가지고 싶었기 때문이다. 알폰소는 단호하게 쐐기를 박았다.  

16550999686618.jpg“아바마마께 곧 정식으로 고할 작정입니다. 국혼은 없었던 일로 해 달라고.”

  왕자의 확정적인 선언에 라리에사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고, 숨결은 조금 거칠어졌다. 숨이 차오르는 것은 좋지 못한 체력에 두 곡 연달아 왈츠를 췄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16550999686618.jpg“미안합니다. 마음에 보답하지 못해서.”

  알폰소 왕자의 선포와 함께, 두 번째 곡이 끝났다. * * * 체자레와의 왈츠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온 아리아드네는 간이 테이블에 기대어 서서 라파엘과 줄리아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쟁반에 발포주와 작은 핑거푸드를 얹은 왕궁 시종이 돌아다니며 손님들에게 음료와 먹을 것을 권하는 와중이었다.

16550999657787.jpg“시뇨라, 한 잔 드시겠습니까?”

시종이 와서 그녀에게 발포주를 권했다.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무도회의 시종들은 보통 그림자처럼 쟁반을 들고 돌아다닐 따름이고, 절대로 먼저 말을 걸거나 무엇을 권하는 일이 없었다. 아리아드네는 약간의 위화감을 느끼고는 시종의 제의를 거절했다.

16550999643323.jpg“괜찮아요. 고마워요.”

아리아드네가 거절하는 동안, 시종은 주머니에서 작은 쪽지를 꺼내 아리아드네의 손에 쥐여주었다.

16550999657787.jpg“그럼, 좋은 저녁 되십시오.”

예를 취하고 멀어지는 왕궁 시종을 보며 아리아드네는 받은 쪽지를 꺼내 펼쳐 보았다. 쪽지에는 푸른 잉크로 쓰인 악필이 휘갈겨져 있었다. 「지금 수선화 정원. 중앙의 아치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A.」 개발새발 악필이 알폰소 왕자의 글씨가 틀림없었다. 아리아드네는 뾰로통하게 내민 입술과, 그와 별개로 올라가는 입꼬리를 감추지 못한 채 괜히 민망해서 툴툴거렸다.

16550999643323.jpg“아이, 참.”

수선화 정원은 오늘의 무도회장인 ‘백합의 방’의 발코니와 이어져 있는 아름다운 야외 정원이었다. 봄에는 각양각색의 수선화가 피어 절경이었다. 바깥은 이미 해가 진 후라 어둑어둑해서 조금 무서웠지만, 조금만 더 가면 알폰소가 있다. 아리아드네는 간이 테이블에 함께 있던 줄리아의 파트너, 카세리 남작에게 양해를 구했다.

16550999643323.jpg“저, 잠시 파우더룸에 다녀올게요.”

16550999657787.jpg“에스코트해 드릴까요?”

16550999643323.jpg“아뇨, 바로 앞인데요 뭘. 발데사르 소후작께서 돌아오시면 잘 말씀 좀 해 주세요.”

16550999657787.jpg“걱정 마십시오, 데 마레 영애.”

그녀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무도회장을 달려나가 수선화 정원으로 이어지는 작은 계단을 돌아 내려갔다. 곧 알폰소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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