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2화 이번 생 두 번째 청혼 (2) (141/733)


<제142화> 이번 생 두 번째 청혼 (2)
2022.04.13.


알폰소 왕자는 숙연하게 맹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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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알폰소 데 카를로는, 장차 아리아드네 데 마레를 나의 비로 맞이하여 영원히 아끼고 사랑할 것을 서약합니다.”

그는 정결의 맹세의 단어들을 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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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존중하고, 아끼겠습니다. 의사에 반하는 물리력을 행사하지 않겠습니다. 언제나 사랑하고, 위로하고, 힘이 되어 줄 것을 언명합니다.”

반쯤은 사랑의 고백이었지만 그보다 더 큰 부분은 자신을 향한 다짐이었다. 절대 본인의 아버지처럼 되지 않겠다는 다짐.

아리아드네는 미소를 지으며 알폰소를 올려다보았다. 농의 틈새로 들어오는 희미한 빛에 그녀의 표정이 보였다. 서글픈 미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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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폰소…….”

그녀의 입술이 힘겹게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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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루어지지 못할지도 몰라.”

아리아드네는 마르그리트 왕비의 암살을 막기로 결심했다.

마르그리트 왕비가 암살당하지 않는다면 데 마레 추기경의 딸이 왕자비가 되는 이벤트는 발생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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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에……. 쉬운 일이 아니었어.”

라리에사 대공녀가 이렇게 거대한 사고를 쳤으니 대공녀와의 혼담은 거두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군주의 아들이 신하의 딸과 결혼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귀천상혼(貴賤相婚)*, 인정받지 못하는 혼사였다. 게다가 아리아드네는 제대로 된 귀족 가문의 영애조차 아니다.

마르그리트 왕비가 특정 시점에 암살당하지 않는다면 아마 알폰소 왕자는 이 혼담이 깨진 이후라도 다른 군주의 여식과 또 다른 혼담이 오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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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은, 내 마음 따윈. 중요하지 않을지도 몰라.’

당초에 잘못된 사람에게 주었다가 만신창이가 된 마음이었다.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특별한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일지도 몰랐다.

그녀는 욕심을 부리는 대신 일단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하기로 결심했다. 마르그리트 왕비와 알폰소 왕자에 대한 보은.

지금 이 순간 아리아드네는 자신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아도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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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 너까지 왜 그래……!”

격앙된 알폰소 왕자의 목소리가 좁은 공간 안을 웅웅 울렸다. 그는 그의 여자를 위해 대형 사고를 쳤다. 그런데 지금 그녀가 그와 함께할 수 없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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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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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냐, 그런 게 아니야.”

아리아드네는 무릎에 힘을 주어 눈높이를 올려 알폰소에게 입을 맞췄다. 말캉한 입술이 밀려 들어왔다. 알폰소는 무심코 눈을 감았다. 격정적인 키스가 뒤를 이었다.

체온과 체온, 촉감과 촉감, 인간이 가장 본능에 충실해지는 몇 초간. 하지만 이게 마지막이었다.

이윽고 그녀가 입술을 뗐다. 그녀는 알폰소를 껴안은 채, 그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그녀가 읊은 것은 맹세의 문언이었다.

하지만 알폰소 왕자가 읊은 정결의 맹세에 대한 답가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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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영혼에 맹세컨대, 오늘 이 순간부터 나의 주군께 충성을 바치겠나이다. 그 어떤 역경 앞에서도 그를 보호하고 경의를 표하며 주군의 안위를 나의 목숨보다 앞에 놓겠나이다.”

기사들이 주군에게 바치는, 충성의 맹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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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

혼란스러운 알폰소의 감정과 상관없이, 아리아드네는 맹세의 단어를 한 글자, 한 글자 완성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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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이익보다 더 큰 선을 위해 살겠습니다. 주군께 항상 진실만을 고하고, 그에게 한 약속을 지키며, 변하지 않고, 떠나지 않고, 주군의 곁을 항상 지키겠나이다.”

기사의 맹세 따위 항상 형편없이 로맨틱한 맹세라고 생각해왔다. 도저히 실생활에서 지킬 수 없는 수준의 서약이라고. 하지만 아리아드네는 지금 이 순간 모든 단어에 진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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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군께 항상 진실만을 고한다’는 구문은 지킬 수 없지만.’

회귀의 비밀은 나눌 수 없지만, 나머지는 단 한 글자도 어기지 않겠노라고.

아리아드네가 사랑의 답가 대신 기사의 충성맹세를 읊자 당황한 알폰소는 아리아드네의 어깨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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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 난 너에게 이런 걸 바란 적 없어.”

알폰소는 간절한 마음에 그녀의 상체를 붙잡고 흔들며 절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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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그냥 내 옆에 있어 주면 돼. 너를 내 기사로 만든다니, 너를 이용해서 나를 지키겠다니, 난 그런 생각 해본 적 없어!”

아리아드네는 양어깨가 잡힌 채 도리질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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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내가 은혜를 갚고 싶어서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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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그냥 내 곁에 있으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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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다 잘 되게 할게.”

그녀는 흐느끼듯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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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왕으로 만들고, 즉위한 당신을 보며 마르그리트 왕비 폐하께서 흐뭇한 웃음을 지으시는 그날이 꼭 오도록 할게.”

그 과정에서 내가 가루가 되어 부서져도 괜찮아요.

아리아드네의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넘쳤다.

알폰소는 엄지손가락으로 그녀의 눈물을 닦아 주며 거세게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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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둘 중 하나만 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 그날이 오면, 너는 내 옆에 있는 거야. 왕비의 관을 씌워 줄게. 내 손 꼭 붙잡고 내 곁에 있을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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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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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그렇게 될 거야. 그건 내가 이룰게.”

아리아드네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그의 약속을 믿지 않았다. 이제 그녀는 판세에 제대로 손을 댈 작정이었다. 그녀가 회귀자로서 가지고 있던 이득은 상당 부분 없어질 것이다.

미래를 모르는 아리아드네 데 마레는? 그녀는 스스로의 역량을 높게 평가하지 않았다. 미래의 지식 없이도 뛰어났을 거라면 전생에서 그렇게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지는 않았을 거다.

아리아드네는 속으로만 속삭였다.

어떻게 되든 간에 당신을 사랑해요. 고마워요. 고마웠어요. 날 이렇게 대해 준 것은 당신과 당신의 어머니가 처음이에요.

* * *

사인 사이의 분쟁은 지역 주민들이 배심원이 되는 조악한 평민 법원에서 다뤄졌고, 귀족이 관련된 사건은 ‘왕궁 법정’에서 파견한 임시 판사가 처리했다.

하지만 궁전 내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은 국왕 직속 사건이었다. 국왕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었다. 그나마 있는 절차적 보장마저도 받지 못한다는 이야기였다.

왕실 근위대에 끌려간 엘코 경은 혹독한 심문과 모진 매질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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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대로 대! 누구의 사주를 받고 미레이유 공작을 암살한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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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궁 마부의 복장을 한 채 수상쩍게 구는 사람이 있었소. 외부인으로 보여 추궁하려 했으나 반항이 거세어 사살하게 된 것뿐, 사주도 없고 음모도 없소.”

 
- 철썩!

심문관은 엘코 경의 등에 채찍질했다. 그는 입술을 깨물고 신음 하나 흘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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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쩍게 군다는 이유 하나로 사람을 죽이기까지 해? 마차가 완파된 사유는 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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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실 근위대는 끈질겼다.

이 사건에 쏠린 스포트라이트에 더해서, 평소 왕자의 기사들이 훌륭한 군장을 지급받고 으스대며 궁내를 돌아다니던 것을 아니꼽게 보던 근위대원들은 설욕의 기회라고 여겨 더더욱 집요하게 엘코 경을 추궁했다.

그러나 엘코 경은 독하게 자신의 진술을 뒤집지 않았다. 게다가, 엘코 경이 단독범이 아니라고 주장하기에는 그의 배후가 될 만한 세력이 없었다.

만일 이게 계획된 음모라면, 알폰소 왕자와 갈리코 왕국의 정략혼에 반대하는 자의 소행일 가능성이 컸다. 국내에서 굳이 그런 자를 찾자면 체자레 백작과 루비나 백작 부인일 것이다.

그러나 체자레 백작은 음주·가무와 파티를 좋아하는 한량이었다. 체자레 백작은 아직까지는 정치적 암살 시도를 할 만할 역량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루비나 백작 부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영향력은 국왕의 귀에 베갯머리 송사를 속살거려 귀족들에게 이권을 배당해주는 쪽에 주로 쏠려 있었지, 직접 이런 일에 쓸만한 사람을 부릴 권력까지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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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의 개입 증거 역시……. 못 찾았습니다.”

에트루스칸과 갈리코의 유착을 싫어할 만한 또 다른 세력으로는 아세레토 공국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세레토 인들이 산 카를로에서 활개를 치고 있다는 증거는 어디에서도 나오지 않았다. 나오는 것은 갈리코인들 뿐이었다.

그리고 엘코 경은 그 누구보다도 갈리코 왕국과의 혼담에 기꺼워해야 할 알폰소 왕자의 심복 중 하나다. 정치적으로 판단했을 때, 알폰소 왕자는 이 미레이유 공작을 죽여서 이 혼담을 물릴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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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폐하. 이 사건은 미레이유 공작이 궁내에서 소란을 피우던 와중에 치안 유지 활동을 하던 왕실 기사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사살한 불행한 사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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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말이나 되나!”

레오 3세의 심기가 발칵 뒤집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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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사절단의 최고 책임자가 팔라지오 카를로 안에서 죽었는데, 지금 나더러 갈리코 왕국에 저런 답변을 보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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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오나 폐하, 미레이유 공작이 사망 당시에 인가받지 않은 상태로 본 왕궁의 마부 복장을 하고 무단으로 왕궁 소유의 마차를 몰고 있었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근위대장의 보고에, 함께 모여 있던 큐리아 레지스의 외교 담당자, 마르케즈 백작이 조심스레 의견을 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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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갈리코 왕국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을만한 다른 이유를 찾아낼 수도 있을 것이옵니다. 수사는 우리 측에서 하니 뒤져서 파 보면 뭐라도 나오겠지요. 하나, 갈리코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다고 해서 그게 혼인 협상에 꼭 긍정적인 영향만 줄 거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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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드디어 듣고 싶었던 차원의 이야기가 나온 레오 3세는 짜증스럽게나마 발언을 허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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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케즈 백작. 말해 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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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유를 대게 된다면 아무래도 미레이유 공작은 잘못이 없고, 우리 측의 과실이 크다는 쪽으로 이야기가 흘러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실 레오 3세가 찾고 있는 것도 이런 쪽의 이야기였다. 미레이유 공작이 아주 나쁜 놈이어서 갈리코 왕국 측에 비난을 전가할 수 있다던가, 아니면 정반대로 미레이유 공작의 죽음은 불행한 사고사여야 했다.

미레이유 공작이 타국의 궁정에서 중범죄를 도모했다는 빼도 박도 못할 증빙이 없는 한, 에트루스칸 왕국은 후자 쪽의 스탠스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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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본국의 과실로 미레이유 공작이 사망했다는 인정을 순순히 냈을 때, 결혼 동맹 협상이 순조롭게 흘러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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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레오 3세는 침음성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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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결혼 동맹은 동맹 그 자체를 맺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전략무기를 획득하는 것이 목적이지요.”

방 안에는 근위대를 포함해 큐리아 레지스 멤버가 아닌 자들도 섞여 있었기 때문에, 마르케즈 백작은 ‘화약’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에둘러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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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과실을 인정했을 때, 과연 그들이 기존 조건대로 순순히 계약 체결을 하려고 들까요?”

합당한 이야기였다. 레오 3세는 이를 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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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운 갈리코 놈들이 그렇게 호락호락할 리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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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조사를 진행해 보시되, 별다른 증거가 나오지 않는다면 저는 차라리 미레이유 공작이 왕궁 안에서 수상한 짓을 하려고 했다는 부분을 부각시키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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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도 결혼 동맹이 체결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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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반반이라고 생각합니다.”

마르케즈 백작은 레오 3세의 안색을 슬쩍 살피고는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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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오나 우리가 양보해서 맺는 결혼 동맹은 우리에게 100% 쓸모가 없습니다. 애초에, 갈리코 측에서 신분이 맞지 않는 여식을 내민 혼사라는 점을 기억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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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고민해 보세.”

방 안의 모두가 합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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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 폐하!”

 

* * *

미레이유 공작의 사망으로 창졸간에 갈리코 왕국 사절단의 최고위직이 된 르비엥 백작은 머리에 붕대를 감은 채 잰 손길로 본국에 보낼 보고서를 썼다.

「급: 미레이유 공작 사망. 사인은 두부의 외상과 흉부의 자상. 에트루스칸 왕국은 왕실 기사를 공작 살인범으로 지목해 수사 중. 다만 알폰소 왕자가 연관되었다는 정황이 있음.」

그는 마지막 문장을 적을까 말까를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에는 보고서에 기입하고 말았다.

그는 외드 대공의 신하로서 라리에사 대공녀를 보호해야 할 의무를 지고 있었지만, 동시에 그에게는 필리프 4세의 신하로서 국왕에게 최대한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고 본국에서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도울 의무도 있었다.

표지에 ‘필리프 4세 국왕 폐하 친전’이라고 적은 르비엥 백작은 이를 사절단 말단에게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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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믿을 수 없네. 자네가 직접 본국으로 돌아가 서신을 전하게. 최대한 빨리 말일세.”

 
에트루스칸 왕국은 아직까지는 피해자인 갈리코 왕국의 사절단을 극진하게 대접하고 있었지만, 르비엥 백작은 이게 언제든 손바닥 뒤집어지듯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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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현장의 분위기가 불온해. 철수 여부에 대해서 답변을 받아 오게. 특히 대공녀님의 안위가 문제일세.”

 
라리에사 대공녀가 에트루스칸 왕국에 억류라도 당한다면 이는 본국에 큰 정치적 부담이 될 것이다. 그리고 사실 라리에사 대공녀가 한 짓이 밝혀진다면, 억류를 당하더라도 할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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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나는 빠른 철수를 바라네.”

 
찔리는 게 있는 입장에서는 서둘러 본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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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필리프 4세 폐하의 의중을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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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절단 파견에 있어서 미심쩍은 부분들이 많기는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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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가 최선을 다해 잘 파악해 보고, 가급적이면 우리가 빠르게 본국으로 돌아가는 방향으로 보고를 올려 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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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력을 다하겠습니다.”

 
그리고 르비엥 백작이 사절단 말단에게 넘긴 서신은 한 통이 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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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절대로 외드 대공 합하께만 전달해야 한다.”

 
본국에 보내는 주 보고서와 달리, 라리에사 대공녀가 저지른 짓을 포함해 이번 사건에 대해 숨김없이 모두 서술한 보고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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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부가 있겠습니까.”

 
르비엥 백작과 마찬가지로 외드 대공의 가신 출신인 사절단은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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