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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화 깊숙이 숨긴 속내 (147/733)


<제148화> 깊숙이 숨긴 속내
2022.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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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아드네는 데 마레 추기경을 따라 그의 처소로 들어갔다. 추기경의 서재는 응접실에서 문을 하나 더 열고 들어가야 했다.

평생 처음 열어 보는 미지의 문이었다.

추기경이 육중한 떡갈나무 문을 밀어서 열자, 그 안에서 흰색 대리석과 황금으로 장식한 아름다운 서재가 나타났다. 고상한 취향으로 가구와 장식품을 엄선한, 예술적인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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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이……!’

난생처음 들어와 보는 데 마레 추기경 서재의 위용에 아리아드네는 침을 꿀꺽 삼켰다. 허락받지 못했던 공간에의 입성은 특별한 느낌이 있었다.

거대한 고동색 고가구들은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었고, 그 위에 새로운 서류들과 오래된 서류들이 한가득 쌓여 있었다. 벽에 짜 넣은 목조 책장에는 각종 희귀한 신학 서적이 빼곡하게 꽂혀 있었다.

행정 서류들은 최근에 손을 탄 흔적이 역력했지만 신학 서적은 가지런하게 꽂혀만 있었다. 그 위로는 먼지떨이로 먼지만 털어낸 흔적이 조금 있어, 들여다보지 않은 지 오래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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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거라.”

추기경은 자신의 서재 정 중앙의 큰 책상에 앉으며, 아리아드네에게 그 앞에 있는 작은 의자를 가리켰다. 아리아드네는 고개를 숙여 목례하고 조그만 녹색 벨벳 의자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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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단순히 왕비 폐하의 말동무만 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무슨 일이 있었느냐.”

여기에서 적당한 뼈다귀를 던져 주지 않으면 데 마레 추기경은 문 이빨을 놓지 않을 것이다. 아리아드네는 어느 선까지 그녀의 아버지에게 알려줘야 할지를 가볍게 계산했다.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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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께서도 들으셨겠지만, 팔라지오 카를로의 궁 경내에서 미레이유 공작이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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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데 마레 추기경은 이미 각종 인맥을 동원해 알아볼 만큼 알아본 터였다. 왕궁 내부에서 이것이 알폰소 왕자와 연관되었다는 풍문이 흘러나왔지만 도통 확인을 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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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알폰소 왕자의 짓이더냐?”

데 마레 추기경은 둘째 딸 앞에서 굳이 체면을 차리지 않고 곧장 물어보았다. 그들은 가족이다. 가족은 서로에게 최선의 이득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아리아드네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바로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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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닙니다.”

이 ‘아버지’에게 지킬 의리는 없다. 그녀는 아직도 의심하고 있었다. 전생의 이사벨라가 곧 국왕으로 즉위할 체자레 섭정공의 비가 될 수 있었던 연유.

당시에는 이사벨라에게 푹 빠진 체자레가 이사벨라를 가장 높은 곳에 올려주었다고 생각했지만 회귀 후 곱씹어 보면 볼수록 어딘가 이상했다. 그녀가 아는 체자레 데 코모는 노골적인 이득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 자였다.

이사벨라 데 마레가 정 가지고 싶으면 어디 숨겨놓고 정부로 삼으면 그만이다. 당시의 체자레에겐 그럴 수 있는 권력이 있었다.

하지만 체자레는 굳이 이사벨라에게 왕비의 자리까지 마련해 주었다. 그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알폰소 왕자의 미망인에게 말이다.

체자레가 누르려고 어떻게 기를 쓰건 간에 사교계에서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인선이다. 여자에 대해서는 더러운 농담거리, 남자에 대해서는 오쟁이 진 멍청이라는 종류의 비웃음거리가 될 것이 불 보듯 뻔했는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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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 마레 추기경이 개입했다고 봐야지.’

데 마레 추기경이 어떻게든 이사벨라에게 이권을 얹어서 교환했을 것이다. 무얼 받았을까. 나는 그에게 딸도 아니었던 걸까.

안타깝게도 이번 생의 데 마레 추기경에게서 속 시원한 답을 들을 수는 없을 것이다. 자기도 모를 테니까. 하지만 그러고도 남을 인간이다.

아리아드네는 아버지를 믿지 않았다. 그에게 지킬 의리도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아버지에게 마르그리트 왕비가 미는 ‘공식적인’ 버전의 이야기를 했다. 그대로 던지면 노회한 추기경이 믿지 않을 테니, 밖에는 알려지지 않은 내밀한 이야기들을 슬쩍슬쩍 섞어 신뢰도를 높인 것만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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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상황이 복잡했습니다. 지휘 관계 관련해서 혼선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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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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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레이유 공작을 직접 살해한 자는 알폰소 왕자님 휘하의 기사인 엘코 경으로 밝혀졌습니다. 미레이유 공작의 사체가 발견된 장소 역시 왕자궁의 관리감독 하에 있던 헛간이었습니다.”

자고로 훌륭한 거짓말이란 9할의 진실 위에 1할의 거짓을 섞었을 때 성립하는 법이다. 그녀는 외부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미레이유 공작이 발견된 장소에 대한 정보를 데 마레 추기경에게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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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연유로 미레이유 공작 살인사건이 알폰소 왕자님의 지시로 인한 일이었다는 풍문이 도는 것 같습니다. 마르그리트 왕비 폐하께서는 이를 차단코자 하셨습니다.”

합리적인 이야기였다. 그녀는 미친 광대에 대한 이야기는 슬쩍 뺐다.

레오 3세가 입단속을 잘 시켜서 광대의 이야기가 데 마레 추기경의 귀에까지 들어가지 않았다면 그것이 최선이고, 설혹 데 마레 추기경이 광대의 증언에 대해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광대의 증언은 결국에는 ‘카더라’에 불과했다.

최대한 강조점을 주지 않아서 묻어버리고, 전면에 드러나면 신빙성을 공격해 죽여버리면 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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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레이유 공작은 팔라지오 카를로 소속의 마부 옷을 입은 채 발견되었습니다. 마차는 갈리코 사절단이 출입할 일이 없는 구역에 엉망으로 부서져 있었고, 진짜 마부는 마취제에 취한 채 속옷만 입고 있었습니다. 왕비 폐하께서는 이 사실에 기반해서 최대한 이 사건을 알폰소 왕자님과 관련이 없는 사건으로 만들고자 하셨고, 저는 거기에 조언을 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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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데 마레 추기경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아리아드네에게 반문했다. 제아무리 신학 신동으로 이름을 떨쳤다손 치더라도 그의 차녀는 결국에는 열다섯 살 먹은 여자아이였다.

그가 생각하기에, 아리아드네의 영리함은 책에서 활자로 얻은 것이었다. 그의 둘째 딸은 정치나 권모술수 따위에 노출될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아리아드네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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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운이 좋았습니다. 마르그리트 왕비 폐하께서는 이것이 반 갈리코 정서에 관련될 수 있다는 점을 아시고 에트루스칸 토박이의 의견을 듣고자 하셨습니다.”

자신이 이 상황에 연루된 자연스러운 연유도 덧붙여야 한다. 핑계야 만들기 나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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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비 폐하의 심복이신 카를라 부인께서는 능숙한 궁정인이시지만 아무래도 갈리코 인이라 에트루스칸 인의 심경을 헤아리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으셨고, 평소에 왕비 폐하께서 두텁게 의지하시는 마르케즈 백작 부인은 남편이 이번 갈리코 왕국과의 결혼 협약의 실무에 깊이 연관되어 계셨기 때문에 불러들여서 의견을 듣기에 부적합했습니다.”

아리아드네는 여기서 한술 더 뜨기로 했다. 데 마레 추기경을 추동할 수 있는 것은 ‘욕심’이었다. 영원무궁할, 명실상부한 귀족가로서의 데 마레 가문에 대한 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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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이건 제가 마르그리트 왕비 폐하의 심복으로 발돋움할 기회입니다.”

원래대로라면 이번 달에 죽어버릴 왕비니 끈 떨어진 연이다. 하지만 아리아드네가 정말로 왕비 폐하의 목숨을 구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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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 마레의 이름을 드높이 떨치고 오겠습니다.”

왕족은 구미에 맞는 귀족 부인들을 주변에 측근 시녀로 둔다. 그 이너서클에 들어가면 이권이 많았다.

좋은 혼처를 주선해 주는 것은 물론이고—물론 이쪽은 주군의 아들을 노리고 있었지만—좋은 사업 기회, 직위에의 임명, 왕과 왕비 내외에게 잘만 보인다면 하다못해 데 마레 추기경이 꿈에도 그리는 작위 수여도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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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래. 처신을 신중하게 해서 책 잡히지 않게 하고, 왕비 폐하 근처에서 폐하를 잘 모시거라.”

데 마레 추기경은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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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기회가 있다면 네 오빠나 네 언니와도 꼭 나누도록 하고. 우리는 가족이야. 흥망성쇠는 함께하는 거야.”

지난 생의 나에게는 그 좋은 가족 타령이 왜 해당되지 않았죠, 아버지. 라고 묻고 싶은 혀끝을 깨물어 참으며 아리아드네는 고개를 숙여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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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부가 있겠습니까.”

양순한 아리아드네의 대답에 데 마레 추기경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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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에서 지원이 필요하면 주저하지 말고 얘기하고.”

기다리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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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말인데요 아버지.”

아리아드네는 엄밀히 따지자면 관련이 없는 내용을 슬쩍 엮어서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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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만간 밀 추수 시기가 다가옵니다. 이번에 대량으로 밀을 구매해두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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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 밀은 갑자기 왜?”

가을에 파종한 밀은 5월부터 6월까지가 수확기였다. 아리아드네는 지난번에 루크레치아의 방해로 실패했던 밀 사재기를 이번에야말로 관철시킬 작정이었다. 그때 샀다면 묵은 밀을 사들였어야 했는데, 지금 한다면 한창 쌀 때 햇밀을 쟁일 수 있을 테니 지금이 차라리 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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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비 폐하께서 관장하시는 랑부예 구휼원은 매해 겨울쯤 되면 식량이 떨어져서 곤란을 겪습니다. 자체 생산한 순무로 겨울을 나는데, 그때 빈민이 죽어 나가기라도 하면 왕비궁의 체면이 깎이니 매해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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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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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에 미리 밀을 쟁여놨다가, 겨울에 랑부예 구휼원에 기부하면 왕비 폐하의 측근으로 올라서는 데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물론 아리아드네는 공짜로 기부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흑사병이 터지면 그 이듬해 농사까지 망한다.

아리아드네는 1124년에 에트루스칸 왕국 전체에서 유일하게 식량을 들고 있는 사람이 될 작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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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액대는 어느 정도로 생각하고 있느냐.”

사실 아리아드네는 마음 같아선 적어도 10만 두카토 어치(약 1000억 원) 밀 정도는 쌓아두고 싶었다. 산 카를로 전체를 일 년간 먹일 분량이다. 아리아드네는 밀값이 급등한다는 미래를 확고하게 알고 있었다. 이것은 땅 짚고 헤엄치기다.

하지만 사정을 모르는 데 마레 추기경이 그런 거액을 승인할 리 만무했다. 사실 성황청 예산까지 유용하면 모를까, 데 마레 가문이 자체적으로 조달할 수 있는 금액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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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한 2만 두카토(약 200억 원)?”

그녀는 최대한 타협한 금액을 부르고 데 마레 추기경의 눈치를 보았다.

데 마레 추기경은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은 표정으로 아리아드네를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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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2만 두카토?”

데 마레 추기경 입장에서, 왕비의 눈에 들기 위해 2만 두카토를 쓴다니, 말도 안 되는 금액이었다. 난민 구휼을 위한 곡식이다. 그게 돈이 되는 일도 아니고, 순전히 지출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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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말이나 되는…….”

여기까지 말한 데 마레 추기경은 흠흠 헛기침을 했다. 그는 열다섯 살이 되어서야 집으로 들인 자신의 차녀와 전혀 감정적 유대가 없었다. 친밀함에 편승해 편하게 이야기를 할 사이가 아니었다.

이제까지 데 마레 추기경이 아리아드네 앞에서 거침이 없었던 이유는 단순히 그가 갑이고, 그의 서녀는 을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아리아드네는 왕의 아들—둘 중 어느 쪽이건 간에—과 결혼할 가능성이 보이고, 왕비의 최측근이 되기 일보 직전이다. 데 마레 추기경은 헛기침을 하며 말을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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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기국이 크구나.”

하지만 2만 두카토는 말도 안 되는 금액이었다. 데 마레 가문의 1년 예산을 모조리 가져다 쓰는 것은 물론이요, 가지고 있는 재산을 죄다 저당 잡혀야 조달할 수 있을까 말까다.

대저택과 베르가모 농장은 성황청의 소유라 추기경이 개인적으로 처분할 수 있는 재산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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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제아무리 왕비 폐하의 눈에 들고 싶다고 하더라도 정도가 있어야지. 은혜는 나눠서 입혀야 하는 법이다.”

데 마레 추기경은 ‘나쁜 짓은 일거에 저지르되 은혜는 조금씩 베풀라’*는 고사성어를 인용하며 머릿속을 가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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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 두카토 (약 10억 원) 정도가 내가 생각하는 상한선이야.”

그는 최대한 인심을 쓴 액수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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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상 구휼에 쓰는 것은 우리 사정상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가난한 자들은 공짜로 먹이면 점점 더 바라며 기어오르게 되어 있어. 내년에는 그 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하느냐?”

아리아드네는 다만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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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아버지.”

하지만 아리아드네는 반 컵의 물에서 희망을 보는 종류의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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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예산 1000 두카토는 확보했다.’

그녀는 어떻게든 나머지 1만 9천 두카토를 채워 넣을 생각이었다.

데 마레 추기경의 서재를 나선 아리아드네는 바로 주세페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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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세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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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아가씨.”

그는 그간 안녕하셨냐는 둥, 불필요한 공치사를 일절 넣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그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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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하 한둘을 데리고 외곽에 곡식을 쌓아 둘 창고를 찾아봐. 가급적 산 카를로 시내면 좋겠지만 베르가모 농장도 괜찮아.”

그녀는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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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비상 상황이 생기더라도 우리 측 인원으로 지킬 수 있는 위치였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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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아가씨. 규모는 어느 정도로, 예산은 어느 한도에서 알아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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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20만 칸타로(약 2만 톤)가 목표야. 일 년 치 창고 대여료로 일단 500 두카토(약 5억 원). 경비 인원이 모자라다면 인원 고용이나 훈련까지 포함한 비용.”

엄청난 스케일에 과묵한 주세페의 눈마저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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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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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아가씨.”

주세페는 시킨 일에 안 된다는 말을 하는 법이 없었다. 더더욱 마음에 들었다.

* * *

루비나 백작 부인은 요사이 바깥의 정세가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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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뭔가 있어…….”

그녀의 끄나풀들에 따르면 알폰소 왕자가 사고를 친 것으로 보이며, 레오 3세가 그것을 묻어 주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거기에서 도통 더 깊이 들어갈 수가 없었다.

현장을 직접 목격한 사람인 광대는 더 캐볼 틈도 없이 바로 사형당했다. 왕의 심복들은 루비나 백작 부인에게 입을 쉬이 열지 않았다. 레오 3세 본인에게 운을 띄워 보았으나 그는 불같이 화를 낸 후 루비나 백작 부인을 열흘간 만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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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기회일까?”

루비나 백작 부인은 겉에 비취 장식이 되어 있는 작은 도자기 병을 들어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냄새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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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한참 비취 장식 도자기 병을 만지작거렸으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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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야. 경거망동하지 말자, 루비나.”

 
- 달칵.

그녀는 최종적으로 약병의 뚜껑을 닫고는 서랍장 깊숙이 약병을 넣어 치워 버렸다.

그녀는 이미 사반세기가 가깝게 혼자 버텼다. 기다림이라면 이골이 났다. 더 좋은 기회가 올 때까지, 충분히 더 기다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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