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화 마르그리트 왕비 독살 사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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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화 마르그리트 왕비 독살 사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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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1화> 마르그리트 왕비 독살 사건 (2)
2022.05.15.
왕궁은 발칵 뒤집어졌다.
- “아무도 나가실 수 없습니다!”
왕궁 근위대 병력이 오찬장으로 들이닥쳐 출구를 막았다. 내부에 갇힌 귀부인들은 웅성대며 긴장을 숨기지 못했다.
마르그리트 왕비가 긴급하게 보낸 호출에 궁의 세 명이 바로 달려왔고, 그들은 각기 시약을 가지고 바닥에 쏟아진 물을 검사한 후, 이제는 차게 식은 강아지의 사체를 검사하기 시작했다.
“로코! 우리 로코에게 손대지 마!”
궁의가 귀부인들이 빙 둘러서서 구경하고 있는 와중에 개의 분변이 묻은 엉덩이를 의료용 스펙큘럼*으로 벌려서 들여다보자, 루비나 백작 부인이 발작적으로 비명을 질렀다.
루비나 백작 부인의 난동에 마르그리트 왕비가 차가운 눈길로 그녀를 쏘아보았다. 왕비의 기색을 알아챈 아리아드네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루비나 백작 부인, 경거망동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새파랗게 어린 소녀에게 지적을 당한 루비나 백작 부인은 얼굴이 시뻘게질 정도로 분노했다. 좋게 봤던 아이라 분노가 두 배였다.
“너! 지금 뉘 안전에서 나대는 것인지 위아래 구분이 안 되느냐!”
아리아드네는 작위가 없는 반면 루비나는 백작 부인이었기 때문에, 좁게 보면 맞는 말이기는 했다. 그러나 루비나 백작 부인의 일갈에 마르그리트 왕비가 대번에 인상을 쓰고 나섰다.
“그 말은 자네에게도 똑같이 적용돼.”
루비나 백작 부인은 격분한 얼굴로 마르그리트 왕비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아리아드네가 루비나 백작 부인에게 경고했다.
“루비나 백작 부인, 지금 우리는 왕족 시해 시도일 수도 있는 사건 한가운데에 있습니다. 아직 이 방에 있는 사람 중 아무도 용의 선상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 누구라도 범인으로 지목된다면 무사하지 못할 것입니다.”
아리아드네의 말을 들은 루비나 백작 부인은 어쩔 수 없이 표정을 굳히고 입을 다물었다. 본인의 상황을 자각한 것이다.
- “누가 이런 끔찍한 짓을……!”
- “그런데 루비나 백작 부인은 갑자기 왜 조용해진 거예요?”
- “자기도 깨달은 거지, 지금 마르그리트 왕비 폐하께서 돌아가시면 누가 제일 이득일까요?”
- “세상에……!”
- “설마요!”
장내가 소란스럽고 어수선한 가운데, 궁의들은 중앙에 모여서 회의를 했고, 이내 결과를 선포했다.
“존귀하신 왕비 폐하, 보고드립니다. 바닥에 흐른 물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저희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남은 양이 적어, 유의미한 독극물 검출에 실패했습니다.”
아리아드네는 입술을 깨물었다. 아, 저기서 비소가 확실히 검출되어 줘야 했는데!
하지만 궁의의 말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다만, 사망한 개의 상태를 보았을 때 자연사일 가능성은 몹시 낮아 보입니다. 사체를 조사해 본다면, 독극물의 종류를 밝힐 수도 있을 것입니다.”
“독극물이 맞긴 맞나요?”
누군가가 물었다. 대표 궁의가 답했다.
“자연사라거나 병사라기에는 지나치게 급격하게 죽음에 이르긴 했습니다. 사실 이런 경우에 가장 흔히 쓰이는 독은 비소입니다…….”
비소라니! 장내의 귀부인들은 일제히 경악성을 삼켰다. 암살용으로 악명이 높은 독이었다. 루비나 백작 부인도 두 손으로 본인의 얼굴을 감쌌다.
설마, 정말로 왕족 시해 상황이란 말인가?
감히 아무도 입을 열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와중에, 궁의는 마저 보고를 올렸다.
“비소는 사후 검출이 안 된다는 점을 가장 큰 특징으로 하는 독입니다. 그래서 암살자들이 애용하는 독극물이기도 합니다. 사람이 먹었다면 아마 오늘 저녁부터 설사병이 나고 구토감이 생기며 2주 정도를 앓다 죽어 병사와 구분이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강아지의 사체를 흘긋 쳐다보았다.
“사람이 아니라 체구가 작은 개가 먹었기 때문에 암살용으로 흔히 쓰이는 용량이 아니라 치사량을 훨씬 넘는 분량을 한 번에 섭취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사후에 배를 갈라 보면 위장에 출혈이 있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이 개의 배를 갈라 위장 안을 확인해 보면…….”
대표 궁의의 보고는 새된 비명으로 끊겼다.
“안 돼요!”
루비나 백작 부인이었다. 그녀는 날 듯이 달려가 보조 궁의의 품에서 로코의 사체를 빼앗아 들었다.
“우리 로코……. 불쌍한 로코…….”
중앙 대륙에서는 온전한 모습으로 죽지 못한 사체는 윤회의 고리에 합류할 수 없다는 믿음이 있었다.
루비나 백작 부인의 두 눈에서 눈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오만하고 고압적인 루비나 백작 부인이 레오 3세를 제외한 사람들 앞에서는 드물게 보이는 모습이었다.
마르그리트 왕비는 얼음장같이 차가운 표정으로 흐느끼는 루비나 백작 부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카를라 부인은 왕비 시해라는 중차대한 사건에 충격을 받았는지 평소와 다르게 얼굴이 새하얘져서 부들부들 떨기만 했다.
결국 보다 못한 아리아드네가 루비나를 제지했다.
“백작 부인! 슬픈 마음은 십분 이해하오나 지금 궁의들의 검사를 방해하시면 안 되십니다.”
루비나 백작 부인의 일파들도 도저히 그녀를 두둔하지 못하고 상황만 예의주시하고 있는 상태였다.
“비켜 주십시오. 왕족 시해 시도는 그 어느 하나도 허투루 넘기면 안 되고 모든 사항을 명명백백하게 밝혀야 합니다!”
- “맞는 말이에요.”
- “부정할 수 없죠.”
- “루비나 백작 부인은……. 정말로 개 때문에 저러는 걸까요?”
의심이 싹트고 있었다.
그때였다. 어수선한 분위기의 오찬장에 왕궁 시종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 “국왕 폐하 납시오!”
굳게 닫혀 있던 오찬장의 정문이 쿵! 열리고 근위대장을 대동한 레오 3세가 거친 발걸음으로 장내에 등장했다.
그의 등장에 마르그리트 왕비를 포함해 오찬장 안에 있던 사람들은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 “산 카를로의 태양을 뵙습니다!”
레오 3세는 몹시 짜증스러운 태도로 답했다.
“모두 일어서시오.”
그는 좌중을 둘러보며 물었다.
“지금 이게 무슨 일이지?”
마르그리트 왕비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서 답하려던 차에, 죽은 개를 끌어안고 있던 루비나 백작 부인이 울면서 레오 3세의 앞으로 몸을 던졌다.
“폐하!”
레오 3세는 개의 분변이 묻을까 봐 흠칫, 하며 몸을 피했고, 몸을 사리는 남자에게 전력을 다해 돌진한 셈이 된 루비나 백작 부인은 허공에 몸을 던지고는 서럽게 울었다.
“로코가……. 우리 로코가…….”
사람들 앞에서 너무 대놓고 루비나 백작 부인을 피해서 민망해진 레오 3세가 험험 헛기침을 했다.
“로코가 무슨 일이냐, 루비나?”
짐짓 자상하게 상체를 숙인 레오 3세에게 루비나 백작 부인이 처연하게 울부짖었다.
“우리 로코가 죽었는데, 궁의가 로코의 사지를 절단하겠다잖아요!”
“사지를 절단이 아니라 배를 갈라 위장을 확인…….”
“쉿!”
보조 궁의가 루비나 백작 부인을 정정하려고 들자 대표 궁의가 그를 제지했다. 궁전에서 잔뼈가 굵은 대표 궁의는 지금 끼어들어서 맞는 말을 해 봤자 좋은 꼴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루비나 백작 부인은 이 기세를 몰아 레오 3세에게 간절하게 애원했다.
“저들이 로코를 가져가지 못하게 해주세요, 네? 온전하게 묻어줄 거라고요!”
마르그리트 왕비는 인상을 쓴 채 이 상황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녀는 바로 며칠 전 레오 3세를 크게 거스른 상태였다.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루비나 백작 부인을 처벌해야 한다고 하면 남편이 뭐라고 발작을 할지 가늠이 잘되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서 저 개를 그냥 보내줄 수는 없다. 마르그리트 왕비의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그때 그녀의 땀 난 손바닥에 작은 손 하나가 조용히 스며들어왔다.
‘?!’
급작스러운 신체접촉에 놀란 마르그리트 왕비가 옆을 돌아보았다. 거기에는 아리아드네가 서 있었다. 소녀치고는 큰 키, 하지만 아이답게 호리호리한 체형, 그리고 그 나이 또래라고 믿을 수 없으리만큼 차분하고 확신 있는 분위기.
무엄하다고 호통을 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온기는 몹시 마음이 놓였다. 마르그리트 왕비는 조용히 아리아드네를 바라보았다. 아리아드네는 왕비를 올려다보며 미소지었다.
그녀는 입 모양으로 속삭였다.
- “다 잘 될 거예요, 왕비 폐하.”
마르그리트 왕비는 가슴이 따듯해지는 기분에 조그맣게 미소를 지었다. 작은 여자아이가 위로해주려고 노력하는 모양이라니, 기특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말을 건넨 주인공은 ‘위로’에서 그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녀가 그녀의 왕비님에게 바칠 것은 ‘사건의 해결’이다.
“에트루스칸 왕국의 태양과도 같으신 영명하신 국왕 폐하, 감히 제가 한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아리아드네의 듣기 좋은 저음이 오찬장 안을 울렸다. 마르그리트 왕비를 위시한 귀부인들은 깜짝 놀라 검은 머리카락의 소녀를 일제히 바라보았다.
대화의 종착지인 레오 3세는 인상을 쓴 채 아리아드네를 쳐다보았다.
“너는…….”
옆에서 비서관이 속삭였다.
“데 마레 추기경의 차녀이옵니다. 그 왜, 아세레토의 사도 때…….”
“나도 알아.”
레오 3세는 델피아노사 경의 말을 끊었다. 그가 궁금했던 것은 데 마레 추기경의 차녀가 왜 오늘 이곳에 있고, 이 시점에 왜 나서냐는 점이었다.
레오 3세의 좁아진 눈이 아리아드네를 뱀처럼 훑었고, 아리아드네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왕의 심기가 편치 않다. 저것은 어떻게 처벌을 할지 고민하는 눈이다.
하지만 천만 다행히도, 마르케즈 백작 부인이 나서 주었다.
“존경하옵는 레오 3세 폐하. 저 영애가 마르그리트 왕비 폐하께서 물잔을 집으시려는 것을 저지한 장본인입니다.”
공을 세운 당사자라는 이야기에 레오 3세는 조금 누그러졌다. 그는 스스로를 공을 세운 신하를 중하게 쓰는 명군이라고 여겼다.
레오 3세는 아리아드네에게 물었다.
“무슨 할 말이 있지, 데 마레 영애?”
대담한 아리아드네조차도 등골이 오싹했으니, 그녀는 이미 호랑이의 등판에 올라탄 형세다. 이제 와서 내릴 수는 없었다. 좋은 결과를 내야 했다.
그녀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을 꺼냈다.
“하늘 같은 에트루스칸 왕국의 왕궁에서 왕족 시해 시도가 일어났습니다. 정확하게 왕비 폐하만을 노린 독음료가 서빙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왕비 폐하가 대상이었지만, 궁 내에서 이런 시도를 상상이라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는 아무도 안전하지 못할 것입니다!”
레오 3세는 한숨을 내쉬었다. 맞는 말이었다. 자신의 음료에 독이 들어있는 상황은 상상만 해도 불면증을 불러왔다.
“명명백백하게 배후를 밝혀내고, 그 역적의 무리를 일망타진해 감히 아무도 이런 흉악한 짓은 꿈조차도 꾸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가장 먼저 취해야 하는 조치는 이 음료에 들어있었던 독의 종류를 확실하게 밝혀내는 것입니다!”
루비나 백작 부인이 앙칼지게 외쳤다.
“그게 무슨 독이면 아무렴 어때? 왕비 폐하를 독살하려고 든 끔찍한 인간을 잡으면 처형하면 되잖아! 우리 로코의 배를 가를 이유는 뭐람!”
아리아드네는 흔들리지 않고 침착하게 대답했다.
“존경하옵는 루비나 백작 부인, 독의 종류를 정확하게 밝혀내야 특정 독극물을 소지하고 있는 사람이 나타났을 때 그 사람을 배후로 지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뭐라고?”
루비나 백작 부인은 크게 동요한 모습을 보였다.
“이 궁전에 출입이 가능한 자 중 집에 식물독이 있는 사람도, 광물독이 있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수군대기 시작했다.
- “집에 독극물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그렇게 많아요?”
- “그, 글쎄요…….”
- “그냥 다 덮쳐서 잡아가면 되는 거 아닌가? 누가 그런 걸 집에다가 둬요?”
독약을 가지고 있는 소수의 사람들은 말꼬리를 흐리며 뒤로 빠졌고, 꺼릴 것이 없는 사람들은 득의양양하게 떠들었다. 아리아드네는 귀부인들을 흘긋 보며 한마디 덧붙였다.
“대부분의 독은 동시에 약이 되기 때문입니다. 다들 가정에 백리향이나 노루귀는 상비하고 계실 겁니다. 배앓이에 쓰는 약초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흔한 배앓이 약초라도 산사나무 열매와 섞어서 달이면 과용량으로는 사람을 죽일 수 있습니다!”
산사나무 열매는 두통약이었다. 의기양양하던 부인들 중 집에 저 약초들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대번에 입을 다물었다. 저 독이 백리향 같은 흔한 재료로 만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져야 자신들이 집에 갈 수 있다!
아리아드네는 의미심장하게 루비나 백작 부인을 바라보았다.
“부인께서는 저 독이 비소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뭐라고? 내가 왜?”
루비나 백작 부인이 떨리는 입술을 다잡으며 반문했다. 아리아드네는 그녀를 똑바로 노려보며 말했다.
“왜냐하면 부인께선 비소의 일종인 ‘살바르산’을 다량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루비나 백작 부인은 숨을 들이켜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저 계집애가! 그걸 어떻게 알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