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화 루비나 백작 부인의 소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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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화 루비나 백작 부인의 소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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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2화> 루비나 백작 부인의 소행
2022.05.18.
루비나 백작 부인이 살바르산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그녀 본인과 최측근 하녀 한 명을 제외하면 아무도 모르는 사실이었다. 그녀는 절친한 시녀들에게도 그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무, 무슨 헛소리야……!”
하지만 감잡히는 곳이 있던 레오 3세는 침음성을 흘렸다.
“나, 난 그런 흉한 물건 따위 가지고 있지 않아! 어디서 천한 것이 증거도 없이 나에게 이런 중죄를 뒤집어씌우는 것이냐!”
아리아드네는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전생의 루비나 백작 부인은 분명히 살바르산을 가지고 있었다.
전생에서 레오 3세의 시신을 염하고 입관할 때 아리아드네는 알게 되었다. 레오 3세는 매독 환자다. 자연히, 루비나 백작 부인 역시 매독 환자다.
“그렇다면 개의 부검에 반대하지 마십시오! 개의 위장을 갈라 다른 독극물이 나오거나 개에게 원래 질병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면 모두에게 좋은 것 아닙니까!”
“그건……!”
“그만!”
레오 3세의 노성이 오찬장을 가득 메웠다.
“궁의. 저 개의 배를 갈라 봐라.”
“폐하!”
루비나 백작 부인의 자지러지는 비명이 천장을 찔렀다. 레오 3세는 한숨을 내쉬고는 루비나를 달랬다.
“이봐, 임자. 개를 조사해서 독극물이 아니라고 나오면 모두가 좋잖아?”
“로코가……. 로코가 온전하게 윤회를 못 하잖아요!”
레오 3세는 마르그리트 왕비가 이랬다면 대번에 발칵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끈기 있게 루비나 백작 부인을 달랬다.
“윤회를 왜 못 해, 배에만 칼 좀 대는 거야. 그러면 전쟁에서 죽은 군사들은 죄다 윤회 못 하게?”
“하지만 폐하…….”
“다음 생에 위장장애 좀 있는 사람으로 태어날 거야. 그러지 말고 개를 건네줘.”
“그렇지만…….”
“루비나!”
인내심이 바닥난 레오 3세가 버럭 목소리를 높였다. 루비나 백작 부인은 찔끔해서 입을 다물었다.
‘비소가 아니어야 할 텐데…….’
선택권이 없어진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죽은 로코를 대표 궁의에게 내밀었다. 궁의는 조심스럽게 개의 사체를 받고 의료용 칼을 들었다.
그는 레오 3세의 눈치를 살피며 흰 대리석 바닥 위에 눕힌 개의 위장을 절개했다. 왜인지 최소절개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조금의 틈을 만든 후 그것을 스펙큘럼으로 벌려 본 궁의는 위장의 틈을 닫았다.
“결과는?”
레오 3세가 궁의에게 물었다. 대표 궁의는 위장의 틈을 다시 살짝 벌려 레오 3세에게 보여주었다.
“이것은…….”
좁게 들여다본 위장 안은 선혈이 가득 터져 선홍색으로 새빨갰다.
“엄청난 양의 내출혈입니다.”
그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마무리했다.
“비소가 맞습니다.”
작은 목소리였지만 그 파장은 엄청났다.
- “비소? 비소가 맞아요? 그러면 정말로 왕비 폐하 시해 사건이에요?”
- “부인할 수 없게 됐어요…….”
- “왕궁이 뒤집어지겠네요.”
- “루비나 백작 부인이 비소를 가지고 있다는 건 사실이에요?”
- “저 아가씨는 그걸 어떻게 알았죠?”
사람들의 속삭임에도 불구하고 레오 3세는 가라앉은 표정으로 미동도 하지 않고 자리에 서 있었다. 한참을 그대로 서 있던 레오 3세는 무거운 목소리로 루비나 백작 부인을 불렀다.
“루비나.”
백작 부인은 커다래진 눈동자로 국왕을 올려다보았다.
“정말……. 자네가 한 짓인가?”
그녀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새된 목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아니에요 폐하! 어찌 이 루비나를 의심하십니까!”
옆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서 있던 근위대장이 살며시 물었다.
“폐하……. 조사를…… 할까요?”
“……음.”
레오 3세의 허락이 떨어지자 근위대장은 근위대에게 지시했고, 일군의 군사들이 궁의 한 명을 대동한 채 바람같이 오찬장을 떠났다.
오찬장의 분위기는 참말이지 어수선했다. 다들 목소리를 있는 대로 죽인 상태에서 서로 속삭였다.
- “지금 폐하께서 무슨 지시를 하신 거죠.”
- “루비나 백작 부인의 처소를 수색하라고 보내신 거 아닐까요. 궁의가 같이 간 걸 보니 독극물이 나오면 알아보라고 보낸 것 같은데요.”
- “어머 세상에…….”
루비나 백작 부인은 고개를 숙인 채 바들바들 떨고만 있었다.
- “얼마나 수치스러울까……. 아무것도 나오지 않더라도 남자들이 내밀한 물건까지 다 뒤지는 것 아니에요.”
- “처소를 뒤지는 게 귀족도 기사도 아니야. 그냥 병사야. 세상에.”
- “아무것도 안 나오더라도 이건 정말 명예에 치명타야.”
- “근데, 비소가 정말로 나오면 어떻게 돼요?”
- “어떻게 되긴. 바로 정치범 돼서 지하 감옥행이지. 제아무리 정부가 사랑스럽고 왕비 폐하와 사이가 좋지 않으시다고 하더라도 이런 걸 어떻게 봐줍니까?”
- “사실 루비나 백작 부인도 예전 같지는 않아요. 정으로 사는 느낌?”
- “끗발 많이 떨어졌죠.”
마르그리트 왕비는 이 모든 상황 한가운데서 한마디도 하지 않고 꼿꼿하게 버티고 서 있었다.
국왕 부처는 서로 한 마디도 건네지 않았다. 레오 3세는 복잡한 얼굴로 근위대장과만 이야기를 나눴고 마르그리트 왕비는 아리아드네와 카를라 부인을 각기 옆에 세운 채 서로 방의 양쪽 끝에서 대치했다.
하지만 이 침묵은 길게 가지 않았다.
“국왕 폐하!”
근위대가 돌아와 단체로 인사를 올렸다. 그중 조사 책임을 맡고 있던 자가 대표로 보고를 했다.
“루비나 백작 부인의 처소에서……. 비소가 발견되었습니다.”
- “헉!”
좌중의 사람들은 다들 자기 귀를 의심했다. 루비나 백작 부인 본인조차도 파리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숙인 채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하지만 레오 3세는 크게 놀란 기색이 아니었다.
근위대원은 품속에서 도자기 병 두 개를 꺼내 국왕 앞에 진상했다. 하나는 비취 장식이 된 푸른 병, 다른 하나는 큰 뚜껑이 달린 하얀 병이었다.
“궁의의 반응검사 결과에 따르면 농도와 배합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둘 다 비소라고 합니다.”
이제 사람들은 레오 3세와 루비나 백작 부인만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무겁게 다물려 있던 레오 3세의 입술이 드디어 열렸다.
“……루비나. 네 죄를 인정하느냐?”
사형 선고 같은 한마디였다. 하지만 루비나 백작 부인은 판결을 순순히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다.
“아닙니다 폐하!”
그녀는 레오 3세 앞에 몸을 던져 무릎을 꿇었다.
“저 비소는……. 저 비소는 그런 용도가 아닌 걸 아시잖아요! 저는 무고합니다! 왕비 폐하를 해칠 리가 없잖아요!”
그녀는 임금을 올려다보며 절절하게 애원했다.
“폐하만큼은 절 믿어주셔야 합니다. 정말로, 정말로 제가 한 짓이 아닙니다!”
이때 분노한 목소리 하나가 끼어들었다. 마르케즈 백작 부인이었다.
“지금 루비나 백작 부인의 처소에서 비소가 나왔습니다. 왕비 폐하의 음료수에서 비소가 나왔고요! 얄팍한 동정심 따위에 호소하려고 하지 마세요!”
마르케즈 백작 부인은 고개를 돌려 레오 3세에게 읍소했다. 그에게도 화를 내고 싶은 마음을 꾹 참은 채였다.
“폐하, 마르그리트 왕비 폐하께서는 덕이 높고 신중해 궁 내외에 적이라고는 없으신 분입니다! 이 팔라지오 카를로 전체에서 마르그리트 왕비 폐하를 음해하려고 시도할만한 사람이 솔직히 루비나 백작 부인 외에 누가 있겠습니까?”
이 지적은 몹시 타당했다. 마르케즈 백작 부인이 포문을 열자, 오찬장 내의 나머지 귀부인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의 의사를 표시했다.
- “사실 왕비 폐하께서 누구랑 척 진 게 없으시잖아요?”
- “공명정대해, 너그러워, 왕비 폐하와 사이가 안 좋은 사람은 솔직히 국왕 폐하와 루비나 백작 부인뿐이에요.”
- “궁에 있는 사람이 뭣 하러 비소 같은 걸 처소에 두고 있어요? 비소는 정말로 암살 목적 아닌가?”
분위기가 이렇게 흘러가자 레오 3세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루비나야. 나야 자네를 믿네. 하지만 이 사건은 조사가 필요해.”
“!”
“나로서도 어쩔 수가 없어. 근위대장!”
“예, 폐하!”
“루비나를 서쪽 탑에 연금해 두어라!”
서쪽 탑은 왕족이나 고위 귀족이 죄를 지었을 때 가두어두는 장소로, 전생의 아리아드네가 인생 최후의 날 갇혀 있었던 바로 그 장소였다. 지하 감옥보다는 시설이 훨씬 좋았지만, 가둬두는 곳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아니야!”
루비나 백작 부인의 찢어지는 고함이 오찬장을 찔렀다.
“내 처소에서 나온 물건은 비소가 아니라 살바르산이라고!”
몇몇 사람들은 바로 알아들었지만 절반 정도의 귀부인들은 그게 무슨 이야기인지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살바르산은 비소를 특정 온도에서 가열하고 기화해 만든 비소 화합물로, 매독 치료에 쓰였다. 매독은 걸린 후에 전신 발진이 한번 화르륵 난 다음에 운이 나쁘면 3년, 운이 좋으면 30년 가량 이후 눈이나 뇌에 침범해 눈이 멀고 미쳐버리는 고약한 종류의 성병이었다.
사람들은 첫 발진이 나타난 이후로는 시한부 선고를 받는 것처럼 매일매일을 조마조마해하며 살았고, 일반 사람들 사이에서는 쾌락에 대한 신의 징벌이라고 여겨져 매독 환자에 대한 도덕적 낙인이 끔찍하게 심했다.
매독이 맹위를 떨칠 때마다 각 왕국은 주기적으로 매독 환자를 도시에서 추방했고 매음굴을 불태웠다. 매독에 걸린 것이 알려지면 사교계에서는 매장이나 다름없었다.
매독은 일상적인 접촉으로 옮는 병은 아니었지만 매독 환자와는 그 누구도 함께 식사도, 다과도 하지 않으려 들었다.
이 상황을 그나마 타개해 준 것이 살바르산이었다.
극히 희귀한 중앙 대륙 연금술의 성취로, 첫 전신 발진이 나타난 후에 살바르산을 병변에 꾸준히 바르면 2차 발병이 일어나는 것을 뒤로 미뤄 주었고, 제 3자에게 감염시키는 것도 상당 부분 억제시켜 주었다.
하지만 그것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내재되어 있는 혐오까지 중화시켜 주는 것은 아니었다.
- “루비나 백작 부인한테 살바르산이 왜 있어……?”
- “살바르산이 뭔가요, 후작 부인?”
- “그 왜, ‘몽펠리에 병’ 치료약이요.”
- “세상에!”
매독은 에트루스칸에서는 ‘몽펠리에 병’, 갈리코 왕국에서는 ‘산 카를로 병’이라고 불렸다.
- “루비나 백작 부인이 살바르산이 필요하면 혹시…….”
- “그게 어디서 옮았겠어요.”
- “국왕 폐하도……?”
이 뉘앙스를 감지 못할 레오 3세가 아니었다. 그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지고 목덜미에 핏대마저 세우며 외쳤다.
“근위대장!”
“예!”
“당장 저 계집을 지하 감옥에 집어넣어!”
“존명!”
루비나 백작 부인의 자지러지는 저항이 오찬장 안을 가득 채웠다.
“폐하! 이러실 수는 없습니다! 폐하께서는 제가 왕비 폐하께 하독할 목적으로 이 물건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십니다!”
전생과 똑같이 흘러가고 있었다. 전생의 루비나 백작 부인은 이것보다 훨씬 직설적으로 “국왕 폐하께서야 말로 매독쟁이시잖아요!”라는 명언을 남기고 바로 다음 주에 사형당했다.
이번에는 그나마 품위 있는 퇴장 중이었다. 다만 그게 레오 3세에게 와 닿았을지는 불분명했다. 빙 돌려 말하기는 했지만 레오 3세가 바로 수감 장소를 서쪽 탑에서 지하 감옥으로 바꾼 것을 보니 전생과 비교해도 만만치 않게 화가 난 것은 확실해 보였다.
‘됐어, 이대로라면 루비나 백작 부인은 그대로 퇴장이고, 왕비 폐하께서는 무사하실 거야.’
하지만 인생에서 쉽게 풀리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정의감을 이기지 못한 신입 보조 궁의가, 대표 궁의가 말릴 새도 없이 손을 들고 폭탄 발언을 해 버린 것이다.
“영명하신 국왕 폐하, 루비나 백작 부인의 말이 꼭 틀린 것만은 아닙니다.”
“뭐라고?”
국왕의 노호에도 보조 궁의는 꿋꿋하게 전문가로서의 식견을 밝혔다.
“살바르산은 순수한 비소가 아니라 비소를 2차 가공한 화합물이기 때문에 그 독성이 많이 떨어집니다. 살바르산으로도 미량으로 계속 먹여서 자연스럽게 사람을 독살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오나 살바르산으로는 오늘 애완견이 사망한 건처럼 일시에 즉사하게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레오 3세는 울그락붉으락 하며 몸을 떨었다. 당장이라도 저 깜찍한 정부를 지하 감옥에 처박고 싶었는데, 정부가 암살범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증거가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 그때 근위대원 하나가 오찬장 바깥에서 근위대장에게 귓속말을 했고, 그 이야기를 들은 근위대장은 조용히 레오 3세에게 보고했다.
“국왕 폐하, 루비나 백작 부인의 하녀가 올릴 말씀이 있다고 합니다.”
“제 주인의 구명이라면 집어치우라고 해!”
“그런 쪽이 아니라……. 증언을 할 것이 있다고 합니다.”
레오 3세는 곧바로 하녀의 입장을 허락했다. 지금 화가 머리끝까지 난 그는 루비나를 정정당당하게 지하 감옥에 처박을 수 있는 사안이라면 무엇이든 귀 기울여 들을 의사가 있었다.
근위대원의 뒤를 따라 쭈뼛쭈뼛 들어온 하녀는 루비나의 곁에서 최근 2~3년가량을 일한, 나름 신입 축에 속하는 하녀였다. 그녀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예를 취했다.
“고하라.”
레오 3세의 거두절미한 명령에, 하녀는 사시나무 흔들리듯이 떨리는 몸에도 불구하고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이야기를 올렸다.
“에트루스칸의 태양이신 레오 3세 국왕 폐하. 이제야 국왕 폐하께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을 죄스럽게 여깁니다. 진작에 국가와 나라를 위해 고했어야 하는 일입니다.”
“자세히 말하라!”
“루비나 백작 부인께서는 아주 오래전부터 마르그리트 왕비 폐하를 독살하고 싶어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