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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화 마르그리트 왕비 독살 사건의 완성 (155/733)


<제155화> 마르그리트 왕비 독살 사건의 완성
2022.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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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그리트 왕비를 위험에 내몬 건 내가 아니라 그쪽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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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

 
스트로치의 적반하장에 카를라 부인은 손끝을 바들바들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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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어떤 신하가 주군과 상의 없이 독단적으로 자기 정치를 펼쳐? 정적을 제거하겠다고 주군에게 독을 먹여? 미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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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 입 닥쳐!”

 
사실 카를라 부인도 어렴풋하게 두려워하고 있던 내용이었다. 그걸 타인의 입에서 듣다니, 그것도 공모자의 입에서 듣다니 정말 귀를 막아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카를라 부인도 할 말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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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넌 뭐야! 갈리코 왕국에서 쫓겨나서 에트루스칸에서 재정착하는 걸 돌봐주신 마르그리트 왕비 폐하를 보위하지는 못할망정 독약을 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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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내가 잘했대? 난 그저 나만큼이나 당신도 똑같이 쓰레기라는 걸 지적하고 싶은 거야, 레이디 디외도네.”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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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있었잖아, 내 배후에는 팔레르 드 몽펠리에가 있을 거라는 거. 당신도 잘 보이고 싶었잖아, 우리의 새로운 국왕 폐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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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 더러운 입 닥쳐!”

 
카를라 부인도 솔직히 부인하지 못했다. 필리프 4세의 은혜를 바라서 선을 넘으면서까지 라리에사 대공녀의 편의를 보아 주었다. 먼 이국땅에서 만난 어린 동포라는 이유라고 스스로에게도 둘러댔으나 마음속 깊은 곳을 들여다보면 결국 모두 변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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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트론 물에 타는 가루가 뭔지, 당신도 어렴풋이 감은 잡고 있었잖아. 안 그래?”

 
카를라 부인은 3년 전부터 스트로치에게서 좋은 향기가 나는 가루를 받아 마르그리트 왕비의 시트론 물에 타서 올리고 있었다. 스트로치는 그것이 무어 제국에서 나는 바닐라콩에 아세레토 산 포멜로를 섞어서 볶은 귀한 향신료라고 했다.

하지만 그 향신료 가루를 장복한 뒤로 마르그리트 왕비는 자주 아팠고, 추위를 몹시 탔으며, 사소한 코피나 잇몸 출혈 따위가 났다.

하지만 카를라 부인은 그 향신료 가루를 마르그리트 왕비에게 올리는 것을 그만둘 수 없었다. 스트로치가 이는 ‘고국에 계신 귀한 분’께서 마르그리트 왕비에게 보내는 호의의 표시이며, 때가 되면 왕비님께 본인이 고모를 잊지 않았음을 알리는 증표로 사용할 것이라고 전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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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솔직히 찔리는 일이 있으니까 날 밀고하지 못하고 입 다물고 있었던 거잖아.”

 
처음에는 정치적으로 곤란에 빠져버린 자신의 주군과 갈리코 왕국의 새로운 국왕과의 사이에 가교가 된다는 생각으로 기쁘게 협조했다. 왕비 폐하가 친정과의 사이가 나아진다면 마르그리트 왕비가 팔라지오 카를로에서 겪는 수모도 본국의 영향력으로 제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기다리던 필리프 4세의 연락은 언제나 다음을 기약했고, 왕비의 건강상태가 눈에 띄게 나빠져 이제는 그만둬야 하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게 된 다음에도 실낱같은 희망이, 아니 욕심이 그녀의 발목을 잡았다.

르사르트 요새에 갇힌 디외도네 노백작부인과 디외도네 소후작. 나이 드신 어머니와 집안 남자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막냇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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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그래? 발 빼긴 지나치게 멀리 오신, 친애하는 레이디 디외도네.”

 
이죽거리는 스트로치의 목소리가 상념에 잠긴 카를라 부인을 현실로 끌고 돌아왔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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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이 이렇게 된 바에야 과실은 따야 할 것 아니야! 널 국왕 폐하께 넘기면 루비나가 감옥에서 의기양양하게 제 두 발로 걸어 나올 테니까!”

 
그녀는 결코 자신의 욕심을, 과욕을, 월권을 눈앞의 쓰레기가 보는 앞에서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중년남은 빈정거리며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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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결국 당신이나 나나 똑같다니까.”

 
카를라 부인은 결국 공권력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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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 꺼져! 내가 근위대를 부르기 전에!”

 
남자는 느물느물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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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추수도 못 끝냈는데 벌써 갈 수는 없지. 인간 도구가 영 시원치 않아서 말이야. 마무리를 내가 해야 하겠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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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무슨 말…….”

 
말귀를 못 알아먹고 반문하던 카를라 부인의 동공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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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컥…….”

 
화끈한 작열감이 카를라 부인을 덮쳤다. 그녀의 복부에 손바닥만 한 단검이 꽂혀 있었다. 남자가 찔러 넣은 것이었다. 그는 천천히 손목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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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헉…….”

 
숨이 끊어져 가는 카를라 부인의 귀에다 대고 ‘스트로치 씨’는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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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그릇을 챙기려면 제대로 챙겼어야지. 충성도 배신도 아니고 이도 저도 아닌 짓거리를 하며 가는 줄을 타기에는 당신은 너무 멍청해.”

 
그는 정확하고 섬세하게 단도를 다뤘다. 이 일이 아주 익숙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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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그쪽도 공을 세워서 가족들을 구명하고 싶었으니까 협조한 거 아냐. 순진해 빠져서는, 공은 그렇게 세우는 게 아니야. 당신이 무슨 거물도 아니고, 박쥐처럼 중간에서 눈치만 보면 콩고물 안 떨어져.”

 
그는 카를라 부인의 복부에서 단도를 잡아 뺐다. 따끈한 피가 함께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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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위대하신 필리프 4세 폐하의 영명하심으로 복권되어 우리 땅으로 돌아갈 거야. 당신도 조금만 더 영리했었으면 같이 갈 수 있었을 텐데. 쯧쯔.”

 
남자는 아직 따듯한 카를라 부인의 몸뚱어리를 사무실 책상 의자에 잘 앉힌 후, 책을 높이 쌓아 밖에서 언뜻 들여다보았을 때 사람의 모습을 잘 확인할 수 없도록 했다. 누가 문을 열고 보더라도 책에 몰두한 사람인지, 숨이 멎은 시체인지 가늠하기 어려울 만한 형상이었다.

그 뒤에 그는 슬쩍 문을 열어 복도를 살폈다. 근위병이 아무리 자주 순찰을 돌아보았자 순찰 사이에는 어쩔 수 없이 텀이 있었고, 지금은 마침 하녀들이나 시종들 역시 보이지 않았다.

그는 슬쩍 복도를 건너 카를라 부인이 사용하던, 수석 시녀의 대기실로 쓱 몸을 옮겼다. 거기에서 커튼 하나만 걷으면 왕비가 잠들어 있는 왕비의 내실이었다.

그는 품속에 들은 유리병을 꺼냈다. 왕비의 최후는 지시받은 방식으로 끝내야 했다. 예감이 좋았다.

* * *

「마르그리트 왕비 승하. 연락을 받은 자들은 즉시 팔라지오 카를로로 등청할 것. 기밀.」

아리아드네는 자기의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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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안 돼…….”

왕궁에서 데 마레 추기경에게 보낸 짤막한 편지를 아버지와 함께 본 아리아드네는 눈을 비비고 다시금 양피지 조각을 들여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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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자세한 사항은, 자세한 사항은 나왔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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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시피, 나도 이게 받은 전부다.”

데 마레 추기경에게 편지를 보낸 사람은 왕궁의 내정 담당인 발데사르 후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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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쯤 되면 좀 더 자세한 이야기들이 나올 거야. 난 왕궁에 들어가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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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저도 데리고 가 주세요.”

아리아드네는 간절했다. 도대체 어디서, 무엇이 어긋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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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라.”

하지만 데 마레 추기경은 차갑게 딸의 요청을 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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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낄 자리가 아니야. 앞뒤 사정을 알아보고 올 테니, 집에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라.”

그는 추기경의 붉은 모자를 단정하게 쓰고 가문의 은마차를 불러 바로 팔라지오 카를로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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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데 마레 추기경에게는 차갑게 거절당했지만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아리아드네는 편지지와 펜을 들었다. 그녀가 제일 먼저 편지를 보낼까 생각했던 사람은 알폰소 왕자였다. 하지만 절로 손이 멈춰졌다.

지금 받은 뉴스가 사실이라면 알폰소는 모친상을 당한 셈이다. 확실해지기 전까지는—아리아드네는 아직 마르그리트 왕비의 사망을 완전히 믿고 있지 않았다—위로를 하기도 조심스러웠고, 그렇다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마당에 자초지종을 캐기도 거리껴졌다.

대신 그녀가 편지를 쓴 상대는 줄리아 데 발데사르였다. 왕궁의 내무 담당 대신인 그녀의 아버지로부터 무언가 들은 것이 있을까 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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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발데사르 후작가로 지금 당장 달려가 전해라.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답장을 주실 때까지 기다렸다가 바로 답을 가져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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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아가씨.”

우편물 담당 하인이 편지를 받아들고 발 빠르게 저택을 빠져나갔고, 아리아드네는 이마를 짚었다. 골이 빠개질 것 같았지만 매일 돌아봐야 하는 잡무들은 없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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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 준비되셨어요?”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파악하고 조심스럽게 묻는 산차에게 아리아드네는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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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일은 해야지. 가자.”

아리아드네가 그녀의 서재를 나와 아래층으로 내려가자마자 제일 보기 싫은 위인과 딱 마주쳤다. 모처럼 나와서 같이 간식을 먹고 있던 이사벨라와 이폴리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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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비 폐하의 목숨을 구해서 출세했다 싶었더니.”

얼굴을 마주치자마자 이사벨라가 이죽거렸다. 이럴 때만 죽이 착착 맞는지 그 앞에서 튀긴 미트볼을 주워 먹고 있던 이폴리토가 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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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천하네 삼일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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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여동생님께서는 어쩜 저리 썩은 동아줄만 잘 골라잡으시는 재주가 있을까?”

깔깔 웃는 이사벨라를 보며 아리아드네는 신발이라도 벗어 던지고 싶은 기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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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조심해, 이사벨라 데 마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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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이번에는 뭐로 협박할 거야? 왕궁에 이르게? 왕궁에 누구? 네 뒷배인 왕비 폐하께서는 이미 돌아가신 것 같은데!”

아리아드네는 이를 악물고 홱 돌았다. 상대할 가치도 없었다.

하지만 이사벨라는 끈덕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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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버니, 아버지가 완전히 냉정하게 쟤 두고 나가신 거 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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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에는 서재에도 들어갔다고 해서 신분 상승한 줄 알았더니 오늘 보니 다시 구박데기네?”

이럴 때만 우애가 좋은 두 마리였다. 까득, 이를 간 아리아드네는 산차에게 말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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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차. 왕비 폐하께서 돌아가신 것이 틀림없다면 조의를 표해야겠다. 정식으로 부고가 난 후로는 일주일간은 부엌에서 기름에 튀긴 음식과 고기를 내지 말고, 한 달 동안 아버지를 제외한 식솔들의 용돈을 절반으로 깎아라. 깎은 용돈은 랑부예 구휼원에 기부하겠다.”

튀긴 미트볼을 우적우적 씹고 있던 이폴리토의 목에 고기가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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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컥! 컥!”

고생하는 이폴리토를 깨끗이 무시한 채, 함께 부글부글 끓고 있던 산차가 냉큼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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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겠습니다, 아가씨!”

용돈을 반으로 깎는다는 소리에 화들짝 놀란 이사벨라가 소리를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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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누구 맘대로!”

아리아드네는 차갑게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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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만이면 아버지께 항의해 보던가. 용돈 깎이기 싫으면 왕비 폐하께서 살아 계시도록 기도나 하시지.”

끔찍한 두 인간을 뒤로하고 창고 순방을 마친 아리아드네가 서재로 향하던 길에, 아침에 발데사르 가로 보냈던 우편물 수발 하인이 그녀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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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 분부하신 발데사르 가의 답장입니다요.”

아리아드네는 황급히 편지를 낚아챘다. 서재로 쏙 들어간 그녀는 자리에 앉을 겨를도 없이 바로 봉투를 열어보았다.

「친애하는 아리아드네.」

여기까지 읽은 아리아드네는 미간을 찌푸렸다. 줄리아의 필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쓱 편지 뒷부분부터 훑어보자 필기체의 서명이 보였다.

「라파엘 데 발데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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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에게 보낸 편지가 아니었는데 왜……?’

하지만 이 시국에 크게 중요한 부분은 아니었다. 그녀는 편지의 내용에 집중했다.

「아버지께서는 어제저녁 급하게 등청하신 이후 아직까지도 귀가하지 못하셨습니다. 가족들도 자세한 사항은 알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다만 마르그리트 왕비 폐하께서 돌아가신 것은 확실하고, 사인은 독살로 보이며, 범인일 가능성이 높은 자가 있어 왕궁에서 추적 중이라고 합니다.

뭔가 더 알게 되면 편지 드리겠습니다. 충격이 크실 텐데, 그때까지 보중하십시오.

라파엘 데 발데사르 드림.」

마르그리트 왕비의 사망이 확실하다니. 그 소식에 아리아드네는 온몸에 기운이 쭉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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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도대체 어디서 뭘 놓친 거지?’

압도적인 무력감에 이 막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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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정녕 바꿀 수 없는 것인가?’

그런 그녀의 귓가에 바람이 부는 것처럼 휙, 속삭임이 들어와 꽂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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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생 없이 역사를 바꾸려고 했어? 어리석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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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리아드네는 고개를 번쩍 들어 허공을 바라보았지만 당연하게도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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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사람으로 남기 위해 뒷전에 빠져서 네가 뭘 할 수 있을 것 같아? 손에 피를 묻힐 각오 정도는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아리아드네는 마르그리트 왕비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자기의 손에 피를 묻힐 각오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누구의 피를 묻히라는 소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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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디서 뭘 하면 되지? 나한테 시키고 싶은 일이 있으면 말해!”

그녀는 격앙된 목소리로 외쳤지만 부질없는 메아리였다. 방 안에는 스산한 공기만 맴돌았고, 아무 대답도 없었다.

아무도 없는 허공을 노려보던 아리아드네는 치밀어오르는 구토감에 구역질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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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욱!”

위장에서 신맛이 목구멍으로 치밀어올랐다. 알폰소 덕에 전보다 식사를 챙겨 먹게 된 이후로는 말끔하게 그쳤던 헛구역질이었다.

그녀는 세수용 놋대야에 한참이나 토했다. 위액까지 다 게워내고 나니 조금 속과 마음이 편해졌다. 바닥에 놓인 대야 옆 카펫 위에 널브러져 버린 아리아드네의 눈에 눈물 한줄기가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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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그리트 왕비 폐하…….’

 

* * *

체자레 백작은 다시 한번 왕궁의 지하 감옥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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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자레!”

저번보다 확실히 꼬질꼬질해진 몰골의 루비나 백작 부인은 반색하며 아들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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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좋은 소식이 있는 거야? 국왕 폐하께서 나를 꺼내 주신대?”

체자레는 왕궁에서 준비하고 있는 공문을 거칠게 바닥에 내던졌다. 루비나 백작 부인은 창살 사이에서 더듬더듬 손을 뻗어 그 종이를 집어 들어 내용을 읽었다.

「마르그리트 왕비 폐하, 승하.

장례는 국장(國葬)으로 치러지며 21일의 애도 기간 후 산 에르콜레 대성황당에서 추모 미사를 올리고 별도의 장례식을 거행할 예정.」

양피지의 내용을 확인한 루비나 백작 부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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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건……. 이 무슨…….”

루비나 백작 부인의 표정을 확인한 체자레가 씹듯이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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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한 짓,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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