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0화 폭발 (160/733)


<제160화> 폭발
2022.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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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아바마마? 갈리코 왕국에를요?”

마르그리트 왕비 승하 이후 처음으로 자신을 부른 아버지다. 알폰소는 레오 3세가 적어도 ‘마음고생 했지’라던가, ‘네가 어미의 장례식을 주관하느라 애 많이 쓴다’ 같은 이야기는 할 줄 알았다.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이야기에 알폰소 왕자는 적지 않게 놀랐다. 이는 레오 3세가 감정적으로 이상하게 나와서 뿐만이 아니었다.

왕위계승권이 있는 왕족은 정복 전쟁이 아니라면 국경을 넘지 않는다. 왕가의 방계인 라리에사 대공녀가 갈리코 왕국을 떠나 에트루스칸 왕국에 방문한 것도 파격이었다. 그런데 유일한 왕위계승권자가? 그것도 하필이면 양국이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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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네가 에트루스칸 왕국 대표로 가서 협상을 좀 해 줘야겠어.”

레오 3세는 손짓으로 주변에 있던 신하들을 물렸다. 발데사르 후작, 마르케즈 백작, 콘타리니 백작을 위시한 레서 큐리아 레지스의 멤버들과 시종들까지 모두 국왕의 눈치를 보며 방에서 썰물 빠지듯 빠져나갔다.

국왕의 거대한 알현실 안에는 왕좌에 앉은 레오 3세와, 그 앞에 공손히 선 알폰소 왕자 단둘만 남았다. 알폰소는 찌푸려지려는 인상을 가다듬으며 아버지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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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 협상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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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일종의 그런 것이지.”

차마 아들에게 ‘네 결혼 동맹 협상을 네 손으로 마무리 짓고 오라’고 말하지 못한 레오 3세는 말꼬리를 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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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의 조건이 어떻게 됩니까? 상대방이 무단으로 우리 영토 안에 군대를 진군시켰으니 배상금은 받아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들의 강경한 입장을 들어보건대, 둘은 동상이몽 중인 것 같았다. 아들이 갈리코에 가서 판을 엎어버리는 것을 막으려면 아무래도 약간의 설명은 더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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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그런 게 아니야! 어리석긴.”

아들을 윽박질러 일단 기세를 선점해놓은 레오 3세는 목소리를 낮추어 은근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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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협과 협동을 할 수 있으면 그 길로 가야지. 갈리코 왕국에서 혼인 동맹 이야기를 다시 꺼내왔다. 이번에는 조건도 저번보다 나아. 혼인 성사 시에는 무조건 화학의 배합식이 따라오기로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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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마마!”

레오 3세의 허무맹랑한 말에 알폰소는 저도 모르게 언성을 높였다.

하지만 아들이 고분고분하지 않다는 사실에 이미 기분이 상한 레오 3세는 알폰소를 노려보았다. 알폰소는 아랑곳하지 않고 레오 3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아닌 건 아닌 것이고 그른 건 그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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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마마. 전 이 일은 일단락된 일인 줄 알았습니다. 라리에사 대공녀가 에트루스칸을 떠난 것은 그녀가 저지른 일에 대한 책임을 진 것이고, 혼인 동맹은 결렬인 것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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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책임?”

레오 3세는 짐짓 모르는 척 반문했다. 그간 마르그리트 왕비로 인해 레오 3세와의 직접적인 의사소통이 막혀 있던 알폰소 왕자는 순간 당황했다. 라리에사 대공녀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아버지는 모르신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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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고 순진한 녀석 같으니.’

레오 3세는 당황하는 아들을 보며 속으로 몰래 만족감을 느꼈다. 아들은 아직 어리고, 아직 자기 손아귀 안에 있다.

레오 3세가 라리에사 대공녀에 대해 전혀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생전의 마르그리트 왕비가 사실대로 그에게 ‘라리에사 대공녀가 데 마레 영애를 죽이라고 지시했고, 그 지시를 수행하던 미레이유 공작을 데 마레 영애를 지키려던 알폰소가 죽인 것’이라고 정확하게 고하지는 않았지만, 그도 왕위를 30여 년 가깝게 지킨 노련한 군주다.

알폰소가 미레이유 공작을 죽였다는 광대의 증언을 들었을 때 이미 그가 모르는 모종의 내막이 있음을 직감했고, 라리에사 대공녀가 방에서 두문불출하며 자리를 보전하다가 본국의 명령으로 허겁지겁 귀국했을 때 그것이 라리에사 대공녀와 관련이 있을 거라는 사실을 눈치챘다.

하지만 레오 3세는 모르는 척할 작정이었다. 그의 목적, 즉 아들을 갈리코 왕국으로 보내 화학의 배합식을 받아 오는 것에 배치되기 때문이다.

레오 3세는 짐짓 인자하게 말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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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네 외가 쪽 친척들을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지. 네 어머니가 승하해 다들 수심이 가득할 터인데 네 어미를 꼭 닮은 네가 가서 위로해준다면 얼마나 마음들이 풀리겠니!”

터무니없는 이야기였다. 왕비가 죽었는데 오려면 왕비의 친척들이 조문을 와야지 상주더러 해외로 가서 친척들 위문을 하라니, 지나가던 개가 콧김을 뿜을 소리였다. 하지만 레오 3세는 굴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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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라리에사 대공녀가 좀 사회성이 떨어지기는 해도 나쁜 아이는 아닌 것 같더라. 가서 이번에는 잘 좀 해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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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마마.”

드디어 알폰소 왕자의 단정한 미간에 주름이 졌다. 레오 3세는 아들의 기색을 모르는 척하고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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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시 라리에사 대공녀가 미모가 떨어지니 네가 그러는 게지. 아내감은 외모로 고르는 게 아니야, 이 철없는 녀석.”

알폰소는 인상을 찡그리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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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왕, 제가 라리에사 대공녀를 바라지 않는 것은 그녀의 외모 때문이 아닙니다. 그녀가 부덕한 것도 사실 가장 큰 이유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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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가 미인을 바라는 건 흠이 아니야. 인정해도 괜찮다, 아비 앞인데 뭐가 그리 부끄러워.”

아직 사태 파악을 하지 못하고 홀홀 웃는 레오 3세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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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어머니도 미인은 아니었지만 너를 얼마나 잘 길렀느냐. 여자는 예쁠 필요 없어. 다소곳하고 음전해야지. 혼수로 가져오는 게 많으면 더 좋고. 가에타 영지나 화학의 배합식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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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마마!”

아직 채 매장도 되지 않은 마르그리트 왕비의 언급에 알폰소는 참지 못하고 언성을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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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께서 돌아가신 지 아직 21일도 채 지나지 않았습니다! 아직 채 매장도 끝나지 않았단 말입니다!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시고 어찌 벌써 혼사를 논한단 말입니까!”

자신을 질타하는 듯한 알폰소의 언사에 레오 3세의 얼굴에 피가 몰렸다. 그는 부끄러움을 덮기 위해 되려 목소리를 높여 호통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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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여전히 생각이 짧아!”

레오 3세의 목에 핏대가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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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는 만민의 도리이지만 왕가는 효 그 이상을 추구해야 한다는 사실을 어찌 모르느냐! 어미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은 다 국익에 도움이 된 다음의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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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마마!”

알폰소는 전혀 물러서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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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를 바로 세우는 것도 나라를 위한 일입니다!”

왕자는 무언가 단단히 잘못 생각하고 있는 듯한 부왕에게 단 한 마디도 굽혀줄 생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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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에트루스칸 왕국의 왕비, 제 모친께서 돌아가셨습니다. 그 흉수는 아직 잡히지 않았고 거리를 활보하고 있습니다!”

알폰소의 이마에도 핏대가 섰고 언성이 높아졌다. 그는 거칠게 부왕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마르그리트 왕비에 의해 단정하게 정돈된 알폰소의 모습만 보아왔던 레오 3세로서는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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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모친을 시해한 자는 외국인이고, 아직 갈리코 왕국을 비롯한 그 어떠한 타국도 용의 선상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민감한 시기에 흉수일 수도 있는 나라로, 그렇지 않더라도 자신들이 보낸 공주가 승하한 시기에 애도는커녕 국경에 군대를 보내는 나라로, 그것도 왕위계승권자가 직접 가라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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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 녀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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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마마께옵서 화학의 배합식 때문에 갈리코와의 혼사를 물리기 어려워하시는 것은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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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녀석이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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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향이 잘못됐기 때문입니다!”

레오 3세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그는 정말로 분노한 것 같았다.

아버지의 기색을 살핀 알폰소 왕자는 자기가 너무했다 싶었는지 목소리를 누그러뜨리고 부드럽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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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마마께서 중앙군을 키우고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려 애쓰시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레오 3세가 드디어, 이 녀석이 말이 통하나보다 하는 표정으로 알폰소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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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오나 자강은 내부에서 이루는 것이지 밖에서 가지고 들어오는 전략무기 하나로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레오 3세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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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단에의 투자를 늘리고 상비군을 조직하는 것부터 해야지 갈리코 산 화약이 생긴다고 갑자기 완성형 포병부대가 생기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 쨍그랑!

얼굴이 토마토처럼 시뻘게진 레오 3세가 급기야 참지 못하고 협탁 위에 올려놓았던 유리잔을 바닥에 던지는 소리가 텅 빈 홀 안을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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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자식이……!”

레오 3세의 호통이 뒤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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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모르는 새끼가 어딜 제 아비를 가르치려 들어!”

높은 대리석 천장이 고함소리에 웅웅 반향을 울렸다.

생전의 마르그리트 왕비가 필사적으로 아들이 이 주제를 남편 앞에서 꺼내는 일을 막았던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레오 3세는 자신의 정책에 누군가가 반론하는 것을 끔찍하게, 비이성적으로 싫어했다. 자신이 열등감을 가진 상대로부터 그런 이야기를 듣는다면 더더욱 심했다.

레오 3세의 괴팍함에 찍혀 정계에서 밀려난 대귀족이 한 다스였다. 마르그리트 왕비 본인도 이 때문에 남편에게 무슨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레오 3세는 늦게 얻은 늦둥이 적자를 예뻐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마르그리트 왕비가 아들을 세심하게 관리해 정치적인 일에 아들이 끼어들 틈을 아예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성한 아들, 인덕이 있다고 백성들과 귀족들에게 인망이 높은 아들, ‘황금의 왕자님’이 자신의 경쟁자이자 잠재적 대체재로 떠올랐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 레오 3세의 태도는 돌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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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역할은 얌전히 배우고 익혀서 후에 훌륭한 국왕이 되는 것이지, 당장 국왕이라도 된 듯이 앞으로 나서 나대는 것이 아니다!”

그는 목에 핏대를 세우며 고함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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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어미가 죽어 가여운 마음에 네게 중책을 맡기려 하였으나 오만불손하기 짝이 없구나!”

마음 같아서는 왕자궁에 처박아두고 육 개월쯤 바깥출입을 막아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갈리코 왕국은 콕 찍어서 ‘알폰소 왕자가 몽펠리에 궁에 방문할 것’이라는 조건을 걸었다. 알폰소가 협조를 해 줘야 한다.

레오 3세는 어르고 달래는 대신, 자기 성격대로 협박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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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미레이유 공작을 죽인 것, 내가 모를 것 같으냐?”

알폰소 왕자의 몸이 흠칫, 굳었다. 레오 3세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몰아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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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너를 덮어 준 줄 아느냐? 미래의 국왕에게 오점을 남길 수 없어서였다. 미래의 국왕이 가장 가져야 할 것이 무엇인 줄 아느냐? 바로 책임감이다!”

그는 짐짓 위엄있게 목소리를 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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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레이유 공작을 죽임으로 인해 넌 이 나라가 가졌을 가능성을 날린 거야! 화약의 배합식! 강국으로 거듭날 가능성! 네 미래의 백성에게 미안하지도 않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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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은 알폰소 왕자를 두고두고 괴롭힌 난제이기도 했다. 에트루스칸 왕국에는 현재 제대로 된 중앙 상비군 자체가 없었다. 바닥부터 병력을 양성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하지만 화약의 배합식을 얻는다고 해서 그것이 강병 양성에 해가 될 리는 없을 것이다.

갈리코 왕국의 지나친 간섭의 가능성과 왕궁 안에 적국의 직계를 왕비로 앉혀 두어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지만 이는 화약을 공급받는 것이 아니라 화학의 배합식 자체를 알아낸다면 상당 부분 해소될 문제였다.

레오 3세는 딱 잘라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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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리코 왕국으로 출발해. 실무자로는 마르케즈 백작을 붙여주겠다. 출발 시각은 내일 오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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