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164화 서자와 적자의 차이 (164/733)


<제164화> 서자와 적자의 차이
2022.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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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자레는 레오 3세의 ‘잘 지냈느냐’라는 질문에 약간 기분이 상했으나 그 사실을 얼굴에 드러내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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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친이 지하 감옥에 갇혀 있고 나는 수소문하느라 수도를 탈탈 털고 다녔는데 퍽이나 잘 지냈겠다.’

그는 대신 과장된 제스처로 국왕을 칭송했다. 생존 본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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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왕 폐하의 은혜로 저야 항상 배부르고 따듯하게 잘 지내지 않습니까! 얼굴 안 좋을 일이 무에 있겠습니까.”

그는 대충 시종장을 째려보았다. 나가라는 눈치였다. 시종장은 체자레 백작의 눈치를 받으며 동시에 왕의 눈치를 살폈다.

레오 3세도 딱히 자신의 재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파악한 시종장은 기민하게 방 안의 시종들을 모아 서둘러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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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오늘은 무슨 일로 예까지 왔느냐. 아들놈 얼굴 보기가 참 힘들구나.”

체자레는 별일이 없는 한 왕궁에 출입하지 않았다. 부모님과는 어쩔 수 없이 한 달에 한 번 있는 대미사에서만 얼굴을 맞댈 뿐이었다. 루비나는 얼굴을 볼 때마다 잔소리만 해댔고 레오 3세는 완전한 기분파였다. 무슨 헛소리를 할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별로 만나서 득이 많은 사람들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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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명하신 왕자 전하께서 산 카를로를 떠나셨다길래 아버지께서 적적하실까 봐 미천한 저라도 왔지요. 자식이라고는 둘밖에 없는데 하나 정도는 아버지 옆에서 재롱을 부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레오 3세는 듣기 좋은 소리에 껄껄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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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내 생각해 주는 것은 너밖에 없다!”

그는 어제 알폰소의 대거리가 생각난 듯이 이마에 힘줄이 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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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폰소 그 새끼는, 금이야 옥이야 키워놨더니 제 분수를 몰라! 진작에 꺾어놨어야 했어! 제 어미의 성질머리를 그대로 닮아서는!”

체자레는 은근히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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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 전하께서 무슨 사고라도 치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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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뿐이냐!”

미레이유 공작의 일을 입에 담을 뻔했던 레오 3세는 험험 헛기침을 하며 단어를 골랐다. 그는 아무도 믿지 않았다. 입안의 혀처럼 구는, 그의 친혈육인 서자라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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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 동맹을 마저 마무리하고 오라고 갈리코로 보냈더니, 자기가 거기에 가는 게 예에 어긋난다며 빽빽 대들더라.”

체자레는 이마를 짚었다. 매우 알폰소가 할 만한 짓이다. 원리원칙주의자인 알폰소가 레오 3세의 심기를 박박 긁는 그림이 눈앞에 그려졌다.

마음에 안 드는 배다른 남동생이 어떻게 되든 그로서는 알 바 아니었지만, 자신은 감히 레오 3세에게 대들 엄두도 내지 못 하는데 자유롭게 행동하는 알폰소가 대단해 보이기도 했고, 동시에 질투심이 치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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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잘난 ‘적자의 혈통’. 빌어먹을 ‘교회의 축복’.’

적자는 대체할 수 없다. 레오 3세는 알폰소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새 왕비를 들여 그녀의 몸에서 아들을 새로 보지 않는 한 후계자를 바꾸지 못한다.

상념에 잠기려던 체자레는 고개를 흔들어 잡생각을 뿌리치고는 만면에 미소를 띠었다. 레오 3세를 부추길 작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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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고얀, 에트루스칸의 타오르는 태양께 이 무슨 불경죄를.”

그는 넌지시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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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캐의 혈통인 갈리코 피를 이어서 그런지 무도하기가 그지없습니다.”

레오 3세는 순간 충격받은 얼굴을 했다.

여러 국가의 왕족들끼리 하는 통혼은 흔했다. 레오 3세도 선대로 올라가면 해외 왕조의 피가 섞여 있었다. 증조할머니를 통해 1/8은 브룬넨 왕국의 혈통을 이는 그는 그 덕에 북쪽 사람처럼 기골이 장대하고 색소가 엷었다.

하지만 레오 3세는 단 한 번도 자신이 브룬넨 사람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가본 적도 없고 브룬넨 말도 모른다.

그래서 그는 그간 알폰소가 제 아들이라고만 생각했지, 모계를 따라 절반은 갈리코 사람이라는 점은 생각조차도 해 보지 않았다. 심지어 아들은 어미와 선생에게 모두 배워 갈리코 말에도 능통하다.

레오 3세에게 갑자기 다가온 깨달음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체자레가 속살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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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리코 놈들은 은혜를 모르지요. 뿐만입니까. 외교도, 문화도 모르고 막무가내로 군사와 금속에 의지하려 듭니다.”

레오 3세의 머릿속에서 알폰소에 대한 이미지가 갈리코에 대한 그것으로 덧씌워지는 순간이었다. 갈리코 왕국은 현재 국력이 급격하게 상승하는 중이었다. 그 부분이 날로 건장한 성인이 되어 가는, 몇 년 전에는 어리고 귀여웠던 아들과 겹쳐져서 레오 3세는 가쁜 숨을 들이켰다.

하지만 체자레가 오늘 여기 온 이유는 그저 레오 3세와 알폰소 왕자 사이를 이간질하기 위함만은 아니었다. 그에게는 당면 과제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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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하하신 왕비 폐하를 시해한 것도……. 사실은 간악한 갈리코 왕국의 패거리들 아닙니까?”

레오 3세의 물색 눈이 흔들렸고, 그 시선이 똑같은 빛깔의 체자레 백작의 눈과 마주쳤다.

체자레 백작은 기어이 한마디를 더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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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친 상인 놈의 신상에 대해 몇 가지 사항들을 더 알아냈습니다. 본디 갈리코 출신이고, 최근까지 갈리코 본국 사람들과 만나고 있었다고 하더군요.”

체자레는 칭찬받을 것을 예상하고 레오 3세를 올려다보았다. 왕의 입이 천천히 열렸고, 그는 오래 걸려서야 기어코 한마디를 내뱉었다. 하지만 그것은 체자레가 예상했던 종류의 말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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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얀 놈-!!!”

레오 3세는 자신의 눈빛을 꼭 닮은 아들에게 호통을 쳤다.

체자레는 급작스러운 부왕의 분노에 놀라 눈을 크게 뜨고 레오 3세를 올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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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너를 불쌍히 여겨 이제껏 모자란 것 하나 없이 안온하게 살게 해 주었거늘, 감히 제 분수를 모르고 기어올라?”

무언가 잘못되었다. 체자레 백작은 즉시 입을 조가비처럼 다물고 고개를 조아렸다. 하지만 레오 3세의 분을 가라앉히는 데에는 역부족이었다. 늙은 왕은 숨마저 몰아쉬며 아들에게 욕설 섞인 삿대질을 해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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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제 맘대로 왕족 시해 사건에 나서서 뒷조사를 하래! 누가 제 맘대로 정치에 코를 들이밀래!”

지금 누군가가 나서서 왕비 시해에 대한 일을 들쑤시고 다니다가 뒷선에서 정말로 갈리코 왕국이 나오기라도 하면 혼인 동맹은, 아니 정확하게는 화약의 배합식은 물 건너간다.

레오 3세도 진실을 아예 묻어버릴 작정은 아니었다. 조사는 할 것이다. 갈리코가 정말로 흉수라면 명명백백하게 책임을 물릴 것이다.

화약의 배합식을 받아내고 나서 알폰소는 파혼시키고 다시 한번 혼인 동맹 연판장을 돌려 다른 곳에 장가보내는 것도 좋겠다. 신부의 지참금을 또 타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저 망할 놈들의 오랑캐들에게 근엄하게 질타를 하며 엿을 먹이는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레오 3세는 체자레에게 두 걸음 더 다가가 코앞에서 그에게 소리를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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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나 루비나는 그저 주는 고깃덩이 얌전히 받아먹고! 재롱떨라면 재롱이나 떠는 부스러기지! 어딜 네 주제에 물에 손을 넣어 수면을 휘저으려고 들어!”

체자레의 적갈색 머리카락과 가늘게 잘생긴 이목구비를 보자 아들에게서 루비나가 겹쳐 보였다. 그만 루비나가 살바르산 이야기를 꺼내 자신에게 모욕을 준 일까지 생각나, 레오 3세는 분노가 두 배로 커졌다.

체자레는 한마디도 못 하고 고개를 조아린 채 몸을 떨었다. 그의 나이 20대 초반이었다. 어른으로 취급되기는 하지만 경험도, 연륜도 모두 부족한 나이다.

그리고 그의 모든 것은 당연히 그의 것이 아니라 그저 레오 3세의 은전으로 주어진 것이었다. 왕은 자신의 시혜를 언제든 변덕 한 번으로 거두어 갈 권한이 있었다.

그래서 그가 입을 연 것은 정말 필사의 용기를 끌어모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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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오나 목숨만, 목숨만은 붙여 주시옵소서, 국왕 폐하.”

아버지라고 부를 분위기가 아니었다. 체자레의 물빛 눈에 눈물이 고였다. 이 눈물은 반쯤은 진심이었고, 반쯤은 거짓으로 그러모은 것이었다. 레오 3세의 눈에 최대한 불쌍해 보여야 한다. 그래야 원하는 것을 얻을 것이다.

체자레 백작은 바닥에 몸을 던진 채 필사적으로 중얼거렸다. 그의 잘생긴 이마가 흰 대리석 마루에 닿았다. 빛나는 대리석에 반사된 그의 표정은 엉망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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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시는 고깃덩이 아니라 먹다 남은 찌꺼기라도 감사히 주워 먹겠나이다. 더 이상은 감히 바라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숨은 붙어 있어야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어머니를 살려 주십시오, 국왕 폐하.”

체자레는 앞으로 기어가 아버지의 구둣발에 입을 맞췄다. 비단으로 만든 실내화에는 약간의 오물이 묻어 있었다. 토악질이 나왔지만 내색할 수 없었다.

그와 동시에 레오 3세의 분노가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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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방약무인한, 고오얀 놈 같으니!!!”

루비나는 범인이어야 했다. 갈리코와의 협상을 성공적으로 끝마치고 화학의 배합식을 손에 넣어 더러운 봉건귀족 놈들을 위대한 왕의 발치에 무릎 꿇리기 위해서는!

오늘따라 눈치 없이 발치에 매달리는 저 모자 따위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이었다. 노기가 하늘로 뻗친 레오 3세는 분에 겨워 바닥에 엎드린 체자레에게 발길질을 했다.

- 퍽!

레오 3세의 구둣발은 체자레 백작의 명치에 정확하게 들어맞았고, 체자레 백작은 사람 몸통 하나만큼이나 뒤로 날아가 엉덩방아를 찧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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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억…….”

그는 가슴에 손을 얹은 채 숨을 쉬지 못하고 괴로워했다.

생각보다 훨씬 더 멀리 쓰러진 아들의 상태에 깜짝 놀란 레오 3세는 체자레 옆으로 달려가 그의 곁에 무릎을 꿇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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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자레, 체자레!”

레오 3세의 부름에도 체자레 백작은 대답하지 못했다. 대신 힘들게 호흡을 찾았다.

그 옆에서 레오 3세는 어쩔 줄을 모르며 아들을 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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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이 심했다, 체자레야. 화가 나서 그런 거야, 본의가 아니야.”

그는 두껍고 주름진 손으로 체자레 백작의 이마를 쓸어넘겼다. 이렇게 보니 체형은 제 어미를 닮아 호리호리했지만 높은 코라던가 움푹 들어간 뺨은 자기를 빼다 박았다.

게다가 성격은 또 어떤가. 알폰소는 제 어미 판박이였다. 하지만 체자레는 하는 짓이 루비나보다는 자신을 닮았다.

그는 어린 체자레를 보면서 머리를 굴리는 모양새가 자기를 꼭 닮은 것을 보며 몇 번이나 찬탄한 바 있었다. 핏줄의 신비함이라니! 비록 교회에서 인정해주는 혼인에서 태어난 자식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레오 3세는 떨리는 손으로 체자레를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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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야.”

가뜩이나 복통이 극심했는데 레오 3세가 흔들기까지 해서 체자레는 소리를 지를 뻔했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레오 3세의 심기를 거스를 처지가 아니었다. 젖 먹던 힘까지 끌어내어 그는 가까스로 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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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괘, 괜찮습니다, 폐하.”

자기를 꼭 닮은 아들이 자신을 아버지라고도 부르지 못하고 ‘폐하’라고 부르는 것을 보니 레오 3세는 문득 가슴이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그는 체자레의 볼을 아이 다루듯 어루만지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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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쉿, 아프면 말하지 말거라, 얘야.”

체자레의 물빛 눈에 다시 한번 눈물이 차올랐다. 이를 자기 맘대로 해석한 레오 3세는 아들을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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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비나를 지금 당장 풀어줄 수는 없어. 다른 사람도 아니고 마르그리트가 죽었다. 왕비야, 왕비! 중앙 차원의 철저한 조사가 필요해. 시간이 좀 걸릴 거야. 그렇지만 네 입장도 이해는 한다.”

레오 3세는 자기가 뭘 해 줄 수 있을지 고민해 보았다. 루비나를 풀어줄 수는 없다. 지하 감옥에서 서쪽 탑으로 옮겨줄 수도 없다.

그녀의 수감처가 바뀐다면 외부로 말이 나갈 것이고, 그가 루비나를 범인이 아니라고 여기는 증거로 보일 것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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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콘타리니 백작에게 루비나를 각별히 챙기라고 언질을 해 두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내 아들의 어미인데 내가 설마 확증도 없이 곧바로 목을 치겠느냐?”

저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레오 3세는 갈리코와의 혼인 동맹 성사를 위해서라면 루비나의 목 따위는 거침없이 치고도 남을 것이다. 체자레는 자신의 처지에 피눈물을 쏟았다.

그의 모친은 장기 말이다. 본인은 그 장기 말조차도 되지 못하는 처지이다. 타국의 공주가 결혼 상대로 사생아는 받아주지 않을 테니까.

레오 3세를 원망하는 것은 쓸모없는 일이었다. 그는 자연재해나 다름없었다. 한번 휩쓸고 가면 체자레뿐만이 아니라 다른 누구라도 만신창이가 된다. 어차피 감정적 유대도 없고 믿음도 없다. 자연재해는 원래 그런 것이다.

대신 폭풍우가 한번 휩쓸고 지나가면 대지의 흙이 걷히고 그 위로 보슬비가 내렸다. 농사를 지을 비옥한 토양이 된다. 자연재해는 피해도 주었지만 그가 살아나갈 모든 원천이기도 했다. 레오 3세가 없다면 체자레 백작은 끝난다.

그래서 그는 자기와 똑같이, 아니 그보다 배는 더 되바라지게 레오 3세에게 대들었으면서 얻어맞기는커녕 꼿꼿이 고개를 쳐들고 나간 알폰소를 생각했다.

부러웠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대신 원망했다.

더러운 산 카를로의 적통. 더러운 핏줄. 가질 수 없다면 불태워버리는 것이 마땅한 왕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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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봐라! 게 누구 없느냐! 체자레 백작이 복통이 심한 것 같으니 의사를 불러와라!”

레오 3세가 목청을 높여 사람을 불렀다.

복통은 무슨. 배를 얻어맞아 배가 아픈 것을 언제부터 복통으로 쳤는지는 의문이었지만 레오 3세는 자기의 말대로 믿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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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자레, 의사의 진료를 보려무나.”

레오 3세는 짐짓 다정하게 말했으나 내심은 이 자리를 빨리 떠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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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바로 뒤에 회의가 있어서 이만 가 봐야겠다.”

속이 빤히 보이는 거짓말에도 체자레는 따질 수가 없었다. 황금의 왕자님과 다르게, 반쪽짜리 아들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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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은에……. 감사드립니다.”

기실 레오 3세는 루비나 백작 부인의 처우와 관련해서 아무것도 약속한 것이 없다. 감옥에 쿠션 몇 개 더 넣는 정도야 체자레도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체자레는 이렇게밖에 대답할 수가 없었다.

굴종적으로 고개를 숙인 아래로 그의 푸른 눈이 분노로 이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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