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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이번 생엔 내가 왕비야-171화 (171/733)

<제171화> 잡스러운 질투

6월 중순, 아리아드네는 밀의 수매를 대충 마친 상태였다.

“데 마레 영애. 중간 결산 보고 드립니다.”

카루소 대표가 아리아드네에게 보고서를 건넸다. 중간 결산을 위해 데 마레 대저택에 방문한 것이다.

아치형 창문에서 햇살이 리넨 커튼 너머로 부드럽게 서재를 밝혔다.

보고서를 꼼꼼히 넘기는 아리아드네의 옆에는 페트루치아가 앉아 있었다.

여전히 머리는 짧았지만, 보카네그로 상회에 있을 때와 다르게 여자아이용 실내 드레스를 입은 채였다.

몸에 맞는 옷을 입은 그녀는 한결 편해 보였다.

아리아드네가 보고서를 검토하는 동안 카루소 대표가 은근슬쩍 물었다.

“얘야, 지낼 만은 하냐?”

카루소 대표는 아리아드네가 시동을 요구했을 때, 처음에는 단순한 경고 차원인 줄 알았다.

아리아드네 데 마레가 단순히 보카네그로 측에서 ‘푸른 심해의 심장’에 대한 말을 퍼트리지 못하게 단속하는 것이라고 여긴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내 본인의 생각이 짧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날 자정에 두카토 금화와 계약서를 들고 데 마레 대저택으로 가서 만난 딸애가 여자아이의 드레스를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데 마레 영애가 모든 것을 다 알고 페트루치아를 데려갔다는 사실을 눈치챈 그는 딸이 인질로 잡혔음을 직감했다.

‘안전장치를 두 번, 세 번 거는군.’

아버지의 속도 모르고 페트루치아가 밝게 웃었다.

“아빠, 여기서는 거짓말을 안 해도 되니까 너무 좋아요.”

보고서를 읽던 아리아드네가 한마디 보탰다.

“아이가 똘똘하고 영민해요. 빨리 배우더군요. 좋은 자제분을 두셨습니다, 카루소 대표님.”

“가, 감사합니다.”

그는 얼떨결에 답했다. 아리아드네는 다 읽은 보고서를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매입 단가도 마음에 들고 질도 좋아요. 남은 것은 현금으로 받은 3만 두카토인데, 우리는 원래 전액을 밀로 사기로 했었죠?”

“그렇습니다, 영애.”

“풍작이라서 단가가 생각보다 낮았어요. 투자금을 다 쓰지 않았는데도 이미 제가 염두에 두었던 만큼의 밀 수매를 성공해 버렸네요.”

많으면 많을수록 좋기야 하겠지만, 빌려둔 창고에는 수용 한계가 있다.

“2만 두카토 정도로는 마저 밀을 사서 창고를 가득 채우고, 남은 투자금으로는 좀 더 부피가 작고 가치가 높은 걸 사 모으면 어떨까요?”

밀랍, 리넨, 쑥 같은 것들이 대역병시대에 요긴하게 팔릴 물건들이다.

“예를 든다면⋯⋯?”

“방역 물품들이요.”

방역 물품? 카루소 대표는 의구심에 눈을 가늘게 떴다. 우리는 지금 식량난에 대비해서 곡물 수매를 하는 것 아니었나?

아리아드네는 일단 가볍게 얹어보았다.

“메뚜기떼의 북상이 계속되면 전염병도 돌지 않겠어요?”

카루소 씨는 생각에 잠긴 모습이었다. 현명한 상인의 표본이다. 아리아드네는 지금 약을 파는 중이었다.

근거가 없는 주장에 바로 넘어가지 않는 것은 카루소 씨가 대성할 자질을 보여주는 일이었다.

‘똑똑하지만 귀찮네.’

그녀는 카루소 대표를 설득할 수 있는 이유를 찾았다.

“꼭 전염병 대비가 아니더라도.”

매해 겨울에는 해가 짧아지고 결국 양초도 더 많이 쓰게 된다. 밀랍은 동시에 양초의 재료이기도 했다.

“겨울 대비로 밀랍을 사 모아도 좋고요. 창고의 수용량에는 한계가 있으니까요.”

‘밀랍’이라는 단어를 꺼낸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밀랍은 사치품이고 상인의 이윤이 높다. 밀보다도 훨씬.

그리고 보카네그로 상회는 이윤 만큼을 자기 몫으로 가져가게 된다. 카루소 대표의 눈이 반짝 빛났다.

“밀랍이요?”

“네. 밀랍의 수매도 맡아 주시겠어요?”

“⋯⋯밀랍이라면. 저장 기간이 기니 꼭 이번 겨울에 팔리지 않더라도 천천히 팔면 되니까요.”

아리아드네는 속으로 웃었다. 저장 기간이 아니라 상회의 이윤 때문에 넘어간 거면서.

“좋아요. 그럼 1만 두카토 정도로는 밀랍의 수매를 부탁드릴게요. 원산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만 늦어도 7월 말까지는 우리 창고에 들어와 있어야 합니다.”

“시간이 좀 촉박한데요.”

“제가 거는 조건이에요. 어쩔 수 없어요. 그거보다 늦게 도달하는 물건은 저는 받지 않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클라이언트의 요구는 아무리 이상하더라도 지켜져야 한다.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요구를 하는 사람, 사실 그것이 클라이언트의 본질이다. 카루소 대표는 고개를 끄덕였다.

* * *

아리아드네가 밀의 수매를 마무리하던 때에, 이사벨라는 다시금 사교계에 자리를 잡으려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왜 이제야 깨웠어! 오늘은 ‘은십자 부녀회’ 모임이 있는 날이란 말이야!”

불륜녀, 클레멘테 데 바톨리니 백작 부인 덕에 봉사 활동을 하는 부유한 부인들 모임에 끼게 된 이사벨라는 해가 중천에 뜬 시간에 기상하자 새 하녀에게 있는 대로 신경질을 부렸다.

“죄, 죄송합니다 아가씨!”

말레타가 죽은 뒤에 새로 들어온 이사벨라의 하녀, 시에나는 황급히 고개를 조아렸다.

이 새로운 아가씨를 모신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시에나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새 상전의 성질머리가 그 미모만큼이나 특출나다는 사실을 들어오자마자 깨달았다.

“발을 주물러 드릴까요?”

“넌 바보야? 시간이 없는데 발 마사지나 하고 앉아 있으라고? 당장 가서 목욕물을 받아 와!”

“예, 예!”

이사벨라는 최근 ‘은십자 부녀회’ 사람들과 상당히 친해진 참이었다.

은십자 부녀회의 대장 격인 발조 백작 부인은 이사벨라를 싹싹하고 예쁜 여동생처럼 여기기 시작했다.

나머지 사람들은 중요하지 않았다.

로레단 남작 부인은 발조 백작 부인의 의견이라면 뭐든지 다 수긍했으며, 클레멘테 데 바톨리니는 지금 감히 이사벨라에게 싫은 소리를 할 처지가 되지 않았다.

덕분에 이폴리토마저도 콩고물을 얻어먹고 있었다.

“이사벨라!”

“노크 좀 하고 들어와!”

여동생의 방에 무신경하게 쳐들어온 이폴리토에게 목욕할 준비를 하며 몸에는 가운, 머리에는 타월만 두르고 있던 이사벨라가 거세게 짜증을 냈다.

평소였다면 가만히 안 있을 이폴리토였지만 요새는 여동생 때문에 얻어먹는 부스러기가 제법 쏠쏠했던 만큼 너그럽게 넘기고 넉살 좋게 물었다.

“오늘은 오타비오도 참석하나?”

“오빠는 뇌가 없어? 수녀원에 봉사활동 가는데 오타비오 데 콘타리니가 어떻게 따라와? 수.녀.원. 금남의 구역이요.”

“아니⋯⋯. 난 고아원이래서 혹시나 했지⋯⋯.”

“수녀원 부설 고아원이거든요.”

“쳇, 잘났다.”

심통이 난 이폴리토가 투덜거렸다.

“그런 이상하고 재미없는 데만 가지 말고 모임 장소 좀 괜찮은 데로 잡아봐. 살롱이라던가, 술 모임이라던가.”

이사벨라는 기가 막혀서 코웃음을 쳤다.

“야! 여동생이 혼자서 고군분투하는거 안 보여?”

그녀는 예쁜 두 보라색 눈동자를 굴리며 이폴리토를 한심하게 쳐다보았다.

“도움도 안 되는 새끼. 내가 수녀원, 양로원, 고아원, 가지각색으로 끌려다니면서 설거지하고 걸레질하는 수모를 겪으면서 발조 백작 부인한테 갖은 아양 다 떨어서 간신히 자리 좀 만들어 놨더니만, 뭐? 술모임?”

“야, 너 말이 좀 심하다?”

평소 같았으면 버럭 소리를 지르고도 남았을 이폴리토였다. 꿀리는 게 있으니까 이렇게 유하게 반문하는 것이다.

“내가 어? 나 혼자 좋자고 그래? 그런 장소로 잡혀야 오타비오도 나오고 체자레 백도 나오고 그럴 거 아냐.”

이폴리토는 자기 인맥을 늘릴 생각에 또래 사내들을 언급한 것이었지만, 이 이야기를 들은 이사벨라 역시 예쁜 자주색 눈을 빛냈다.

알폰소 왕자가 물 건너간 이상 이사벨라는 새로운 혼처를 찾아야 했다.

체자레 데 코모가 저번에 이유 없이 뻣뻣하게 굴기는 했지만 그것은 도리어 이사벨라의 승부욕을 불태웠다.

‘나한테 그렇게 군 남자는 당신이 처음이야.’

사춘기를 넘긴 남자라는 생물은 누구나 이사벨라 데 마레 앞에서 무력하게 무릎을 꿇었다.

달콤한 웃음 한 번, 다정한 말 한마디에 넘어가지 않는 놈이란 없었다.

‘넌 얼마나 버티나 두고 보자.’

설탕과 생크림으로 뒤범벅된 애정 세례를 받다 보면 체자레 백작도 무너지고 말 것이다.

이사벨라의 세상은 언제나 그랬다.

그리고 오타비오. 나쁘지 않은 보험이자, 체자레 백에게 닿을 수 있는 징검다리이기도 했다.

‘카멜리아 데 카스틸리오네의 속을 뒤집어 놓을 수 있는 건 덤이지.’

카멜리아가 자기 약혼자가 이사벨라 옆에 딱 붙어 시종처럼 수발을 드는 모습을 알게 되면 부들부들 떨 게 뻔했다.

그 몰골이란⋯⋯. 상상만 해도 좋았다.

“뭐⋯⋯. 그래. 오빠도 자리를 잡긴 잡아야 하니까. 다음번에는 시뇨르 오타비오도 나올 수 있는 자리로 잡아 보자고 해볼게.”

이폴리토의 얼굴에 눈에 띄게 희색이 돌았다. 이사벨라는 은근히 질문을 건넸다.

“오빠 요새 체자레 백과는 연락 안 해?”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그 새끼? 연락이 안 돼. 편지에 답장도 없어.”

체자레 백작은 요새 외부와의 일체의 연락을 끊고 자기 저택 안에서 하루 종일 술로 날을 지새우고 있었다.

절반 정도는 자신의 처지에 낙담해서지만, 절반 정도는 레오 3세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는 국왕에게 ‘수면에 파문을 일으키지 말라’는 일침을 들은 상태였다.

바깥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면 마르그리트 왕비 시해 사건에 대해 정치질을 한다는 인상을 줄 염려가 있었다.

이럴 때야말로 몸을 낮추고 한량처럼 보여야 했다. 체자레가 어려서부터 수차례 수난을 겪으며 터득한 지혜였다.

하지만 이런 속사정을 알 리가 없는 이폴리토는 원한 서린 목소리로 말해다.

“내가 가주가 아니라고, 귀족이 아니라고 무시하는 거지! 더러운 새끼, 자기도 사생아인 주제에!”

이폴리토는 주먹을 꽉 쥔 채 이를 악물었다.

“내가 가주만 되면, 가주만 된다면⋯⋯! 다시는 이 이폴리토 님을 무시하지 못하게 해 주겠어!”

데 마레 추기경이 없는 데 마레 가문은 평범한 평민의 가문에 불과하다.

이폴리토가 물려받을 이 가문이 의미가 있으려면 그가 군인으로 성공하거나, 결혼으로 작위를 획득하지 않으면 안 됐다.

죽은 루크레치아가 아들이 파도바의 군사학교에서 두각을 나타내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렸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난 가문을 물려받을 남자니까!”

이사벨라는 ‘무능한 네놈 새끼가 군인으로 대성하기는 글렀고, 그 상판대기로 작위 있는 여자랑 결혼은 할 수 있겠냐’라고 빈정거리려다가 마음을 고쳐먹었다.

남자 얘기가 나오자, 좋은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래 맞아, 오빠는 가문을 물려받을 사람이지.”

이사벨라는 눈을 접어 예쁘게 웃었다.

“동생들의 혼처를 정할 권한도 있지.”

“그럼! 이사벨라 너는 동기간의 정을 보아 특별히 네가 결혼하고 싶은 남자와 결혼하게 해 주마!”

“정말? 믿어, 오빠.”

삽시간에 돌변한 여동생의 요사스러운 태도에 이폴리토는 떨떠름하게 이사벨라를 쳐다보았다.

쟤가 예쁘다는 건 머리로는 알겠는데, 영 마음으로는 수긍이 안 됐다.

저 여우 삼백 마리쯤 들어가 있는 간사한 애가 껍데기만 근사해보았자 무섭기나 하지.

“너 갑자기 왜 그래. 똑바로 해라.”

“아이, 그러지 말고.”

이사벨라의 목소리가 더욱더 간드러졌다.

“오빠가 가주가 되었는데 우리의 친애하는 여동생 아리아드네가 결혼을 못 하고 있으면, 좋은 혼처를 찾아줘야지.”

이폴리토도 자신의 사특한 친동생이 무슨 생각을 한 건지 깨달았다.

이사벨라가 왜 기분이 좋아진 건지 파악한 이폴리토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가문의 딸은 가주의 명을 거역할 수 없잖아, 그렇지?”

“암, 그렇고말고. 수녀원에 처박아도 할 말이 없지.”

“자기가 결혼하겠다고 졸라도 가주의 허락을 받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고.”

“그럼. 본인이 고른 남자가 어떤 놈팡이인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가문의 딸을 밖으로 함부로 내돌리겠어. 가주의 허락이 없으면 자기들끼리 아무리 좋다고 해도 혼인이 불가하고말고.”

이사벨라의 미소가 점점 더 진해졌다.

“오빠, 아리아드네가 좀⋯⋯. 고집이 강한 면이 있잖아.”

“제 잘난 맛에 살고, 고분고분한 면이라고는 없지.”

“걔는 자기가 존경할만한 남자를 만나야 할 것 같아.”

만족스럽게 웃고 있는 이사벨라의 얼굴에서는 이제 흡사 한 떨기 꽃이 피어날 것만 같았다.

“그러니까 말야, 한참 연상은 어때? 서른 살 정도 연상이 좋겠어.”

이폴리토도 신이 나서 맞장구를 쳤다.

“연상남 중에 멀쩡한 총각은 찾아보기 힘들지. 이혼남이 좋겠다. 자녀가 있으면 금상첨화고. 편하게 살면 안 돼. 좀 어려움도 있고 그래야 그 천방지축이 철도 들고 어른도 되지.”

이사벨라는 만면에 웃음을 띠고 박수를 쳤다.

“그으래도. 데 마레 가문의 체면이 있지. 아무 이혼남한테나 보내면 안 되지.”

“그래. 남자가 작위도 좀 높고 재산도 좀 있고 그래야지.”

이사벨라는 웃음을 터트리기 직전 같은 심정이 되었다.

“나 딱 맞는 사람 하나 알아.”

“누구?”

“캄파 후작.”

이폴리토도 이사벨라와 똑같이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 하하하하하하!”

먼저 웃음을 참지 못하고 터트린 쪽은 이폴리토였다.

오라버니의 우스꽝스러운 표정에 이사벨라도 이내 함락당해 웃음보가 터졌다.

“깔깔깔깔깔!”

한참을 박장대소하던 친남매는 허공에서 손을 마주쳤다.

- 짝!

“역시 이사벨라라니까. 머리는 비상하게 돌아가.”

“아니, 상황이 딱 맞잖아.”

“캄파 후작한테 보내면 지참금은 보낼 필요 없겠지?”

“우리가 도리어 신부대를 받아 와야지.”

“그때쯤이면 캄파 후작한테 새 후처가 생겨 있지 않으려나?”

“어떤 미친 여자가 캄파 후작한테 시집을 가겠어? 가더라도⋯⋯.”

이사벨라가 자신의 고운 아마빛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꼬았다.

“오래 살아남아 있진 못하겠지. 아리아드네가 노처녀가 돼서 혼인하러 갈 때쯤엔 세 번째 처도 죽어 있지 않으려나.”

“알폰소 왕자가 갈리코에 간 거는 결혼하기 위해서 갔다는 소문이 아주 파다해.”

“당연한 거 아냐? 결혼시킬 거 아니라면 누가 프리노약 산맥을 넘어서 아들을 그런 나라에까지 보내겠어?”

“그럼 아리아드네는 정말 끈 떨어진 연이네.”

이폴리토의 말을 들은 이사벨라가 만족스럽다는 듯이 웃었다. 하지만 이폴리토는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그런데 설마⋯⋯. 체자레 백이 걔한테 관심 있는 거는 아니겠지?”

“뭐?”

이사벨라의 아미가 대번에 찡그려졌다. 작약 같던 그녀의 얼굴이 맹수같이 변했다.

“아니 아니, 가면무도회 때도 그런 소문이 돌았고. 체자레 백이 이상하게 걔한테 잘해주기는 하잖아? 아버지가 계신 동안 청혼하기라도 하면⋯⋯.”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아.”

이사벨라가 이글대는 눈으로 오빠를 째려보았다.

“사교계에서 잠시 명성이 높으니까 어울릴만한가 한번 들여다본 거지. 체자레 백이 그럴 리가 없잖아!”

나 같이 예쁘고 귀여운 애를 두고 그런 꾀죄죄하고 음침한 애를.

최근에는 사교계에서 아리아드네의 기품을 칭송하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이사벨라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들어도 무시하고 넘겼기 때문이다.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내버려 두지는 않을 거야. 절대 그럴 일 없어.”

이사벨라의 눈동자가 분노와 목적의식으로 불탔다.

체자레 백작과는 어려서부터 교회에서, 사교계에서 항상 만나왔다.

적통 왕자는 아니었지만 사교계의 왕자를 꼽으라면 단연코 체자레 백작이었다.

그리고 그간 사교계의 공주는 이사벨라 데 마레였다. 그들은 천생연분이었다. 뺏길 수 없었다.

그 남자는, 나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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