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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이번 생엔 내가 왕비야-218화 (218/733)

<제218화> 죄인들이 모여 사는 대지

라파엘이 아리아드네를 데리고 향한 곳은 산 카를로 성벽 밖, 티베리 강 상류였다.

구름이 짙게 낀 늦가을, 사이프러스 나무들이 구릉지를 메우고 있는 아름다운 강가였다.

“아리아드네, 당신 덕분에 이렇게 성 밖으로 나올 수도 있군요.”

그는 상쾌한 강바람을 맞으며 말했다.

“갈리코 왕국군이 활개 치며 돌아다닐 땐 언감생심이었는데 말입니다.”

아리아드네는 희미하게 웃으며 자신의 오른손을 내려다보았다.

갈리코 왕국군이 패퇴한 것이 아리아드네 덕이었다면, 그래서 라파엘과 아리아드네가 지금 누리는 자유가 정말로 그녀의 선업에 기반하고 있는 거라면, 그것도 모두 다 죗값과 선업을 계산할 때 들어갈까?

‘어디까지가 내 공이고 어디까지가 내 죄일까?’

하지만 두꺼운 장갑 아래 숨겨진 빛무리는 묵묵부답이었다. 희망고문이었다.

“자. 춥지 않게 해 줄게요.”

강가 옆 모래톱에 돗자리를 펴고 아리아드네를 그 위에 앉힌 라파엘은 마른 나뭇가지들을 모아 솜씨 좋게 모닥불을 피웠다.

날씨가 도와 강바람은 너무 세지 않았고, 약간 차가운 공기는 운치를 더했다.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 옆에서 불을 쬐는 아리아드네에게 담요를 덮어준 라파엘은 싱긋 웃었다.

“생각보다 잘 타네요.”

“따듯해요.”

“이런. 이걸로 따듯하면 안 되는데. 추울까 봐 더 준비해 온 게 있는데.”

그는 왕골 바구니를 열어 그 안에서 샌드위치 두 개와 목이 긴 병 하나를 꺼냈다.

“짠.”

“그게 뭐예요?”

“마음을 위한 양식.”

라파엘이 왕골 바구니에서 꺼낸 것은 발포주를 한 번 더 숙성시켜 만든 포트 와인이었다.

“산 카를로의 물류 대란 와중에 이걸 구할 수 있는 곳은 이제 발데사르 가의 지하창고밖에 남지 않았다고요.”

그는 주석 잔 두 개에 포트 와인을 가득 따라 둘 중 하나를 아리아드네에게 건넸다. 아리아드네는 어이가 없어 웃었다.

“아니, 사제 서임 준비 중이시라면서요? 이런 거 마셔도 돼요?”

물론 그녀의 아버지인 데 마레 추기경은 서재에 그라파를 쟁여두고 마셨지만, 그건 성직자라기보다는 정치가가 본분이 된 그의 직위 탓이고 평사제들이나 수행 사제는 엄격한 금주령을 지켰다.

라파엘은 아직 수행 사제도 못 된 처지였다. 가장 엄숙하게 술을 멀리해야 할 시기다.

하지만 라파엘은 웃으며 단숨에 주석 잔을 비웠다.

“춥잖아요? 어쩔 수 없다고요.”

그는 어깨를 으쓱, 하며 돗자리 위에 자기 몫의 주석 잔을 내려놓았다.

아리아드네는 라파엘의 외모와 어울리지 않는 그의 호쾌한 원샷에 놀라 입을 가렸다.

“죄네. 죄를 지었네. 천신 님의 사도가 되고 싶으시단 분이.”

반쯤은 놀림이고 반쯤은 비난이었다. 라파엘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잔을 한 번 더 채웠다.

“인간은 원래 죄를 지으면서 살아요.”

두 번째 잔에 입술을 대며 그가 읊조렸다.

“그래서 인간이야.”

그는 도도하게 흘러가는 강물을 멀리 바라보았다.

“죄를 짓지 않은 자는 ‘아직’ 죄를 지을 기회가 없었던 갓 태어난 신생아 외에는 없어요.”

교리문답을 하는 듯이 확신 있는 목소리였다. 그는 덧붙였다.

“완전무결함은 인간이 갖출 수 있는 미덕이 아닙니다.”

아리아드네는 거기에 답했다. 허탈한, 기운이 빠진 목소리였다.

“그러면 우리는 왜 죄를 짓지 말라는 가르침을 받으며 살아가죠?”

이룰 수 없는 결과를 향해 달리는 일은 너무나 힘들고 슬프다.

“어차피 불가능한 목표를 향해 정진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녀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성취할 수 없는 이상을 향해 달려가야만 하는 건 고문 아닌가요.”

라파엘은 얄밉도록 경쾌하게 답했다.

“그래서 성황서에서 가르치지 않습니까. 인간은 원죄를 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고해(苦海)를 헤엄치며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고.”

아리아드네는 포기하지 않고 끈덕지게 물었다.

“모두가 실패하게 된다면, 죄를 많이 지은 자와 죄를 덜 지은 자 사이에 차이가 있나요?”

이번 질문에, 라파엘은 두 번째 잔을 쭉 들이켜고는 소매깃으로 입술을 닦았다.

새빨간 입술이 붉은 포도주에 적셔져 한층 더 요요하게 빛났다.

“제가 좀 취했나 봐요. 취했으니 이야기해 줄게요.”

그는 아리아드네의 귓가에 입술을 대고 속삭였다.

아무도 없는 외진 강가였지만 감히 입 밖에 내고 싶지 않은 그런 이야기인 모양이었다.

“전 어려서 저희 형님을 몹시 싫어했어요.”

아리아드네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우애가 몹시 좋으신 줄 알았는데요.”

라파엘 데 발데사르는 형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혈혈단신 파두아로 떠난 남자였다.

장자를 위해 그렇게까지 헌신하는 차자는 많지 않았다.

“그건 나중에 그렇게 된 거죠. 어릴 때는 형이 아주 미웠어요. 능력도 없는 주제에, 조금 일찍 태어났다고 모든 걸 다 그러쥐고 있었거든요.”

소가주의 지위, 물려받을 작위, 영지, 재산. 그것들은 모두 죽은 큰형 펠리시아노의 것이었다.

막상 학습능력도, 판단력도, 운동도 라파엘이 형보다 나았는데 말이다.

“어려서 제가 아프다는 게 밝혀지고 나서는 제 착각이 극에 달했죠.”

형과 비교하면 모든 재능이 뛰어났던 라파엘은 몸까지 좋지 않자 부모의 관심마저 독차지하게 되었다.

“그때는 내가 세상을 다 가진 줄 알았어요. 그런데도 소가주의 자리는 제 것이 아니었어요. 납득할 수가 없었죠.”

그래서 라파엘은 심술을 부렸다.

처음에는 단순한 심술이었지만 점점 어린아이 장난치고는 과해졌고 급기야는 선을 넘었다.

“왜 나만 아픈지, 왜 나만 소가주의 자리를 가질 수 없는지 억울했어요. 나만 아플 순 없죠. 형도 아파봐야지.”

일곱 살 난 라파엘은 너도 태양에 피부가 익어보라며 멀쩡한 형을 땡볕에 다섯시간씩 세워놓기도 했고, 형 때문에 자기가 더 아파졌다며 터무니없는 일로 부모님께 고자질하곤 했다.

라파엘의 형, 펠리시아노는 아픈 동생의 패악질을 허허 웃으며 참고 넘기고는 했다.

그게 예민하고 신경질적인 라파엘의 심기를 더욱 긁었다.

- “형은 안 아파서 그래! 형은 안 아파서 몰라!”

같이 창가에서 놀다가 창문 유리를 뚫고 들어온 직사광선에 눈이 새빨갛게 부어서 눈물을 줄줄 흘리는 라파엘을 보고 ‘그만 울고 안으로 들어가자’라고 했던 형에게 라파엘이 고함을 질렀다.

펠리시아노는 상처받은 얼굴로 동생에게 물었다.

- “내가 어떻게 하면 마음을 풀래?”

- “너도 똑같이 아파봐!”

라파엘은 반짇고리에서 가장 길고 두꺼운 바늘을 하나 뽑아 들었다.

그들이 노는 것을 지켜보고 있던 유모가 잠시 자리를 비우며 두고 간 것이었다.

- “어, 어?”

펠리시아노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났지만 그뿐이었다.

펠리시아노는 자기보다 덩치도 작고 약한 동생을 물리적으로 제압할 수 있었지만 하지 않았고, 기가 산 라파엘은 그 틈을 타서 바늘을 들고 형에게 덤볐다.

- “아악!”

그 뒤는 난장판이었다. 펠리시아노의 눈에서 피가 났다.

막상 자기가 저지른 짓을 보고는 겁이 덜컥 난 어린 라파엘은 울음을 터트렸고, 온 집안 사람들이 다 뛰어오고, 발데사르 후작 부인은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며 어린 아들 둘을 윽박질렀다.

펠리시아노는 꿋꿋하게 대답했다.

- “놀다가 그랬어요, 어머니. 저희 둘이 장난치다 다쳤어요.”

펠리시아노는 끝내 라파엘이 자기를 고의로 찔렀다고 부모님께 이르지 않았다.

하지만 바늘 사건은 그저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았다.

펠리시아노의 오른눈은 새빨갛게 부어오르기 시작했고 펠리시아노는 고열에 시달렸다.

- “⋯⋯형, 왜 엄마한테 바른대로 이야기 안 했어?”

펠리시아노의 오른눈에 백태가 끼고, 남들처럼 정상적으로 앞을 볼 수 없을 거란 사실이 명확해진 어느 날, 라파엘은 눈치를 더럭더럭 보며 형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 “그래봤자 바뀌는 게 없잖아. 부모님이 슬퍼하기나 하시지.”

- “⋯⋯형은 내가 안 미워?”

- “⋯⋯.”

- “형은 왜 자기 기분은 안 중요해?”

펠리시아노는 잘 보이는 왼쪽 눈으로 동생을 보기 위해 상체를 돌렸다. 맑은 눈이었다.

- “난 별로 화가 잘 안 나. 옆 사람이 행복한 게 더 좋아. 내가 그건 네가 한 짓이라고 말하면 엄마·아빠가 슬퍼하실 거잖아.”

라파엘은 혼란에 빠졌다. 자기 같으면 복수심, 미운 마음, 그리고 부모님의 애정을 뺏어올 수 있다는 생각에 없던 일이라도 부풀려서 부모님께 일렀을 게 틀림없었기 때문이다.

혼자서는 도저히 답을 찾을 수 없었던 라파엘은 다른 선생을 찾았다.

- “아버지. 귀족은 뛰어나야 한댔잖아요.”

- “음. 그렇지.”

당시 갓 30대 초반이던 발데사르 후작은 아프고 작은 둘째 아들을 자기 말 안장 앞에 태워 태양빛을 받지 않도록 자세를 잡아주면서 부드럽게 답했다.

- “모범을 보여야 하니까 그런 거지요?”

- “그렇지.”

- “⋯⋯그런데 왜 나는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해서 항상 남의 모범이 되는데 소가주는 형이에요?”

발데사르 후작은 목소리를 가라앉히고 어린 아들에게 말했다. 조금 엄격해진 목소리였다.

- “라파엘. 모범은 나만 혼자 잘한다고 보일 수 있는 게 아니야. 가주는 집안을 다스려야 한단다. 그건 덕이야.”

어린 라파엘은 아버지의 말이 무슨 뜻인지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 순간 스스로가 몹시 부끄러워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라파엘은 천천히 깨달았다.

라탄어를 잘 읽고 덧셈 뺄셈을 빠르게 하고 말을 잘 타는 것은 사실 다 부수적인 것에 불과했던 게 아닐까.

진짜로 훌륭한 사람이 갖춰야 할 미덕은 조금 다른 게 아니었을까.

당시의 어린 라파엘은 그저 아버지의 말 안장에 타 아버지에게 안긴 채로 조용히 흐느꼈을 뿐이다.

발데사르 후작은 말없이 둘째 아들의 뒷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나는 그 뒤로 형한테 승복했어요. 형이 언제나 나보다 앞이었고⋯⋯. 그에게는 가질 자격이 있었거든요. 일종의 충성이라고 봐도 되겠네요.”

라파엘의 목소리가 다소 잠겼다.

“⋯⋯하지만 내가 얼마나 헌신적으로 굴건, 그것과 상관없이 형의 눈은 끝내 나아지지 않았어.”

강물은 도도하게 흐르고 있었다. 어찌할 수 없는 사건들의 흐름과도 비슷했다.

“형이 오른눈의 시력을 완전히 잃었던 날 울면서 사과했어요. 사춘기 때였던 것 같아요. 속 좋은 형은 용서해줬죠. 어떻게 그게 가능했나 몰라. 하지만 그의 눈이 돌아오는 법은 없었어요.”

아무리 형에게 잘해줘도, 아무리 형을 배려해도, 형에게 모든 것을 양보해도 형이 오른눈의 시력을 잃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가 저지른 죄악이고 씻겨나가지 않는, 확정된 과거다.

“그리고 내 죄의 증거는 계속해서 꼬리를 남기죠.”

펠리시아노는 이십 대 초반에 원인 불명의 고열로 죽었다.

라파엘은 아직까지도 형이 그때의 눈 감염 때문에 계속 열병의 잔재가 몸에 남아있었던 것은 아닌지 자책했다.

“그렇다고 이미 저질러 버렸으니 버린 몸이라고 치고 계속 형을 원망하고 형 때문에 난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자위하고 주변 사람에게 패악질을 부리며 사는 게 옳았을까요?”

라파엘은 그 뒤로 절대, 자기 기분에 경도되어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러기 위해서 타인과의 거리를 아주 멀게 둘지언정 말이다.

“전 그 일이 이후로 주변 사람에게 신경질을 내지 않겠다고 다짐했어요. 물론 다 지키진 못했을 거예요.”

그는 자주 아픈 편이었고, 컨디션이 떨어질 때 사람이 예민해지는 것까지 의지력으로 조절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큰 소리를 낸 적은 한 번도 없어요. 그 점에 대해서는 스스로에게 자부심을 지니고 있지요. 그렇지만.”

형이 살아돌아오지는 않는다.

“아직도 형에게 미안해요. 난 이렇게 죄책감을 곱씹으면서 살아가고 있을 뿐입니다. 난 사실 형제를 살해한 자가 아닐까?”

형제를 살해한 대표적인 자는 성황서에 나오는 농부 가인이다.

그는 질투심에 못 이겨 남동생을 죽인 후 공동체에서 추방당해 표식을 받고 광야를 헤매게 되었다.

“죗값을 치른 후에는 순결한 자가 될까요?”

“⋯⋯그렇지 않지요.”

농부 가인은 영원히 표식을 지닌 채 대대손손 살아야 한다. 아리아드네의 눈에 새삼 눈물이 차올랐다.

“죗값을 치러도 영원히 죄인이지요⋯⋯.”

그녀의 눈에서 맑은 눈물이 흘렀다. 그녀가 죽인 갈리코의 무고한 백성은 지금 이 순간에도 늘어나는 중이었다.

왼손, 아니 이제는 왼팔에 붉은 점이 늘어날 때마다 따끔거리는 것이 실시간으로 느껴졌다. 그녀가 지은 죄의 표식이었다.

라파엘은 부드럽게 아리아드네에게 말을 건넸다.

“그렇지만 아리. 천신님께서 죄를 지은 가인을 바로 죽이셨습니까?”

“⋯⋯아니요.”

“농부 가인은 결국 광야에 사람들이 살 수 있는 도시를 세웠습니다.”

죄인이 세운 도시였지만 그의 자손과 도시민들은 번성했다.

원래대로라면 광야에서 죽어갔을 사람들도 그 도시 안에서 안전을 확보하고 평안을 찾았을 것이다.

“인간은 죄를 지어요. 죄짓고 살아간다는 것이 인간이라는 생명체의 본질입니다. 우리는 깨끗해질 수 없습니다.”

이는 아리아드네로서는 절망적인 말이었다. 인간은 깨끗해질 수 없다.

그녀는 항상 자신이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비교군은 이사벨라, 체자레, 루크레치아였다.

그녀를 추동하는 힘은 이 도덕적 우월감이었다. 피해자로서, 자신은 가해자들을 단죄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런데 지금 살아서 이 땅에 서 있는 자들 중 가장 큰 죄인은 아리아드네, 자신이었다.

그 어떤 살인자보다도, 그 어떤 폭군보다도 나빴다.

죽을 운명이 아니었던 갈리코 왕국의 백성들을 만 단위로 도륙하고 있었으니까.

“내 죄를 항상 되새김질하며,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어제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되면 충분한 겁니다.”

아리아드네에게서 울음이 터져 나왔다. 흐느낌을 넘어 숫제 통곡이었다.

라파엘은 조용히 읊조렸다.

“나는 타인을 단죄하고 싶을 때 항상 나의 죄를 떠올려요. 나는 과연 깨끗한 자인가, 나는 저 사람에게 당당하게 돌을 던질 수 있는가. 많은 경우 아닙니다.”

그의 말소리는 마치 노래하는 것 같았다.

“그것이 나를 더 너그럽게 해 줘요. 저는 본성이 너그러운 자가 결코 아닌데, 좀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기반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리아드네의 울음은 멈추지 않았다. 라파엘은 떨리는 그녀의 등을 바라보았다.

오래 앉아있자니 강바람이 제법 매서웠다.

그녀의 등이 떨리는 것은 아마 추위 탓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도움이 크게 되지 않더라도, 뭐라도 더 해 주고 싶었다.

그는 자신의 외투를 벗어 아리아드네의 어깨 위에 한 겹 더 걸쳐 주었다.

“그리고 이건 성직자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 할 만한 말은 결코 아닙니다만.”

외투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고정 시켜주려고 했지만 등 뒤에서 껴안는 것 같은 모양새가 되어 버렸다.

“가끔 너무 버거울 땐 쉬어도 돼.”

라파엘은 다정하게 말했다. 이건 예비 성직자로서 하는 말이 아니었다.

“죄인이면 뭐 어때. 죄를 짓기 때문에 인간인 거고, 불완전하기 때문에 인간인 거고, 인간이기 때문에 살아 있는 거고.”

그의 마지막 말은 너무 낮고 작게 속삭여서 아리아드네에게 들렸을지 여부가 확실하지 않았다.

“⋯⋯살아 있는 거니까 아름다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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