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언니, 이번 생엔 내가 왕비야-228화 (228/733)

<제228화> 교활한 토끼의 역습

왕궁 파발꾼이 들고 나타난 국왕의 교지에 깜짝 놀란 것은 데 마레 추기경도 마찬가지였다.

‘벌써?’

추기경은 파발꾼을 옆으로 불러 세워서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캐묻고 싶었다.

하지만 국왕의 사절을 그렇게 대접할 수는 없었다.

파발꾼은 그 누구의 제지도 없이 일 도메스티코의 안내를 받아 데 마레 대저택의 현관에 들어섰다.

그의 뒤로는 유유히 걸어오는 국왕의 비서관인 델피아노사 경의 모습이 보였다.

델피아노사 경은 파발꾼으로부터 국왕의 교지를 건네받은 후 대리석 마루 정중앙에 자리를 잡았다.

기묘하도록 높고 좁은 데 마레 대저택의 중앙계단이 그 앞에 똬리를 틀고 용솟음쳤다.

아리아드네의 손바닥에는 땀이 돋았다. 델피아노사 경이 목청을 돋웠다.

“에트루스칸 왕국의 드높은 태양, 단 하나의 위엄이신 국왕 폐하의 말씀을 전합니다!”

가족들은 모두 계단 아래로 내려가 국왕의 교지 앞에서 공손히 예를 취했다.

델피아노사 경은 낭독을 시작했다.

“나, 레오 3세는 어려운 시절을 맞아 충실히 자기 몫을 다 해준 나의 신민(臣民)에게 치하를 건네고자 한다.”

데 마레 추기경은 국왕이 약속한 작위에 대해 이폴리토에게 따로 귀띔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머저리 천치 같은 아들 녀석은 지금 저 교지가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눈만 멀뚱멀뚱 뜨고 있었다.

그가 이폴리토에게 작위에 대해 미리 이야기하지 않은 것은, 처음에는 아들 머리에 바람이 들어갈까 봐서였다.

조만간 작위 수여가 있을 거라는 이야기를 이폴리토가 알아봤자 그 녀석이 기여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단기간에 공을 세우거나 할 수는 없었으니까.

다만 으스대고 다니기나 할 것이고, 제 어미 닮아서 입이 싼 녀석이라 괜히 사교계에 소문이나 퍼트리기에 십상이었다.

요새 역병 때문에 모임이 극도로 자제되는 상황이기는 했지만, 편지나 서신 교환 등을 통해 소문은 엄청나게 빠르게 퍼져나갔기 때문에 몸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게다가, 일주일 전의 사태가 있고 나서부터는 추기경은 진지하게 고민을 시작하게 되었다.

데 마레 추기경은 이폴리토를 사랑했기 때문에 아들에게 작위를 주려던 것이 아니었다.

물론 애정이 전혀 없었다면 거짓말이지만, 그는 집안을 지킬 가주에게 작위가 가기를 원했다.

당연하게도 홀랑 시집가면 그만일 딸보다는 가문에 영원토록 속해 있을 아들이 작위 수여의 적임자였다.

그러나 저번 주의 일이 있고 나서 추기경은 이폴리토가 훌륭한 가주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문제는, 대체재가 있느냐 하는 점이었다.

데 마레 추기경의 상념에도 불구하고 델피아노사 경의 낭독은 계속되었다.

“개 중 몇몇은 묵묵히 제자리를 지킨 미덕에 더해, 본인의 의무를 넘어선 국가에 대한 헌신을 보여주었다.”

아리아드네는 귀를 쫑긋 세웠다.

오늘 이 작위를 받을 자는 누구인가에 대해, 국왕의 교지에 사용된 단어 중에 그 힌트가 있을 것이다.

가문에 대한 치하가 계속된다면 이폴리토에게 작위가 수여될 것이고, 개인의 업적에 대해 치하를 한다면 아리아드네에게 작위가 수여될 것이다.

“데 마레 가문은 사재를 털어 빈민을 구휼하였고, 흑사병 방역에 대한 기준점을 만들어 이를 널리 퍼트렸으며, 이에 대한 이익을 취하지 않고 만민이 함께 공유할 수 있도록 나서 솔선수범하였다.”

알쏭달쏭했다.

본문은 어떻게 보아도 아리아드네가 했던 일을 나열하고 있었으나, 아리아드네 개인을 지칭하기보다는 데 마레 가문 자체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아리아드네는 땀이 찬 손바닥을 남몰래 드레스 자락에 닦았다.

‘⋯⋯.’

데 마레 추기경은 입술을 앙다물고 델피아노사 경을 노려보고 있는 차녀를 흘긋 바라보았다.

그의 자식 중 가장 뛰어난 아이를 한 명만 고르라면 단연코 아리아드네였다.

추기경도 그걸 부인할 생각은 없었다. 명징한 사실이었으니까.

빠른 판단력, 강철같은 추진력, 흔들리지 않는 부동심까지. 큰일을 해낼 아이였다.

아리아드네가 아들이었다면 추기경은 진작에 장남 이폴리토를 수도원에 처박아 성직자로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리아드네는 결국에는 남의 가문에 내줘야 할 아이였다.

설령 무리수를 두어 결혼시키지 않고 가문에 남겨 가주 역할을 시킨다고 치더라도, 무수히 많은 흔들려는 시도들이 들어올 것이고, 그중 대부분은 이폴리토와 이사벨라가 주축이 될 것이다.

아리아드네에게 작위를 주어 가주로 삼는 것은 그녀의 뛰어남과 별개로 분란의 넓고 곧은 길을 시작하는 일이었다.

아리아드네의 치하에서 가문은 번성할지 모른다. 그러나 가족은 산산이 쪼개진다.

그리고 아리아드네의 시대가 끝나면? 그다음 대는 도대체 누가 잇겠는가?

평생 혼자 살 아리아드네가 가주를 맡고, 이폴리토의 자식에게 차대 가주를 물려준다는 옵션이 있었지만 추기경은 그 선택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그의 차녀는 제 언니만큼은 아니지만 예쁘게 생겼고, 제 언니에게는 없는 독특한 매력이 있었으며, 자연히 쫓아다니는 총각들도 많았다.

지금은 사그라든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왕자와도 연결고리가 있었고, 최근에는 피사노 공작이 풀방구리에 쥐 드나들 듯이 데 마레 저택을 방문하는 데다가, 발데사르의 후계자도 눈치가 심상치 않아 보였다.

과연 저 아이가 그렇게나 많은 선택권을 뒤로 하고 가문을 위해서 평생 혼자서 살려고 들까?

데 마레 가문이 오늘 작위를 받는 것은 국왕이 심술을 부렸다면 자작가, 기껏해야 백작가일 것이다.

저 셋 중 누구에게 시집을 가더라도 오늘 그들이 수여받을 작위보다 높았다.

결국 아리아드네에게 작위를 주는 것은 무슨 무슨 공작가나 무슨 무슨 후작가가 보유하고 있는 긴 작위 리스트에 이름 하나를 더해주는 결과가 되지 않을까?

‘후⋯⋯.’

한숨이 깊어져만 갔다.

게다가 추기경은 아리아드네의 성품에 관해서는 자신이 없었다.

자신을 꼭 닮은 아이였다. 뛰어난 만큼 엄정했다. 스스로에 대한 기준치가 높은 만큼 타인에 대한 기대치도 높았다.

한마디로, 능력은 뛰어나되 덕은 그만치 미치지 못했다.

아리아드네가 가주가 된다면 자신에게 도전하는 이폴리토를 과연 살려둘까? 추기경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폴리토가 가주가 된다면 아리아드네만큼 가문을 잘 꾸려나가진 못할 것이다.

그는 자기 아들의 역량과 한계를 아주 잘 알았다.

현상 유지만 한다 해도 다행이고, 말아먹을 가능성도 충분했다.

하지만 그건 본인이 오래 살면 된다.

며느리를 좋은 아이로 맞아들이고, 자신이 최대한 오래 방향타를 잡고 현명한 며느리에게 권한을 분산시켜서 아들놈의 폭주를 막고, 똘똘한 손주가 태어나기를 하늘에 빌어볼 수 있다.

게다가 이사벨라는 제 여동생과는 다른 의미로 똘똘한 아이였다.

생각이 짧기는 해도 영악해서 어디 가서 손해를 보지는 않았고, 미모가 말도 안 되게 뛰어나니 괜찮은 혼처를 잡을 수 있었다.

제 오라비에게 작위까지 수여된다면 더더욱 좋은 집에 시집갈 수 있다.

이사벨라가 든든한 남편과 시댁을 잡아 제 오라비를 지원해 준다면 데 마레 가문은 어떻게든 버틸 수 있을 것이다.

아리아드네가 가주가 된다면, 이사벨라의 성질머리로 보아선 제 친정을 공격이나 안 하면 다행이었다.

추기경은 대충 이렇게 생각 정리를 끝냈다.

그런데 문제는, 그간 루크레치아와 이폴리토에 대해 고민해보느라 그는 일주일을 모두 허비했고, 지금 델피아노사 경이 앞에 나타나서 국왕의 교지를 읽고 있는 지금에야 마음을 정했다는 점이었다.

즉, 추기경은 레오 3세에게 ‘어느 자식에게 작위를 내려달라’라고 요청을 보낸 적이 없었다!

국왕이 제 마음대로 교지를 내린 것이다!

델피아노사 경의 낭독은 계속되었다.

“이는 우리 왕국의 큰 홍복이며⋯⋯.”

데 마레 추기경과 아리아드네는 현재 서로 완전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끝없이 이어지는 알맹이 없는 내용에 부녀는 최소한 한 가지의 의견일치만은 볼 수 있었다.

‘제발, 결론 좀!’

“이러한 충신을 가진 왕국은 영원토록 번성할 것이니⋯⋯.”

‘신하가 잘하면 뭘 해! 당신이 잘해야지!’

‘혓바닥 한번 진짜 기네.’

“⋯⋯그리하여 짐, 레오 3세는, 에트루스칸 왕국의 충신인 데 마레 가문에 다음과 같은 직분을 내린다.”

본론이다.

데 마레 추기경과 아리아드네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런데 명민한 둘은 바로 어딘가 이상한 점을 느꼈다.

‘잠깐만, ‘직분’?’

‘‘작위’가 아니라 ‘직분’을 내린다고?’

그러나 위화감은 잠시였다.

“에트루스칸 왕국의 국왕인 짐 레오 3세는, 데 마레 가문의 아리아드네 데 마레에게⋯⋯.”

“!”

“!”

“!”

아리아드네는 허공에 승리의 주먹질을 할 뻔했다.

이제야 저게 무슨 내용의 교지인지 깨달은 이폴리토는 가늘고 긴 눈이 주먹만 하게 커진 채로 여동생을 홱 돌아보았다.

입은 멍청하게 벌린 채였다.

데 마레 추기경만 겉으로 드러나는 동요 없이 국왕의 교지를 들고 있는 델피아노사 경을 주시했다.

그러나 델피아노사 경의 다음 단어는 그 침착한 데 마레 추기경마저도 표정을 구기게 만들었다.

“⋯⋯랑부예 구휼원장 자리를 하사한다.”

‘랑부예 구휼원장?!’

‘당했구나!’

얼빠진 표정의 아버지와 딸이 서로 시선을 마주쳤다.

랑부예 구휼원장의 자리는 득보다 실이 큰 자리였다.

정식 작위도 아닌 주제에, 책임은 무궁했고 권한은 없었다.

아리아드네 개인에게 랑부예 구휼원장 자리를 수여해 버림으로써, 국왕은 랑부예 구휼원에 식량을 댈 일차적인 의무를 아리아드네 개인에게 넘겨 버린 셈이었다!

‘내가 거절을 한 것을 이렇게 덮어씌우나!’

레오 3세가 랑부예 구휼원을 성황청에서 맡아달라던 부탁을 한달음에 거절하고 나온 데 마레 추기경은 이를 갈았다.

델피아노사 경은 짐짓 모르는 척 아리아드네를 호명했다.

“본인은 앞으로 나와 감사한 마음으로 교지와 하사품을 받드시오.”

아리아드네 역시, 감사한 마음은커녕 대거리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국왕의 교지를 가지고 온 국왕의 비서관에게 그런 짓을 하면 국왕 모독죄로 끌려가고도 남았다.

그녀는 입 안쪽의 피부를 깨문 채 앞으로 나서서, 한쪽 무릎을 바닥에 꿇고 한쪽 무릎은 세운 채로 고개를 깊숙이 숙였다.

“에트루스칸 왕국의 신민, 아리아드네 데 마레, 국왕 폐하의 은혜를 받잡습니다.”

델피아노사 경은 왕국의 홍복, 국왕의 은혜, 나라의 번영 같은 뻔한 이야기를 반복하며 아리아드네에게 그녀를 랑부예 구휼원장으로 임명하는 교지를 건네고, 작은 상자 하나를 내밀었다.

“열어 보시오.”

그녀는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조그만 은으로 만든 브로치가 있었다.

“랑부예 구휼원장의 징표입니다. 구휼원장은 현안이 있을 때 국왕 폐하께 알현을 청할 권한이 있고, ‘확장된 큐리아 레지스’를 열 때 참석할 의무가 있습니다.”

헛웃음이 나왔다.

애매한 권한이었다.

‘큐리아 레지스’는 국왕의 내각이었는데, 중요한 일들은 주로 큐리아 레지스 내에서도 더 소규모로 지체 높은 자들을 모은 ‘레서 큐리아 레지스’에서 모두 처리되었다.

‘확장된 큐리아 레지스’는 국왕의 일상적인 내각을 넘어서서, 신료들을 모두 모을 때에야 열리는 기관이었다.

일 년에 한두 번이나 열릴까, 표결권이나 발언권보다는 그저 일방적으로 선언을 듣는 일이 더 많은 자리였다.

국왕의 알현도 마찬가지였다. 무조건적인 알현권이 아니라 ‘알현을 청할’ 권리라니, 애매하기 짝이 없었다.

그녀는 무너지려는 태도를 갈무리하고 공손하게 다시금 예를 취했다.

“에트루스칸 왕국의 신민, 아리아드네 데 마레. 랑부예 구휼원장으로서 성심을 다해 임무를 수행하고 국왕 폐하를 보필하겠나이다.”

“국왕께서도 큰 기대를 하고 계십니다. 앞으로도 지금까지처럼 훌륭한 역할 기대합니다.”

의례적인 덕담을 건넨 다음에는 델피아노사 경은 곧장 돌아갈 채비를 했다.

데 마레 추기경은 본인의 능력이 출중하다기보다는 국왕의 비위를 잘 맞추는 델피아노사 경과 친분이 깊거나 성격이 잘 맞는 편은 아니었지만, 이런 날 친한 척을 해야지 언제 하겠는가.

추기경은 얼른 가까이 다가서서 델피아노사 경에게 말을 건넸다.

“델피아노사 경.”

국왕의 비서관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말하지 않아도 데 마레 추기경이 왜 자신에게 말을 걸었는지 알겠다는 표정이었다.

“너무 걱정 마십시오. 따님께 곧 좋은 소식이 있을 예정입니다.”

데 마레 추기경의 뇌가 핑글핑글 돌아갔다.

걱정하지 말라는 걸 보니 작위는 주긴 준다는 이야기이군? 그런데 따님? 결국 작위를 수여받을 대상은 아리아드네라는 거지?

델피아노사 경은 말을 이었다.

“폐하께서 후하게 내리실 생각 중이십니다. 몸가짐을 단정히 하고 기다리시지요.”

몸가짐 이야기는 왜 나와? 작위를 받는데 목욕재계까지 하고 기다려야 해? 진짜 치사하게 구네.

추기경은 목소리를 낮추어 항의했다.

“델피아노사 경께서는 대강의 내막을 아십니까? 이런 일을 저와 상의도 없이 진행하시면 어떡합니까!”

체자레 데 카를로의 혈통을 조작해주는 대가로 작위를 받기로 한 거래에 대해서 알고 있느냐는 물음이었다.

차마 자기 입으로 누설할 수는 없었기에 이렇게 물었다.

하지만 델피아노사 경이 국왕에게 귀띔 받은 사실이 있다면 알아들을 수 있을 것이다.

멀쩡하게 아들이 있는 집에 가주와 상의도 없이 그 딸에게 작위를 내린다니, 국왕의 일처리가 심히 부당했다.

“그 부분에 있어서는 국왕 폐하께서도 미안하게 생각하시고 계십니다.”

델피아노사 경은 곤란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후하게 내리실 겁니다. 데 마레 가문 입장에서도 손해는 결코 아니니, 국왕 폐하를 믿고 기다리세요.”

“대충 언제쯤 결과가 나오겠습니까?”

“글쎄요? 올해가 지나기 전? 정확한 날짜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산 넘어 산이었다. 델피아노사 경을 이대로 보낼 수 없었던 추기경은 그에게 재차 물었다.

“폐하의 알현 신청을 하면 받아들여지겠습니까?”

국왕의 비서관은 애매하게 상냥하고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요새 역병이 기승이지 않습니까. 폐하께서 외부인의 알현은 가급적 지양하고 계십니다. 당분간은 어려울 것 같군요.”

주는 대로 받아먹으라는 이야기였다.

데 마레 추기경은 주먹을 꽉 쥐었다가, 힘을 풀었다.

사실, 작위를 못난 아들에게 줘야 할지, 뛰어난 딸에게 줘야 할지 여부는 그마저도 막판에야 마음을 정할 정도로 어려웠던 결정이었다.

차라리 이렇게 외부에서 알아서 결정해주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데 마레 추기경은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저는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시국이 하 흉흉한데 건강 조심하십시오.”

“어려운 발걸음 감사합니다. 조심해서 돌아가시지요.”

데 마레 추기경은 저택을 떠나는 델피아노사 경을 마차까지 바래다주며 마음 정리를 했다.

하지만 그는 당분간 이 사실을 아리아드네에게 전달하지는 않기로 했다.

일단 이폴리토의 마음을 도닥이는 게 먼저였기 때문이다.

아리아드네에게 못난 오빠가 덤비는 걸 봐주라고 설득하기보다는 이폴리토에게 여동생에게 덤비지 말라고 설득하는 게 더 쉬울 것 같았다.

그런데, 그거라고 쉬울까? 데 마레 추기경은 이번에는 좀 더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 * *

몇 주 전, 팔라지오 카를로.

아리아드네 데 마레에게 곡식을 빼앗으려다가 8만 두카토 어치를 강매당하고, 그 아비인 데 마레 추기경을 불러와서 어르다가 채무 이행이나 하라는 일침을 당한 후, 레오 3세는 델피아노사 경을 불러 자신의 구상을 털어놓았다.

“이봐, 자네. 이 아이디어 어떤가 한번 들어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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