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3화> 그릇된 해석 (1)
체자레의 에스코트를 받아 무도회장을 가로지르면서 아리아드네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그녀는 사실 이사벨라의 발언 중 걱정되는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다.
- “증거가 있어요!”
- “아, 혹시 일기장이라도 훔쳐보셨나?”
아리아드네는 따로 일기를 쓰는 편은 아니었다.
그녀에게는 장부와 업무처리용으로 오가는 편지들이 일기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굳이 일반적인 의미의 일기장에 가까운 것을 찾자면 알폰소에게 쓰는 편지가 그녀의 내밀한 감정들을 드러내는 일기장일 것이다.
그리고 최근의 것들은 부치지 못했다.
절반 정도는 답이 없는 편지를 보내는 것에 지쳤기 때문이었지만, 나머지 절반은 아리아드네의 문제였다.
그간 그녀는 체자레에게 흔들릴 때마다 그 심경을 곧이곧대로 편지에 적었다. 일종의 고해성사와 같은 것이었다.
「사랑하는 알폰소에게.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하면 넌 믿지 않을 거야!
레오 3세 폐하께서 날 계비(繼妃)로 책봉하려고 하셨어! 체자레 공작이 칼을 들고 왕궁으로 쳐들어가서 간신히 멈추게 했대.
계비 책봉이 피사노 공작의 약혼녀 책봉으로 바뀌었어. 이건 도대체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체자레 공작이 왜 그런 짓을 했는지는⋯⋯. 글쎄, 이해하기 힘들어. 하지만 정말, 덕분에 위기에서 벗어난 건 사실이야.
폐하는 아마 체자레 공작을 가만 두지 않으실 텐데, 미안하기도 하고⋯⋯. 복잡한 심정이야. (후략)
1123년 12월 3일,
당신의 아리아드네.」
「사랑하는 알폰소에게.
오늘의 난 너에게 이런 수식어를 붙일 자격조차 없네. 나는 형편없고, 신의 없는 쓰레기야.
체자레가 입을 맞췄어. 나는 거부하지 않았어. 널 두고, 내가 어떻게 그런 짓을 했을까.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을까. 부슬비 속에서 도대체 나는 무슨 짓을 한 걸까.
1123년 1월 11일.」
「알폰소.
시간이 많이 지난 것 같지도 않은데. 풍화되는 기억이 무서워.
아니, 사실 잊고 싶은 마음도 큰 것 같아. 너는 왜 답장을 하지 않을까? 나를 잊은 걸까?
머리로는 항상 생각하고 있어. 바닷길에 뭔가 문제가 있는 거라고. 편지가 오가는 루트에 문제가 생긴 거라고.
하지만 금화는 정상적으로 전달되는데, 편지는 한 통도 돌아오지 않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불안해지고, 안 좋은 생각이 고개를 쳐들어. 알폰소는 나를 잊었다.
내가 보내는 군자금으로, 사막의 무희나 전장의 여기사와 새로운 여정을 시작해 버렸다.
아니, 차라리 딴 여자라도 있었으면 좋겠어.
외부 유혹이 없이 그냥 나에게 오롯이 질린 걸까? 나에게 실망한 걸까? 그렇지만 실망했어도 내가 할 말은 없지. 실망할만한 짓을 했으니까.
마음속에서 악마가 속삭여. 버림받기 전에 네가 먼저 버리라고.
그리고 악마는 사람의 옷을 입고 나에게 다가와. 너무 익숙하고, 달콤한 모습으로.
쳐낸다고 쳐내고 있어. 그렇지만 정말, 난 그걸로 내 몫을 다 한 건지 확신이 없네.
1123년 3월 2일.
신의롭지 못한.」
“아리?”
아리아드네의 상념은 듣기 좋은 테너 톤의 목소리로 인해 깨졌다.
‘백합의 방’에서 2년째 알폰소의 생각을 했지만 지금 그녀의 옆자리에서 그녀를 에스코트하고 있는 남자는 황금의 왕자님이 아닌 타오르는 적발의 공작이었다.
“무슨 생각해?”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렇게밖에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냥, 좀 피곤해서.”
“하긴, 피곤할 만도 하지.”
아무것도 모르는 체자레는 청량하게 웃었다. 이사벨라와의 대거리는 그에게도 피곤했다.
“어머니께서 내주신 방으로 가자. 바로 근처야.”
‘백합의 방’에서 이어진 긴 회랑을 지나면 파우더룸이나 손님들의 간이 쉼터로 쓸 수 있을 만한 작은 방들이 모여 있었다.
단독 방을 배정받는 건 파티의 주최자와 각별한 사이라는 인증이었기 때문에 큰 영광이었고, 방을 배정받은 사람들은 삼삼오오 자기 무리를 거느리고 앉을 자리를 내주며 시혜를 베풀었다.
거기 끼지 못했거나 주변부에 있는 자들은 복도 앞에 서서 혹시나 운이 좋아 즉흥적으로 불러 주길 기대하거나, 사람 구경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피처럼 타오르는 붉은 예복을 맞춰 입은 한 쌍이 복도에 나타나자 작은 탄성들이 터졌다.
- “세상에! 체자레 공작이야!”
- “옆에는 데 마레 백작이네!”
- “이렇게 가까이서 볼 줄이야!”
체자레는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여유만만한 미소로 아는 체를 하고는, 아리아드네의 손을 잡고 자신에게 배정된—정확하게는 어머니의 팔목을 비틀어 받아낸—가장 크고 좋은 방으로 안내했다.
“아가씨, 안으로.”
다른 사람들 같으면 적어도 8-9명이 함께 쓸 방이었다.
단둘이서만 한 공간으로 들어가는 것을 본 사람들에게서 탄성이 터졌다.
- “이 무도회에서 저런 호사를 누리는 건 저 둘밖에 없을 거예요!”
- “발코니와 정원을 헤매는 커플들이 보면 울겠네, 울겠어.”
- “그런데 저 둘 말고 저렇게 기세등등하게 지낼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 “그건 그래요.”
정식으로 인정받은 왕실 가족이자 실세인 어머니를 둔 북부 공작과, 그의 공식적인 약혼자다.
태클을 걸 사람이라고는 없는 완벽한 상황이다.
체자레는 방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문을 닫았다.
- 달칵.
외부 소음이 차단되고, 아름다운 실내가 비로소 눈에 들어왔다.
벽에 걸린 태피스트리, 생화로 장식된 테이블과 협탁, 길고 섬세한 비단 소파와 한쪽 구석에 크게 놓인 침대, 그리고 그 침대를 가린 휘장.
체자레는 방에 들어가자마자 소파에 털썩 앉아 월계수와 사슴 문양 자수가 놓인 망토와 장갑을 벗었다.
“후, 은근히 신경 쓰이네, 이거.”
왕가의 문장은 아무래도 그 무게가 있는 법이다.
체자레는 그 문장을 가지고 싶어 안달 내던 시절에서 벗어나 점차 철이 들어가는 중이었다.
방 안에는 벽난로가 타닥타닥 타오르고 있었다.
벽난로를 때기엔 약간 지난 계절이었지만, 체자레가 특별히 부탁해서 급하게 피워 놓은 것이다.
아리아드네는 장갑을 낄 계절이 끝나가는데도 절대로 손에 낀 장갑을 벗지 않았다.
자연히, 망토라던가 외투 등 장갑에 어울릴만한 겨울 의류도 꼬박꼬박 챙겨 입었다.
체자레는 아리아드네가 건강이 좋지 않아 추위를 많이 타는 게 아닌가,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무릇 카사노바라면 여자분의 상태를 항시 세심히 살펴야 하는 법이다.
체자레는 아리아드네에게 권했다.
“아리, 편하게 있어. 그러라고 얻은 공간이야.”
아리아드네는 기껍게 웃었지만, 끝내 장갑을 벗지 않았다.
방 안에는 마실 거리며 핑거 푸드가 이미 다 차려져 있었다. 긴장이 풀린 체자레는 과실주 한 잔을 집어 들었다.
“마셔도 되지? 무도회잖아.”
아리아드네가 자신이 술 마시는 것을 싫어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체자레는 그녀에게 미리 허락을 구했다.
아리아드네는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가 복잡해서 체자레와 실랑이하고 싶지 않았다.
체자레 역시, 이런저런 생각으로 마음이 번잡했다.
그는 과실주를 단숨에 마시고는, 입 밖에 낼까 말까 했던 질문을 간신히 참았다.
그런 질문을 대놓고 하기엔 충분히 취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그녀를 불렀다.
“아리, 이리 와.”
긴 장의자 옆에서 벽난로가 타오르고 있었다. 그녀는 체자레 옆으로 자리를 옮기며 가볍게 투덜거렸다.
“여기 덥잖아요. 벽난로 바로 옆이야.”
“아가씨, 추워하는 거 아니었어?”
체자레는 반문했다.
“그래서 벽난로 일부러 따로 부탁한 건데.”
그는 옆으로 자리를 옮긴 아리아드네가 어깨에 걸치고 있던 얇은 숄을 벗겨 의자 난간에 걸었다.
그가 고심해서 고른, 피처럼 붉은 드레스가 드러났다.
“더우면, 벗으면 되지.”
상의가 겹겹이 튤립처럼 겹쳐진 드레스였다.
파틀렛*만 세 겹에, 그 안에 입은 슈미즈에 코르피케*와 로브*까지 합치면 숄을 제외하더라도 아리아드네가 걸친 옷은 여섯 겹이 넘었다.
그는 조용히 그녀를 주시하다가, 첫 번째 파틀렛을 입술로 물어 벗겨냈다.
레이스로 만든 얇은 파틀렛은 원래 그러라고 만들어진 양, 별 저항 없이 사뿐하게 벗겨졌다.
“아.”
아리아드네는 체자레를 올려다보았다. 약간은 당황한, 약간은 항의하는 눈초리였다.
하지만 체자레는 매끄러운 입맞춤으로 그녀의 항변을 막았다.
“쉿.”
붉은 입술이 짓쳐 들어왔다. 그의 입술을 말캉했고, 평소보다도 온도가 조금 더 높았다.
조금 전에 들이킨 과실주의 달짝지근한 청량함이 감돌았다.
그의 입술이 아리아드네의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가운데, 오른손은 목적에 충실하게 움직여 두 번째 파틀렛을 벗겨냈다.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체자레의 손을 밀어내려고 했지만, 그의 입맞춤이 집요하게 그녀를 쫓아왔다.
잠깐 숨 쉴 틈을 내준 사이, 체자레가 입술 사이로 한숨 쉬듯이 속삭였다.
“생각하지 마.”
그의 숨결이 그녀의 귓불과 목덜미를 간지럽혔다.
“우린 결혼할 거고, 당신은 내 아내가 될 거고, 피사노 영지의 안주인이 될 거야.”
이번 생에서는 처음 듣는 다짐이었다.하지만 전생의 체자레가 숨쉬듯이 남발했던 공수표이기도 했다.
아리아드네는 조심스레 체자레를 밀어냈다. 본인조차 망설이는, 자신 없는 손길이었지만, 거절은 거절이었다.
“⋯⋯이러지 말아요.”
하지만 평소였다면 이 정도에서 순순히 물러났었을 체자레는 오늘만큼은 끈질겼다.
잊고 있었던 배다른 동생, 알폰소 왕자의 이야기 때문이었을는지도 모른다.
이사벨라 앞에서는 허튼소리 하지 말라며 그저 웃어넘겼다.
하지만 한 번 고개를 쳐든 불안감은 혼자서는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는 확신을 얻고 싶었다.
“⋯⋯아리, 날 사랑해?”
아리아드네는 대답하지 못했다.
“⋯⋯.”
체온과 체온이 맞닿은, 고혹적이기 짝이 없던 분위기에 죽음과도 같은 침묵이 찾아들었다.
체자레는 표정을 유지하려고 노력했지만 아리아드네는 물빛 눈동자에 깃드는 실망, 아니 절망을 감지했다.
존재 자체가 무너질 것만 같은, 연약하기 짝이 없는 영혼의 낙담.
그녀는 도저히 그 눈빛을 외면할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사랑한다고 답할 수 있는 사항도 아니었다.
그래서 대신 그녀는 체자레의 전략을 답습했다. 그의 입을 입술로 막아 더 이상의 발언을 끊어 버린 것이다.
“하⋯⋯!”
전례 없이 적극적인 그녀의 돌진에 체자레는 속절없이 무너졌다.
그의 머리가 새하얘지며 일체의 생각이 날아갔다. 그는 그녀의 입술을 정신없이 탐닉하기 시작했다.
“읍⋯⋯!”
농밀한 무드가 방 안을 가득 메웠다. 체자레는 저돌적으로 아리아드네를 탐했다.
그가 열중하는 것은 키스뿐만이 아니었다.
입술과 입술이 열정적으로 서로 만나는 동안 세 번째 파틀렛이 슥, 코르피케 위로 사라졌다.
마지막 보호막까지 벗겨낸 체자레는 오른손으로 코르피케를 고정시킨 단추를 찾아 그녀의 옆선을 더듬었다.
그는 잠시 입술을 떼어낸 채 아리아드네를 내려다보았다.
파틀렛 하나 없이 코르피케만 걸친 채 체자레를 올려다보는 아리아드네는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장의자에 밀쳐 눕혀져 중력에 의해 코르피케 위로 몰린 가슴팍은 몹시 아름다웠다.
그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영원히 독점하고 싶었다.
“⋯⋯알폰소 따위 잊어. 내가 행복하게 해 줄게.”
그가 재차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사랑해.”
아리아드네는 장의자에 누운 채 체자레를 올려다보았다. 현재와 과거가 교차하고 있었다.
과거의 체자레는 약혼녀에 불과했던 아리아드네를 손쉽게 굴복시켰었다.
그의 집에서 살고 있고 부모 형제 중 믿을 사람이라고는 없었던 전생의 어린 아리아드네는 매끈한 체자레의 손길에 속수무책이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스스로를 완전히 내주고 말았다.
그때의 악몽이 순간 아리아드네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당시의 체자레와 지금의 체자레가 그녀를 대하는 태도는 완전히 달랐다.
그는 왼손으로 그녀의 머리카락과 목덜미를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너와 같은 집에서 살고, 너를 내 옆에 세우고, 네가 내 아이를 낳아주었으면 좋겠어.”
피임풀을 씹으라고 강요했던 체자레, 언제나 한 걸음 뒤에서 따라오라고 윽박질렀던 체자레, 얼굴은 못생겼고 볼 거라고는 몸매밖에 없는 너에게는 내가 아깝다던 체자레.
정말로 그는 이제 없다고 생각해도 좋은 걸까.
코르피케의 단추가 두 개 더 풀렸다.
“체자레, 이건⋯⋯.”
자신을 지킬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아리아드네가 체자레의 오른손을 밀어내며 호소했다. 두려움에 약간의 눈물이 맺혀 있었다.
“나는 아직⋯⋯.”
체자레는 장의자에 비스듬히 누운 아리아드네의 위에 반쯤 올라타다시피 한 자세로, 위에서 한참을 물끄러미 그녀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지금의 아리아드네는 한 마리 작은 아기 새 같았다.
무력했고, 전적으로 그의 자비에 맡겨져 있었으며, 가녀리고 아름다웠다.
힘으로 제압하려면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이다.
아리아드네가 재차, 이번에는 두 손으로 체자레의 손길을 밀어냈다. 애달픈 표정이었다.
“이건 조금⋯⋯.”
체자레는 내면의 못난 놈과 치열하게 싸웠다. 그는 정말로 아리아드네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알폰소와는 어디까지 갔느냐고, 그놈에게는 어디까지 허락했느냐고.
다른 남자 따위는 발치의 돌멩이만큼도 신경 쓰지 않는 체자레였지만 단 한 명, 알폰소만큼은 신경이 쓰여 미칠 것만 같았다.
그녀를 밀어붙이고 그녀를 정복하고 그녀가 반항한다면 외치고 싶었다.
걔한테는 허락했느냐고, 날 사랑한다면 백기를 들고 성문을 열라고.
“제발⋯⋯.”
그녀의 촉촉하게 젖은 눈매가 체자레의 시선을 쫓았다.
속눈썹은 약간의 눈물로 젖어 있었고 녹색 눈은 두려움 탓인지 동공이 확대되어 평소보다 아기처럼 보였다.
“아리⋯⋯.”
⋯⋯그는 결국 자기 안의 못난 욕망과 싸워서 이겼다.
그는 마른 침을 삼키며, 아리아드네의 코르피케를 마저 벗기는 대신 자신의 손길을 막고 있는 아리아드네의 장갑 낀 손을 잡았다.
그녀는 흥분과 긴장, 둘 중 어느 것인지 모를 감정으로 인해 목덜미와 얼굴까지 붉어져 있었다.
체자레는 그녀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오늘은 여기까지, 라는 의미였지만 아리아드네는 추가적인 신체접촉에 놀라 화들짝 떨었다.
자신을 무서워하는 그녀에게 체자레는 약간의 참담함을 느꼈다.
내가 뭘 했길래, 이렇게까지 두려워하는 거지? 순전히 그녀가 처음이라서?
체자레는 이제껏 수많은 여자와 만나왔다. 그 중엔 유부녀도 있었지만 처녀도 셀 수 없이 많았다.
하지만 이런 반응을 보이는 여자는 단연코 그녀가 처음이었다.
그렇다면, 자신의 악명 때문에? ⋯⋯그게, 그럴 정도였어?
체자레는 내심 뭐가 문제였을지 고민하며 아리아드네의 코르피케 대신 왼손부터 왼쪽 팔꿈치까지를 가리고 있는 붉은 실크 장갑을 잡아당겼다.
아리아드네의 얼굴이 순간 창백해졌다.
그는 자기 혼자만의 생각에 빠진 탓에 그녀의 기색을 알아채지 못하고 말했다.
“오늘은 더 안 건드릴게. 장갑 벗고 편하게 있어. 덥다며.”
그의 말과 그녀의 쨍한 비명이 동시에 교차했다.
“건드리지 말아요!”
체자레는 순간 되물었다. 코르피케도 아니고, 장갑에 이렇게 화를 낸다고?
“뭐라고?”
그리고 그는 관성으로 장갑을 계속 당기고 있었다. 아리아드네의 말을 납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왼손 장갑이 반 넘게 벗겨져서 팔꿈치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 짝!!
체자레의 눈앞에서 불똥이 튀겼다. 따귀를 맞은 것이다.
* 파틀렛: 넓게 파인 스퀘어 네크라인을 가리기 위해 가슴과 목을 가리는 가슴가리개
* 코르피케: 코르셋의 일종으로, 몸통 전체를 지탱하는 상체에 입는 옷
* 로브: 14세기 후반 내지 15세기 초반에 여자들이 입었던 드레스의 가장 겉옷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