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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이번 생엔 내가 왕비야-295화 (295/733)

<제295화> 이사벨라의 기분 나쁜 오후

“⋯⋯저기, 이사벨라.”

콘타리니 저택에 콘타리니 백작부인의 친구로서는 첫 초대를 받은 레티시아 데 레오나티 자작 영애가 조심스레 지적했다.

“⋯⋯일단 네가 산탄젤로 수녀원에서 나온 건 아무도 모르고.”

“아.”

“콘타리니 백작 부부를 초대하기에는.”

아무래도 약간의 문제가 있다.

“카멜리아가 전 콘타리니 백작부인 후보였기 때문에.”

“아.”

“그런 일만 없었으면 당연히 초대했겠지. 누가 이사벨라 없는 파티를 열고 싶겠어. 그렇지만⋯⋯. 네가 생각해도⋯⋯. 그렇지?”

레티시아의 지적은 이사벨라의 비위를 맞춰주기 위한 알랑방귀와 ‘너라면 부르겠냐?’라는 마음의 소리가 합쳐진, 아부도 아니고 비아냥도 아닌 괴이쩍은 무엇이었다.

하지만 이사벨라는 대충 알아들었다.

“아.”

“게다가, 네가 수녀원 나온 걸 알았다손 치더라도, 너를 초대하게 되면 부부동반으로 초대해야 할 텐데. 그러면 현 남편 앞에 전 약혼남을 보여주게 되는 꼴이잖아. 그러고서 남편이랑 어떻게 사니?”

그것과 별개로 카멜리아는 이사벨라라면 그림자라도 씹어 먹고 싶어 할 테니 초대손님 리스트에 올렸을 리가 만무하지만 굳이 그것까지 지적하지는 않았다.

이사벨라는 입술을 부루퉁하게 내밀었다.

산 카를로에서 가장 주목받는 결혼식에 내가 못 간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이젠 콘타리니 백작부인까지 되었는데 말이다.

“파티에 가고 싶다고!”

이사벨라는 부른 배를 감싸 안고 소파에 길게 뻗었다. 슬슬 정말로 막달이 다가와 거동이 힘들어졌지만 좀이 쑤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유배 생활 지긋지긋하다고!”

레티시아는 임산부는 집에서 가만히 몸조리하라는 조언이 턱도 없을 것을 깨닫고 대신 절충안을 권했다.

“그럼, 너무 집에만 있지 말고 살살 사교계 활동을 해 보는 건 어때?”

지금 밖에는 오타비오가 결혼했다는 소문은 파다했으나 그 부인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 베일에 싸인 콘타리니 백작부인이 체자레 공작과 그 사달을 내고 수도원으로 쫓겨났던 이사벨라 데 마레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오타비오의 새 부인과 교류를 사양하는 사람이 꽤 있을 것이지만, 현재 상황에서 내각에 입성한 젊은 콘타리니 백작의 부인이라고만 하면 초대장은 꽤나 들어올 거였다.

“티파티라거나, 너무 오래 걸리지도 않고 앉아 있을 수 있는 거 말이야.”

“⋯⋯그런 거라도 해야 할까?”

이사벨라가 마지못해 대답했다.

그녀는 기왕 ‘콘타리니 백작부인’이 누구인지 알려지지 않은 거, 시시하게 티파티 같은 것 말고 좀 더 큰 석상에서 화려하게 등장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초연하는 오페라 극장에서라던가, 왕궁 무도회에서라던가 등등. 새로 얻은 무어인 칼잡이를 호위기사로 데리고 가면 진짜 끝내줄 텐데.

“그래. 몸조심해야지. 아기가 있는데.”

이사벨라는 원망스러운 눈으로 불뚝한 자기의 배를 내려다보았다. 이것만 없었어도 내가 지금 얼마나 즐기고 있을 수 있었는데!

그 배 속에 든 것이 그녀를 수녀원에서 구해줬다는 자각은 온데간데없었다.

* * *

예전에 루비나 공작부인이 오타비오에게 언급했던, ‘조만간 나에게 생길, 젊은 부인의 조력을 받을 일’은 사실 타란토 공녀 비앙카의 데뷔탕트 파티 준비였다.

비앙카 공녀의 후견인 역할을 루비나 공작부인이 맡아, 파티 준비와 그 파티에서의 샤프롱 역할까지 그녀가 총괄하게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원래는 비앙카 공녀의 어머니가 했었어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공녀의 양 부모님이 모두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비앙카 공녀에게는 큰아버지 레오 3세의 실질적 안사람인 루비나 공작부인 외에는 그 일을 맡아줄 마땅한 여자 어른이 없었다.

“그 중대차한 일을 ‘그 여자’에게 맡긴다니, 그게 말이나 됩니까!”

꼬장꼬장한 목소리가 타란토 성 구석에 있는 좁은 집무실을 쩌렁쩌렁 울렸다.

이곳은 가주의 부재로 인한 일상 업무를 대신 처리하는 젊은 겐나로소 자작의 집무실이었다.

“아니, 시릴라. 너무 그렇게 화내면서 말하지는 말아 주세요.”

겐나로소 자작이 빌다시피 애원하는 상대는 지아넬리 남작부인으로, 비앙카 공녀의 유모이자 이 타란토 성의 실세 중의 실세였다.

“이게 우리가 누구를 시켜 달라고 상대방을 지정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잖아요?”

겐나로소 자작은 지아넬리 남작부인을 설득하려고 노력했다.

“루비나 공작부인이면 수도에 오래 계셨으니 아무래도 유행 같은 것도 잘 아실 거고, 으레 우리 공녀님한테 잘 어울리게 준비해주시지 않겠어요?”

“그래도! 정부는! 죽어도! 안 됩니다!”

독실한 예삽교 신자이자 허튼짓을 일삼는 남편을 참아내며 자신의 세 아이를 훌륭하게 길러냈다는 사실이 인생을 관통하는 자부심인 지아넬리 남작부인은 단호했다.

“난 그 여자의 이름이 내 소중한 공녀님과 같은 문장에서 불리는 것 조차도 못 참습니다!”

“아이고야⋯⋯.”

전대 타란토 공작과 짝을 맞추어 영지를 돌보던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영지의 대소사를 다루게 된 젊은 겐나로소 자작으로서는 역부족이었다.

지아넬리 남작부인은 공작 내외가 살아계실 적부터 그 최측근이었고 이제는 공녀님 옆에 24시간 붙어있는 유모였다.

겐나로소 자작은 지아넬리 남작부인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겐나로소 자작이 거 북쪽에 높으신 분들이랑 얘기 잘 해서 우리 공녀님 데뷔탕트 파티에 그 여자가 손도 못 대게 하세요!”

“살려주세요⋯⋯.”

“반드시입니다!”

* * *

이사벨라는 레티시아의 조언을 반만 받아들였다.

그녀는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콘타리니 백작부인이라며 ‘짠’ 하고 나타날, 아름답고 멋진 공식 석상에의 꿈을 버릴 수가 없었다.

수도 전체에, 그리고 그녀를 쫓아낸 아버지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난 당신이 없이도 이렇게 잘살고 있다고.

그래서 그녀는 정식 데뷔는 출산하고 몸매가 살아난 뒤로 미루기로 하고 일단은 비밀 외출 정도로 타협을 보기로 했다.

“그래! 이거지!”

오타비오의 마차를 징발해 산 카를로의 호화용품점 거리를 향해 출발한 그녀는 살 것만 같았다.

귀족가의 마나님이 물건을 보실 땐 가게 사람들이 물건을 집으로 가져가 보여줬기 때문에, 귀부인들이 가게에 나타나는 일은 의외로 없었다.

사람을 만나지 않으니 이사벨라에게는 일석이조였다.

‘아는 사람도 안 만나고, 기분전환도 하고, 쇼핑도 하고. 딱이네 딱.’

자신의 훌륭한 판단력을 찬양하고 있던 이사벨라에게 마부가 물었다.

“마님, 센트로 아니마로 가는 길이 두 개가 있는데, 포르센나 언덕을 넘어서 갈까요 아니면 안토니니 대로로 갈까요?”

이사벨라는 생각했다. 이딴 쓸데없는 건 자기한테 물어보지 말고 마부가 알아서 했으면 좋겠다고.

그렇지만 아직 콘타리니 가에서는 이미지 관리를 하는 중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상냥하게 대답했다.

“음? 둘 중 더 빠른 길로?”

“알겠습니다, 마님.”

이사벨라는 약간의 시간이 지난 뒤에야 그 질문이 마부가 맘대로 고를 수 없는 중요한 질문이었음을, 그리고 자기가 잘못된 판단을 내렸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녀가 그 사실을 깨달은 시점은 이미 결정을 물릴 수 없게 된 시점이었다,

그녀가 그 사실을 깨닫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마부가 마차를 몰고 언덕을 올라가기 시작했는데 그 초입이 기분 나쁘게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여긴⋯⋯. 빌라 소로토네로 가는 길이잖아.‘

빌라 소로토네. 체자레의 자택.

이사벨라가 코앞에서 날려 버렸던 공작부인에의 기회가 바로 눈앞에서 살아 숨 쉬고 있었다.

마차가 점점 더 언덕을 넘어 빌라 소로토네에 가까워져 갈수록 이사벨라의 기분은 나빠져만 갔다.

포르센나 언덕의 푸르른 신록은 아름다웠다. 이사벨라는 몇 번이나 이 생동하는 신록을 공작부인이 될 거란 빛나는 미래를 상상하며 올랐다.

언덕을 다 오른 다음에는 기분이 두 배로 나빠졌다. 웅장하면서도 산뜻한 빌라 소로토네의 전경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산 카를로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이름 높은 빌라 소로토네에 비하면 그녀가 살게 된 콘타리니 저택은 낡아빠진 공동주택 같았다.

그녀는 체자레와의 일이 망했던 연유를 되새김질했다.

- “내가 엉덩이 가볍게 놀리고 다닌 당신을 책임져야 할 이유라도 있나? 당신은 그 유명한 ‘캄파 후작의 내연녀’ 아니신가.”

물론 그것은 이사벨라를, 그리고 이사벨라가 그를 꾀어낸 방식을 좋아하지 않았던 체자레가 간신히 찾아낸 핑계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사벨라는 일이 잘못된 원인이 정당하지 못하게 체자레를 옭아맨 자기에게 있다고 생각하기보다는 남 탓을 하고 싶었다.

‘카멜리아 데 카스틸리오네.’

그 망할 년이 입만 털지 않았어도 저 저택은 지금쯤 이사벨라의 것이었을 거다.

마차는 계속 달렸고 호화용품점 거리에 가까워져 오자 이사벨라의 기분도 조금은 나아지는 듯했다.

‘뭐. 오타비오가 쩨쩨하게 굴지는 않으니까.’

아직까지 오타비오는 나쁘지 않은 남편이었다. 나이는 또래에, 이사벨라만 바라보았고, 외모도 훤칠하니 나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맨날 가계부로 그녀의 어머니를 압박하던 아버지에 비하면 오타비오는 천사였다.

‘오늘은 보석이나 맞춰 볼까나.’

체형이 많이 바뀐 상태라서 옷은 맞추고 싶지 않았다. 발이 부어서 신발도 마찬가지였다.

자연스레 보석이나 귀금속에 눈길이 갔다. 오타비오가 알았다면 오금이 저려 할 상황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점원의 깍듯한 인사를 받으며 가게에 들어섰다. 데 마레 가문의 영애일 때는 이런 곳에 많이 와보지 못해서 더욱 신선하고 새로웠다.

“투어멀린 류로 보고 싶은데, 핑크로⋯⋯.”

그렇게까지 이야기한 이사벨라는 가게 안에 자기 말고도 다른 손님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집에서 고아하게 자기만을 위해 준비된 전용 컬렉션을 보았을 때와 다르게, 가게에는 다른 고객들이 물건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 이거 사도 돼, 페르디?”

“그럼, 우리도 곧 결혼할 텐데. 내 마누라에게 사준 거나 마찬가지라고.”

부유한 상인과 그 약혼녀로 보이는 커플이었다.

대 흑사병 시대가 끝나고 나자 그동안 아이템을 잘 잡아 큰돈을 번 상인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는 시절이었다.

저 치들도 걸친 옷에 비해서 매너나 말투에 배인 교양이 떨어지는 것이 이 틈을 타 벼락부자가 된 그런 부류인 것 같았다.

‘저런 놈들이랑 내가 같은 장소에 있다니.’

보석을 보고 기껏 좋아진 기분이 다시 가라앉으려 하고 있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그 커플이 보는 건 자그마한 담수 진주 귀걸이로, 이사벨라가 보는 최고급 보석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래, 저런 상인 나부랭이랑 나 같은 귀족이 같은 물건을 쓰는 건 언감생심이지.’

기분이 조금 좋아질락 말락 하던 차였다.

“그런데, 페르디. 카루소 대표의 결혼식 이야기 들었어?”

“아아, 보카네그로 상회의? 물론 들었다마다. 난 그렇게 성대한 결혼식 이야기는 듣도 보도 못했어. 장안의 화제야!”

카멜리아의 결혼식 얘기였다. 듣고 싶지 않아도 귀가 쫑긋 세워졌다.

“타란토 공작가의 저택에서 식을 올릴 예정이고 요리는 왕궁 요리사가 직접 한다던데?”

“어머나, 세상에!”

“지금 시중에 풀려 있는 포도주는 죄다 그쪽이 사입하고 있어. 어마어마한 규모야. 손님 초대를 얼마나 많이 하려고 하는지 원.”

“내 친구들도 다 그 이야기밖에 안 해. 그 신부가 산 카를로 사교계에 발이 넓어서 높으신 분들도 잔뜩 참석하신대! 몬테카를로 소후작 부부며⋯⋯.”

상인 커플의 여자 쪽은 이사벨라가 익히 아는 이름들을 줄줄 읊었다.

일부는 이사벨라가 알거나 알았던 사람들이고, 나머지는 친해지고 싶었으나 기회가 없었던 사람들이었다.

몬테카를로 소후작 부부면 가브리엘레 내외다. 이사벨라는 가브리엘레의 남편과는 한 번도 인사해보지 못했다.

“오 페르디, 당신 어떻게 초대받을 수 없어? 이런 세기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 하는 건 너무 서글픈데!”

“내가 최선을 다 해 볼게. 울지 마, 내 세상에서 최고로 사랑스러운 엘다.”

본인도 깨가 떨어지는 신혼부부였지만 염병한다, 소리가 절로 나왔다. 내 남편이 지금 옆에 없는데 저런 걸 보니 기분이 점점 나빠지고 있었다.

보석이고 뭐고 집에 가고 싶어졌다. 이사벨라가 가게 출구 쪽으로 발을 옮기던 찰나였다.

- 딸랑!

가게 문이 열리며 문에 장식된 도어벨이 울렸다. 그녀는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

재수 옴 붙은 날이었다. ‘당신이 여기 왜⋯⋯!’ 라고 외칠 뻔했던 이사벨라는 간신히 자기 혀를 깨물고 참았다.

말도 섞고 싶지 않은 상대였기 때문이다.

“캄파 후작님! 오늘도 방문해 주셨군요!”

점원이 현관으로 조르르 달려가 새로 들어온 손님, 캄파 후작의 외투를 두 손으로 극진하게 받아들었다.

“그때 주문하셨던 커프스 단추는 안쪽에 포장해 두었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하필이면 가는 날이 장날이요, 찾아간 곳이 묏자리였다.

더 떨어질 평판 따위야 찾으려야 찾을 수도 없어서 남의 시선 따윈 아랑곳 없이 상인들처럼 가게 본점을 밥 먹듯이 들락거리는 캄파 후작이 거기 서 있었다.

시간이 좀 지났으나 이사벨라 데 마레는 누가 뭐래도 여전히 산 카를로 사교계의 유명인이었다.

캄파 후작과 이사벨라 사이에는 직접적인 안면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그는 이사벨라를 대번에 알아보았다.

캄파 후작은 이사벨라를 바라보며 역겹게 히죽 웃었다.

마치 ‘여어, 소문으로만 듣던 내 내연녀 안녕하신가’라고 묻는 듯한 웃음이었다. 썩은 송곳니가 드러나며 두 배로 더러워 보였다.

‘야 이 시X⋯⋯!’

이사벨라는 속으로 쌍욕을 퍼부었다. 이복 여동생에게 처음으로 배우고 수도원에 유배 가 있는 동안 갈고 닦은 험한 말이었다.

고객 두 명 사이의 기색이 심상치 않은 것을 본 보석상 직원이 서둘러 친절하게 캄파 후작을 안쪽으로 안내해갔다.

다른 직원은 이사벨라 옆에 붙어 친절하게 말을 걸며 물건을 더 보여주려고 했다. 그러나 이사벨라의 눈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이사벨라의 인생은 ‘캄파 후작의 내연녀’라는 헛소문 때문에 망친 거나 다름없었다.

그 헛소문을 낸 장본인인 카멜리아 데 카스틸리오네는 당장 이번 주 토요일에 성대한 결혼식을 올린다.

‘가만 안 둬.’

그 망할 년이 잘 사는 꼴은 죽어도 못 본다.

‘감히 내 눈에서 눈물을 내? 네 눈에선 피눈물을 내 주겠어!’

이사벨라는 카멜리아 데 카스틸리오네의 결혼식에 참석하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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