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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이번 생엔 내가 왕비야-324화 (324/733)

<제324화> 비앙카 공녀의 데뷔탕트 무도회 (1)

알폰소 왕자가 가장 먼저 호출한 사람은 만프레디 경이었다.

지아넬리 남작부인은 수도 귀족들이 단체로 비앙카 공녀의 무도회에 불참 의사를 표시하고 있다는 현상만 전달했지, 그 원인까지는 몰랐기 때문에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파악이 필요했다.

만프레디 경은 유서 깊은 수도 백작가의 아들로, 이런 종류의 일을 알아보기에 딱 좋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자네 어머님께 여쭤보고 와. 지금 당장.”

만프레디 백작부인은 대낮에 아들이 집에 들어오자 혹시 기사단에서 잘린 건 아닌지 혼비백산했다.

그런 백작부인이 모든 걸 다 털어놔 준 덕분에 알폰소는 진실에 매우 빠르게 접근할 수 있었다.

“왕자님,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하죠?”

만프레디 경이 눈알을 불안하게 굴리며 알폰소 왕자에게 물었다.

“아시다시피, 사교계 부인들은 파티 전날 행선지를 바꾸지 않습니다.”

어느 파티에 참석할지는 해당 가문이 단독으로 결정하는 일이 아니었다.

이는 다른 어느 집안이 어디에 참석하는지는 물론이고 몇 시에 오는지, 집안 식구 중 누구누구를 데리고 오는지 등을 모두 다 세심하게 계량한 다음에야 결정되는 종합 예술이었다.

알폰소 왕자가 지금 모든 가문에 편지를 보내서 비앙카 공녀의 데뷔탕트에 참석해 달라고 설득할 수야 있었다.

그러나 그 편지를 받은 사교계 귀부인들이 ‘아, 왕자가 친히 참석을 청하는구나’ 하고 마음을 바꿀 리가 없었다.

자기들끼리 편지를 주고받으며 누가 알폰소 왕자의 편지를 받았고 누가 못 받았는지, 편지를 받았기 때문에 가는 곳을 바꿀 사람은 누구인지, 결론적으로 누가 어느 파티에 참석할지를 새로 따져볼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 모든 일이 일어나려면 물리적으로 시간이 모자랐다.

만프레디 경은 애써 머리를 굴려 보았다.

“발조 백작가를 화약으로 폭파해 버리는 거 외에는 별도리가 없겠는데요?”

파티장이 물리적으로 없어지면 파티를 못 열지 않겠는가?

“아니면 발조 백작부인을 납치 감금해서⋯⋯.”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알폰소는 왕자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자네는 자리나 지켜.”

* * *

그리고 무도회의 날이 밝았다.

물리적인 무도회 준비는 차질없이 차례차례 전개되어갔지만 아름다운 파티장이 준비되었다고 초대 손님이 꼭 전원 자리를 채우는 것은 아니었다.

아리아드네는 표정에서 조바심을 감추지 못한 채 이 층 회랑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일 층 전체가 타란토 공녀 비앙카를 위한 데뷔탕트 무도회장이었다.

연한 회색의 화강암이 드러난 넓은 파티장은 크리스털 샹들리에의 부서지는 빛으로 담백하면서 동시에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무도회장은 돈을 아끼지 않은 티가 났다.

과실주가 흐르는 실내 수로에서는 달콤한 향기가 났고 파티가 시작되면 사방에서 터질 콘페티가 손님들을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무도회장에는 결정적인 문제가 있었다.

오늘의 주빈(主賓), 국왕 레오 3세가 도착할 때까지는 한 시간여까지밖에 남지 않은 시간인데, 아직도 이 파티장에는 빈자리가 채워진 자리보다 많았다.

“스탠딩 파티가 지정좌석제보다 더 비어 보이는 거 아닐까?”

아리아드네는 처음에는 고령자를 배려해 파티장에 착석할 자리가 정해진 라운드 테이블을 배치했었다.

그러나 막판에 발조 백작부인 사태가 불거지자 라운드 테이블 구조에서는 불참자가 너무 눈에 띌 것 같아 스탠딩 파티로 구성을 확 바꾸었다.

그러나 넓은 파티장에 테이블조차 없이 사람들이 옹기종기 서 있게 되니 빈 곳이 지나치게 많았다.

언제나 침착한 아리아드네가 손톱을 깨물 정도로 긴장한 티를 숨기지 못하자, 이제는 비텔리 부인이 된 카멜리아가 친구를 달랬다.

“춤추기 시작하면 플로어가 좀 더 차 보일 거야. 지금은 다들 벽에 붙어 서 있어서 그래.”

카멜리아는 안 그래도 자기가 초대된 일 때문에 귀족들이 비앙카 공녀의 무도회 초대를 거절한 것이 아닌가 싶어 좌불안석인 상태였다.

아내 옆에 서 있던 카루소 대표도 나서서 위로의 말을 건넸다.

“외국 귀족들도 조만간 도착할 테니까요.”

며칠 전 아리아드네가 비텔리 부부를 찾은 것은 그들의 인맥을 통해 산 카를로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 출신 귀족들을 초대하기 위함이었다.

해외 공작가 영애의 데뷔탕트 무도회에 초대받는 것은 외국 귀족들로서도 진귀한 경험이었다.

덕분에 짧은 노티스에도 대다수가 기꺼이 참석하겠다고 회신해 주었다.

산 카를로 시내의 가면 가게가 파티 전날 갑자기 북적였다는 후일담까지 있었을 정도였다.

그러나 산 카를로에 나와 있는 외국 귀족은 하급 귀족 위주였다.

상업을 위해 나와 있는 사람들이니 카스틸리오네 남작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외국 손님들을 초대하는 것만으로는 내국 귀족이 없더라도 타란토 공작가 무도회의 급이 떨어지지 않을 만큼 지체 높은 손님들을 대량으로 확보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그 외국 귀족들은 그 와중에 아직까지도 무도회장에 안 나타나고 있었다.

아리아드네의 무도회 파트너로 이 자리에 참석한 라파엘이 냉소적으로 내뱉었다.

“귀족들이란. 외국인이건 내국인이건 신분이 높건 낮건 상관없이 늦게 도착하는 걸 미덕으로 여기는군요.”

빈 무도회장에 혼자 서 있기 싫어하는 심정이야 백번 이해가 가는 일이기는 했다.

지금 그 상황에 처해 있는 아리아드네가 죽을 맛이었으니 말이다.

“국왕보다는 빨리 와야 할 것 아닙니까.”

라파엘의 그 말에, 아리아드네는 헛웃음을 지었다.

1층의 빈 플로어에는 상인, 산 카를로의 하급 귀족, 약간의 외국 귀족들이 드문드문 자리를 채우고 있을 따름이었다.

이 상황에서 레오 3세가 입장한다면 정말 엄청난 실례가 된다.

파티 주최자인 타란토 공작가는 고개를 들고 다니지 못할 것이고, 후견인인 알폰소 왕자도 육촌 여동생을 내팽개쳤다는 오명을 뒤집어쓸 것이다.

그녀는 입이 타들어 가는 것을 느꼈다.

* * *

드문드문 빈 일 층 무도회장에서 눈을 못 떼는 사람은 아리아드네뿐이 아니었다.

레오 3세가 오늘 왕궁이 아니라 사냥터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부군과 따로 무도회장에 도착하게 된 루비나는 사람이 없어서 휑한 무도회장을 보며 키들키들 웃었다.

“계책이 제대로 먹혔어. 여긴 아무도 없네, 아무도 없어!”

루비나를 개인적으로 수행하는 시녀는 오늘도 데보라였다.

루비나 공작부인의 새 수석 시녀인 바톨리니 백작부인은 발조 백작부인의 자선 파티에 파견 나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개인 수행 업무 덕분에 루비나의 돈으로 잔뜩 치장한 데보라는 공작부인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있잖아요 공작부인⋯⋯. 정말로 그쪽 파티에 체자레 공작님께서 참석하시나요?”

데보라는 루비나 공작부인을 위해 일하게 된 지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한 번도 체자레 공작의 실물을 본 적이 없었다.

왕국에 단 하나 있는 공작인데 미혼이고 수도에서 가장 잘생겼다니, 그리고 그런 공작이 5년 만에 처음으로 산 카를로 무도회에 참석한다는데 자기는 다른 무도회에 처박혀 있어야 한다니! 억울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나 데보라의 그 질문을 받은 루비나 공작부인은 저렇게 멍청한 계집애는 처음 본다는 표정으로 데보라를 바라보았다.

“⋯⋯됐다, 말을 말자.”

“예, 예?”

울상이 된 데보라를 보고 루비나 공작부인은 통박을 놓았다.

“걔랑 나랑 사이에 편지 수발은 네가 하잖아? 어떻게 그걸 몰라?”

데보라는 당당하게 항의했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

“제, 제가 내용을 읽어보는 건 아니잖아요.”

루비나는 한심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대답해 주었다. 대답을 해 준 것도 다 그녀가 기분이 아주 좋아서이다.

“이 멍청이야. 내 편지에 걔가 답장 안 했잖아!”

“아⋯⋯.”

“불렀는데 답장이 없으면 그게 무슨 뜻일까?”

루비나 공작부인은 비단 양말을 신은 자기 발을 쭉 뻗어 내밀었다.

“주무르기나 해라.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라도 날래야지.”

데보라는 얼른 루비나 공작부인의 작은 발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걔가 오겠니? 그냥 퍼트린 소문이지.”

어차피 체자레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쳐도 그에 대한 청구서는 파티 주최자인 발조 백작부인과 초대장을 열심히 돌린 바톨리니 백작부인이 받을 것 아닌가.

자기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기분이 좋아진 루비나는 깔깔 웃었다.

“플로어가 텅텅 빈 걸 보니 소문내길 참 잘했어, 아하하하하!”

* * *

레오 3세가 오기로 한 입장 시간이 삼십여 분밖에 남지 않았다. 오늘의 주인공인 타란토 공녀 비앙카도 몸단장을 다 마쳤다.

하지만 초대객들은 여전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외국 귀족들은 늦게나마 나타나 자리를 채웠다.

그러나플로어에 모인 하객 중 유력 가문의 인사는 발데사르 후작가의 라파엘과 줄리아, 마르케즈 백작 부부, 그리고 마누라 때문에 수도에서 가장 핫한 파티의 초대장을 놓쳐버린 콘타리니 백작가의 오타비오와 이사벨라 부부 정도가 끝이었다.

굳이 추가를 하자면 그리고 귀족이라기보다는 상인 가문이기에 이쪽에 참석하게 된 카멜리아의 친정, 카스틸리오네 남작가 정도를 들 수 있겠다.

“이 일을 어떻게 책임지실 겁니까 데 마레 백작!”

지아넬리 남작부인은 이를 악물고 목소리를 낮춘 채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뾰족하게 쏘아붙였다.

“아니, 책임을 어떻게 지시겠어요! 못 지죠! 백작의 목숨을 던진다고 해도 타란토의 얼굴에 먹칠을 한 일이 덮일 것 같습니까!”

“⋯⋯.”

아리아드네는 묵묵히 앞만 바라보았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내가 이 빚은 기필코 받아내고 말 것입니다!”

지아넬리 남작부인의 땍땍거리는 소리가 아리아드네의 귓전을 때렸다.

손님들이 조금씩 더 들어오고는 있었지만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가면무도회라서 그들이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게 눈에 덜 뜨인다는 장점은 있었지만, 지위가 높은 사람의 참석은 결국에는 다 알려지는 법이다.

심판의 시간이 뒤로 미뤄지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하필이면 비앙카 공녀의 무도회 파트너인 알폰소 왕자마저 늦어지고 있었다. 아리아드네는 화가 부글부글 끓었다.

‘도와주진 못할망정 자기가 늦어?’

그에게 맡긴 것은 단 하나, 당일에 근사하게 등장해서 비앙카 공녀의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거였다.

근데 그거 하나도 제대로 못 했다. 비앙카 공녀가 많이 불안할 텐데, 걱정이 들었다.

“저⋯⋯. 언제쯤 내려가도 되오?”

아래쪽의 상황을 아직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비앙카 공녀가 자신만을 위해 꾸며진 파우더룸 안쪽에서 물었다.

아리아드네는 힘겹게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잠시만요, 공녀님. 알폰소 왕자님께서 오시면 함께 입장하시면 됩니다.”

피가 바싹바싹 말라 갔다. 그녀는 입술을 핥았다. 안나가 발라준 입술연지가 다 지워지고 갈라진 각질이 찢어져 피가 났다.

아리아드네는 차라리 차후를 도모해보기로 했다.

‘이 무도회가 실패한 원인을 공개적으로 루비나 공작부인과 연결 지을 수 있으면 타란토 공작가의 면이 그렇게까지는 상하지 않을 수도⋯⋯.’

그런데 그때였다.

- 부움―――!!

왕가의 직계가족이 입장할 때에만 울리는 뿔피리 소리가 우렁차게 울렸다.

‘국왕 폐하께서 일찍 오셨어?!’

아리아드네는 창백해진 혈색으로 난간에 매달려 아래층을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타란토 공작가의 일 도메스티코는 다른 이름을 외쳤다.

- “알폰소 데 카를로 왕자 저하께서 입장하십니다―!”

‘알폰소!’

크림색 예복을 차려입은 빛바랜 금발의 왕자가 느릿한 발걸음으로 무도회장에 들어서고 있었다.

그의 석탑같이 큰 거구는 공간 자체에 안정감을 주었다.

아리아드네는 그가 지금이라도 도착한 것이 너무나 반가웠다.

그러나 다른 감정이 바로 치밀어올랐다. 안도와 뒤섞여 올라온 두 번째 감정은, 분노였다.

‘늦게 온 거로도 모자라서, 왜 일 층으로 들어와?!’

알폰소는 일반 손님 입장 통로인 일 층이 아닌 이 층으로 이어지는 주빈 통로를 통해 들어와야 했다.

파트너인 비앙카를 에스코트해서 내려가야 했기 때문이다. 이미 베르나르디노 경을 통해서 전달된 내용이었다.

아리아드네가 이 층에서 아래층을 노려보는 동안 알폰소 왕자는 텅 빈 파티장을 유유히 가로질렀다.

그리고 갑자기 일 도메스티코의 외침이 울렸다.

- “구아티에리 후작 부처 입장하십니다―!”

- “몬테펠트로 노후작 부부 및 장남 부부 입장하십니다―!”

- “리날디 백작 부처―!”

- “델레토레 백작 내외―!”

- “살바티 후작가―!”

알폰소 왕자의 뒤로, 산 카를로 사교계 전체가 따라 들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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