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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이번 생엔 내가 왕비야-341화 (341/733)

<제341화> 콘타리니 백작 부처의 부부싸움

“국왕 폐하께서 참석하시는 티파티?”

오타비오로부터 일정을 전달받은 이사벨라의 눈이 빛났다. 그녀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옷장을 뒤지며 부산을 떨기 시작했다.

“드레스는 뭘 입지? 보석은 뭘 차지? 거기 채광이 어때요? 자연광인가? 무슨 색을 입어야 내 금발이 돋보일까?”

그리고 그걸 불퉁하게 바라보는 오타비오가 있었다. 하지만 이사벨라는 남편의 기색 따윈 알 바 없이 몸치장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한참이나 광활한 드레스룸을 헤집은 이사벨라는 큰 소리로 한탄했다.

“입을 게 하나도 없어!”

웬만한 집의 거실과 부엌을 이어놓은 크기의 드레스룸을 이 잡듯 뒤진 후에 꺼낸 단호한 선언이었다.

그녀가 대봤다가 집어넣은 드레스는 열다섯 벌이 넘었고, 걸쳤다가 내려놓은 보석도 열 벌이 넘었다.

그리고 쌓여가는 드레스 더미에 비례해 오타비오의 양 볼에는 마치 사탕을 하나씩 문 듯한 심술보가 덕지덕지 붙어갔다. 입을 대놓고 내민 탓이었다.

“쇼핑가야 하려나?”

‘쇼핑을 가겠다’는 말을 꺼내며 슬쩍 남편 눈치를 살핀 이사벨라는 그제야 뭔가 잘못된 것을 깨달았다.

오타비오의 얼굴이 이제 숫제 불도그를 연상케 할 만큼 일그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사벨라는 갑자기 목소리를 싹 바꿔 살랑살랑 물었다.

“왜, 무슨 일 있어요?”

오타비오는 건조하게 대답했다.

“아무 일 없어.”

하지만 이사벨라는 그 말을 믿기에는 지나치게 똑똑했다. 그녀는 남편의 눈치를 살살 보았다.

“아무 일 없는 게 아닌데? 왜애애애, 무슨 일 없냐고 묻잖아요 여봉.”

평소라면 10할의 타율로 오타비오의 입을 헤벌쭉하게 만들 수 있는 필살기 애교였다.

하지만 지금의 오타비오는 아내가 매력적으로 보일수록 더 심기가 꼬이는 특수한 상태였다.

“아이, 말해봐. 아이이잉. 남자가 쪼잔하게, 삐져서는.”

이사벨라는 어르고 달래기와 비난하기의 양동작전을 펼쳤다.

이건 아주 제대로 먹혀들어 갔는데, 오타비오는 쪼잔하단 말을 듣고도 계속 현재의 스탠스를 유지할 수는 없었다. 뭐라도 답을 줘야지.

오타비오는 여기서 최대한 평상심을 유지한 것처럼 보이도록 목소리 어조 단어 발음 하나하나에 신경을 써서 말했다.

“그 티파티에, 체자레도 온단다.”

이사벨라의 눈이 커졌다.

“아⋯⋯.”

오타비오의 심술이 갑자기 확 이해가 갔다. 다 그녀의 전적 탓이었다.

이사벨라는 손에 들고 있던, 화려하기 짝이 없는 목걸이를 슬그머니 다시 내려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타비오가 여전히 삐져 있자 그녀는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남편에게 살짝 질문했다.

“자기, 괜찮겠어?”

“뭐가.”

오타비오가 무뚝뚝하게 답했다.

“아니, 그 티파티 나는 꼭 가야 하는 것도 아니고⋯⋯.”

국왕 폐하가 참석하시는 티파티라니, 주변에 자랑할 생각에 미친 듯이 욕심이 났지만 적당한 선에서 끊는 것도 오래 가는 데에는 필수적인 자질이었다.

그녀는 주어를 생략한 채 말했다.

“자기가, 얼굴 보기 껄끄러울까 봐⋯⋯.”

이사벨라가 나름 조심스럽게 주어를 생략했지만 오타비오는 대번에 알아들었다. 머릿속에서 그 생각밖에 안 하고 있는데 못 알아듣는 게 이상했다.

“내가 내 친구를 본다는 데 그게 뭐가 문제야.”

오타비오는 전혀 괜찮지 않은 어조로 말했다. 아니, 그는 말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외쳤다.

“남자들의 우정을 얕보는 거야? 사람 그렇게 쪼잔하게 봐?”

오타비오의 언성이 커짐과 동시에 이사벨라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 오타비오는 지금 이성적인 대화가 안 되는 상태였다.

이사벨라는 순순히 물러났다. 티파티에 안 간다고까지 했는데도 저렇게 나오면 할 수 있는 게 사실 없다.

“⋯⋯알았어. 자기 편한 대로 해.”

그녀는 조용히 꺼내 놓은 드레스를 다시 옷장 안에 밀어 넣은 다음 가진 것 중에서 제일 얌전하고 눈에 안 띄는 드레스를 집어 들었다.

그녀는 그 옷을 몸에 대고 별로 유쾌하지 않은 기분으로 거울에 자기 모습을 요리조리 비춰 보았다.

이사벨라가 생각하기에, 이건 무슨 수녀원 부설 수련 시설에 다니는 예비 수녀들이나 입을법한 옷이었다. 하지만 거기에 오타비오의 일갈이 날아들었다.

“야, 진짜 그거 입고 가려고?”

이사벨라는 눈이 둥그레져서 남편을 바라보았다.

“이게 왜?”

“가슴이 배꼽까지 파였잖아!”

“뭐?”

이사벨라는 어이가 없어서 자기 드레스를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원래 가슴에 자신이 없어서 목둘레선보다는 허리선에 강조를 두는 편이었다.

이 드레스도 심심-한 것이 객관적으로도 산 카를로의 그 어느 티파티에 입고 가더라도 무리가 없는 옷이었다.

“당신 도대체 왜 그래?”

이사벨라의 반문에 오타비오는 언성을 높였다.

“이상한 건 너야! 보자 보자 하니까! 그 목걸이도! 번쩍번쩍한 꼴을 보라지!”

“그래서 내려놨잖아!”

“호오? 원래는 하고 가려고 하셨겠다?”

오타비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참 지껄이더니, 드디어 본심을 내뱉었다.

“체자레 공작 앞에서 예뻐 보이려고 하는 거잖아!”

친구인 척 한사코 ‘체자레’라고 부르더니 질투하는 남자로 돌아가자 체자레의 작위를 기어이 언급했다.

이사벨라는 숨이 턱 막혔다. 진짜 해도 해도 너무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말도 안 되는 소리라니! 그럼 대체 왜 그 많은 옷들을 아직도 걸었다 뺐다 하는 거야! 나한테 설명해 봐!”

“다 꺼내놨으니까 다시 걸어야지!”

“당신이 언제 정리정돈을 제 손으로 했어? 하녀 시켰지! 그거 입을 생각이 있으니까 계속 만지작거리는 거잖아!”

이사벨라의 대환장시대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러나 혼자서만 죽으라는 법은 없었다.

부부는 운명공동체라, 하나가 침몰하면 다른 하나가 같이 따라가게 된다.

엄밀한 인과관계가 조목조목 맞아들어가서 그렇다기보단, 일생을 통틀어 본다면 큰 그림에서 그렇게 된다는 말이다.

“백작님! 백작 나으리! 큰일 났습니다!!”

콘타리니 가의 집사가 허연 낯빛을 하고 노크도 없이 뛰쳐 들어왔다.

부부싸움이 한창인 안방이었다. 집사가 들어올 곳이 아니었다. 빈정이 상한 이사벨라가 팩 쏘아붙였다.

“이 집안 사용인들은 예의도 없나? 여기가 어디라고 막 뛰어들어?”

하지만 집사는 자기는 마치 남의 집 사람이라도 되는 양 빈정대는 콘타리니 백작부인은 싹 무시한 채 곧장 오타비오에게 보고를 올렸다.

“레, 레무인 상인이 행방불명입니다!”

“뭐?”

자기 귀를 의심한 오타비오가 되물었다.

“어, 어느 레무인 상인?”

그가 아는 레무인 상인은 한 명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사람이 행방불명되면 자기는 죽은 목숨이다.

오타비오는 행방불명되었다는 레무인 상인이 제발 자기가 생각하는 사람과 다른 사람인 기적이 일어나길 애타게 빌며 집사의 답변을 기다렸다.

그러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아서 기적이었다.

“자카리아 젠틸리, 선대 콘타리니 백작님의 위임을 받아 고리대금업을 하던 상인 말입니다!!”

오타비오는 그 자리에서 바로 굳었다. 석상처럼 굳은 남편을 옆에 두고 백작부인 이사벨라는 상황 파악이 안 돼서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자카리아 젠틸리가 도대체 누구길래 그래? 고리대금업? 그게 무슨 소리야?”

콘타리니 가의 집사는 여주인을 경멸스럽게 노려보았다. 그녀는 원단 한가득 은실 자수가 놓인 순백색의 비단 드레스를 품에 안은 상태였다.

이사벨라 데 콘타리니, 사치와 향락의 의인화 같은 인간이었다.

“카스틸리오네 남작가에 돌려주어야 할 금 8000 두카토가 실종되었다고요!”

“뭐?”

카스틸리오네 남작가 이야기가 나오자 이사벨라 역시 상황의 중차대함을 간접적으로나마 깨달았다.

집사는 한심하기 짝이 없는 안주인에게 쏘아붙였다.

“내일 당장 카스틸리오네 남작이 우리 집에 쳐들어와서 보석은 물론이고 집기들을 다 들고 가도 할 말이 없게 되었단 소립니다!”

이사벨라의 눈이 왕방울만큼 커졌다. 그녀는 입을 쩍 벌렸다.

“오타비오, 이게 무슨 소리야!”

그녀는 남편을 닦달했다.

“돌려줘야 할 돈이 더 있다고? 4000 두카토로 빚은 다 갚은 거 아니었어?”

카멜리아가 법률가의 도움을 받아 작성한 청구서는 이사벨라가 한눈에 이해하기는 지나치게 어려웠다.

희망적인 시나리오만 듣고 싶어하던 당시의 마음상태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오타비오는 망부석처럼 입을 다물고 있었다. 이사벨라는 그 옆에서 한참이나 남편을 쪼았다.

아주 오래 쪼인 오타비오가 드디어 벌컥 화를 냈고, 다 네 탓 아니냐고 소리 질렀고, 콘타리니 백작가의 안방에서 비명과 악다구니와 눈물이 흘러넘치기 시작했다.

“아아아악!”

개 중에서는 악다구니의 비중이 가장 높았다.

“이건 사기 결혼이야!”

부부 중 누가 해도 이상하지 않을 대사였다. 다시 비명과 악다구니와 눈물이 콘타리니 백작가를 가득 메웠다.

“응애애애애애!”

놀란 아기의 울음소리도 합류했다. 아수라장이었다.

* * *

알폰소는 아리아드네와의 데이트를 만족스럽게 마쳤다. 환상적인 오후였다.

눈앞의 여자가 예쁘니 말도 예뻐 보이고 육촌 여동생도 예뻐 보였다.

마장의 울타리도 예쁘고 산 카를로의 하늘도 예뻤다. 완벽한 하루였다.

비앙카가 없이 단둘이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이제 대놓고 선언했으니 다음부터는 단둘이 데이트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순전히 비앙카가 그 자리에 같이 있었기 때문에 ‘비밀로 하기로 했으면서 대체 왜 그랬느냐’는 여자친구의 잔소리를 면했다는 사실을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대놓고 왕궁 안에서 만나는 건 꿈도 못 꿨을 일이었는데.’

알폰소는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예전에 데이트했을 적에는 남의 눈을 피하느라 마차 안, 인적 없는 정원 같은 곳에서 몰래몰래 만났다. 그게 아리아드네에게 참 미안했다.

이제는 당당하게 대로를 걸을 수 있다. 가슴이 몽글몽글하니 따듯해져 왔다.

“저, 왕자님. 외드 대공 측의 답장이 왔는데요⋯⋯.”

그러나 그의 좋은 기분은 베르나르디노 경이 가져온 소식으로 깨어지고 말았다.

“우리 측에서 요청한 회동 날짜가 거절당했습니다.”

알폰소는 그간 갈리코 측, 정확히는 외드 대공 측의 만남 요청을 계속 묵살하고 있었다.

정략적인 차원에서는 굳이 몸값이 오른 상태인데 그쪽의 협상에 순순히 응해주어야 할 필요가 없었고, 내심의 면에서는 외드 대공을 만나 라리에사 대공녀를 에트루스칸 왕국으로 데려오는 날짜를 조율하는 게 썩 내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리아드네와 교제하기로 마음먹고 나서는 갑을관계가 바뀌었다. 이제 몸이 달아오른 사람은 알폰소였다.

그는 한시라도 빨리 외드 대공을 만나서 그 망할 놈의 혼인서약서 문제를 깨끗하게 매듭짓고 싶었다.

“도대체 뭐가 문제지?”

알폰소는 미간을 찌푸린 채 물었다.

“한 달 반 전까지만 해도 만나자고 애걸을 하던 상대 아닌가.”

아리아드네와 교제하는 사실이 갈리코까지 알려져서 그렇다기엔 시간대가 안 맞았다.

그가 공개 연애 선언을 한 지는 반나절이 채 안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일이 외드 대공의 귀에 들어가기 전에 혼인서약서의 일을 마무리 짓는 편이 좋은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게⋯⋯. 다른 루트로 알아보았는데, 필리프 4세의 건강이 심상치 않다고 합니다.”

“건강?”

알폰소의 표정이 애매해졌다.

“왕이 갑자기 죽어버려서 왕위 교체 같은 사건이 생길까 봐 왕궁을 못 떠나는 건가?”

“비슷한데, 조금 달라요.”

좋은 말로 해서 ‘건강’이었다.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자면 ‘정신건강’이 될 것이다.

필리프 4세의 광증이 날로 악화되고 있었다. 요즘은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며 왕궁에서 패악을 부린다고 했다.

“그게 무슨 요구인지는 모르고?”

“네, 거기까지는 잘⋯⋯.”

도대체 왕이 자기 궁전에서 무슨 명령을 내려야 그게 ‘말도 안 되는 요구’라며 일축당할 수 있는지 알폰소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왕권이 별로 강하지 않은 레오 3세조차도 말도 안 되는 짓들을 무수히 벌이면서 아주 잘 살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까, 사정을 종합하면 외드 대공이 필리프 4세 옆을 한 시도 떠날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외드 대공이 자리를 비우면 필리프 4세가 요구하는 뭔가가 이루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요구한 회담 장소는 국경선이었으니⋯⋯.”

“예. 아픈 국왕이 국경선까지 나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고, 그러니 외드 대공은 몽펠리에 궁전에 잡혀 있고.”

“그렇다고 우리가 머리에 대포를 맞은 것도 아닌데 몽펠리에 궁에 다시 말을 들일 리도 없고.”

“정확합니다.”

알폰소의 기분이 저조해졌다. 그는 한시라도 빨리 자신의 옆자리를 깨끗하게 비워 아리아드네에게 왕자비의 관을 선물하고 싶었다.

“그쪽과 다시 접선해 봐.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 외드 대공 본인이 못 나온다면 이인자를 내보내던가, 책임질 수 있는 결정권자를 빨리 보내라고 해.”

만일 알폰소가 오늘 점심께 체자레가 아리아드네에게 무슨 소리를 해댔는지 알았다면 자기가 몽펠리에 궁에 가겠다고 짐을 싸서 일어났을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알폰소는 아직 거기까지는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콘타리니 백작부부에게도 독이 든 사과를 선물하려 벼르고 있는 루비나 공작부인은 알폰소 왕자와 아리아드네 데 마레 백작 커플도 가만히 둘 요량이 아니었다.

루비나 공작부인은 타고나기를 전갈로 태어났다. 전갈은 자신의 유불리와 상관없이 독침을 쏜다. 생긴 대로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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