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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이번 생엔 내가 왕비야-342화 (342/733)

<제342화> 콘타리니 백작의 고뇌

오타비오는 신경줄이 끊어질 것만 같았다.

그의 아름다운 아내는 과거 그녀가 순진하게도 농락당했던—오타비오는 아직도 그렇게 믿고 있었다—아주 잘생긴 놈팡이와 다시 얼굴을 마주할 예정이다.

그것만으로도 끔찍했다. 아내가 다시 그놈에게 눈이 돌아가면 어쩌지? 자신의 얼굴과 그 녀석의 얼굴을 비교하며 내 남편 참 못생겼다고 생각하면 어쩌지?

그게 인생에서 가진 고민 전부였으면 그래도 참을 만 하련만 오타비오는 지금 파산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망할 레무인 상인!’

고 콘타리니 백작이 있을 때는 입안의 혀처럼 굴던 남자였다.

그런데 집안의 주인이 바뀌자마자 싹 안면몰수하고 돈을 모두 횡령해서 달아나 버렸다.

- “남들에게 빌려줬던 원금과 받은 이자를 챙겨간 것은 물론이고, 콘타리니 백작가의 이름을 팔아 동업자들한테 사업 자금을 빚졌다고 합니다. 산 카를로의 고리대금업자마다 온통 콘타리니 가문이 빚을 갚아내라고 아우성이에요.”

계획하고 저지른 통 큰 한탕이었다.

‘망할 레무인! 못 믿을 상인 놈들! 예삽교를 안 믿는 사람은 다 쓰레기야! 상인처럼 돈독 오른 것들은 상종하면 안 됐는데!’

그는 미치기 일보 직전인 상태로 하루하루의 일과를 간신히 수행하고 있었다.

오늘도 국왕이 직접 주재하는 레서 큐리아 레지스 회의만 아니었다면 집에서 혼자 울면서 이불을 물어뜯었을 것이다.

그래서 오타비오는 체자레를 마주쳤을 때 정말로 그를 마주할 마음의 준비가 하나도 안 되어 있었다.

“!”

오타비오 데 콘타리니는 체자레 데 카를로와 마주치자 왕궁 복도에 선 채 석상처럼 굳었다.

가뜩이나 레서 큐리아 레지스 회의가 끝난 직후였다. 저 회의만 들어가면 오타비오는 할 말은 없는데 멍청이처럼 보이면 안 돼서 눈치만 더럭더럭 보다가 헛소리 한두 마디를 던지곤 자괴감에 머리를 싸매곤 했다.

오타비오는 잠시간 머리가 새하얗게 변했다가, 눈앞이 까매졌다가, 급기야 온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오타비오는 자못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와 체자레는 아주 복잡한 사이였다.

그냥 원수이기만 하면 칼을 뽑아 찔러버리면 그만이다. 그러나 체자레는 오랜 친우이자, 원수이자, 국왕의 아들이었다.

오타비오가 아무것도 못 하고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오타비오를 발견한 체자레가 먼저 말을 걸었다.

“어이.”

마치 한 열흘 안 봤다는 듯이 여상스러운 말투였다. 그 유들유들한 표정은 한 대 때리고 싶어질 정도로 재수 없었다.

그런데 다음 말이 더 가관이었다. 그는 피식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구멍 동서 오셨나.”

“이 새끼가!”

격분한 오타비오가 주먹을 날렸다.

- 뻑!

턱뼈에 타격이 들어가는 느낌이 손을 타고 올라왔다. 정타였다. 체자레는 얼굴을 맞고 크게 비틀거렸다.

하지만 오타비오는 어딘가 찜찜한 느낌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체자레가 일부러 맞아준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체자레는 터진 입술을 쓱 훔쳐내더니 희번들한 눈으로 오타비로를 노려보았다.

그는 곧장 피 묻은 주먹을 오타비오의 면상에다 날렸다.

- 퍽!!

오타비오의 안면을 체자레의 주먹이 강타했다. 이거야말로 제대로 들어간 주먹이었다. 눈앞에서 별이 튀겼고 오타비오는 뒤로 벌러덩 넘어졌다.

- 쿵!

오타비오가 엉덩방아 찧는 소리가 궁전 복도를 요란하게 울렸다.

견딜 수 없이 수치스러웠다. 내 여자를 건드린 새끼인데 그놈한테 주먹질로까지 질 수는 없었다.

오타비오는 젖먹던 힘까지 모두 끌어내 몸을 일으켰고, 다시 미친 듯이 체자레에게 달려들어 주먹을 날렸다.

- 뻑!!

이번에는 제대로 들어갔다. 체자레도 서너 걸음 휘청이더니 꼴 보기 싫게 궁전 벽을 들이박았다.

벽이 없었다면 분명히 체자레도 바닥에 궁둥이를 찧었을 것이라고 오타비오는 확신했다.

하지만 오타비오의 확신은 오래가지 못했다. 체자레가 재차 덤벼들어서 숫제 오타비오를 타고 올라 두들겨댔기 때문이다.

둘은 한참 서로 달라붙어서 필사적으로 싸웠다.

처음에는 죽일 기세로 달려들었고 나중에는 주거니 받거니 싸웠다. 주먹도 썼고 발차기도 했고 급기야는 박치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지쳐서 바닥에 나동그라진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하하하, 하하하하하!”

“푸하하하하하하!”

서로의 꼬락서니를 보고 웃었고 민망해서 웃었고 상황이 웃겨서 웃었다. 웃음은 그칠 줄을 몰랐다.

폭소로 시작한 이 웃음은 한참을 이어지다 호흡이 달려서 나오는 헐떡이는 소리로까지 이어졌다.

한동안 낄낄거리던 체자레가 누운 상태로 오타비오의 어깨를 툭 쳤다.

“야.”

오타비오는 옆을 돌아보았다. 체자레가 바닥에 누운 채 잘생긴 눈을 곱게 접으며 웃었다.

“보고 싶었다.”

시각에 약한 오타비오는 그 순간 마음속 응어리가 사르르 녹아내렸다. 아니, 본인은 녹아내렸다고 생각했다.

잠시 감동으로 울컥한 오타비오가 이내 체자레의 어깨를 마주 툭 쳤다.

“새끼.”

둘은 다시 한번 박장대소했다. 꽉 막혔던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 그들은 바닥에 누운 채 서로 힘있게 끌어안았다.

* * *

오타비오가 체자레와 화해했다고 해서 이사벨라의 티파티가 좀 더 견딜만했다거나 기쁜 시간이 된 것은 아니었다.

오타비오는 레무인 상인의 일로 있는 대로 곤두서 있었고 이사벨라를 원망했다.

그가 받은 훌륭한 교육과 귀족으로서의 교양이 ‘너 따위와 결혼하지 말고 그냥 카멜리아와 혼인할 걸 그랬어’ 같은 말을 대놓고 내뱉지는 못하게 했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 그리고 그 생각이 불쑥불쑥 행동으로 튀어나오는 것까지 막아주지는 못했다.

“진짜 그 옷 입을 거야?”

“⋯⋯여보. 나 벌써 다섯 번째 갈아입었어.”

“옷장이 왜 다 그따위야? 가슴 안 파인 옷은 없어?”

“시비 좀 그만 걸어. 이게 뭐가 파였다고 그래?”

이사벨라는 산 카를로 기준으로는 목 끝까지 올라온다고 봐도 무방한 잿빛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가슴선 다 비치잖아!”

오타비오는 천 아래로 잡힌 실루엣이 드러나는 것도 몹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넌 절벽 주제에 가슴에 뭘 그렇게 많이 집어넣었냐? 그 괴상한 가슴 가리개 좀 버리면 안 돼? 천박하게!”

“그 얘기 좀 그만해!”

이사벨라는 가슴 가리개는 대 루비나 공작부인 용이지 체자레 용이 아니라고, 체자레는 이미 여기에 아무것도 없는 거 다 알고 있으니 가슴 가리개 따위에 현혹될 리가 없다고 항변하고 싶은 유혹에 시달렸다.

그러나 그랬다가는 삼일 밤낮을 잠도 못 자고 싸우게 될 게 뻔해 간신히 그 유혹을 참아냈다.

원죄란 참으로 무서운 것이었다. 부부간 신뢰의 초석인 정직한 대화부터 불가능하게 만든다.

이사벨라가 루비나 공작부인을 상대로 준비한 것은 가슴 가리개가 고작이었다.

그러나 루비나 공작부인은 더 무서운 필살기를 준비해왔다. 많은 준비와 공작과 고심이 들어간 한 수였다.

“콘타리니 백작, 어려운 발걸음 해 줘서 고맙네.”

레오 3세는 아직 한마디도 안 했는데 루비나 공작부인이 자리에서 일어서서 젊은 콘타리니 백작을 따스하게 환대했다.

휘황찬란하게 차려입은 그녀는 은근히 이사벨라를 견제하며 오타비오에게 친근하게 굴었다.

어찌나 친한 척을 했는지, 비록 장갑을 낀 상태긴 했지만 사실혼 남편과 동석한 늙은 유부녀 주제에 젊은 남자의 두 손을 마주 잡고 흔들어 오타비오가 당황할 정도였다.

“오늘은 내가 특별 손님을 준비했어. 콘타리니 백작과 꼭 만나게 해 주고 싶어서.”

트, 특별 손님? 오타비오는 루비나의 호감 표시도 있고 해서 내심 기대했다.

혹시 레무인 상인의 일을 처리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레무인들 사이에서 영향력이 큰 지도자라던가, 도망친 레무인을 잡아다 줄 수 있는 사람이라던가 말이다.

- 짝!

“데리고 들어와.”

하지만 루비나 공작부인의 손뼉과 함께 실내로 들어온 생물은 오타비오의 상상과는 백중해 넓이만큼 동떨어져 있었다.

루비나의 시녀 중 하나인 데보라가 쿠션 하나를 높이 들고 국왕의 응접실 안으로 들어섰다.

무게가 상당한 듯 시녀의 팔뚝이 바들바들 떨렸다.

그 위에는 얼굴이 눌린 프렌치불독 한 마리가 위풍당당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커다란 개는 자신을 모시는 인간의 수고 따윈 알 바 없다는 듯이 앞다리는 빳빳하게 지탱하고 엉덩이는 편안하게 쿠션에 걸친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머리에는 면사포까지 쓰고 있었다. 아주 황제가 따로 없었다.

“인사해. 우리 강아지 벨라벨라야.”

강아지 이름을 들은 이사벨라의 표정이 팍 일그러졌다. 이사벨라를 곁눈짓 한 루비나는 만족스럽게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조그맣던 아이가 이렇게 자랄 때까지 고민만 하면서 이름을 못 지어주고 있었는데 오늘 아침에 문득 영감이 떠올라서 지었어. 예쁘지?”

이사벨라의 이름을 따서 개 이름을 지었다고 확인 사살하는 격이었다.

그러나 이사벨라 옆에 앉아 있는 머저리 천치는 그 말뜻을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 박수까지 치며 호응했다.

“강아지 이름이 저희 아내 이름과 비슷하네요! ‘벨라벨라’의 어감이 ‘이사벨라’보다 훨씬 더 귀엽습니다!”

칭찬을 알아들었는지 프렌치불독의 못생긴 코가 자랑스럽게 벌름댔다. 루비나는 개를 받아 안아 무릎에 얹고는 사랑스럽게 쓰다듬었다.

“조금 막 생긴 아이지만, 꾸며놓으면 예뻐. 옷이 날개라니까?”

면사포에 시선을 빼앗겨 미처 알아채지 못했지만 거대한 회색 프렌치불독은 레이스 원피스 같은 것도 입고 있었다.

바스락거리는 흰 오간자 소재는 마치 이사벨라가 데 마레였던 시절에 즐겨 입던 드레스들을 연상케 했다.

“이거 봐. 티아라도 썼어.”

루비나 공작부인은 개의 면사포를 벗겼다.

거대한 회색 프렌치 불독의 머리 위에서 핑크 사파이어 티아라가 오색찬란하게 빛났다. 오타비오의 눈이 튀어나올 듯이 커다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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