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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이번 생엔 내가 왕비야-350화 (350/733)

<제350화> 강약약강

“우리 벨라벨라가 못생겼다뇨!”

루비나 공작부인은 척수 반사적으로 국왕의 말에 반박했다가 실수한 것을 깨닫고 자신의 혀끝을 깨물었다.

그녀의 길고 긴 총애의 비결은 레오 3세가 그 어떤 짓—다른 여자 칭찬 포함—을 할 때도, 그러니까 그 어떤 상황에서도 그와 각을 세우지 않는 데에 있었다. 그녀는 황급히 주제를 바꿨다.

“그런데 콘타리니 백작부인은 참 귀엽네요. 강아지 귀에 데이지 꽃이라니!”

루비나는 ‘거 손톱만한 꽃, 개 귀에 걸리지도 않겠네’라는 뉘앙스를 최대한 숨기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그런 노력이 성공했는지 레오 3세는 입이 귀에 걸려서 대답했다.

“그렇지? 자네가 봐도 귀엽지?”

데 카를로 왕가의 남자들은 참으로 일관된 여자 취향을 가지고 있었다.

“조막만 한 게 아이디어가 반짝반짝하니 아주 장래가 촉망되는 재원이요!”

루비나 공작부인은 ‘재원은 미혼 여자한테나 쓰는 말입니다. 애 엄마 말고요.’라고 대답하고 싶은 자신의 혀를 잘근잘근 씹었다.

그리고 입가에 기어올라오는 경련을 꾹 누르며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역시⋯⋯. 젊은 애들은 특이하게 노네요.”

그리고 레오 3세는 먹고 죽으려고 해도 눈치가 없었다.

“특이하고, 창의적이지!”

그는 안주인의 내키지 않는 기색을 못 알아챈 것인지 아니면 개의치 않는 것인지 거침없이 내뱉었다.

“강아지를 높이 들어 올렸더니 개가 엄청 좋아하더라고. 그랬더니 그 아이가 어떻게 했는지 아오?”

호칭이 그새 콘타리니 백작부인에서 ‘그 아이’로 바뀌어 있었다.

“개를 번쩍 들어서 허공으로 던지는 거야! 별 힘도 안 들이고, 높게 던지니 개도 재밌고!”

“어머나⋯⋯.”

“버둥버둥 사지를 허우적대는데 그 개 꼴이 아주 귀엽지 뭐요! 허허허허!”

“호호호호호⋯⋯.”

레오 3세는 입에 침을 튀겨가며 외쳤다.

“아주 똑똑해, 똘똘해! 아, 개 말고 콘타리니 백작부인 말이오.”

“아무렴요⋯⋯.”

루비나는 여기서 이사벨라의 칭찬을 더 해줘야 함을 알았지만 본능적인 거부감에 말을 줄였다.

이럴 때 나이든 본부인이 살아남는 방법은 너그러운 척하는 거였다.

자애로운 미소를 띠고 어린 여자에게 칭찬을 퍼부으며 때를 노리면 어린애는 반드시 무리수를 두다가 스스로 고꾸라졌다.

루비나 공작부인은 그 누구보다도 자신이 이 일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자부했다.

그녀는 나이든 정부 일에 재능도 있었고 경력도 길었다.

방글방글 웃으며 여자애 본인도 루비나 공작부인이 자신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인지 아닌지 헷갈릴 정도로 띄워주면 루비나가 예상한 지점에서 멀지 않은 시점에 그린듯한 ‘삑사리’가 터지고는 했다.

얼굴만 예쁜 아이라면 보통 레오 3세에게 갑질을 하려 들다가, 머리가 나쁜 아이라면 다른 젊은 남자에게 눈을 돌리다가 동티가 나는 게 상례였다.

그런데 이사벨라 데 콘타리니 같은 경우에는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외모만 믿고 나대는 아이인가 했을 땐 깜짝 놀랄 만큼 교활한 면모를 보였고 멍청한가 싶을 땐 또 지옥에서 기어 올라오는 끈기와 맷집을 자랑했다.

칭찬을 더 퍼부었다가 레오 3세가 정말로 이사벨라 데 콘타리니가 훌륭한 여자라고 생각하면 어쩌지, 하는 불쾌감과 우려가 스멀스멀 치밀었다.

루비나의 심각한 표정에, 레오 3세는 내심 신이 나 속으로 웃었다.

사실 이사벨라의 칭찬은 그것 외에 더 있었는데, 더 말해도 될지 말지 자신이 없어 숨겼다.

그런데 루비나의 반응을 보아하니 끝까지 얘기하지 않길 잘한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진 것이다.

- “저희 남편을 예쁘게 보아 주셔서 감사해요.”

콘타리니 백작부인, 이사벨라는 남편 오타비오가 잠시 화장실을 간 사이에 레오 3세에게 무릎을 굽히며 앙증맞게 예를 표했다.

레오 3세는 껄껄 웃으며 오타비오를 칭찬했다.

- “옛말에 부창부수(夫唱婦隨)라 하였으니 훌륭한 부인을 맞이한 남편이라면 자연히 훌륭한 젊은이 아니겠는가!”

레오 3세는 은근슬쩍 덧붙였다.

- “내 콘타리니 백작부인을 보아 콘타리니 백작을 중용한 것이니 그대는 스스로 자랑스레 여겨도 된다.”

부부의 칭찬을 하긴 했지만 오타비오가 뛰어나서 직분을 내린 것이 아니라 이사벨라를 예쁘게 보아 내린 것이라니, 알쏭달쏭한 말이었다.

레오 3세는 소위 ‘간’을 본 것이다.

- “어머⋯⋯.”

이사벨라는 얼굴에 홍조를 띠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녀는 애교스럽게 눈웃음을 쳤지만 자수정 색깔 눈동자는 놀랄 만큼 무표정했다.

레오 3세는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인간 심리에는 도가 텄다고 자부하는 늙은 토끼였지만 이 젊은 여자의 감정 상태를 잘 읽어낼 수가 없었다.

그러나 눈앞의 이사벨라는 놀랄 만치 아름다웠다. 자식을 낳은 여자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호리호리한 몸태가 움직임에 따라 하늘하늘 흔들렸다.

거기에 천사 같은 입술을 오물대며 웃으니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레오 3세는 이사벨라의 감정을 읽어내길 포기했다.

애초에 그는 타인의 감정에 그다지 신경 쓰는 사람이 아니었고, 일이 잘못될 경우 뒷감당을 할 자신도 충분히 있었다.

레오 3세는 다짜고짜 손을 뻗어 이사벨라의 볼을 쓰다듬었다.

- “어머!”

이쯤 하면 결판이 나고는 했다.

넘어올 여자라면 얼굴을 붉히며 레오 3세의 품 안으로 뛰어들었고, 뻣뻣해서 수녀원이 산 카를로보다 더 어울릴 여자들은 비명을 지르던가 해서 자기가 어느 쪽인지를 확실히 했다.

하지만 한때 산 카를로 최대 규모 양식장의 주인, 최고의 어부였던 이사벨라 데 콘타리니는 달랐다.

- “아이, 참.”

그녀는 자기 볼에 얹힌 레오 3세의 손을 잡아내려 치웠다. 그러고는 국왕과 눈을 맞추고는 쌕 웃었다.

‘?!’

레오 3세는 긍정과 부정이 혼재된 그 반응에 어안이 벙벙해져 눈만 껌벅였다.

그리고 그때 그린 듯한 타이밍으로 콘타리니 백작이 돌아왔다.

국왕 면전에서 자리를 비워 민망해하는 오타비오가 어기적어기적 이사벨라 옆으로 자기 자리를 찾아오자 그녀는 화사한 미소로 호들갑을 떨었다.

- “여보! 국왕 폐하께서 당신 칭찬을 하셨어요!”

이사벨라는 오타비오의 옆에 착 붙어 서서 더할 나위 없이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레오 3세를 바라보았다.

그날의 차 모임이 끝날 때까지 이사벨라는 레오 3세에게서 눈길을 떼지 않았다.

남편의 손을 잡고 오솔길을 걸으면서도, 오타비오에게 은혜를 내린 국왕의 덕을 칭송하면서도, 눈물을 찍어내며 안타깝게 돌아가신 자기 어머니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녀의 시선은 레오 3세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제 남편이 돌아올 줄 알고 내 손을 치웠던 걸까?’

레오 3세는 골똘히 생각했다.

‘남편 눈치를 봤던 건가? 아니, 그런데 그럼 왜 남편이 돌아왔는데도 계속 나만 쳐다봐?’

레오 3세는 저도 모르게 이사벨라가 잡아서 치웠던 자기 오른손 검지와 중지를 스스로 쓰다듬고 있었다.

그 앙증맞은 손의 폭신한 촉감이 자꾸만 생각났다.

‘이런⋯⋯. 이런 여자는 처음이야.’

그는 깨닫지 못하고 있었지만 이사벨라를 만나고 돌아온 후 내내 이사벨라 생각만 하고 있었다.

큰 데 마레 양이 사교계의 여왕으로 군림할 수 있었던 필승 공식에 어김없이 빠져든 한 마리의 대어였다.

* * *

이렇게 데 카를로 남자들의 심장을 훔친 죄 많은 여자, 이사벨라 데 콘타리니는 요새 제대로 살맛이 났다.

“역시 콘타리니 백작부인은 달라요!”

사교계 부인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추어올려 세워주는 나날을 즐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인간이란 참 신기했다. 구체적인 이권 때문에 달라붙는 사람은 당연히 있는 법이다.

콘타리니 백작이 상설 왕궁법정의 재판관이 되자 송사가 걸려 있는 가문의 부인들은 이사벨라에게 벌떼같이 달려들었다. 여기까지는 이해할 만했다.

금전적 이득이 눈앞에 있지 않은가. 자기라도 그럴 것이다.

그런데 한 번 이렇게 분위기가 잡히면 법정과는 아무런 연이 없는 사람들도 어떻게 한번 잘 보여보려고 부나방처럼 덤벼들었다.

이사벨라와 같은 이벤트에 참석하려고 초대장 쟁탈전을 벌이는 것은 물론이요 예쁜 말이며 선물, 돈 되는 기회까지 들고 이사벨라의 환심을 사려고 필사적이었다.

“호호호, 뭘요.”

“아니, 상인 놈들은 이렇게라도 본때를 한 번 보여줘야 합니다.”

몬테펠트로 노후작부인이 이사벨라를 보며 큰소리쳤다.

그러나 그녀의 며느리인 몬테펠트로 소후작부인, 가브리엘레 델라토레 몬테펠트로는 소극적으로 고개만 숙인 채 뒤에서 말이 없었다. 이사벨라는 피식 웃었다.

“몬테펠트로 소후작부인께서는 이 자리가 썩 기껍지 않으신가 봐요?”

가브리엘레가 퍼뜩 놀라 고개를 들었다.

“저, 저요?”

이사벨라는 여유작작한 표정으로 가브리엘레의 당황을 온몸으로 즐겼다.

그녀는 한가로운 몸놀림으로 느릿하게 찻잔을 들어 입가에 가져다 댔다.

“네. 처녀 적에 비탈리 부인과 친구셨었잖아요.”

그러고는 비릿하게 웃었다.

“설마, 아직도 친구인가?”

가브리엘레가 눈을 크게 뜬 채 입을 꾹 다물었다. 이건 신도가 아님을 증명하라는 십자가 밟기였다.

이사벨라의 예쁜 눈이 말하고 있었다.

- 여기 끼고 싶다면, 공개적으로 발언해. 상인 따위와는, 카멜리아 같은 애와는 친구가 아니라고.

가브리엘레도 이사벨라의 말을 알아들었다. 그녀는 차마 대답하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었다.

가브리엘레의 손에 들린 찻잔과 찻잔 받침이 서로 부딪혀 달그락거렸다.

몬테펠트로 노후작부인이 인상을 팍 쓴 채 며느리를 노려보았다.

그 시선을 받은 가브리엘레는 자신에게 선택의 시간이 왔음을 깨달았다.

카멜리아와 여전히 친구임을 선언하고 시어머니를 포함한 대귀족 여인들 무리에서 떨어져 나가던지, 아니면 압력에 순응하고 타고난 지위와 부를 계속 누릴 것인지 사이의 결정이었다.

- “얘!”

참다못한 몬테펠트로 노후작부인이 드레스 아래로 가브리엘레의 신발 옆을 차며 낮은 소리로 채근했다. 결국 가브리엘레는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그럴 리가 있나요, 콘타리니 백작부인.”

가브리엘레의 선택은 순응이었다. 그녀는 카멜리아를 위해서 가족과 사회생활을 모두 버릴 수는 없었다.

- 짝!

가브리엘레의 굴종에 이사벨라는 기껍게 손뼉을 쳤다.

“몬테펠트로 소후작부인, 아니, 가브리엘레라면 그럴 줄 알았어요.”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 어릴 적 친했잖아요.”

이 말은 여러 가지 함의를 담고 있었다.

‘내가 아는 네 성품상, 너는 절대 네 이득을 버리고 친구 편에 서지 못한다’는 이사벨라의 비아냥이기도 했고, 어릴 적 친구 대접을 해 줄 테니 이제는 내 편에 서라는 회유이기도 했다.

이사벨라는 짐짓 속삭이듯, 하지만 모두가 똑똑히 들을 수 있게 큰 소리로 덧붙였다.

“오늘 일이 엇나간다면 나는 가브리엘레가 비탈리 부인에게 미리 귀띔한 거라고 여길 거에요.”

그녀는 주변을 돌아보며 동조를 구했다.

“우리가 상인들과 교류가 잦은 사람들도 아니고, 여기밖에는 새어나갈 데가 없잖아요?”

‘그들’과 ‘우리’를 확실히 구분 짓는 말이었다. 귀부인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동의를 표했다.

가브리엘레의 등줄기에 송골송골 식은땀이 맺혔다. 몬테펠트로 노후작부인이 이사벨라의 말을 듣고 큰 소리로 장담했다.

“아휴, 그럴 리가 있겠어요 콘타리니 백작부인!”

몬테펠트로 노후작부인은 자기 며느리가 이사벨라의 눈 밖에 난다면 좋든 싫든 가브리엘레와 한 묶음이 되어 함께 팽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이것이 가문이고 혼맥이었다.

“우리 애가 그렇게 사리판단이 투미하진 않답니다!”

하지만 이사벨라는 몬테펠트로 노후작부인조차도 호락호락하게 넘어가 주지 않았다.

“그건, 두고 봐야죠.”

이사벨라는 부채를 탁 펼쳐 얼굴께를 가려 몬테펠트로 노후작부인의 시선을 피했다. 그녀는 뒤를 돌아보았다.

“우리, 덫을 구경하러 가볼까요?”

이제 ‘파티장’으로 이동할 시간이었다. 귀부인들이 일제히 웃었다.

“하하하하하!”

“호호호! 기대되네요!”

이사벨라도 함께 웃고 앞서서 한 걸음을 내딛었다. 귀부인들은 삼삼오오 무리 지어 이사벨라의 뒤를 따랐다.

가브리엘레만 새파래진 안색으로 부들부들 떨며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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