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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이번 생엔 내가 왕비야-351화 (351/733)

<제351화> 입장의 자격

초대장은 분명히 ‘[라지오네 의상실]의 상위 1할 고객’ 대상으로 돌았다. 구매금액 기준이었다.

그런데 막상 파티 장소에 도착했을 때 입장하는 출입문에서 하는 이야기는 달랐다.

“아니, 우리가 왜 못 들어간단 말이오?”

카루소 대표가 문지기에게 항의했다.

“분명히 초대장을 가지고 왔단 말이오!”

문지기는 자신에게 하오체를 쓰는 카루소 대표가 가소롭다는 듯이 그를 위아래로 훑었다.

귀족의 고용인인 자신도 높은 신분이라는 것 같은 태도였다. 그는 성의 없이, 느릿느릿하게 답했다.

“귀족이 아니시지 않습니까.”

문지기는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여기는 피오루치 가문 저택으로, 귀족이 아니신 분은 입장하실 수 없습니다. 가문 규칙입니다.”

카멜리아가 나섰다.

“아니, 잠깐만요. 여기 보면 ‘구매금액 기준’이라고 적혀 있잖아요.”

초대장에는 구매금액 기준이라는 말과 함께 간접적으로 해당 고객의 구매금액 순위도 기재되어 있었다.

초대장이 담겨 온 봉투에는 세 자리 숫자가 쓰여 있었는데, 이 숫자가 발송 순서였고 이는 구매금액 순위와 일치했다.

“구매 금액 기준이면 귀족이건 아니건 상관없는 것 아닌가요!”

카멜리아의 숫자는 004로, 실제로 대부분 귀족보다 순위가 높았다.

참고로 카멜리아의 앞에는 라지오네 양장점에서 그간 가장 많은 구매액을 쌓은 사람은 30년 가까이 단골이었던 루비나 공작부인이었고, 그 바로 뒤를 아리아드네가 무서운 기세로 뒤쫓고 있었으며, 자기가 입은 건 하나도 없는 주제에 구매액 3위에 오르는 맹위를 떨친 피사노 공작 체자레가 있었다.

“내가 왜 출입이 허용되지 않는지 이해를 못 하겠군요!”

카멜리아의 앞에 있는 사람 중에 사실 전통적인 의미의 귀족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만큼 작금의 에트루스칸 왕국에서는 작위와 부가 괴리된 것이다. 그러나 파티장의 문지기는 여전히 뻣뻣했다.

“그건 저야 모르는 일입니다. 피오루치 저택을 파티 장소로 잡은 가게 측에 항의하세요. 피오루치 저택은 귀족이 아니시면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

문지기의 오만불손한 언행에 카루소 대표의 표정이 변했다.

그는 쉬이 흥분하는 남자가 아니었다. 하지만 문지기는 일부러 그들을 도발하려는 것처럼 굴었다.

“돌아가시는 문은 왼쪽입니다.”

문지기는 빈정거리며 덧붙였다.

“안내해 드릴까요?”

이보다 더 나빠질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만불손한 문지기와 그들만 있는 것이 다른 구경꾼이 있는 상태보다는 훨씬 나았다.

흰머리가 듬성듬성 난 중년의 귀부인이 초대장을 들고 쭈뼛거리며 뒤에서 상황을 살폈다.

시끄러운 소리가 나자, 자기가 들어가도 되는지 구분을 하고자 하는 눈치였다.

다른 손님이 나타나자 문지기는 반색하며 귀부인을 환영했다.

“론디넬리 백작부인! 어서 오십시오.”

그들은 구면인 것 같았다. 부인은 문지기에게 물었다.

“별일 없는 거지요?”

그녀는 의미심장하게 주변을 쓱 둘러보았다. 문지기는 싹싹하게 대답했다.

“아이고, 그럼요, 평민들이 소요를 좀 일으키는 것 외에는 아무 일 없습니다. 금방 치울 겁니다. 어서 들어가시죠.”

“고마워요.”

론디넬리 백작부인은 문지기에게 웃고는 안으로 들어섰다.

카멜리아 쪽에는 눈길 하나 던지지 않은 것이, 정말로 사람이 아니라 가구 혹은 마소처럼 취급하고 있다는 태도가 드러났다.

카멜리아는 카멜리아대로 단어 한 개에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평민’.

그 말에 카멜리아의 표정이 대번에 새파래졌다.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가슴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말이었다.

카멜리아는 남작가의 딸로서 평생을 귀족 아가씨로 살았다.

오타비오 데 콘타리니를 이사벨라에게 뺏기고 나서 오타비오 급의 혼처를 어디서도 구할 수 없으니 급하게 평민이지만 거부인 카루소 비탈리로 노선을 튼 것은 사실이지만,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었다.

창졸간에 급하게 내린 결정이라 숙고할 여유도 없었고 감정적 소화를 할 시간도 없었다.

아버지 슬하를 떠나 남편 가정의 안주인이 됨으로서 처녀 때 누리던 것을 모두 누렸음은 물론이요 자신이 예뻐서 절절매는 남편이 생긴 데다 생활 자체는 더 윤택해졌으니 생각하지 않고 미뤄뒀던 충격파가 이제야 터졌다.

카루소 대표는 별 감흥 없이 듣고 있다가, 옆에 선 카멜리아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는 걸 깨달았다.

“여보⋯⋯.”

그는 안쓰러움과 동시에 분노가 치밀어올랐다.

어린 아내가 굳이 자기를 택해서 당하지 않아도 될 모욕을 당한다는 생각에 천천히 피가 식었다.

설상가상으로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까지 나타났다.

“어머, 이게 누구야.”

레오나티 자작가의 레티시아 데 레오나티였다. 그녀는 느릿하게 걸어와 카멜리아 앞에 서서 빙글빙글 웃었다.

“카멜리아 아니야. 오랜만이다, 얘.”

카멜리아의 인상이 찡그려졌다. 그녀는 레티시아를 친구 목록에서 삭제한 지 오래였다.

카멜리아는 착하기만 한 사람은 결코 아니었다.

그녀는 산 카를로 사교계의 주역답게 상당히 계산적인 성격이었는데, 우정을 빼고 본다면 레티시아는 자기보다 한 급 아래였다.

최소한 카멜리아는 그렇게 생각했다. 레오나티 가문은 작위도 낮았고 영향력도 그다지 크지 않았다.

게다가 오늘 초대의 기준이 된 재산 측면에서 레오나티 영애는 여기에 올 자격이 분명히 없었다.

레오나티 자작가는 수도의 그저 그런 군소 귀족이었지 마음 내키는 대로 사고 싶은 것을 사는 수준은 확실히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라지오네 의상실의 상위 구매 고객은커녕 구매 고객 리스트에도 올라가기 어려웠다.

카멜리아는 레티시아의 인사를 깨끗하게 무시했다. 대신 문지기를 바라보며 항의했다.

“분명히 구매금액 순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사실 좀 전에 론디넬리 백작부인 때도 하고 싶었던 항의였다.

카멜리아는 론디넬리 백작부인보다 자기가 더 많이 썼을 거라는 확신은 있었지만 론디넬리 백작가의 사정을 속속들이 아는 것은 아니었으니 공개적으로 말을 꺼내기엔 조심스러운 면이 있었다.

하지만 레티시아는 달랐다. 카멜리아는 레오나티 자작가의 숟가락 개수까지도 알았다.

“쟤는 어떻게 온 거죠?”

카멜리아는 문지기에게 성토하며 레티시아를 손가락질했다.

“레오나티 자작가가 구매금액 상위라니 턱도 없는데요?”

레티시아는 카멜리아의 무시에 울컥했다.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고 이사벨라에게 귀띔을 들었지만 화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레티시아는 없지만 넓은 가슴을 수탉처럼 당당하게 쭉 내밀었다.

“나도 산 거 있거든?”

그녀는 작은 부채를 하나 꺼내 들었다. 상아 대신 섬세하게 세공한 흑단나무로 부챗살을 잡은 물건이었다.

“예쁘지?”

카멜리아는 썩은 미소를 지었다.

상아 버전은 비쌌지만 흑단나무 버전은 일반 판매를 위해 단가를 내려서 많이 만들었다.

이사벨라는 자신의 하얀 부채를 사며 레티시아에게도 까만 부채를 하나 사 주었다. 그렇게 얻은 구매 명의였다.

그리고 카멜리아는 정확한 내역은 몰랐지만 저런 사정이 있을 거란 건 대충 눈치채고도 남았다.

카멜리아가 레티시아를 씹고 다시 한번 문지기에게 출입시켜달라고 말하려던 차에, 옥구슬 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너 같은 애들 덕분이지.”

이사벨라였다. 그녀 뒤에는 귀부인의 군단이 서 있었다.

“구매액이 아무리 높아봤자 우리랑 어울릴 수가 없는 사람들이 중간에 끼어 있잖아.”

이사벨라는 피식 웃었다.

“그런 사람들 때문에 앞에서 순서가 빠져주면 원래 못 들어갈 사람들이 순서가 올라가는 거지 뭐. 네 덕에 레티시아도 호강한다, 얘.”

누굴 먹이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레티시아는 이미 이사벨라의 배를 탄 상태였다.

기분이 나쁘다고 인제 와서 내릴 수는 없었다. 레티시아는 이사벨라의 말에 적극 호응하며 카루소 대표를 위아래로 훑었다.

“그래! 이사벨라 말이 맞아. 저런 사람이랑 같은 공간에 서 있어야 하면 그 누가 그 파티에 오려고 하겠어?”

이사벨라도 레티시아의 말에 덧붙였다.

“이건 돈이랑 별개야. 어시장에서 장화 신고 생선 잡던 사람이잖아.”

사실은 담배 밀매상 출신이었기 때문에 카루소 대표는 입을 다물었다.

이사벨라는 그게 카루소 대표도 자기 말에 동의하는 건 줄 알고 예쁜 이마를 찌푸리며 말했다.

“생선 비린내를 맡으며 샴페인을 마실 수는 없잖아?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가브리엘레?”

카멜리아의 눈길이 그제야 뒷줄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던 가브리엘레에게 닿았다.

그들은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같이 차를 나눠마셨던 사이였다. 카멜리아의 시선에 가브리엘레는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가브리엘레가 눈을 피하자 카멜리아는 심장이 쿵, 떨어지는 것 같았다. 이사벨라는 다시금 재촉했다.

“아니, 우리는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닌가? 몬테펠트로 소후작부인, 어떻게 생각하세요?”

가브리엘레는 딱딱하게 굳어 바닥만 바라본 채 입술을 깨물었다. 이건 가브리엘레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저항이었다.

그리고 카멜리아는 가브리엘레의 주저함에 한 줄기 희망을 보았다. 여기에서 최소한 그녀의 편이 한 명은 있었다.

“소후작부인?”

그러나 이사벨라는 다시 한번 가브리엘레를 재촉했다.

- “얘!”

그녀의 시어머니가 무서운 소리로 가브리엘레를 채근했다. 가브리엘레가 망설이자 그녀는 목소리를 한층 더 높였다.

- “애들 마음도 못 잡고 남편 내조도 부실하더니 가문에 이렇게 먹칠을 하려고 들어? 큰애가 파두아에 가는 거 정 내가 다시 생각해봐야겠니?”

가브리엘레는 결국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귀족은 귀족끼리, 상인은 상인끼리 모이는 것이 맞겠죠.”

“가비!”

카멜리아는 경악에 찬 얼굴로 가브리엘레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가브리엘레는 고개를 돌려 카멜리아를 회피해 버렸다.

카멜리아는 분에 겨워 눈물을 찔끔 흘렸다. 머리로야 가브리엘레를 이해할 수 있었지만 가슴으로는 원망이 가득했다.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가브리엘레는 사과하지 않았다.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이사벨라는 승리자의 미소를 띤 채 이 모든 상황을 굽어보고 있었고 귀부인들은 뒤에서 자기들끼리 속닥이고 있었다.

나중에 콘타리니 백작부인이 그래도 너무했다, 몬테펠트로 소후작부인과 비텔리 부인이 불쌍하다는 말이 나올 수야 있겠지만 여기서 난리가 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였다.

하지만 화가 머리끝까지 난 카멜리아는 그런 것까지 계산할 여유가 없었다.

“가비⋯⋯!”

가브리엘레에게 가까이 가서 따지려던 카멜리아는 피오루치 가의 문지기에게 막혔다.

순식간에 떠밀린 그녀는 배를 붙잡고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악!”

“카멜리아!”

카루소 대표가 대경실색해서 뛰어들었다.

“카멜리아, 오, 괜찮소?”

“으으⋯⋯.”

카멜리아의 노란 공단 드레스 자락에 새빨간 피가 묻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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