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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5화> 출생의 비밀 (2) (352/733)

<제105화> 출생의 비밀 (2)2021.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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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파 할머니는 말레타의 체온을 재 보고, 맥을 재고, 분비물을 확인하더니 선언했다.

16583739595009.jpg“애가 들어선 게 확실해.”

말레타는 얼굴에 희색이 만면해서 다시금 물었다.

16583739595014.jpg“할멈, 진짜예요?”

16583739595009.jpg“그럼 내가 거짓말하는 거 봤어? 초기기는 하지만 틀림없어. 임신 맞아.”

16583739595014.jpg“됐다……!”

노파는 처녀가 애를 배고도 뛸 듯이 기뻐하는 세태에 혀를 찼다. 도덕과 윤리가 땅에 떨어진 시대 같으니라고.

16583739595009.jpg“당분간은 조심하고. 술 마시지 말고. 애 아버지가 하자고 매달려도 받아 주지 마. 초반에는 유산될 수도 있어. 몸조심해야 해.”

16583739595014.jpg“예, 예!”

말레타는 산파 할멈에게 플로린 은화를 다섯 개 건네고는 서둘러서 데 마레 추기경 관저로 돌아갔다. 이 기쁜 소식을 이폴리토 도련님께 빨리 전해야 했다. 말레타는 두르고 갔던 모피 망토를 현관문에 들어오자마자 현관에 서 있는 일 도메스티코에게 척, 건넸다. 마치 상전이라도 된 듯한 태도였다. 일 도메스티코는 ‘이 인간이 미쳤나?’라는 표정으로 말레타를 쳐다보았지만 기세에 밀려 말레타의 모피 망토를 건네받고 말았다.

16583739595014.jpg“도련님—!”

말레타는 목청껏 도련님을 부르짖으며 2층의 이폴리토의 방으로 향했다. 마침 이폴리토는 자기 방에 있었다. 비스듬히 누워, 모처럼 책을 편 차였다.

16583739595014.jpg“도련님, 우리에게 사랑의 결실이 생겼어요!”

16583739595048.jpg“오?”

말레타는 이폴리토가 자신을 품에 얼싸안고 기뻐해 줄 것을 상상했지만 이폴리토는 누운 자세에서 한치도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에 굴할 말레타가 아니었다.

16583739595014.jpg“도련님, 우리 결혼식은 언제 올리나요?”

이폴리토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하지만 말레타는 자기 확신에 차서 계속 이폴리토를 몰아붙였다. 반쯤은 흥분해서 이폴리토의 반응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기도 했고, 나머지 절반쯤은 우세를 점한 자의 여유였다. 내가 애를 뱄다는데 네가 싫더라도 어쩔 것이냐, 결혼은 기정사실이다, 이런 태도였다.

16583739595014.jpg“추기경 예하와 루크레치아 마님께 말씀은 드렸나요? 언제 드리실 거에요? 도련님이 드리실 거죠? 제가 하는 것보다는 그게 낫겠죠?”

이폴리토의 표정에 드디어 균열이 났다. 추기경 예하를 언급하자마자 나온 변화였다. 어디로 보나 자식이 생겨서 기뻐하는 젊은 아버지의 얼굴은 아니었다.

16583739595048.jpg“그래, 말레타.”

이폴리토가 황급하게 말레타의 말을 받았다.

16583739595048.jpg“부모님께 말씀드려야지. 말 나온 김에 잘 됐다. 내 지금 당장 어머니께 말씀드리고 오마.”

그는 잽싸게 몸을 일으켰다.

16583739595048.jpg“어디 가지 말고, 여기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

이폴리토는 말레타에게 신신당부했다.

16583739595014.jpg“네, 네!”

말레타는 기쁜 얼굴로 울부짖었다. 그리고 이폴리토가 나가고 약 1시간여가 흘렀다. 말레타도 이폴리토가 순순히 데 마레 추기경 부부에게 가서 임신 사실을 실토하고 바로 결혼 날짜를 잡아올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 시간 동안이나 돌아오지 않자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16583739595014.jpg‘설마, 도망갔나……?’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설마 그렇게까지 하랴 싶었다. 말레타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이폴리토 도련님이 도망가신 경우에도 이 집에서 뭉개는 것이 최선의 전략이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장손을 뱄다는데 설마 내쫓기야 하겠어. 말레타가 이런저런 궁리를 하고 있는데, 방문이 열렸다. 말레타가 반색을 하고는 의자에서 일어섰다.

16583739595014.jpg“도련님?”

하지만 몰려 들어온 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람들이었다. 하녀장 지아다가 죽은 후 루크레치아의 새 심복이 된 로레타 아주머니와, 집사 니콜로 아래의 몇몇 하인들이었다.

16583739595009.jpg“이 망측한 것! 결혼도 안 한 처녀가 어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외간남자와 붙어먹어?!”

16583739595014.jpg“예? 예?”

16583739595009.jpg“어떤 놈과 일을 쳤는지 몰라도 넌 이 저택에는 더 이상 있을 수 없다!”

16583739595014.jpg“어느 놈이냐니! 당연히 이폴리토 도련님의 아이…….”

16583739595009.jpg“닥쳐! 어서, 저년을 끌어내요!”

집사 니콜로가 보낸 하인들이 말레타의 사지를 움켜잡았다.

16583739595014.jpg“아악!”

말레타는 아랫배를 보호하려고 몸을 웅크렸지만, 건장한 사내들이 사지를 하나씩 붙들고 허공으로 들어 올리니 속수무책으로 벌러덩 들릴 수밖에 없었다.

16583739595014.jpg“으아악!”

말레타는 필사적으로 몸부림을 쳤다.

16583739595014.jpg“이놈들아! 이거 놔라! 내 배 속에 어느 분 아이가 있는 줄 아느냐! 이폴리토 도련님의 아이다!”

그녀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자 난감해진 로레타가 말레타의 뺨을 때렸다.

16583739595009.jpg“너, 조용히 해!”

16583739595014.jpg“내 배 속에는! 이폴리토 도련님의 아이가 있다!”

16583739595009.jpg“이게 아주 그냥!”

로레타는 급한 김에 앞주머니에 들어있던 더러운 행주를 꺼내 말레타의 입에 쑤셔 넣었다.

16583739595014.jpg“읍!! 읍!!”

행주가 들어간 게 싫은 건지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아니면 숨이 막히는 건지 알아먹을 수 없는 울부짖음이 말레타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하지만 로레타는 말레타가 일단 닥쳤다는 사실에 만족했다.

16583739595009.jpg“어서 가십시다!”

그녀는 장정들을 이끌고 가족들이 거주하는 2층을 떠나 재빨리 아래층 별관으로 향했다. 주방에 연결된, 설거지를 해치우고 창고 대용으로 쓰는 곳으로, 하녀들을 벌주고 처리하는 곳이었다. * * * 한 시간 전, 이폴리토는 자기 방을 나오자마자 모친, 루크레치아의 1층 방으로 향했다. 결혼 허락을 맡기 위해서는 결코 아니었다.

16583739595048.jpg“엄마.”

16583739606952.jpg“우리 아들, 웬일로 먼저 엄마를 다 찾아왔어.”

16583739595048.jpg“엄마, 엄마 아들 큰일 났어요.”

16583739606952.jpg“왜, 무슨 일이야. 뭐든지 말만 해. 엄마가 다 해결해줄게.”

이폴리토는 말을 꺼내기 전에 루크레치아의 눈치를 보며 뭉그적댔다. 제아무리 아들 바보인 루크레치아라도 이번에는 ‘오구오구’ 넘어가기 힘들 것 같았다.

16583739595048.jpg“그게……. 있잖아…….”

16583739606952.jpg“괜찮아. 엄마 믿고 얘기하렴.”

16583739595048.jpg“……말레타가 임신했대요.”

루크레치아는 산사태도 낼 수 있을 만큼 우렁찬, 배 속 깊은 곳에서부터 뽑아낸 고함을 질렀다.

16583739606952.jpg“뭐라고?!”

16583739595048.jpg“엄마, 말레타가 임신했대. 어떻게 좀 해 줘요.”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아들에게 ‘너는 어떻게 하고 싶니’라고 묻는 것이 상궤였겠지만, 이폴리토가 여기까지 찾아온 차에 아들의 내심은 선명했다. 책임지고 싶지 않은 것이다.

16583739606952.jpg“아이고, 이 자식아!”

루크레치아는 자기보다 한 뼘 반은 족히 큰 장성한 아들의 등짝을 때렸다. - 퍽! 이번에는 이폴리토도 제가 잘못한 걸 아는지 아프단 내색도 없이 고분고분하게 맞고 참았다.

16583739606952.jpg“너 그렇게 놀아나는 꼬락서니 보고 엄마가 이럴 줄 알았다, 알았어!”

16583739595048.jpg“아, 알겠으니까 어떻게 좀 해 줘요!”

울먹거리기 직전인 이폴리토를 보며 루크레치아는 아들을 윽박질렀다.

16583739606952.jpg“너! 어깨 펴! 당당하게! 사내자식이 그러고 다니면 안 돼.”

이폴리토는 30초 전까지는 잘못했다고 자기를 두들겨 패더니 지금은 잘못한 거 없으니 당당하게 어깨를 펴라는 어머니의 주문에 혼돈에 빠졌다. 하지만 루크레치아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가 때려서 벌게진 아들의 등짝과 구겨진 겉옷을 탁탁 쳐서 반듯하게 펴 주었다. 그 손길에는 약간의 분노가 서려 아들을 마저 패는 것 같기도 했다.

16583739606952.jpg“남자가 살다 보면 그럴 수 있어! 괜히 주눅 들어서 쭈그렁하게 다니지 말아!”

참 훌륭한 자식 교육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 방의 소파에 웅크려 앉은 이폴리토를 두고 루크레치아는 설렁줄을 당겨 새로운 측근 하녀, 로레타를 불렀다. 지아다만큼 오래 데리고 있었던 사람은 아니지만 타란토 출신의 동향 사람이었다.

16583739606952.jpg“로레타! 집사 니콜로를 데려와라! 아니다, 내가 지금 니콜로에게 가겠다.”

루크레치아는 니콜로에게 뇌물로 쓸 금화를 찾기 위해 방 안을 뒤졌다. 그녀가 농에서 꺼낸 자루에는 대부분 플로린 은화만 보였고 두카토 금화는 몇 닢 남지 않은 상태였다. 루크레치아는 인상을 쓰며 장롱 깊은 곳에 숨겨두었던 이사벨라의 핑크 사파이어 티아라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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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83739606952.jpg“로레타. 있다가 오후에 이걸 전당포에 맡기고 두카토 금화로 바꿔 와라.”

루크레치아는 이 마지막 남은 금화를 아들내미를 돈독 오른 하녀 계집에게서 구해내는 데에 쓰기로 했다. 장남은 그녀의 생명줄이자,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인생 최후의 사랑이었다. 이폴리토는 집안 좋고 양순한, 왕족까지는 안 되더라도 구 귀족의 무남독녀 외동딸과 만나야 했다. 결혼으로 영지를 얻은 대귀족이 되어서 산 카를로 사교계에 녹아드는 것이 그녀 아들의 정해진 운명이었다. 다른 어떤 것도 용납할 수 없었다. * * * 루크레치아가 집사 니콜로와 담판을 짓는 동안 이폴리토는 불안하게 소파 위에서 몸을 이리저리 꼬았다. 루크레치아는 3-40분은 족히 지나서야 돌아왔고, 이폴리토는 어머니가 방에 돌아오자 펄떡 뛰는 물고기처럼 소파에서 튕겨 올라 어머니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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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83739606952.jpg“잘 처리했어.”

루크레치아는 겉에 걸쳤던 가운을 벗어 소파에 얹으며 아들을 노려보았다. 루크레치아는 드물게 보이는 어머니다운 모습으로 이폴리토에게 훈계할 작정이었다. 다만 훈계의 내용이 조금 이상했다.

16583739606952.jpg“남자가 말이야, 좀 놀 수도 있어. 놀다 보면 자식이 생길 수도 있고, 뭐 그런 거야. 그런데 말이다.”

이폴리토에게는 희귀하게 보이는 어머니의 정색한 얼굴에 이폴리토는 찔끔해서 거북이처럼 목을 어깨 안으로 묻었다.

16583739606952.jpg“결혼하기 전에 그러면 안 돼.”

일견 정상적인 것 같았지만 미묘하게 틀렸다.

16583739606952.jpg“너, 어중이떠중이하고 결혼할 생각은 아니잖니, 안 그래?”

16583739595048.jpg“그, 그렇지.”

16583739606952.jpg“사생아 딸린 남자한테 누가 시집을 오겠어? 제정신 똑바로 박힌 귀족 영애라면 그런 선택 안 한다.”

이폴리토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에게는 물려받을 작위와 영지가 없었다. 아내를 통해 장인어른의 것을 받지 않으면 아버지 사후에는 평민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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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폴리토의 윤리의식 수준으로도 납득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16583739606952.jpg“너, 이번에만 엄마가 처리해 준 거야. 다음은 없어!”

이폴리토는 그제야 안도가 되었는지 히죽 웃었다. 이폴리토의 웃음은 루크레치아의 눈에는 배시시 미소가 퍼져나가는 천진한 모습으로 보였다. 그는 덩치에 걸맞지 않게 어머니에게 매달려 치댔다.

16583739595048.jpg“아이 엄마, 역시 엄마밖에 없어. 난 엄마 아들, 엄마 최고.”

루크레치아의 팔을 잡고 흔들던 이폴리토는 은근히 물었다.

16583739595048.jpg“엄마, 그럼 걔는 어떻게 해치웠어? 티베리 강에 던졌어?”

루크레치아의 안색이 안 좋아졌다.

16583739606952.jpg“아들?”

16583739595048.jpg“왜?”

16583739606952.jpg“너 진짜……. 그래도 네 애를 밴 여자야. 어쩜 그렇게 잔인하니.”

루크레치아는 마치 이제껏 하인을 안 죽여본 사람처럼 정색을 했다. 아들의 뒤치다꺼리를 하며 남의 집 귀한 딸의 인생을 나락으로 처박았지만, 특이하게도 이번만은 루크레치아는 말레타를 죽일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다. 이 상황은 자기밖에 모르는 루크레치아에게도 과거 자신이 겪었던 일과 겹쳐 동정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오늘의 일은 루크레치아에게 과거 젊었을 적, 불러가는 배를 광목천으로 꾹꾹 동여매고 데 마레 추기경, 아니, 당시에는 수사 시몬을 만나러 가던 시절을 상기시켰다. 배 속에 어린 생명을 품은 채로 남자한테 버림받고 한 몸, 아니 두 몸 누일 자리를 찾는 일이 얼마나 고되고 힘들었는가. 그때의 기억이 루크레치아에게는 드문, 일말의 자비로움을 불러일으켰다. 루크레치아는 스스로의 인자함에 나름 뿌듯함을 느끼고 있던 터였다. 하지만 루크레치아의 오랜만의, 나름의 선행은 이폴리토의 다음 발언으로 산산조각이 났다.

16583739595048.jpg“엄마. 걔가 너무 많이 알아. 아라벨라가 아빠가 다르다는 걸 들었어.”

16583739606952.jpg“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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