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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1화> 수선화 정원의 밀회 (378/733)

<제131화> 수선화 정원의 밀회2022.03.06.

수선화 정원은 왕궁 안의 정원 중에서는 길을 찾기 쉬운 편에 속했다. 수선화가 모두 키가 작아서, 정원 전체의 길이 한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리아드네는 팔라지오 카를로에서 9년을 살았다. 왕궁의 모든 샛길은 눈감고도 찾을 수 있었다. 그녀는 짙은 향기가 감도는 야간의 수선화 정원에 발을 디뎠다.

16583741394141.jpg“아리!”

알폰소의 목소리가 그녀를 반가이 맞이했다. 인기척을 기민하게 잡아낸 그는 수선화 정원 정중앙에 마련된 넝쿨 아치 아래에서 한달음에 달려와, 정원 초입에서부터 걸어오고 있던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16583741394141.jpg“길을 찾아오는 데 어렵지는 않았어? 시간이 오래 걸려서 걱정했어.”

아리아드네는 물끄러미 알폰소를 바라보았다. 푸른 빛을 띤 자주색 하늘에는 별이 보석처럼 수놓아져 있었고, 연한 푸른색 궁정 예복을 입고 황금을 녹여 만든 듯한 머리카락 색의 알폰소는 거기에 그림같이 잘 어울렸다. 알폰소의 푸른 예복과 라리에사 대공녀의 주황색 드레스가 두 곡이나 함께 플로어를 누빈 것을 생각한 아리아드네는 매몰차게 그 손을 쳐낼까 잠시 고민했으나, 그러기에는 그녀가 알폰소를 너무 좋아했다. 아리아드네는 삐진 티를 숨기지 않기는 했지만 결국 한 타이밍 늦게 알폰소의 내민 손을 잡았다.

16583741394149.jpg“바보.”

알폰소는 웃으며 아리아드네의 손을 끌어당겨 손끝에 입술을 맞췄다.

16583741394141.jpg“장갑 벗어 봐.”

16583741394149.jpg“왜.”

16583741394141.jpg“체자레 백작과 이 손을 잡고 춤췄지? 당장 장갑 벗어.”

말은 그녀에게 벗으라고 했지만 참지 못한 알폰소는 이빨로 아리아드네의 실크 장갑을 물어 당겨 벗기고는 그녀의 손가락에 키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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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83741394149.jpg“으음.”

따지려던 말이 무의미했다. 알폰소는 내가 자기한테 약한 걸 알고 있는 게 틀림없어, 라고 아리아드네는 속으로 생각했다. 알폰소의 입술이 아리아드네의 상념을 끊었다. 그는 손가락의 뿌리까지 타고 내려와 손가락과 손가락이 갈라지는 연한 부분에 입술을 문질렀다.

16583741394149.jpg“아앗……!”

아리아드네는 민감한 곳에 닿는 감촉에 손바닥을 쥐려고 했다.

16583741394141.jpg“쉿, 가만히 있어.”

알폰소는 손바닥 한가운데로 전진해 나갔다. 간지러운 숨결에 아리아드네는 몸을 비틀었다.

16583741394149.jpg“아이, 하지 마.”

그녀의 제지에 알폰소는 아리아드네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이미 그녀를 껴안다시피 한 상태였다. 알폰소는 그녀의 귀에 속삭였다.

16583741394141.jpg“네가 체자레 놈이랑 춤을 출 때 미쳐버리는 줄 알았어.”

이성을 반쯤 잃은 눈으로 그녀와 눈을 맞춘 알폰소는 아리아드네를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아리아드네는 바로 대답했다.

16583741394149.jpg“너도 라리에사 대공녀와…….”

하지만 아리아드네는 문장을 끝낼 수가 없었다. 그대로 잠시 멈춰 있던 알폰소는 두말하지 않고 아리아드네의 입술을 덮쳤다.

16583741394149.jpg“……읍!”

저돌적인 움직임이었다. 알폰소는 저녁 내내 시달렸던 것을 만회라도 하려는 듯 맹렬하게 아리아드네에게 매달렸다. 그의 뜨거운 숨결이 그녀의 피부를 간지럽혔다. 정원 가득한 밀도 높은 수선화 향기에 더해, 알폰소에게서는 정갈한 백단향의 자취가 났다. 처음에는 알폰소를 밀어내는 듯했던 아리아드네도 이내 열정적으로 알폰소의 입맞춤에 화답했다. 그녀는 두 팔로 알폰소의 목에 매달리듯 그를 껴안고 키스했고, 그의 손이 그녀의 목덜미를 헤집듯이 들어가며 그녀를 안았다. 알폰소가 아리아드네를 안은 손에 힘을 주자 그녀는 더욱 알폰소에게 가깝게 밀착했고, 알폰소는 자기 상체에 와 닿는 보드라운 그녀의 몸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16583741394149.jpg“하아……!”

그의 입맞춤이 더욱 깊숙하고 더욱 농밀해졌다. 아리아드네는 호흡이 모자라서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알폰소는 그녀를 놓아주지 않고 집요하게 계속 따라왔다. 알폰소의 손에 아리아드네의 반묶음 머리가 마구 헝클어지고 있었다. 아리아드네에게서는 좋은 체향이 났다. 향수에 별 관심이 없는 알폰소는 그게 무슨 향인지는 몰랐지만, 아리아드네에서 나는 향기라는 것은 확실하게 기억했다. 그는 마지막 한 방울까지 그녀와 관련된 것이라면 하나도 놓치지 않고 들이마셨다.

16583741394149.jpg“아앗…….”

아리아드네가 그의 품에서 작게 몸부림쳤다. 너무 꽉 안아서 아팠던 모양이었다. 부서지기 직전까지 그녀를 껴안고 있던 그는 간신히 이성을 찾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16583741394141.jpg‘하늘에 계신 천신이시여, 제가 그대에게 올리는 번제를 받아 주시고…….’

알폰소가 속으로 주기도문을 암송하고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아리아드네가 달콤하게 입술을 떼내고 별빛처럼 빛나는 녹색 눈으로 알폰소를 올려다보았다. 그 역시 깊게 가라앉은 눈으로 그녀를 마주 응시했다. 젊은 연인은 수선화가 만발한 정원에서 서로 시선을 맞추며 껴안은 채였다. 알폰소는 코로 아리아드네의 뺨을 비비댔다. 그는 갑자기 말을 꺼냈다.

16583741394141.jpg“미안해. 라리에사와 제때 끊지 못해서.”

타박할 타이밍을 놓친 아리아드네는 알폰소를 올려다보았다. 이렇게 먼저 사과를 해 버리면 뭐라고 할 수도 없게 된다.

16583741394141.jpg“그녀에게 확실하게 얘기했어, 당신과 결혼하고 싶지 않다고.”

그러자 되려 아리아드네의 눈이 동그래져서 알폰소를 마주 바라보았다.

16583741394149.jpg“괜찮아? 그분이 화내거나 하지는 않았어?”

성질이 장난 없어 보였는데. 알폰소는 고개를 저었다.

16583741394141.jpg“아니야. 충격받은 것 같기는 했는데, 울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하지는 않았어.”

아리아드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은 라리에사 대공녀에 대해서 애초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바로 패악을 부리거나 소리를 지르지 않은 것만 해도 성공이다.

16583741394149.jpg“왜 무도회장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어, 네가 곤란해질 수도 있었을 텐데.”

아리아드네는 알폰소가 걱정돼서 타박 같은 한마디를 안 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알폰소가 위험해지는 것은 죽기보다도 싫었다. 알폰소는 아리아드네를 유하게 달랬다.

16583741394141.jpg“잘 이야기했어. 잘 이야기하느라 한 곡 더 춰야 했어.”

알폰소는 자신의 볼로 아리아드네의 뺨을 문댔다. 아리아드네는 짐짓 새침하게 알폰소를 흘겨보며 살짝 밀어냈다. 하지만 눈가에 어리는 반달 웃음을 숨길 수는 없었다.

16583741394149.jpg“화장 지워지잖아.”

16583741394141.jpg“그러니까 봐줘.”

그는 애교를 부리듯이 그녀에게 매달렸다.

16583741394141.jpg“그쪽이 소리 지르거나 사고 치지 않게 잘 이야기하느라 나 엄청나게 고생했다고.”

아리아드네는 이번에야말로 참지 못하고 작게 킬킬거리며 알폰소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었다.

16583741394149.jpg“잘했어요, 고생했어요 우리 강아지.”

알폰소의 얼굴에 큰 미소가 떠올랐다. 그녀의 화가 풀렸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16583741394141.jpg“그런데 우리 고양이는 말이야. 주인 없는 사이에 몰래 빠져나가 외간 남자와 춤이나 추고 말이야.”

화가 풀린 것을 확인했으니 이제 나쁜 짓을 한 고양이를 혼쭐낼 때다. 알폰소는 아리아드네의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리며 추궁했다.

16583741394141.jpg“도대체 체자레 백작이랑은 왜 춤을 춘 거야? 라파엘 녀석은 어디서 뭘 하고 있었길래 널 그놈이랑 단둘이 둬?”

16583741394149.jpg“아야야. 아야.”

아리아드네는 머리가 헝클어져서 당기는 걸 과장되게 호소했다. 알폰소는 그녀를 괴롭히던 손길을 멈췄고 아리아드네는 입술을 부루퉁 내민 채 답했다.

16583741394149.jpg“왕자님이 정혼 예정자와 춤을 추고 계시는데 저라고 외간 남자와 왈츠 한 곡 못 추겠어요?”

할 말이 없어진 알폰소는 아리아드네의 목덜미를 만지작거리며 무언으로 항의했다. 애먼 사람 탓은 덤이었다.

16583741394141.jpg“라파엘이 잘못했네.”

16583741394149.jpg“줄리아랑 두 번째 왈츠를 추러 간 거야.”

16583741394141.jpg“여동생이건 뭐건 네 곁을 지켰어야지!”

라파엘에게 부탁한 것은 에스코트뿐이었고, ‘어중이떠중이들이 내 여자 곁에 오지 않도록 잘 지켜달라’고 부탁한 적은 없었지만 알폰소는 일단 성을 내고 봤다. 그의 아리아드네가 체자레와 춤을 추다니, 아리아드네에게 화낼 수 없는 알폰소의 유일한 선택지는 애먼 라파엘에게 굴절 분노를 터트리는 것이었다. 아리아드네는 알폰소의 기색을 읽었는지, 아니면 알폰소를 더 놀리고 싶었던 것이었는지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16583741394149.jpg“그런데 발데사르 소후작은 몸이 많이 약하신가 봐. 어려서부터 병약했대.”

16583741394141.jpg“뭐? 그놈이? 자기가 기사 준비했다고는 얘기 안 했어?”

16583741394149.jpg“몸이 약해서 그만뒀다던데.”

알폰소는 약한 척을 하는 친구의 위장에 어이없어하며 혀를 내둘렀다.

16583741394141.jpg“라파엘은 왕국 제일가는 쾌검이야. 세검술은 라파엘을 따를 자가 없어. 햇빛을 보면 눈에 안 좋아서 야외 훈련을 할 수가 없어서 그만뒀을 뿐이야. 걔가 어디가 약해?”

16583741394149.jpg“불쌍해…….”

아리아드네는 라파엘을 동정하고 있었지만, 그가 약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16583741394149.jpg“재능도 있고 의지도 있는데 객관적인 한계 때문에 진로를 바꾸다니…….”

그리고 알폰소는 자신의 여자가 이상한 곳에 동정심을 낭비하는 것을 두고 보지 않았다.

16583741394141.jpg“너 자꾸 내 앞에서 다른 남자 이야기할래?”

16583741394149.jpg“알폰소, 국왕이 되면 모두가 자기의 재능을 꽃피울 수 있는 그런 세상을 만들어야 해.”

아리아드네는 진지하게 알폰소를 바라보았다.

16583741394149.jpg“평민이건, 사생아건, 여자건, 신분에 구애받지 않고 능력이 있는 사람이 큐리아 레지스에 들어갈 수 있고 재능이 있는 사람이 가문을 이을 수 있는 그런 사회.”

미래상을 이야기하는 중이었지만 그녀는 꽃향기가 짙은 수선화 정원 한가운데에서 아치에 기대어 선 왕자에게 거의 밀착하듯이 끌어안긴 채였다. 깊숙이 파인 짙은 푸른 드레스의 목둘레선 위로 아리아드네의 새하얀 목선과 쇄골, 가슴선이 더할 나위 없이 유혹적으로 알폰소의 코앞에서 그녀의 숨결에 따라 오르락내리락했다.

16583741394149.jpg“이게 꼭 소외된 사람들에게만 좋은 건 아니야. 진로가 고위 귀족으로 정해져 있다는 건 당사자들에게도 나빠. 라파엘도 사실 신학자가 되고 싶은데, 집안을 물려받아야 해서―.”

알폰소는 아리아드네를 가까이 당겨 고쳐 안았다.

16583741394149.jpg“……읍!”

그는 아리아드네의 예쁜 토끼 입술에서 더 이상 다른 남자의 이름을 듣고 싶지 않았다. 그는 두말하지 않고 그녀의 입술을 덮어 말을 하지 못하게 해 버렸다. 아리아드네는 알폰소의 가슴을 손으로 두어 번 쳐 보았으나, 이내 달콤하게 쳐들어오는 애정의 점령군에 굴복해 감미로운 키스에 열중했다. 젊은 연인은 창백하게 부서지는 달빛 아래에서 열정적인 입맞춤을 나눴다. 그의 황금실 같은 머릿결이 흰 달빛에 반사되어 빛났고, 그녀의 새카만 머릿결과 하얀 피부는 달빛을 맞이해 적요하게 윤이 났다. 연하늘색 예복을 갖춰 입은 알폰소와 짙푸른 색 드레스를 입은 아리아드네는 둘도 없는 선남선녀 한 쌍이었다.

16583741407673.jpg“……!”

수선화 향기로 가득한 작은 정원에서 하나의 인영이 열렬한 젊은 연인의 키스를 보았다. 그녀는 중키에 평범한 갈색 머리를 하고, 밀가루처럼 푸석한 피부를 가졌다. 걸치고 있는 옷은 밝은 다홍색과 샛노란색이 섞인 몹시 화사한 드레스였지만, 심심한 그녀의 외양에 걸쳐 놓으니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수선화 정원 초입에 우뚝 선 다홍색 드레스의 여인 본인은 자신이 이곳에 속하지 않는 이방인이라고 생각했다.

16583741407673.jpg‘알폰소 왕자……! 그리고 저 여자는……!’

수선화 정원의 여인, 라리에사 대공녀는 상대 여자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정신없이 키스하는 한 쌍의 연인들을 쳐다보았다. 검은 머리카락과 푸른 드레스가 어두운 사이에 사각사각 빛났고, 한참을 기다리자 여자의 옆선이 달빛에 희뿌옇게 반사되어 드러났다.

16583741407673.jpg‘데 마레 추기경의 둘째 딸……! 역시 저 여자였어……!’

수선화 정원에서 알폰소 왕자와 데 마레 추기경 차녀의 입맞춤을 목격하고 느꼈던 첫 번째 감정은 강렬한 수치심이었다.

16583741407673.jpg‘내가 못생기고 평범해서 왕자가 나 대신 저 여자를 골랐다.’

그것이 진실이건 아니건 상관없었다. 라리에사는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다. 그녀에게 든 두 번째 감정은 불타는 질투심이었다.

16583741407673.jpg‘그런데 저 여자가 나보다 나은 게 뭐지? 둘도 없는 미인이야? 신분이 높아? 자기가 뭐길래 내 정혼 상대를 채가?’

이는 금방 분노로 이어졌다.

16583741407673.jpg‘더러운 짓을 한 게 틀림없어! 내 남자한테 저 여자가 꼬리를 친 거야!’

알폰소 왕자에 대한 적개심은 무의식중에 곱게 접어 닫아버렸다. 다, 저 여자의 탓이다. 저 여자만 없어지면 왕자와 대공녀는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라고 이야기될 수 있었는데 저 여자가 모두 망쳤다. 라리에사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본인이 옳다는 자기 확신, 둘 다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차마 이 현장을 소리를 지르며 급습하지는 못했다. 그녀도 희미하게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 그녀는 알폰소 왕자에게 확고한 이별 선언을 들었다. 지금 덤벼보았자 차인 여자가 멀쩡한 커플에게 광분하는 꼬락서니밖에 되지 않는다. 그녀에게 있는 대의명분, 국가 간의 협상을 알폰소 왕자가 망쳐버렸다는 비난, 그런 것들은 다른 사람들이 주변에 있을 때에야 먹히는 거였다. 지금 이렇게 셋만 있는 상황에서 라리에사 대공녀가 덤빈다면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머리를 잘 쓰지 않는 라리에사가 보아도 뻔했다. 알폰소는 라리에사를 미친 사람 취급하고, 그의 불여우를 소중하게 감싸고 돌 것이다. 그 상상을 하자 라리에사의 가슴 속에서 분노의 불길이 이글이글 솟아올랐다. 그녀는 수선화 정원에서 몸을 돌려, 거칠기 짝이 없는 발걸음으로 쿵쿵쿵쿵 궁전 쪽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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