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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체자레 백작의 욕망 (400/733)

<제18화> 체자레 백작의 욕망2021.02.03.

체자레 데 코모. 레오 3세의 서자이자 호적상 코모 백작의 아들인 그는 인생이 항상 불만족스러웠다. 영광은 늘 코앞에 있었으나 그의 손아귀에 들어오기 직전에 다른, 그보다 못한 자의 차지가 되곤 했다. 젖비린내 나는 애송이 알폰소의 손에 쥐어진 왕자의 호칭이 그 대표적인 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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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대성황당의 중앙회랑 기준 오른쪽에 있는 발코니석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불만족스러웠다. 여기는 ‘진짜 왕실 가족’이 대미사를 보기 위해 모이는 최상단부의 발코니석이 아닌 그보다 한 층 아래에 설치된 발코니석이었다. 국왕은 항상 오른쪽 꼭대기의 발코니석에서 사이가 좋지 않은 왕비와 그들의 깜찍한 강아지 같은 아들과 함께 꾸역꾸역 대미사를 보았다. 국왕 내외가 모여 있는 발코니석의 분위기는 항상 냉랭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오 3세가 웃음과 농담이 넘치는 아래쪽 발코니석으로 발걸음을 하는 법은 절대로 없었다. 체자레와 루비나 백작 부인이 레오 3세를 차지할 수 있는 것은 항상 공식 석상이 아닌 은밀한 내실에서뿐이었다. 그의 온 신경은 오른쪽 꼭대기의 발코니석에 쏠려 있었지만 자존심상 절대로 위를 쳐다볼 수는 없었다. 체자레 본인이 아래에서 위를 바라보고 있는 와중에 자기 손으로 이룬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알폰소 놈이 위에서 아래로 오시하는 시선과 마주치는 것은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체자레는 무릎 꿇는 것, 아래에서 위에서 올려다보는 것을 세상에서 가장 싫어했다. 신경을 분산시키기 위해서 내려다본 아래층 대회랑에서는 추기경의 딸인 아름다운 이사벨라가 뽐을 내며 대회랑의 정중앙 통로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행위 자체만을 평가해보자면 악취미라고 생각했지만 신이 난 요정처럼 아름다운 17세 소녀가 거드름을 피우는 광경은 그 자체로도 보기 좋았다. 이사벨라는 군중의 시선을 모으는 마력을 가지고 있었다. 위에서 내려다보자니 장관이었다. 그녀의 걸음사위를 따라서 남자들의 고개가 순차적으로 중앙회랑 쪽으로 돌아갔다.

16600820069533.jpg‘이건 뭐, 차륜진(車輪陣)도 아니고.’

체자레는 여자에게 홀려서 자신의 고개 하나 컨트롤을 못 하는 아래층의 장삼이사들을 내심 비웃었다. 그는 스스로가 특별하다고 생각했다. 왕의 핏줄을 타고난 국왕의 장자. 혈통적으로 우월한 그가 세상을 모두 다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가장 훌륭한 수컷인 본인에게 적합한 짝은 이 산 카를로 전체에서 가장 선망받는 암컷인 이사벨라 데 마레일 것이었다. 그는 이사벨라가 가지고 싶었다. 저번 달에 포르토 공화국 출신 상인이 가지고 온 주먹만 한 루비와, 검은 피부가 이색적인 무어인 노예와, 발로아 공작령에서 새로 나왔다는 물건인 대포가 가지고 싶은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물건 그 자체에 관해서 관심이 가는 것이 아니라 그 물건을 가진 체자레 본인에게 쏟아질 주변의 경탄이 가지고 싶었다.

16600820069538.jpg- ‘역시 체자레 백작이야, 가장 훌륭한 준마는 다 체자레 백작의 소유이지 않소?’

16600820069538.jpg- ‘준마뿐이야, 산 카를로 성의 미녀들은 모두 다 그의 포로라오.’

16600820069538.jpg- ‘이사벨라 데 마레까지 가지다니! 역시 체자레 백작은 대단해.’

시답잖은 농담을 하며 같이 몰려다니는 무리가 그를 추켜올려줄 상상을 하니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아래층에서 황금빛 소녀가 그를 바라보며 귀엽게 웃었다. 수줍은 레이디가 이렇게까지 대담하게 그에게 관심을 표하다니, 이는 신사로서 답을 해주지 않을 수 없는 신호였다. 그는 고개를 까딱해서 그녀의 추파에 답장을 돌려보내 주었다.

16600820069533.jpg‘조만간 데 마레 추기경에게 혼담에 대한 의중을 한 번 더 물어봐야겠어. 다음 달에 아버지를 뵐 때도 운을 띄워봐야지.’

이사벨라를 탐욕스럽게 바라보던 와중에 이사벨라의 뒤를 따라가는 검은 머리의 소녀가 체자레의 눈에 띄었다. 검은 머리 소녀의 우중충하고 검박한 몰골은 화사한 이사벨라와 화려한 루크레치아 사이에서 어색하게 눈에 확 튀었다. 그는 뒤에 있던 어머니, 루비나 백작 부인에게 물었다.

16600820069533.jpg“어머니, 저기 데 마레 추기경 일가에 끼어 있는 시커먼 여자애는 뭡니까?”

루비나 백작 부인은 긴 줄로 손톱 손질을 하며 고개도 들지 않고 대답했다.

16600820069538.jpg“데 마레 추기경이 다른 정부한테서 얻은 둘째 딸이란다. 벌써 마르그리트 왕비에게 잘 보였다던데.”

16600820069533.jpg“도대체 뭘 보고요?”

16600820069538.jpg“사람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지 마라. 저 어린 것이 벌써 까탈스러운 마르그리트 왕비 눈에 든 걸 보면 여간 보통내기가 아니야.”

16600820069533.jpg“계집애가 영리한 걸 대체 어디다 씁니까?”

루비나 백작 부인은 가는 눈을 뜨고 아들을 쳐다봤다.

16600820069538.jpg“넌 이 엄마가 얼굴 하나만 예뻐서 이 자리에 왔다고 생각하니?”

16600820069533.jpg“아닌가요?”

머리가 굵어졌다고 반항하는 아들을 체자레와 똑 닮은, 인상이 차갑고 선이 가느다란 미인인 루비나 백작 부인이 못마땅하게 노려보았다.

16600820069538.jpg“한심한 자식.”

그때 대성황당의 파이프 오르간이 장엄하게 연주를 시작했다. 설교의 시작을 알리는 곡조였다. 연주를 배경으로 하며 거친 삼베 옷을 입고, 평사제의 납작한 모자를 쓴 남자 하나가 중앙 제단으로 느릿하게 올라갔다. 보기 드물게 큰 키와, 푹 파인 안와(眼窩) 안의 부리부리한 눈과 형형한 안광이 심상치 않은 자였다.

16600820069533.jpg“설교가 시작하나 봅니다. 저 사람이 아세레토의 사도겠군요.”

어머니의 화를 튕겨내고자 하는 체자레가 부글대는 속마음에도 불구하고 짐짓 설교에 집중하는 척을 했다. 떠들썩하던 대성황당 내부도 아세레토의 사도가 제단 위로 올라가자 차츰 조용해졌다. 평소 데 마레 추기경의 설교를 기다릴 때보다 한층 더 집중력 있고 기대감에 차 있는 분위기였다. 데 마레 추기경의 설교가 라틴어인 것과 대조되게, 아세레토의 사도의 설교는 보통 사람들이 사용하는 에트루스칸-아세레토 어였다.

16600820069538.jpg“- 그분께서는 인간으로 태어나셨습니다.”

그의 설교는 첫 마디부터 도발적이었다.

16600820069538.jpg“예사크의 헛간에서 목동의 아들로 태어나, 서른 살에 성신(聖神)의 명을 받아 성신의 아드님이 되시기 전까지는 인간으로서 웃고, 살고, 배우셨습니다.”

사람들은 숨조차 죽인 채 아세레토의 사도에게 집중했다.

16600820069538.jpg“성신께서 첫 번째 희생을 통하여 그분을 자신의 아드님으로 선택하셨을 때에야 인간으로 태어나신 그분께서는 비로소 성자(聖子)가 되어 성신과 동일한 신성을 획득하신 것입니다.”

이 부분에 다다르자, 청중의 반응은 극적으로 갈렸다. 열광적으로 긍정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불편해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16600820069538.jpg- ‘그럼 예사크의 곤께서 태생부터 성신님의 아들이 아니라 원래는 사람의 아들이라고?’

16600820069538.jpg- ‘너무 과격한 것 아니에요?’

아세레토의 사도의 설교는 사람들로부터 매우 다른 반응을 끌어냈다. 가난하고 어려운 자들에게 그의 설교의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제일 미천한 자라도 성신의 가르침을 체화하고 배우고 익히고 실천하면 성신께서 친히 제 아들로 간택해 하늘 아래 천년 나라에서 가장 높은 보좌(寶座)에 올려 주신다는 이야기는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이었다. 반면에, 식자층과 지배계급에게 아세레토의 사도의 설교는 불온 그 자체였다. 귀족들에게 아세레토의 사도의 ‘가장 낮은 자도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다’라는 설교는 심대한 위협이었다. 기득권인 성황청과 그 산하의 성황당들은 신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

16600820069538.jpg- ‘고귀한 영은 왕족이나 귀족으로 태어나서 선행을 베풀고 미천한 영은 평민으로 태어나서 속죄를 한다. 착한 일을 많이 해야 다음 생에 귀족으로 태어날 수 있고, 왕족이나 귀족은 그 신분 자체로 성신께서 보시기에 훌륭한 자질을 갖추고 있는 사람들임이 증명된 자들이다.’

왕족과 귀족들은 이 가르침에 기반하여 통치의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었다. 이 단계를 뛰어넘어서 평민이 바로 신의 아들이 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기존 사회질서에 대한 도전이었다. 성직자들에게 아세레토의 사도는 그보다도 더 실질적인 문제를 제기했다. 성황서의 신경은 예사크의 곤이 남긴 ‘명상록’과, 예사크의 곤의 여섯 제자가 남긴 ‘복음서’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복음서는 인간이 남긴 기록이라고 하여 해석의 여지가 있었으나 명상록은 신의 아들이 직접 내리신 언어로서 문장부호 하나, 오타 하나까지 전부 다 신성한 의미를 부여받고 있었다. 성황청의 권위는 ‘명상록’에서 주로 나왔다. 세속권력이 성황청에 반대되는 행동을 취할 때 성황청은 명상록에서 그것을 논파하는 한 줄을 발췌해서 들이댔다. 법황의 권한인 파문과 조합하면 먹히지 않는 일이 없었다. 몇 년 전 아세레토 대공이 조강지처를 내치고 일곱 살 먹은 타란토의 비앙카를 후처로 들이려고 했을 때, 타란토 영지의 상속권이 아세레토로 넘어갈 것을 우려한 레오 3세를 포함한 주변국 군주들의 성화에 못 이긴 루도비코 법황은 아세레토 대공에게 단호하게 ‘명상록’의 구절들을 들이밀었다.

16600820069538.jpg- “네 아내를 후대하라.” “혼인은 신성하다.” “나이든 자는 젊은이를 탐하지 말지어다.”

명상록의 신적인 권위가 인정될 때에는 저 발췌 구절들은 정언명령이었다. 그저 무조건적으로 따라야만 했다. 반면에, 명상록이 복음서와 같이 예사크의 곤이 인간이었던 시절에 쓰여졌던 인간의 언어에 불과한 것으로 내려오게 된다면 여기에는 이제 해석의 여지가 들어가게 되었다.

16600820069538.jpg- “네 아내를 후대하라.”

이것이 신의 말씀이 아니라 사람의 말에 불과하다면, 후의를 받을만한 후덕한 부인이 아니라, 투기가 심하고 못된 아내에게는 적용되지 아니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16600820069538.jpg- “혼인은 신성하다.”

혼인이 신성한 것은 성신의 품 안에서 축복받은 후계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인데, 아내가 석녀라면 그 혼인도 존중되어야 하는가?

16600820069538.jpg- “나이든 자는 젊은이를 탐하지 말지어다.”

젊은이가 정신연령이 조숙한 경우에는 괜찮지 않을까? 젊은이가 먼저 나이든 자를 사랑하면 위 구절은 면제되는 것이 합당하지 않은가? 아세레토 대공은 루도비코 법황의 명상록 발췌 구절에 근거한 파문의 위협에 오래 버티지 못하고 타란토의 비앙카를 포기해야 했다. 하지만 타란토의 비앙카를 탐했던 사건이 좌절되고 난 후 아세레토 대공은 아세레토의 사도, 당시에는 그저 ‘사제 알레한드로’라고 불렸던 남자에게 전면적인 지원을 했다. 평사제에 불과했던 그에게 설교를 할 수 있는 대성황당을 내주었고, 사도를 찾아오는 젊은 사제들을 먹이고 입히는 데에 사용할 수 있도록 대공령의 예산에서 자금을 떼어 주었다. 그렇게 고작 몇 년이 지난 후의 결과가 지금 보는 이것이었다. 사제 알레한드로는 이제 아세레토의 사도가 되어 백성들을 등에 업고 성직자와 귀족들을 위협하고 있었다. 아리아드네는 대회랑 왼쪽 발코니의 맨 뒤에서 그림자처럼 루크레치아와 이사벨라, 아라벨라의 뒤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다가,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일어났다. 아라벨라가 일어서는 아리아드네를 쳐다보았지만, 아리아드네는 아라벨라에게 슬쩍 귓속말을 했다.

16600820089759.jpg‘나 잠깐 화장실 좀.’

아리아드네는 루크레치아가 달아 준 금귀걸이를 모두 빼서 소매 속에 넣었다. 완벽한 무대에는 완벽한 착장이 필요했다. 쥐죽은 듯이 숨을 죽이고 가파른 계단을 따라 대회랑의 일 층으로 내려간 아리아드네는 계단의 난간 뒤에 숨어 결정적인 순간을 기다렸다. 아세레토의 사도의 설교는 점점 클라이맥스로 치닫고 있었다.

16600820069538.jpg“예사크의 곤께서는, 결국 인간의 아들인 것입니다!”

중년인의 중후한 바리톤 목소리가 대성황당 내부를 쩌렁쩌렁 울리고 청중이 이를 복잡한 심경으로 듣고 있을 때, 소녀치고는 무거운, 듣기 좋은 허스키한 톤의 목소리가 공간을 뚫고 울려 퍼졌다.

16600820089759.jpg“부끄러운 줄을 아십시오!”

아리아드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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