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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화> 이사벨라의 음모 (450/733)

<제68화> 이사벨라의 음모2021.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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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빛 아래 희미하게 드러난 여자의 얼굴을 본 이사벨라는 전율했다. 정숙하고 신실하기로 이름 높은, 젊은 바톨리니 백작 부인이었다. 그녀의 결혼하기 전 이름은 클레멘테 데 콘타리니로, 오타비오 데 콘타리니의 큰누나였다. 풀린 눈과 벌게진 피부를 보아하니 바톨리니 백작 부인도 꽤나 마신 모양이었다. 볼썽사나운 한 쌍이 자기들의 일에 열중해 점차 더 진도를 나가고 있을 때 드디어, 그들이 이사벨라 외의 사람에게도 발견되었다.

16600823426966.jpg“거기 누구요!”

16600823426966.jpg“에구머니나!”

소리를 지른 것은 함께 산책을 하고 있던 귀족 부부였다. 그들은 캄파 후작과 바톨리니 백작 부인을 발견하고는 비명을 질렀다.

16600823426966.jpg“⋯⋯!”

16600823426966.jpg“!”

벤치의 남녀도 얼어붙고 말았다. 특히나 소스라치게 놀란 바톨리니 백작 부인은 취기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가면을 손으로 낚아채고는 괴력을 발휘해 캄파 후작을 밀어냈다. 그녀는 벌떡 일어나더니 소리가 난 방향의 반대 방향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그 방향은 이사벨라가 서 있던 방향이었다. 밝은 갈색의 드레스를 입고 있던 바톨리니 백작 부인과 이사벨라의 눈이 순간 마주쳤다. 여자의 눈에는 진한 낭패감이 서려 있었다. 그 순간 이사벨라에게 어떤 영감이 떠올랐다.

16600823426983.jpg‘이거다⋯⋯!’

바톨리니 백작 부인과 이사벨라의 눈이 마주친 것은 정말 찰나였다. 그녀는 이사벨라마저도 밀치고 정원 속 깊숙한 곳으로 빠르게 달아났다. 여인에게 밀쳐진 캄파 후작은 쿵 소리를 내며 벤치에서 떨어졌다. 소리를 지른 귀족 부부 쪽에서 웅성대며 사람들이 몰려왔다.

16600823426966.jpg- “이게 무슨 일이래요?”

16600823426966.jpg- “가면무도회에서 어쩜 이런 남사스러운 짓을……!”

16600823426966.jpg- “아니 근데 저거 캄파 후작 아니에요?”

사람들은 다들 이사벨라와 같은 지점에서 경악했다.

16600823426966.jpg- “대체 상대 여자가 누구야?”

16600823426966.jpg- “얼굴 봤어요?”

16600823426966.jpg- “비위도 좋지!”

16600823426966.jpg- “미쳤나 봐!”

이사벨라는 손가방 안에 손을 넣었다. 그 안에는 아까 주웠던 아리아드네의 플뢰르-드-리스 팔찌가 들어 있었다. 이사벨라는 혼잡을 틈타 아리아드네의 팔찌를 공터에 은근슬쩍 굴려 넣었다. 붉은 루비는 손가방 안에 남았지만 녹색 토파즈 팔찌는 도르르 굴러가 캄파 후작으로부터 2 피에디(약 1 미터) 정도 떨어진 잔디 사이까지 들어가서 멈췄다. 이사벨라는 큰소리로 외쳤다.

16600823426983.jpg“저거 봐요! 여자 팔찌예요!”

이사벨라의 외침은 과연 반응이 좋았다. 사람들은 대번에 손가락이 가리킨 풀숲을 주목했고, 거기에는 잔디와 같은 색이지만 식물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반짝이는 보석 팔찌가 있었다. 정원의 밀회자들을 처음 발견한 귀족 부부인 다피아니 남작 부부 중 부인이 얼른 안으로 뛰어 들어가 녹색 토파즈 팔찌를 주웠다. 남작 부인은 팔찌를 들어 올리고는 흥분해서 울부짖었다.

16600823426966.jpg“그 상대 여자 물건인가 봐요!”

사람들이 대번에 떼를 지어 들어와 팔찌를 살폈다. 공터가 웅성웅성 시끄러워졌고, 인파가 속속 몰려들어 금세 열댓 명 정도가 모여들었다. 캄파 후작은 그야말로 음주대만취한 상태였다. 너무 취한 그는 여인이 그를 밀치고 달아날 때 내연녀의 힘도 이기지 못하고 벤치에서 굴러떨어졌는데, 그 모양 그대로 바닥에 얼굴을 묻고 코를 골기 시작했다. 미처 추스르지 못한 바지춤이 난잡하게 흐트러져 있었다. 신사 한 명이 보다 못해 캄파 후작의 망토를 당겨 그의 몸통을 통째로 덮어 버렸다. 속속들이 몰려드는 사람들 중에는 과연 팔찌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었다.

16600823426966.jpg- “이거, 콜레지오니의 이번 시즌 잡화 상품 같은데요?”

16600823426966.jpg- “맞아, 맞아, 나도 카탈로그에서 본 것 같아요. 플뢰르-드-리스 모양이야.”

16600823426983.jpg‘좋아, 다들 슬슬 정답에 접근해 가고 있어.’

하지만 생각보다 속도가 너무 느렸다. 모르는 척 옆에 서 있던 이사벨라는 저 무지한 군중에게 조금만 더 도움을 주기로 했다. 그녀는 딴청을 피우다가 은근슬쩍 한마디를 얹었다.

16600823426966.jpg“그거 산 사람이 거의 없던데요. 콜레지오니의 플뢰르-드-리스 장신구, 저도 사고 싶어서 문의를 넣었는데, 누가 선점을 해서 더는 판매하지 않는다고 했어요.”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이 이사벨라 외에도 몇 명 더 있던 모양이었다. 나도, 나도, 하는 추임새와 함께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16600823426966.jpg“그렇다면 이번 시즌 콜레지오니 신상품을 찬 여자를 찾으면 되겠군!”

사람들의 호기심에 불꽃이 튀었다. 그 정도 특정이 된다면 분명히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도망친 여자는 짙은 노란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노란 드레스에, 콜레지오니 신상품을 찬 여자라니. 사람들은 요란하게 누가 오늘 콜레지오니 신상품을 착용하고 왔는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16600823426966.jpg- “난 오늘 마르케즈 백작 내외가 플뢰르-드-리스 장식을 하고 왔던 것 같은데!”

16600823426966.jpg- “아니에요, 그건 콜레지오니 잡화 물건이 아니고 알페토 거예요. 디테일이 떨어져.”

16600823426966.jpg- “아까 도망친 여자가 짙은 노란색 드레스를 입고 있지 않았소? 마르케즈 백작 부인은 오늘 붉은 드레스야.”

한창 토론이 분분하던 와중이었다. 왕비궁 쪽 방향으로부터 하나의 인영이 나타났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고 혹시 발로아 대공녀가 발견된 것이 아닐까 해서 찾아보러 다가온 아리아드네였다. 사뿐사뿐 나타난 여인은 사람들이 몰려서 몹시 소란스러운 것을 보고 발걸음을 멈칫했다.

16600823426966.jpg“저거 봐요!”

누군가의 외침에 사람들의 시선이 다 일제히 아리아드네에게로 향했다. 아리아드네는 짙은 황금색 드레스를 입고 플뢰르-드-리스 문양이 그려진 볼토 가면을 쓰고 있었다. 그녀의 볼토 가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플뢰르-드-리스 문양의 황금 장식이 있었고, 또 가면에 연결된 플뢰르-드-리스 문양의, 초록색 토파즈 목걸이가 있었다. 누가 보아도 완연하게 바닥에서 발견된 초록색 토파즈 팔찌와 세트로 제작된 물건이었다. 이사벨라는 몰래 주먹을 쥐었다.

16600823426983.jpg‘됐다!’

내가 가질 수 없으면, 너도 가질 수 없어. 평판 한 번 망가져 봐. 어딜 감히 네 주제에 왕자님을 넘봐. 공터에 들어선 아리아드네는 대번에 자신을 찌르는 사람들의 노골적인 시선에 적지 않게 놀랐다. 하지만 그녀는 주눅이 들거나 섣불리 말을 꺼내느니 남들이 그녀에게 먼저 무슨 일인지 말을 걸기를 기다렸다. 고요히 서 있는 여자를 바라보며 자기들끼리 수군대던 사람들 중, 그 팔찌를 처음으로 주웠던 귀족 부인이 총대를 멨다. 그녀는 그 팔찌를 앞으로 내밀며 물었다.

16600823426966.jpg“혹시 이 팔찌가 영애의 것인가요?”

아리아드네는 그 팔찌를 보자마자 그게 자기 팔찌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디에서 잃어버렸는지, 아니 잃어버렸다는 사실조차 지금 알았지만 빛나는 보석의 재질이나 그 섬세한 패턴 짜임은 그녀의 팔찌가 맞았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귀족 부인의 눈이 기묘하게 빛나고 있었다. 여기서 자기 것이라고 인정을 했다가는 뭔가 뒤에 다른 이야기가 더 나올 것 같았다.

16600823438893.jpg“그건 왜 물으시지요?”

아리아드네는 손목을 내려다보지 않도록 주의하며 신중하게 대답했다. 다행히 얼굴이 가면에 가려져 있어서 그녀의 기색은 남들에게 잘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조심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인파 중의 누군가가 그녀를 손가락질하면서 외쳤다.

16600823426966.jpg“가면에 달린 목걸이를 봐요! 똑같은 플뢰르-드-리스 문양이라고!”

그 외침을 시작으로 웅성거림이 시작됐다.

16600823426966.jpg- “목걸이도 초록색 토파즈인 걸 보니 틀림없어요!”

16600823426966.jpg- “드레스 색깔도 같다고. 내가 똑똑히 봤는데 어두운 황금색이었어!”

16600823426966.jpg- “저 여자가 캄파 후작의 내연녀 맞는 것 같아요!”

그 이야기를 들은 아리아드네는 그제야 이게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 수 있었다. 그녀도 캄파 후작의 위명은 알고 있었다. 이 공터 바닥에는 술에 엉망으로 취한 장년 남자가 뻗어 있었는데, 그가 캄파 후작인 모양이었다. 망토가 대충 덮여 있었지만 그의 옷매무새가 흐트러져 있다는 사실은 대번에 보였다. 그녀와 비슷하게 생긴 어떤 여자가 캄파 후작과 은밀한 밀회를 즐기다가 사람들에게 들켜서 달아난 모양이었다. 아리아드네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16600823438893.jpg“오해가 있으신 것 같습니다. 저는 이 공터에는 지금 막 왔어요. 제가 정말로 캄파 후작의 내연녀라면 정원 속으로 도망을 갔겠지 도대체 왜 돌아왔겠어요?”

이사벨라는 ‘귀중한 팔찌를 찾으러 온 것 아닙니까!’라고 외치고 싶은 욕구를 혀끝을 깨물어가며 참았다. 그녀는 이미 데 마레 추기경에게 밖에서 동생의 평판을 해하지 말라는 엄중한 경고를 받은 참이었다. 데뷔탕트 무도회 때 한 번, 그리고 억울했지만 사냥대회 때 한 번이었다. 이번에 걸리면 삼세번이다. 데 마레 추기경은 세 번째로 걸린 이사벨라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었다. 입이 간질간질했지만 이사벨라는 하루살이 악당이 아니었다. 내일도, 모레도 영원무궁토록 잘 먹고 잘살려면 보중해야 했다. 사람들이 웅성댔다.

16600823426983.jpg‘누구라도 뭐라고 말 좀 해봐!’

초조해진 이사벨라는 엄지손톱을 깨물었다. 하지만 그녀는 대중의 저열한 호기심과 게으름을 믿었다. 잠깐 지체되고 있기는 했지만, 군중이 일단 한 번 물었으니 확고한 반증이 나오기 전에는 놔주지 않을 것이었다. 사람들은 확신이 생기면 생각을 바꾸는 것을 싫어했다. 이렇게까지 판이 깔렸는데 제아무리 아리아드네라도 희생 없이 빠져나갈 수는 없을 것이다.

16600823426966.jpg“영애, 증명해 보시지요. 그런 정황증거는 누구든지 댈 수 있어요.”

과연, 누군가가 최초의 왜곡된 제안을 했다. 올바른 공방의 방법은 의문을 제기하는 자에게 자신의 의혹을 증명할 의무를 지운다. 하지만 이렇게 누군가 악의 없이 쓱 던진 잘못된 제의는 깊게 생각하지 않던 사람들에게 감겨들었다.

16600823426966.jpg- “그러게? 안 했으면 증거를 가져오면 되잖아.”

16600823426966.jpg- “저 사람 수상해. 왜 아까부터 가면을 안 벗고 있지?”

아리아드네는 사실 여차하면 풀숲으로 도망쳐 버릴 생각으로 가면을 벗지 않고 있는 것이 맞았다. 피부 한 톨 보이지 않게 손가락 끝까지 꽁꽁 싸맸는데 누군지 알 게 뭔가. 도망갈 각도를 재던 아리아드네의 눈에 구석에 서서 손톱을 깨물던 이사벨라가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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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00823438893.jpg“……!”

16600823426983.jpg“…….”

이복자매의 눈빛이 허공에서 만났다. 이사벨라를 본 순간 아리아드네는 자신의 팔찌가 왜 여기에서 발견되었는지 깨달았다. 이사벨라다. 마차에서 떨어졌을 수도 있고 집에서부터 훔쳤을 수도 있지만 저 팔찌는 이사벨라의 수작으로 인해 여기서 발견된 것이 틀림없었다. 이사벨라는 아리아드네의 오늘 착장과 가면을 알고 있었다.

16600823438893.jpg‘내가 지금 여기서 도망치면 이사벨라는 반드시 내가 누군지 나불댈 거야.’

이사벨라는 아리아드네를 바라보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아리아드네가 떠나기만을 기다리는 것이 틀림없었다. 두 자매가 대치상태로 버티는 동안 사람들은 계속 모여들었다. 그중에는 이사벨라의 뒷일 생각하지 않는 친구인 레오나티 자작 영애도 있었다. 그녀는 한눈에 이사벨라를 알아보고는 이사벨라 옆으로 다가섰다. 그 둘은 귓속말을 하더니, 까르르 웃었다. 레오나티 자작 영애 레티시아는 재미있어 죽겠다는 얼굴로 의기양양하게 볼토 가면을 쓴 황금빛 드레스의 여인에게 다가갔다. 그러더니 그녀는 목청을 돋워 큰소리로 외쳤다.

16600823426966.jpg“둘째 데 마레 영애? 이런 곳에서 만나다니 공교롭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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