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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화> 애정의 증대 혹은 그 비슷한 것 (484/733)

<제102화> 애정의 증대 혹은 그 비슷한 것2021.11.24.

알폰소는 산 카를로에 도달했을 때와 비교해 꼭 두 배 만큼 엉망진창이 되어서 타란토에 도착했다. 제아무리 체력이 좋은 사람이더라도 채 24시간의 휴식조차 취하지 못한 채 3일 밤낮을 달리는 강행군을 두 번 수행하는 것은 못 해먹을 짓이었다. 이건 기사라고 해도 다르지 않아서, 왕자를 호위해서 떠난 10명의 기사 중 3명은 중간에 낙오해 버려 타란토까지 제시간에 돌아온 사람은 왕자까지 총 8명뿐이었다. 덕분에 알폰소 왕자는 본인이 댄 알리바이, 즉 ‘몸이 좋지 않으시다’에 꼭 맞는 상태가 되어 돌아오자마자 침대에 쓰러졌다. 그런 알폰소에게 왕자의 비서관인 베르나르디노가 조심스럽게 다가가 고했다.

166008254598.jpg“왕자님, 피곤하실 것은 이해하오나 급하게 들으셔야 할 보고가 있습니다.”

16600825459805.jpg“디노, 나중에.”

알폰소는 돌아오자마자 목욕을 했는데, 뜨거운 물에 몸이 들어가니 눈이 저절로 감겼다. 도저히 보고를 들을 상태가 아니었다.

166008254598.jpg“라리에사 대공녀의 일이온데…….”

정말로 들을 기분이 나지 않았다.

16600825459805.jpg“디노. 세 시간만 있다가 처리하자.”

알폰소가 실내용 튜닉을 입은 팔을 눈 위에 얹고 빛을 가리자 베르나르디노는 물러가기 시작했다. 아니, 물러가려고 했다. - 벌컥!  

16600825459819.jpg“왕자님!”

166008254598.jpg“힉!”

라리에사 대공녀가 방으로 쳐들어온 것이다. 베르나르디노는 기겁을 해서 울부짖었다. 베르나르디노의 주군을 휴식하게 두려는 기특한 생각은 실패로 돌아갔다. 거의 문을 부수고 들어오다시피 한 라리에사 앞에 몸을 던지다시피 한 베르나르디노는 양 팔을 벌리고 황급하게 그녀를 제지했다.

166008254598.jpg“대공녀님! 외간 남자 방에 이렇게 마구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하지만 라리에사 대공녀는 베르나르디노를 밀치고 알폰소 왕자의 침대 앞으로 우격다짐으로 전진했다.  

16600825459819.jpg“왕자님!”

16600825459805.jpg“……대공녀?”

  알폰소의 몰골은 초췌하기 그지없었다. 일주일간 꼬박 하루 열여섯 시간씩 말을 갈아타며 강행군을 한 터라 몸무게는 3-4 로톨로(약 3-4kg)는 족히 빠져 있었고, 수면 부족으로 눈그늘이 짙게 드리워진 상태였다. 비몽사몽 상태라서 열이 오른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여위고 파리한 알폰소의 모습을 본 라리에사는 깜짝 놀라 손으로 입을 막았다.  

16600825459819.jpg“왕자님……. 진짜로 아프셨군요.”

  그녀는 알폰소의 이마에 손을 짚으려고 했다.  

16600825459819.jpg“죄송해요……. 라리가 보기 싫으셔서 아픈 척하시는 줄 알았어요. 정말로 아프신 거였구나.”

  알폰소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려 그녀의 손길을 피했다. 라리에사는 왕자가 노골적으로 피한 것을 알아채지 못했거나 혹은 전혀 개의치 않는 듯이 왕자에게 한 번 더 손을 대려고 했다. 경악한 베르나르디노가 몸을 던지다시피 해서 그 앞을 막았다.  

166008254598.jpg“대공녀님! 이러시면 아니 되옵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 전에 어서 방으로 돌아가셔야지요!”

  베르나르디노는 시종을 불렀다.

166008254598.jpg“거기 아무도 없느냐? 경비……. 아니, 르비엥 백작님을 모셔 오너라!”

본능적으로 경비를 불렀지만 그는 막판에 르비엥 백작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타국의 공주 대접을 받는 대공녀를 경비병을 불러 끌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르비엥 백작이 온다는 소리에도 라리에사는 태연했다. 르비엥 백작이 전혀 제어장치 역할을 못 해주고 있는 모양이었다. 다행히 바로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르비엥 백작이 알폰소의 별실로 달려왔다. 그는 왕자를 알현할 허락을 받지 못한지라 방 밖에 대기하고 선 채 라리에사를 안타깝게 불렀다.  

166008254598.jpg“대공녀님! 왕자 전하께서는 안정을 취하셔야 합니다! 어서 나오세요! 제발!”

  마지막 단어에서 본심이 절절하게 흘러나왔다. 라리에사는 왕자가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자 그제야 깜짝 놀라며 입을 가렸다.  

16600825459819.jpg“맞다, 왕자님. 쉬셔야지요.”

  그녀가 간호하겠다고 들러붙을까 봐 긴장했던 알폰소와 베르나르디노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16600825459819.jpg“라리는 그럼 ‘우리 알’을 두고 먼저 나가 볼게요.”

  방을 나가려던 그녀는 잠시 멈췄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알폰소와 눈을 맞춘 라리에사는 예의 검박한 미소를 흰 얼굴 가득히 지으며 덧붙였다.  

16600825459819.jpg“우리 알, 했던 약속 잊으시면 안 돼요?”

  그녀는 신이 난 듯이 드레스 자락을 흔들며 알폰소의 내실 밖으로 나가버렸다. 폭풍 같은 발로아 대공녀의 습격이 지나고, 잠이 온통 깨 버린 알폰소는 베르나르디노를 노려보았다.

16600825459805.jpg“디노. 나한테 할 보고가 있을 것 같은데.”

166008254598.jpg“왕자 전하, 안 그래도…….”

16600825459805.jpg“‘알’이 대체 누구인가? 설마 내 애칭인가?”

166008254598.jpg“그것이……. 다 설명할 수 있습니다.”

베르나르디노는 알폰소가 자리를 비운 새에 알폰소 왕자인 척하고 라리에사 대공녀와 편지를 교환했었다.

16600825459805.jpg“그리고 약속이라니, 무슨 약속?”

166008254598.jpg“그것도 지금부터 설명드리겠습니다!”

16600825459805.jpg“설명이 가능하다고 쳐, 책임은 질 수 있나?”

166008254598.jpg“책임은 못 지죠.”

알폰소는 베개를 얼굴 위에 덮고 소리를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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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말레타는 화장실에서 낭패한 표정으로 속옷을 들여다보았다. 붉은 피. 이번 달도 실패다. 이폴리토는 모르고 있었지만 말레타는 몸에 좋다는 것은 다 먹고 날짜까지 세 가며 적극적으로 임신을 시도 중이었다. 달거리 시작일로부터 보름이 지나면 그녀는 필사적으로 이폴리토에게 덤벼들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이폴리토는 여자가 능동적이니 재미가 좋다며 천진하게 즐거워했다. 말레타는 이를 악물었다. 애를 배기만 하면 바로 들어앉을 수 있을 텐데! 그 한 방이 참 아귀가 들어맞지를 않았다. 말레타가 자기가 임신하면 도련님이 책임져 줄 것이라고 확신하는 데에는 이유가 다 있었다.

16600825466052.jpg“말레타, 넌 무슨 일이 있어도 이 도련님밖에 없지?”

산 카를로로 돌아온 이후의 이폴리토는 타란토에서의 태도와 달리 말레타를 끔찍이도 아꼈다. 말레타의 타란토 체류는 의외로 실망스러웠다. 이폴리토는 타란토에서는 종종, 아니 꽤 자주, 말레타를 버려놓고 친구들과 연회를 즐기러 나가 버렸다. 떠나던 길에는 철석같이 ‘말레타야, 너도 꼭 겨울 사교계에 데려가 주마!’라고 외쳤던 이폴리토는 막상 파트너를 대동해서 참가해야 하는 정식 파티에는 단 한 번도 말레타를 데려가지 않았다. 말레타가 그나마 따라갈 수 있었던 것은 이폴리토의 동무들이 ‘살롱’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만든 카드게임 모임이었다. 부푼 마음으로 꽃단장을 한 후에 입장한 ‘살롱’에는 말레타 외에는 전원 실내에서 연초를 북북 피워대는 남자들이었다. 아, 여자가 있기는 있었다. 코르티잔이나, 시중드는 하녀. 이날 사교계에 ‘미래의 데 마레 부인’으로 소개될 것을 상상했던 말레타는 속이 상해 이폴리토에게 그만 성질을 부릴 뻔했다. 그나마 그녀의 마음을 위로해 준 것은 이폴리토의 친구들 중 하나였다.

166008254598.jpg“이 숙녀분은 누구신가?”

이름 모를 귀족 남자는 깍듯하게 공대를 하며 말레타를 아는 체 해주었다. 이 말에 말레타는 기분이 풀어져서 헤실댔다. 귀족의 언사에 익숙하지 않은 그녀는 이 격에 맞지 않는 과도한 높임말이 비꼼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16600825466052.jpg“아아. 왜, 그때 내가 얘기했던.”

안타깝게도 옆에 있던 이폴리토는 남자의 뉘앙스를 찰떡같이 알아듣고 그에 적합한 대답을 했다. 그는 말레타가 기대했던 대로 그녀가 자기와 결혼할 여자라는 언급은커녕 ‘애인’이라는 단어조차 사용하지 않았다.

166008254598.jpg“아, 그?”

귀족 남자는 새끼손가락을 하나 세워 보였다. 이폴리토는 낄낄대며 고개를 끄덕였다. 귀족 남자는 이폴리토의 어깨를 손으로 ‘팍’, 쳤다.

166008254598.jpg“재미 좀 보겠네.”

16600825466052.jpg“재미는 무슨. 보면 알잖아.”

166008254598.jpg“그래도 그렇지. 낄낄. 먼저 간다.”

그 이후로는 말레타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남자 손님들 사이에 소문이 쫙 퍼졌는지, 한번 만져 보자고 추근대는 놈도 있었고, 술 따르라는 놈도 있었고, 자기 망토 좀 들고 있으라는 놈도 있었다. 제아무리 신경 줄 굵은 말레타라지만 그날은 진짜 도련님 노리기를 때려치울 뻔했다. 그런데, 그랬던 이폴리토 데 마레가 변했다.

16600825466052.jpg“말레타, 너는 진짜 나밖에 없지? 나 없으면 못 살지?”

원래는 이폴리토 입안의 혀처럼 굴었던 말레타는 그간 쌓였던 것이 있어서 눈을 흘기며 대답했다.

16600825468475.jpg“도련님 뭐 못 먹을 거 드셨어요? 갑자기 왜 그래요?”

16600825466052.jpg“아이, 말레타. 넌 나밖에 없잖아. 그렇다고 말해봐.”

16600825468475.jpg“몰라요.”

말레타는 이 대화가 그들 간의 관계의 추가 역전되었다는 신호라고 여겼다. 하지만 그녀는 이폴리토의 눈이 뭔가를 관찰하는 뱀처럼 가늘어졌다는 사실은 미처 깨닫지 못했다. * * * 알폰소는 베르나르디노에게 사정 설명을 들은 뒤에 긴 장탄식을 했다.

166008254598.jpg“아니, 디노……. 내가 없는 사이에 이런 짓을…….”

알폰소 왕자가 없는 사이에 라리에사 대공녀는 자꾸 만남을 보챘는데, 그녀는 알폰소 왕자가 육촌 동생인 타란토의 비앙카를 만나러 가서 자리를 비워서 그녀를 만날 수 없다는 설명에 폭발했다. ‘내가 당신에게 육촌 여동생보다도 더 후순위냐’며 소동을 부린 것이다. 말이 좋아 소동이지 실물은 마치 자연재해 같았다며 베르나르디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16600825459805.jpg“그렇게밖에 처리할 수가 없었어?”

166008254598.jpg“전 최선을 다했습니다.”

베르나르디노는 비장하게 대답했다. 베르나르디노는 당시 라리에사 대공녀가 보내는 아침 편지에 대한 답장을 알폰소 왕자인 척하고 대필 중이었는데, 여자 마음이라고는 모르는 30대 후반의 노총각인 그로서는 도저히 변화무쌍한 18세 소녀의 기분을 맞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베르나르디노는 라리에사 대공녀가 요구하는 모든 것들을 오냐오냐 받아주었다.

166008254598.jpg“왕자님, 그 시한폭탄 같은 분을 무슨 수로 이제까지 그렇게 유순하게 관리를 하고 계셨습니까.”

베르나르디노는 ‘우리는 곧 결혼할 것이니 둘이서만 사용하는 애칭을 만들자’는 라리에사 대공녀의 요구에 백기 투항을 했고, 그 결과로 그들은 ‘라리’와 ‘알’이 되었다. 그 끔찍한 애칭은 알폰소가 예전의 아리아드네에게도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알폰소 왕자는 몸을 떨었다.

16600825459805.jpg“나라고 쉬운 줄 알아?”

166008254598.jpg“왕재이십니다, 왕재세요!”

라리에사 대공녀가 요구한 것은 더 있었다. 그녀는 산 카를로로 돌아가면 알폰소 왕자와 단둘이서 팔라지오 카를로의 명물인 수선화 정원을 방문하고 싶다고 했다. 선대 왕 중 한 명인 스테파노 1세가 그 수선화 정원에서 공작 영애인 타란토의 브리지테에게 청혼했다는 이야기가 내려오는 로맨틱한 곳이었다. 베르나르디노는 알폰소 왕자에게 스케쥴을 강제할 권한이 당연히도 없었다. 그렇지만 그는 당장 알폰소 왕자의 침실로 쳐들어오겠다는 라리에사 대공녀의 협박이 현실화되지 않도록 막는 데에 급급한 나머지, 나중에 핑계를 대서 거절하기로 하고 일단 수락해버렸다.

16600825459805.jpg“이런 류의 사람 관리가 어딜 봐서 왕의 재능인가. 수하의 재능이지.”

라리에사를 달래는 것쯤은 베르나르디노가 알아서 했었어야 했다는 알폰소의 질책이었다.

166008254598.jpg“인덕으로 용렬한 부하를 감화하여 다스리시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당연히 왕이 되실 자의 재능이시지요.”

베르나르디노는 오늘만큼은 혀가 닳도록 아부를 하기로 했다. 어쨌거나 알폰소 왕자는 진저리가 나는 애칭으로 불리며 그가 약속하지 않은 데이트 파기의 뒤처리를 감당해야 한다. 그는 알폰소의 기분을 조금이라도 낫게 하기 위해, 알폰소 왕자를 위로할 한마디를 건넸다.

166008254598.jpg“왕자님. 결혼하고 나면 결국에는 애칭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기왕 맞을 매, 조금 일찍 맞았다고 생각하세요.”

알폰소는 기묘한 표정으로 베르나르디노를 바라보았다. 베르나르디노는 불안한 기분이 들어 그의 어린 주군을 마주 바라보았다.

166008254598.jpg“설마…….”

베르나르디노도 왕자가 떠나고 나서 거의 곧장 소식을 전해 들었다. 데 마레 추기경의 죽은 딸은 막내인 아라벨라고, 둘째인 아리아드네가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166008254598.jpg“……아니라고 말씀해 주세요, 왕자님.”

16600825459805.jpg“자네 감이 맞아. 난 라리에사 대공녀와 결혼하지 않을 걸세.”

기겁한 비서관을 내버려 두고, 알폰소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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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00825459805.jpg“나는 아바마마와 어마마마께 말씀을 드리러 다녀오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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