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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아세레토에서 온 사도 (2) (537/733)

<제20화> 아세레토에서 온 사도 (2)2021.02.10.

아리아드네는 침착하지만 대회랑의 만인이 들을 수 있을 만큼 큰 성량으로 이단 심판관에게 답했다.

16630315460327.jpg“저희 아버지이신 추기경 예하께서는 파문자 알레한드로에게 협조하고 계셨던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녀는 한 걸음 앞으로 나가 이단 심판관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16630315460327.jpg“추기경 예하께서는 아세레토의 사도의 이단성을 크게 우려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공개된 장소에서의 논박을 준비하신 것입니다!”

16630315460337.jpg‘준비한 거라고?’

이단 심판관이 코웃음을 쳤다.

16630315460337.jpg“준비를 하셨다고요? 그렇다면 토론자로는 본인이 나서거나 다른 합당한 자격을 갖춘 사제를 내세워야지 어린 여자애를 내세워서 무슨 짓을 하는 겁니까 데 마레 추기경? 이게 애들 장난이오?”

아까부터 계속되는 자격에 대한 질문이었다. 그는 숫제 상체를 데 마레 추기경 쪽으로 비스듬히 향해 아리아드네를 반쯤은 등지고 선 자세로 말을 했다. 아리아드네는 역공으로 이에 대응하기로 했다.

16630315460327.jpg“예하께서는 성황청을 존중하셨기 때문에 그리하신 것입니다!”

아리아드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16630315460327.jpg“아세레토의 사도는 성황청에서 친히! 산 카를로로 보내신 루도비코 법황 성하의 손님이었습니다. 그런 손님께 추기경 예하께서 직접 나서서 종교 논쟁을 벌인다면 루도비코 법황 성하의 낯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녀는 기세에서 전혀 밀리지 않고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 이단 심문관에게 삿대질을 했다.

16630315460327.jpg“또한!”

그녀의 손가락이 그녀를 바라보지 않는 심판관의 코앞까지 날아들었다.

16630315460327.jpg“아세레토의 사도의 설교 내용은 오늘 전혀 사전에 논의가 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서품을 받은 사제라면 누구든 그 설교의 내용은 모두 신성할진저, 설교를 미리 검열하는 것은 설령 그 검열의 주체가 루도비코 법황 성하 본인이라고 할지라도 천부당만부당 한 일입니다! 그저 산 카를로의 사람들은 아세레토의 사도, 아니 사제 알레한드로가 자신을 초대한 루도비코 법황 성하와, 집주인인 산 카를로의 백성들과 데 마레 추기경 예하를 고려하여 좀 더 일반적인 설교를 해주실 것이라고 믿어 마지않았습니다.”

아리아드네는 이단 심판관 휘하의 사제들에게 강제로 무릎을 꿇려 있는 아세레토의 사도를 흘긋 쳐다보았다.

16630315460327.jpg“먼저 의논을 하시던가, 아니면 스스로 자제를 하시던가 하셨어야죠! 산 카를로의 사람들과 데 마레 추기경을 존중하지 않은 것은 오히려 아세레토의 사도입니다!”

그녀는 세 치 혀를 놀려 오늘 산 에르콜레 대성황당에서 이단으로 규정된 설교가 울려 퍼지게 된 책임을 데 마레 추기경의 탓에서 아세레토의 사도 때문인 것으로 은근슬쩍 돌려 버렸다. 사실 아세레토의 사도를 단상에 올리면 그가 저런 내용의 설교를 할 것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예측할 수 있었다. 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말씀을 전하는 자였다. 엄밀히 따지자면 이것은 주로 고의로 아세레토의 사도를 산 카를로에 초대하여 대미사의 설교를 하게 되는 상황을 유도한 루도비코 법황의 책임이었고, 굳이 책임자를 추가하자면 알면서도 손을 놓고 있었던 데 마레 추기경의 방관이 어느 정도 일조한 것이었다. 이단 심판관은 일일이 루도비코 법황을 끌고 들어가는 아리아드네의 꼬투리에 약간 부담을 느낀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이 정도에서 멈출 생각이 없었다.

16630315460327.jpg“게다가, 추기경 예하께서는 아세레토의 사도의 이단성을 우려하셔서 신학적 고찰들을 미리 하고 계셨습니다. 공개 논박에 대한 신학적 근거들은 모두 준비되어 있었고요. 다만 공식적으로 토론을 할 자리를 잡자니 트레베로 공의회와 루도비코 법황 성하에 대한 불경이라 하지 못하셨던 것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아버지?”

데 마레 추기경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는 평소에는 이사벨라를 제외한 자식들이 공공장소에서 그를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을 질색했지만, 지금 그런 사소한 것 때문에 아리아드네를 힐난할 상황이 아니었다. 아리아드네가 지금 그를 부르는 호칭이 ‘아버지’가 아니라 ‘멍멍아’였어도 불만을 제기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하늘에서 굴려내려 온 동아줄을 덥석 잡았다.

16630315473085.jpg“그럼, 그럼, 그렇고말고! 이단 심판관, 나는 아세레토 학파의 이단성에 대해서 아주 예전부터 엄중히 여기고 있었네.도대체 루도비코 법황께서는 아세레토의 사도의 무엇을 믿고 산 카를로로 보내셔서 산 에르콜레 대성황당에서 설교를 하도록 하신 겐가!”

16630315460327.jpg“법황 성하께서도 사제 알레한드로의 간악함에 잠시 그 명안(明眼)이 흐려지신 것이겠지요. 이단은 언제나 신성함의 가장을 쓰고 나타나지 않습니까.”

아리아드네가 데 마레 추기경의 멘트를 넙죽 받았다. 부녀의 티키타카가 죽이 아주 척척 맞았다.

16630315460327.jpg“법황 성하의 체면을 보아서 공개적으로 제재하지 못하고 있던 차에, 단상 위에 올라서 하는 설교가 그 불경함에 있어서 점입가경이라 그만 제가 참지 못하고 난입하였던 것입니다!”

뒤늦게 들어온 이단 심판관은 아리아드네가 대미사 중에 아세레토의 사도와 신학적 논쟁을 벌이고 있던 사실을 정확하게 몰랐다.

16630315460337.jpg“그런 일이…… 있었소이까?”

시종일관 데 마레 추기경만을 쳐다보며 대화하고 있던 이단 심판관이 처음으로 아리아드네를 바라보며 대답을 했다. 처음보다 공손해진 어투였다.

16630315460337.jpg- “옳소! 저 영애가 아세레토의 사도의 설교를 중간에 막았지.”

16630315460337.jpg- “산 카를로의 체면을 살렸어요!”

16630315460337.jpg- “이단 심판관이 들어올 때까지 이교도의 설교를 얌전히 듣고만 있었으면 얼마나 부끄러울 뻔했나!”

16630315460337.jpg- “용감했지요. 대단해요.”

16630315460337.jpg- “신학의 수준도 대단했던 것 같소.”

16630315460337.jpg- “그 아버지에 그 딸이라니까요.”

회랑 안의 웅성웅성하는 군중의 목소리가 아리아드네에게 더욱 힘을 실어 주었다. 데 마레 추기경은 하늘에서 떨어진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았다. 그는 노회하게 이단 심판관을 무대의 중앙에서 얼른 밀어내 버렸다.

16630315473085.jpg“심판관! 나는…… 아니, 산 카를로 교구는 신앙에 충실할 책임을 다했소! 법황 성하의 칙령이라도 받아오기 전에는 이 일로 더는 왈가왈부하지 마시오!”

16630315460337.jpg“하지만 데 마레 추기경…….”

16630315473085.jpg“그대에게 권한이 있소? 충실한 교구를 이단과 엮으려면 법황 성하의 윤허 없이는 어림도 없소. 자, 얼른 죄인이나 압송하시지요. 빨리빨리 정리하고 모두 자기의 자리로 돌아갑시다.”

이단 심판관은 더 이상 데 마레 추기경에게 책임 추궁을 하지 못하고 아세레토의 사도를 밧줄에 묶어 끌고 나가 버렸다. 루도비코 법황에게 저자가 편지로 보고를 하고 재차 지시가 오려면 못해도 3주 가까이는 걸릴 것이었다. 그때까지는 안전했다. 데 마레 추기경이 사람들을 몰고 나간 어수선한 대성황당에서, 아리아드네는 드디어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손바닥이 땀으로 온통 축축했다. 긴장과 흥분으로 얼굴에 열이 발갛게 올라 있었다. 웅성대던 사람들은 대성황당 바깥으로 나가면서도 아리아드네의 방향을 흘긋흘긋 바라보았다. 드문드문 비기 시작했지만 총인원 5만 명까지 수용 가능한 거대한 대성황당 내의 사람들은 모두 초라한 검은 드레스를 입은 아리아드네를 주목하고 있었다. 이 순간 아름다운 이사벨라를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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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집으로 돌아가는 마차 안에서 아리아드네는 오늘 일어난 일들을 곱씹어 보았다. 가족들은 난리가 났을 때 먼저 자리를 피해 추기경 관저로 돌아간 터였고, 데 마레 추기경은 일어난 일들의 후폭풍을 처리하느라고 정신이 없어서 아리아드네는 추기경의 호화로운 은마차를 혼자서 타고 돌아가고 있던 참이었다. 데 마레 추기경은 책임 추궁을 당할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었으나, 이번 일은 데 마레 추기경을 징계하는 일 없이 마무리될 것이었다. 이번에는 추기경의 혈육인 아리아드네가 나서서 이단의 사제의 설교를 만인이 보는 앞에서 막았다. 신앙이 충실하지 못하다고 추기경을 단죄할 근거가 부족했다. 지난 생에서는 산 카를로의 모두가 아세레토의 사도에게 반항하지 못하고 멀거니 곧 파문당할 이단의 설교를 듣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때에도 루도비교 법황은 결국 데 마레 추기경에게 실질적인 불이익을 가하지 못하고 이 사건을 마무리 지었었다.

16630315460327.jpg‘대신 내가 체자레 데 코모와 약혼을 하게 됐지.’

아리아드네는 헛웃음을 지었다. 한 사람의 일생인데, 고작 이런 이유로 구렁텅이에 던져 넣어 졌었다니. 당시 루도비코 법황은 교구 관리를 합당하게 하지 못하고 산 카를로를 이단의 위험에 빠뜨린 죄로 데 마레 추기경을 주교로 강등시키고 산 카를로 교구를 새로 임명한 추기경에게 맡기려고 했었다. 그렇게 되면 끝장인 데 마레 추기경은 손이 발이 되도록 레오 3세에게 애걸복걸했다. 레오 3세는 모처럼 추기경이 본인의 발밑에서 구르는 상황을 느긋하게 즐길 수가 있었다. 호의는 대가 없이 주어지지 않는다. 레오 3세는 결국 본인의 서출인 체자레와 데 마레 추기경이 혼맥을 맺는 대가로 루도비코 법황에게 압력을 넣어 주었던 것이다. 그 상황에서마저 이사벨라가 아닌 아리아드네를 밀어 넣은 데 마레 추기경의 수완이 사기꾼 같았달 지, 천재적이었을 뿐이다.

16630315460327.jpg‘지금 생각해보니, 체자레는 노발대발 했었겠네.’

아내를 자매 중 누구로 맞느냐는 체자레 본인에게는 아주 큰 일이었을 터였지만, 그 아버지인 레오 3세에게는 사실 크게 중요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는 서출 자녀에게 추기경 장인을 만들어 주어서 체자레 데 코모 백작의 에트루스칸 왕국에서의 입지를 좀 더 단단하게 다져 주고 싶었을 따름이었다. 이렇게 아버지들 간의 거래로 이뤄졌던 지난 생의 약혼, 이번 생에는 반드시 피하고 싶었다.

16630315460327.jpg‘약혼을 하게 된 원인을 아예 없애버렸으니, 무사히 넘어갈 수 있겠지.’

  * * *

16630315477146.jpg“껄껄껄! 어린 영애가 보통내기가 아닐세!”

이 층 오른쪽 꼭대기 발코니석에서는 에트루스칸의 국왕인 레오 3세가 손뼉을 치며 박장대소를 하고 있었다.

16630315477146.jpg“이게 이렇게 처리가 될 줄이야, 한 편의 잘 짜인 연극을 보는 것 같소! 나는 루도비코 법황이 저 소녀와 미리 짰다고 해도 믿겠어. 어쩜 타이밍을 이렇게 잘 맞췄지?”

비서관이 웃음을 지으며 맞장구를 쳤다.

16630315460337.jpg“현실이 소설보다 더 극적이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16630315477146.jpg“껄껄껄. 신앙심 깊은 소녀에게 상을 내려야겠어. 무엇이 좋을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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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오 3세는 잠시 고민하다가 금방 결정을 내렸다.

16630315477146.jpg“금 50 두카토(약 5000만 원)와 장신구 한 상자를 수여하지. 실질적으로 외세로부터 나라를 구했으니 에트루스칸 기사단 훈장(Order of Chivalry) 중 하나를 수여하는 게 마땅할 텐데 법황의 눈치를 보느라 그럴 수가 없는 것이 안타깝구나!”

임금은 곧이어 옆자리에 착석한 마르그리트 왕비를 바라보며 권유했다.

16630315477146.jpg“보석함에 무엇이 들어갈지는 왕비께서 골라보지 않으시려오?”

국왕이 왕비에게 직접 말을 붙이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다.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 마르그리트 왕비는 흔쾌히 동의했다.

16630315479773.jpg“그렇게 하지요.”

일이 잘 풀려 흥이 난 레오 3세는 알폰소 왕자에게 덕담 몇 마디를 건넨 다음에 마르그리트 왕비와 알폰소 왕자와 따로 일어서 자신만의 마차로 향했다. 그들은 항상 따로 이동했다. 마차에 올라탄 레오 3세는 비서관에게 내심을 드러냈다.

16630315477146.jpg“장신구 상자의 내용물을 왕비가 손수 고르는 건 데 마레 추기경의 부인에게 화해의 제스처가 될 거야. 얼마 전에 둘 사이에서 일이 있었다고 하지 않았나.”

왕은 스스로가 생각해 낸 좋은 아이디어가 마음에 드는 듯 만족스럽게 수염을 쓰다듬었다.

16630315477146.jpg“내가 추기경 부인을 위로하라고 했으면 왕비는 절대로 말을 따르지 않았겠지. 청개구리 같은 여자 같으니.”

눈치를 보던 비서관이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16630315460337.jpg“저…… 폐하, 지금 상을 받을 데 마레 추기경의 딸은 둘째 딸로 루크레치아 부인 말고 다른 첩이 낳은 자식이라고 합니다. 그 영애에게 상을 내리는 것이 과연 추기경 부인의 화를 풀어주는 일이 될까요?”

지적을 당해 무안해진 레오 3세는 약간 신경질을 내며 대답했다.

16630315477146.jpg“사실 진짜로 중요한 건 추기경 부인이 아니야. 데 마레 추기경만 내 호의를 깨달으면 되는 거지.”

16630315460337.jpg“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영명하십니다, 폐하.”

16630315477146.jpg“아! 그러면 되겠구나!”

왕은 손뼉을 쳤다.

16630315477146.jpg“일전에 데 마레 추기경이 몹시 탐을 냈던 보석이 있어. 자네 ‘푸른 심해의 심장’ 기억나나.”

16630315460337.jpg“그 보물을 제가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설마……. 저 영애에게 ‘푸른 심해의 심장’을 내리시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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