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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화> 승리의 여신 (551/733)

<제34화> 승리의 여신2021.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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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리아드네와 지금 경매를 진행하는 포르토 상인인 빈센시오 델 가토 사이에는 공통점이 거의 없었지만, 지금 둘은 머릿속에 같은 생각을 떠올리고 있었다.

16630316299214.jpg‘체자레 백작, 이 미친놈아!’

16630316299219.jpg‘돌은 놈 같으니!’

포르토 상인은 대번에 얼굴을 굳히고 체자레에게 필사적으로 호통을 쳤다.

16630316299219.jpg“왜 그런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고 계실까요!”

16630316299226.jpg“글쎄, 내가 알겠소? 그 말을 한 이 꼬마 아가씨가 알고 계시겠지.”

그는 태연하게 잘 손질된 자기의 손톱을 들여다보며 말을 이었다.

16630316299226.jpg“뭐 위작이라거나?”

대번에 홀이 폭탄을 맞은 듯이 소란스러워졌다.

16630316299219.jpg- “위작? 지금 제가 제대로 들은 것 맞나요?”

16630316299219.jpg- “지금 <비토리아 니케>가 가짜라고요?”

16630316299219.jpg- “진짜인가요?”

홀 안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눈이 체자레와, 그 바로 옆에 앉아 있는 아리아드네에게로 전부 모였다. 아리아드네는 머리에 물수건이라도 얹고 누워버리고 싶었다. 체자레는 14년간의 약혼 기간이라고 할지, 사실혼 기간이라고 해야 할지, 어쨌든 그들의 생활 동안 내내 이랬다. 간혹 상상도 못 할 만한 대형사고를 치고는 아리아드네에게 쓱 미뤄버리고는 했다. 그때는 약혼녀라는 이름으로 묶여 있었으니 묵묵히 체자레의 뒤치다꺼리를 했었지만 도대체 지금 와서까지 왜! 그의 뒤를 닦아 주어야 하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16630316299214.jpg“저는 도통 모르는 이야기예요.”

아리아드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 발 뒤로 빼려고 했다. 데뷔탕트 무도회도 치르지 못한 규중 소녀가 무엇을 알겠느냐고 핑계를 대려고 할 때 체자레가 새빨간 거짓말을 했다.

16630316299226.jpg“영애가 조금 전에. 위작이라고.”

16630316299214.jpg“그런 말 안 했거든요!”

아리아드네는 입 모양으로 필사적으로 체자레에게 항의를 했다. 빨리 말을 정정해서 이 아가씨는 아무 상관 없다고 이야기를 하라고 따지고 싶었지만, 비속어를 퍼붓느라고 내용 전달이 조금 늦은 모양이었다.

16630316299219.jpg“그래, 거기 아가씨! 말을 뱉었으면 책임을 져야 할 거요!”

포르토 공화국 상인이 숨을 씨근덕대며 아리아드네의 멱살을 잡을 듯이 단상에서 뛰어 내려왔다. 아리아드네는 여기서 눈물을 터트리며 ‘다 큰 어른들이 왜 이러세요, 옆에 있는 키 큰 아저씨도 앞에 계신 상인 아저씨도 싫어요! 저는 아직 어려서 아무것도 몰라요!’라고 외치면 집에 갈 수 있을지 머릿속으로 재빠르게 가늠을 해 보았다. 될 것 같았다. 그때 맨 앞줄에서 깜짝 놀란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알폰소 왕자가 보였다.

16630316299214.jpg‘……내가 이 난장판을 그냥 두고 가면 저 애물단지 동상은 알폰소가 떠안겠지?’

안타깝게도 마지막으로 입찰을 한 것은 마르셀루 백작이 아니라 알폰소 왕자였다.

16630316299214.jpg‘2000 두카토(약 20억 원)였던가.’

큰돈이기는 했지만 왕자님에게는 또 그렇게까지 큰돈은 아니었다. 그 돈이 없다고 길바닥으로 나앉거나 굶을 리도 없었고, 왕자궁이 파산을 할 리도 없었다. 대규모 예산을 소요하는 행사 서너 개를 소박하게 치르고, 궁전 수선은 몇 년 미루고. 결국엔 어디선가 국왕이나 왕비가 예산을 끌어와서 메꿔 주겠지.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이 일로 알폰소 왕자는 인망을 잃을 것이다. 당연히 그의 것이었던, 어디서 엇나갔는지 모를 왕위는 지금 아리아드네의 옆에 서 있는 이 미친놈에게로 넘어가는 방향으로 한 발짝 더 가깝게 가겠지. 그렇게 되는 것은 싫었다. 아니, 사실 왕위까지 가지 않더라도, 알폰소가 웃음거리가 되고 속상해하는 것은 그냥 보고 싶지 않았다. 아리아드네는 알폰소를 위해 이번 한 번만 더 체자레의 뒤를 닦아주기로 했다.

16630316299214.jpg“후.”

그녀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옷매무새를 탁탁 털어 정리하고 자세를 바로 했다. 몸단장을 마친 아리아드네는 상인을 똑바로 바라보며 큰소리로 외쳤다.

16630316299214.jpg“포르토 사람 빈센시오 델 가토. 고미술품 경매에서 잔뼈가 굵은 상인이라고요?”

그녀의 성량 좋은 저음이 강당을 가득 메우며 청중의 이목을 끌었다. 아리아드네는 홀 안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잘 볼 수 있도록 슬쩍 바닥에 놓여 있던 나무 발 받침 위로 올라갔다. 계단 하나 정도의 높이였다. 키가 반 피에디 조금 넘게(약 25 센티미터)쯤 커져서 평평한 실내의 사람들을 그나마 내려다보기에 알맞았다.

16630316299214.jpg“당신이 보시기엔 이 동상이 정녕 할리카르도토스가 <헬레니아 기행문>에서 언급한 <비토리아 니케>가 맞는 것 같나요?”

16630316299219.jpg“맞으니까 가져왔겠지, 이 철없는 아가씨야!”

상인은 흥분해서 존칭이고 공대고 모두 잊어버린 것 같았다. 아리아드네는 이를 무시하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16630316299214.jpg“할리카르도토스는 <헬레니아 기행문>에서 “그녀의 섬세한 날개는 셀레스폰 전쟁 중 신전을 훑고 간 무어인의 군대로 인한 한 차례의 파손으로 이미 손상되어 복구⋯⋯”라고 한탄한 바 있습니다. 맞나요?”

<헬레니아 기행문>은 소년들의 희랍어 공부를 위해 흔히 읽히는 교보재였다. 해당 구절을 암기하고 있는 귀족 남성들도 더러 있었다.

16630316299219.jpg- “그래, 그런 구절이 있지.”

16630316299219.jpg- “손상되어 복구되었다고 쓰여 있는 구절 아닌가?”

포르토 상인은 발작적으로 언성을 높였다.

16630316299219.jpg“복구가 뭐 어때서! 조각상은 원래 부서졌다 다시 붙이고 그러는 거야! 부서지기도 옛날에 부서졌고 복구도 헬레니아 시대 당대에 된 거라면 고미술품으로서의 가치는 전혀 희석되지 않았을 것 아니요!”

그 진정한 뒤 구절은 “복구가 불가능했다. <비토리아 니케>에는 날개도, 머리도, 팔도 없었다”이지만 해당 구절은 아직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상태였다. 어떻게든 나머지 정황증거로 상황을 꾸려 보아야 했다.

16630316299214.jpg“깨진 그릇을 이어붙여 보았자 여전히 깨진 그릇이라는 속담 혹시 아시나요?”

아리아드네는 포르토 상인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말을 하는 와중에, 옆에 멀뚱히 서 있는 체자레에게 손을 내밀었다. 체자레가 뭘 달라는 거냐고 양손을 벌려 보이다가 허리춤에 찬 장검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16630316299226.jpg- ‘혹시 검?’

아리아드네는 옆을 흘긋 보고는 인상을 썼다.

16630316299214.jpg- ‘곤봉. 당신 곤봉 들고 다니잖아요.’

체자레는 그걸 어떻게 알았지? 하는 표정으로 깜짝 놀라면서도 허리춤 안, 장검 뒤에 차고 있던 철제 곤봉을 풀어서 아리아드네에게 건네주었다. 곤봉을 받아든 아리아드네는 홀 중앙의 초대손님 석에서 걸어나가 앞에 마련되어 있는 강단으로 올라갔다. <비토리아 니케>가 전시되어 있는 위치였다. 지상으로부터 2 피에디(대략 1 미터) 쯤 돋워 놓은 공간이라 그 위에 올라가니 청중의 눈에 그녀의 모습이 아주 잘 보였다. 포르토 상인은 계속 소리를 질렀다.

16630316299219.jpg“부러진 날개를 복구했으면 실금 정도는 가 있겠지. 그런데 그게 석상의 가치를 훼손해? 석상이 그룻이야? 석상에 물이라도 담을 거야? 실금 좀 있는 게 어디가 어때서!”

16630316299214.jpg“깨진 그릇이 떨어지면 똑같은 위치에서 또 쪼개지겠죠?”

16630316299219.jpg“그릇이랑 석상이랑 그게 어디 같아?! 장식용 조각상이 매일 쓰는 그릇도 아니고, 물을 담을 일도 없고 거기에 무게를 가할 일도 없는데 날개에 실금 정도 가 있는 게 무슨 큰일이란 말이요! 그거 다 헬레니아 시대에 만든 거야! 똑같은 거라구!”

아리아드네는 이제 발작적으로 소리 지르는 포르토 상인일랑 아랑곳하지 않고 바퀴 달린 좌대 위에 얹혀 있는 <비토리아 니케>에 성큼성큼 다가갔다. <비토리아 니케>는 몹시 무거워서, 운반을 조금이라도 쉽게 하려고 받침대의 바퀴를 유독 큰 것으로 달아놓은 참이었다. 바퀴의 지름은 못 해도 하나당 반 피에디(약 20 센티미터)는 족히 되어 보였다. 그녀는 숨을 흡, 들이마시고는 면밀히 좌대를 눈대중을 해 보더니 철제 곤봉을 높이 치켜들었다. 그녀가 고른 것은 좌대의 앞바퀴 중 관중석과 가장 가까운 것이었다. - 콰직! 그리고 체중을 가득 실어 가격했다. 곤봉은 바퀴에 정통으로 맞았다. 아리아드네의 힘으로는 받침대와 바퀴를 연결하는 철제 접합부까지 부수지는 못했지만 나무로 만든 바퀴 자체는 호쾌하게 세 조각이 났다. 바퀴가 조각나자 받침대가 기울어졌고, 중심을 잃은 거대한 조각상은 천천히 앞으로 고꾸라지기 시작했다.

16630316299219.jpg“당신 지금 뭐 하는 거야!!!!”

포르토 상인이 한 타이밍 뒤늦게 경악이 가득 찬 비명을 질렀고, 단상 아래의 초대손님들도 쓰러지는 석상을 보며 비명을 질렀다.

16630316299219.jpg- “피해요!”

16630316299219.jpg- “넘어진다!”

<비토리아 니케>가 올려져 있는 강단과 초대손님 석은 일정한 안전거리가 떨어져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님들은 우왕좌왕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허겁지겁 뒤쪽으로 몸을 피했다. 포르토 상인은 머리카락을 붙잡고 뒤에서 계속해서 비명을 질러댔지만 특이하게도, 무너져가는 <비토리아 니케>를 잡으려는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 크그그그그그그⋯⋯ 쿵! 나머지 바퀴 세 개가 무게를 받음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방향과 어긋난 바퀴 각도 때문에 제대로 밀려가지 못하는 소리와, 대리석과 나무가 마찰하는 기분 나쁜 소리가 장내를 가득 메우다가, 급격히 경사도가 가팔라지면서 결국 대리석 조각상이 무대 위에서 떨어져서 초대손님 석이 있는 지상층으로 떨어졌다. 아리아드네가 부순 것은 왼쪽 바퀴였다. <비토리아 니케>는 왼쪽 모서리부터 비스듬히 쓰러져서 왼쪽 날개를 정통으로 치보 후작가의 반들반들하고 단단한 참나무 마루에 처박았다. 석상이 쓰러지고 사위가 고요해졌다. 바닥에 쓰러져서 참나무 마루를 와장창 부수고 처박힌 <비토리아 니케>는 부서진 곳 하나 없이 온전하게 한 덩어리였다.

16630316299214.jpg“이 석상, 정말로 실금이 가 있는 것 맞습니까?”

그녀는 혹시나 사람들이 못 알아들을까 봐 친절하게 한마디 덧붙여주었다.

16630316299214.jpg“실금이 가 있었으면 충격을 받았을 때 날개가 도로 부러졌을 텐데, 이 석상은 마치 새로 만든 것처럼 매끈하네요.”

아리아드네는 충격받은 군중을 앞에 두고 강단에서 폴짝 뛰어내려 바닥에 쓰러진 <비토리아 니케> 옆으로 내려갔다. 그녀는 핑크색 대리석을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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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30316299214.jpg“새로 만든 것이 아니라면 누군가가 엄청나게 복구를 잘했고 또 땅속에서 보존도 아―주 잘 되어 있었나 봅니다. 그런데 말이죠, 여러분은 헬레니아 시대의 조각상과 당대의 대리석 조각상 사이의 가장 큰 차이점 두 가지를 아시나요?”

그녀는 대리석을 손가락으로 쓸었다. 홀에 모인 사람들 전원이 그녀를 주시하고 있었다.

16630316299214.jpg“고대의 이교도들은 대리석 석상에 색칠을 했습니다. 염료를 묻혀서 피부색은 살구색으로, 머리카락은 갈색으로, 옷은 인물의 신분에 맞게 채색을 했지요. 발굴된 헬레니아 시대의 대리석상은, 보존 상태가 좋으면 좋을수록 염료가 많이 묻어 있습니다. 이건 숙련된 고미술품 거래상이라면 누구나 아는 이야기입니다.”

그녀의 손가락에는 아무것도 묻어나오지 않았다.

16630316299214.jpg“이 석상은 아주 깨끗하네요.”

좌중은 숨도 쉬지 못하고 아리아드네를 주목하고 있었다.

16630316299214.jpg“그런데, 이 석상은 참 아름다운 핑크색이지 않습니까. 이런 발그레한 분홍색의 대리석이라면 굳이 피부색을 따로 칠할 필요 없었겠어요. 그렇지 않습니까, 치보 후작 부인?”

아리아드네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치보 후작 부인에게 물었다. 그녀는 깜짝 놀라 아리아드네의 질문에 무조건 긍정했다.

16630316299219.jpg“그, 그랬겠지요?”

16630316299214.jpg“그런데 왜 고대 헬레니아 인들은 대리석에 굳이 채색을 했을까요?”

16630316299219.jpg“그, 글쎄요.”

아리아드네는 대중의 관심을 너무 부담스러워하는 치보 후작 부인을 풀어주고는 다시 석상 옆으로 돌아갔다.

16630316299214.jpg“헬레니아 사람들이 살던 곳은 중앙 대륙의 동쪽 끝이라서, 거기에서 나오는 대리석 색깔은 핑크색이 아니라 칙칙한 회갈색이었기 때문입니다. 핑크색 대리석은 에트루스칸 북부, 그중에서도 이 조각상이 발굴되었다는 도시인 라스테라에서만 나는 특산품이에요!”

아리아드네는 거대한 조각상 옆에 우뚝 선 채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16630316299214.jpg“대체 중앙 대륙 동쪽 끝 도시인 티보스에 잘 있던 석상이, 약탈을 당했으면 흘러갔을 무어 제국도 아니고, 도난을 당했다면 암시장을 통해 나왔을 산 카를로도 아니고, 채석장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시골 외딴 구석인 라스트라에서 대체 왜 발견이 된단 말입니까!”

그녀는 아직까지도 손에 들고 있던 곤봉을 쓰러진 <비토리아 니케>, 아니, <비토리아 니케>의 모조품에 쿵 내리쳤다.

16630316299214.jpg“이래도 더 하실 말씀이 있습니까, 빈센시오 델 가토!”

16630316299226.jpg“그에게 하나 더 물어볼 것이 있소.”

아리아드네가 장악한 장내에 갑자기 테너 톤의 남자 목소리 하나가 울렸다. 그간 초대손님 석에 앉아서 느긋하게 아리아드네의 원맨쇼를 관람하던 체자레 데 코모 백작이었다.

16630316299226.jpg“당신의 이름이 ‘빈센시오 델 가토’가 정말로 맞소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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