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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화> 이사벨라의 궁리 (554/733)

<제37화> 이사벨라의 궁리2021.04.11.

아리아드네가 예산 150 두카토(약 1억 5천만 원)로 커버해야 하는 내역은 본인의 몸단장과, 데뷔탕트 무도회 당일에 있을 일체의 파티 준비였다. 여기에는 음식, 주류, 실내장식, 악단, 식순, 이벤트 등이 모두 포함이었다. 아리아드네는 일단 집에 있는 비품 일체부터 확인했다.

1663031648548.jpg“쓸 수 있는 건 가문의 휘장, 가구, 지하 와인 저장고의 주류들……. 이 정도인가.”

산차가 대답했다.

16630316485485.jpg“주방의 인력도 사용할 수 있을 거예요. 설마 루크레치아 마님이 그것조차 못 하게 하겠어요. 식재료는 손을 못 대게 하실 거 같지만요.”

1663031648548.jpg“상상을 항상 뛰어넘는 분이시기는 하지만, 아버지 눈치가 있으니까. 식재료는 외부에서 사 오면 돼. 어차피 집에 있는 식재료로 다 만들 수 있는 양도 아니야. 절대로 줄일 수 없는 비용은 악단 정도네.”

16630316485485.jpg“에? 아가씨? 태피스트리는 안 맞추시려고요?”

1122년 현재 산 카를로에서 무도회를 꾸미려면 보통 특정한 콘셉트를 잡고, 해당 콘셉트에 맞는 직물로 난간 덮개, 의자 씌우개, 테이블보 등을 싹 맞추어 홀 전체의 분위기를 통일시켰다. 그리고 해당 무도회의 테마를 연상시키는 자수 태피스트리를 따로 제작해 벽에 걸개로 걸었다.

16630316485485.jpg“가문의 휘장은 있지만 파티용 태피스트리를 따로 맞춰야 하잖아요. 시간도 촉박해요. 시내의 자수집 중에 잘하는 집은 이미 예약이 꽉 찼을걸요.”

승전 기념 무도회라면 가장 중요한 전투를, 왕족의 탄생 기념 무도회라면 그 왕족의 수호성인 탄생설화를 자수로 놓아 설치하는 식이었다. 그 자수 태피스트리가 많으면 많을수록, 정교하면 정교할수록 공을 많이 들인 무도회가 되었고, 호화로운 무도회의 경우 자수에만 1-2년의 제작 기간과 2-300 두카토(약 2-3억 원)의 비용을 들이고는 하는 일이 빈번했다.

1663031648548.jpg“이리 와 봐.”

아리아드네는 산차를 끌어당겨서 귀에 대고 몇 가지를 속삭였다.

1663031648548.jpg“어때, 할 수 있겠어?”

16630316485485.jpg“에에?! 확실히 그러면 돈이야 절약되겠지만……. 시키시면 할 수야 있어요. 그런데……. 괜찮겠어요 아가씨?”

1663031648548.jpg“날 믿어. 확실히 반응이 좋을 거야.”

1663031648548.jpg‘1123년의 최신 유행을 미리 빌려오는 거니까 말이야. 금방 금지당하겠지만.’

아리아드네는 장부를 탁 소리 나게 덮고는 기운차게 말했다.

1663031648548.jpg“할 수 있을 것 같아. 해 보자!”

16630316485485.jpg“네, 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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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아리아드네가 150 두카토로 무도회 전체의 예산을 조율하고 있을 때 이사벨라는 본인의 몸치장에만 50 두카토 (약 5000만 원)를 투자하고 있는 참이었다.

16630316493209.jpg“‘진실을 꿰뚫어 보는 소녀’라니, 이게 말이나 돼?!”

이사벨라는 그녀의 몸단장을 도와주고 있는 말레타에게 있는 대로 성을 냈다.

16630316493209.jpg“그런 별칭은 아직 나도 없다고!”

16630316493216.jpg“둘째 아가씨는 정말 주제넘어요. 외모면 외모, 재능이면 재능, 품성이면 품성 전부 다 이사벨라 아가씨께 뒤떨어지는 주제에 왜 이렇게 나댄답니까?”

16630316493209.jpg“내 말이!”

이사벨라는 속눈썹에 향유를 바르는 데 사용하고 있던 얇은 나무 막대기를 분을 못 이겨 부러뜨렸다.

16630316493209.jpg“이번 데뷔탕트 무도회에서야말로 누가 위인지 보여줘야겠어. 무조건 내가 걔보다 예뻐야 해.”

16630316493216.jpg“그건 숨만 쉬셔도 가능해요.”

16630316493209.jpg“그건 그렇지만! 확고하게! 확실하게! 이견의 여지 없이 내가 더 예뻐야 해!”

말레타는 이사벨라의 머리카락을 빗겨 주며 그녀를 안심시켰다.

16630316493216.jpg“삼십 분 뒤면 콜레지오니 의상실에서 마담 클레멘자 본인이 직접 도착할 거예요. 콜레지오니 의상실이면 티베리 거리에서 부동의 일 위인 의상실 아닙니까? 옷걸이도 낫지, 의상도 낫지, 치장도 완벽하실 예정이지, 어떻게 이사벨라 아가씨가 아리아드네 아가씨보다 안 예쁠 수가 있겠어요?”

16630316493209.jpg“그렇지? 그렇겠지?”

16630316493216.jpg“그렇다마다요.”

티베리 거리의 콜레지오니 의상실은 말레타가 그렇게 호언장담을 할 만한 가게였다. 산 카를로에서 귀족과 사교계 명사의 옷을 맞추는 곳은 보통 의상실과 양장점으로 나뉘었는데, 그중 후자는 보통 사람들도 금전적 여유만 있다면 편하게 이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전자는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열려 있는 공간이었다. 의상실들은 티베리 강가의 대로변에 나와 있었고, 포르토 공화국 상인들이 해상교역을 통해 들여오는 최상급 무어 제국 산 직물을 사용했으며, 예약이 몇 달 치씩 밀려 있어 연줄이 없으면 이용하기가 어려웠다. 가격이 무척이나 비싼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양장점들이 유행을 따라갔다면 의상실들은 유행을 선도했고, 콜레지오니 의상실은 그중 가장 앞서 있는 곳이었다.

16630316485485.jpg“이사벨라 아가씨, 마담 클레멘자 오셨습니다.”

이사벨라는 반색을 하며 하녀의 기별을 맞았다.

16630316493209.jpg“마담 클레멘자를 어머니의 응접실로 모셔와.”

16630316485485.jpg“예, 아가씨.”

이사벨라의 손님은 보통 아라벨라와 아리아드네와 공용으로 사용하는 2층 서쪽에 위치한 소녀들의 응접실에서 맞이했으나, 오늘 이사벨라는 자기가 무슨 옷을 입는지 아리아드네에게 알려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루크레치아의 동쪽 응접실에서 마담 클레멘자를 맞이한 이사벨라는 그녀를 아주 융숭하게 대접했다.

16630316493209.jpg“무어 제국에서 들여온 차와 갈리코 왕국에서 들여온 디저트예요. 굉장히 맛있어요. 제가 아주 좋아하는 거랍니다. 드셔 보세요.”

이사벨라는 설탕이 가득 들어간 정교한 티푸드를 하나 손가락으로 들며 마담 클레멘자에게도 권했다. 하지만 마담 클레멘자는 상냥하지만 프로페셔널한 태도로 이사벨라의 제의를 거절했다.

16630316485485.jpg“고맙습니다 영애, 하지만 오늘은 옷감을 많이 만져야 해서요. 손가락에 기름이 묻을 만한 것은 먹지 못해요.”

이사벨라는 자기의 호의를 거절한 사람에게 성이 났으나, 중요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미간에 서린 짜증을 갈무리하고 환하게 웃었다.

16630316493209.jpg“아, 그래요? 저도 티푸드 별로 안 좋아해요. 옷감부터 보죠.”

바로 직전에 본인이 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뒤집으며 이사벨라는 티푸드를 접시에 던지고는 마담 클레멘자가 가져온 카탈로그와 옷감 샘플들을 보기 시작했다. 마담 클레멘자가 내놓은 옷감들은 대개 색이 짙은 것들이었다. 가을을 맞이해서 산 카를로의 영애들은 차분한 톤의 블루, 버건디, 머스터드 색상의 드레스를 주로 맞췄다. 하지만 그 중에 이사벨라의 눈에 차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사벨라는 건성으로 옷감을 휙휙 넘기다가 손을 멈추고 마담 클레멘자에게 질문을 던졌다.

16630316493209.jpg“좀 더 밝은 색상의 천은 없나요? 흰색이라던가, 크림색이라던가.”

마담 클레멘자는 의외의 요구에 조수에게 손짓하여 뒤편으로 밀어두었던 옷감 샘플 패치를 가져오도록 했다. 오늘은 사용하지 않을 줄 알고 아래쪽에 넣어둔 옷감이었다. 그녀는 옷감을 내밀기 전에 고객의 의사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16630316485485.jpg“저, 말씀드리기 외람되오나 데 마레 영애.”

16630316493209.jpg“네?”

16630316485485.jpg“동생분의 데뷔탕트 무도회를 위해 옷을 맞추시는 것 아닌가요? 흰옷을 고르셔도 괜찮을까요?”

데뷔탕트 무도회에서는 그날의 데뷔탕트와 그녀의 파트너를 제외한 다른 모든 사람은 흰옷을 피해 주는 것이 매너였다. 이사벨라도 당연히 작년 자신의 데뷔탕트 무도회에서는 흰 드레스를 입었다. 그리고 그날 드레스의 색깔이 조금이라도 밝은 사람에게는 예의가 없다느니, 상식이 없다느니, 심보가 못됐다느니 등등 있는 욕 없는 욕을 모두 퍼부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사벨라는 이사벨라였다. 나는 불쾌한 일을 당하기 싫어도 똑같은 짓을 남에게 저지르는 것은 전혀 괘념치 않았다.

16630316493209.jpg‘닥치고 시키는 대로 하면 될 걸 무슨 참견이 저렇게 많아……!’

이사벨라는 입 밖으로 나오려는 험한 말을 가라앉히느라 잠시 혀끝을 깨물었다. 마담 클레멘자는 이사벨라조차도 예약을 잡기가 힘든 거물이었다. 멋대로 굴었다가는 나중에 어떻게 될지 걱정됐다. 콜레지오네에 출입금지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폭언을 퍼붓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참아넘긴 그녀는 이런 것도 참을 줄 아는 자기는 정말로 예의 바르고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입술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을 했다.

16630316493209.jpg“그게, 다 같이 하는 데뷔탕트 무도회라면 다른 영애들께도 실례가 될 테니 흰옷을 아예 피하는 게 맞을 텐데, 집에서 동생만을 위해 단독으로 열어주는 무도회잖아요?”

이사벨라는 달콤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16630316493209.jpg“저희 자매가 우애가 워낙 좋아서, 동생이 우리 세 자매는 꼭 흰색으로 통일해서 드레스를 맞춰 입자고 하지 뭐예요.”

16630316485485.jpg“⋯⋯그런가요.”

마담 클레멘자의 20년 의상실 운영 경력으로 비추어 보았을 때 이사벨라에게는 분명히 구린 구석이 있었다. 세 자매가 드레스를 통일해서 입을 것이었다면 세 자매가 모두 같은 의상실에서 맞추는 게 정상이다. 그러나 이사벨라의 두 여동생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이 집의 막내 아가씨는 데뷔탕트 무도회에 참가할 수 있는 나이도 아닌 것으로 알고 있는데 드레스 색깔을 통일해서 맞추는 의의가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마담 클레멘자는 의상실 주인이었지 법관이 아니었다.

16630316485485.jpg“영애께서 원하시는 것이 하얀색 드레스라면 그렇게 하지요.”

마담 클레만자는 만들어 주면 끝이었고, 그 뒤처리는 옷을 입은 사람이 알아서 하면 될 일이었다. 불길하기 짝이 없게, 이사벨라는 두 눈을 반짝이며 거기에 하나의 주문을 더 추가했다.

16630316493209.jpg“최고로 화려하고 모두가 깜짝 놀랄 만큼 새로운 것으로 부탁해요.”

  * * * 이사벨라는 일전의 작곡 탈취 사건으로 친구들 사이에서 면을 구겼다. 하지만 산 카를로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녀와 고작 그런 일로 교우 관계를 끊기에는 얽힌 관계들이 많았고, 이사벨라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컸다. 그래서 카멜리아 데 카스틸리오네는 어디에 하소연도 하지 못하고,, 오늘도 약혼남을 대동한 채 이사벨라 데 마레가 실질적으로 주최한 애프터눈 티파티로 향했다.

16630316485485.jpg“안쪽으로 들어오십시오, 데 카스틸리오네 영애.”

레오나티 자작가에서 고용할 수 있는 최고로 멀쑥한 일 도메스티코(손님을 맞이하는 남성 하인, 잘생기고 키가 큰 사람을 높은 급료를 주고 고용함)가 고급스러운 유니폼을 입고 카멜리아를 안쪽으로 안내했다. 오늘의 애프터눈 티파티는 레오나티 자작가에서 열렸다. 이사벨라의 충실한 수하인 레티시아 데 레오나티 자작 영애가 이사벨라를 위해 티파티를 연 것이었다. 예쁜 이름과 어울리지 않는 우락부락한 덩치와 자유로운 이목구비의 소유자인 레티시아는 미비한 본인의 사교계에서의 존재감을 아름답고 인기 있는 이사벨라의 친구라는 사실에서 채웠다. 자연스럽게, 그녀는 그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 이사벨라에게 물불 안 가리고 헌신적이었다.

16630316485485.jpg“고마워요.”

카멜리아 데 카스틸리오네는 애써 웃으며 일 도메스티코에게 체면을 차렸다. 그녀의 옆에서 오타비오 데 콘타리니가 그녀를 에스코트하며 안으로 함께 들어섰다.

16630316485485.jpg“시뇨르 오타비오. 레오나티 자작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데 카스틸리오네 영애’라고 성으로 불린 카멜리아와 다르게, 오타비오 데 콘타리니는 ‘시뇨르 오타비오’라는 이름으로 호칭이 되었다. 이는 그가 백작의 아들이기 때문이었다. 백작가 및 그보다 더 높은 가문의 자식들은 이름으로 호칭되었으나 남작, 자작, 그리고 그러한 작위조차 없는 자들은 성으로 불릴 수밖에 없었다. ‘데 카스틸리오네 영애’도 그 일환으로, 남작위밖에 없는 카스틸리오네 가문의 처지를 대변하는 호칭이었다. 이는 위세가 하늘을 찌르는 데 마레 가문의 이사벨라도 예외가 아니었다.

16630316485485.jpg“데 마레 영애. 레오나티 자작가에 잘 오셨습니다.”

일 도메스티코의 깍듯한 인사를 받으며 이사벨라는 예쁜 미간을 구겼다.

16630316485485.jpg“‘시뇨라 줄리아’, 레오나티 자작가는 발데사르 후작가의 여식을 환영합니다.”

바로 뒤에서 따라오는 줄리아 데 발데사르와 제대로 비교가 되었기 때문이다. 줄리아는 발데사르 후작가의 딸이었기 때문에 가문의 이름이 아닌 자기 자신의 이름 석 자로 불리고 있었다. 이사벨라는 마담 클레멘자의 드레스도 가질 수 있었고, 수도의 모든 젊은 남자의 선망을 한몸에 받고 있었지만 절대로 공식 석상에서 이름으로 호칭될 수는 없었다.

16630316493209.jpg‘내가 줄리아 데 발데사르보다 못한 게 뭔데?’

날카롭고 동시에 밋밋하게 생긴 줄리아 데 발데사르보다 산 카를로 최고의 미녀이자 재원인 이사벨라 데 마레의 앞날이 더 창창할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었다. 최소한 이사벨라 본인은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러나 공식 석상에서 이사벨라의 자리는 항상 줄리아보다 한 걸음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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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사벨라는 더는 지긋지긋한 가문의 이름 뒤에 서 있고 싶지 않았다. 가문은 아버지의 것이고 시간이 지나면 오빠의 것이 될 것이었다. 이사벨라가 온전히 가질 수 있는 것은 가문, 성의 영광이 아니라 자기 이름에 따라붙는 영광뿐이었다.

16630316493209.jpg‘이사벨라 왕자비 전하.’

그날이 오면, 개인으로 오롯이 설 수 있을 것이었다. 그전까지는, 가진 것을 최대한 활용하는 수밖에. 이사벨라는 그 자리까지 도달하기 위해 쓸 수 있는 술수란 술수는 수단을 가리지 않고 모두 다 사용할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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