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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화> 발데사르 후작 영애의 티파티 (568/733)

<제51화> 발데사르 후작 영애의 티파티2021.05.30.

오타비오는 8의 남자였다. 훤칠한 키에, 훈훈한 얼굴에, 나름 넓은 인맥을 가진 꽤 훌륭한 가문의 후계자였다. 전처와 자식들이라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는 몬테펠트로 후작가의 장남보다 일견 더 훌륭한 목적물 같았다. 하지만 카멜리아의 입에서 나올 것은 푸념뿐이 없었다.

16630317296015.jpg“하지만 과연 그가 저와 결혼해 줄까요.”

16630317296022.jpg“네?”

최근 돌아가는 사정을 잘 몰랐던 펠리시테가 입 위에 손을 얹었다.

16630317296022.jpg“제가 뭐 말실수했나요. 무슨 일이 있었어요?”

펠리시테가 주변을 돌아보았고, 카멜리아는 한숨만 폭 내쉬었다. 카멜리아는 이사벨라의 험담을 최초로 꺼낼 줏대를 가진 위인이 못 됐다. 대신 이야기의 물꼬를 터준 것은 줄리아였다.

16630317296032.jpg“또 이사벨라죠.”

16630317296022.jpg“아아.”

소문에 어두운 펠리시테조차도 이사벨라의 이름을 듣자 이게 어떻게 된 연유인지 바로 알아들었다.

16630317296022.jpg“요새도 그래요?”

16630317296015.jpg“여전해요, 아니 더 심해요!”

줄리아가 포문을 열자마자 봇물 터지듯 성토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총대를 메줄 사람만 기다리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해묵은 토로들이었다. 아리아드네는 내심 고개를 저었다. 이사벨라가 소녀들 사이에서 인망을 야금야금 많이 잃었던 모양이었다. 이들은 아리아드네를 위해서 떨쳐 일어난 정의감에 불타는, 내지는 오지랖이 넘치는 이들이 아니었다. 꾸준히 이사벨라에 시달리다가 임계점에 달해 폭발한 사람들이지.

16630317296015.jpg“아니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세요?”

카멜리아는 이사벨라가 사람들 앞에서 대놓고 본인에게 망신을 줬던 일을 울분에 차서 토로했다. 이렇게 이사벨라에 대한 규탄대회가 터진 이상 멈출 수 없었다. 이 자리에 합석해 있는 사람들은 이제 모두 암묵적인 한 패가 되었다. 그 티파티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나도 봤다며 카멜리아에게 한 마디 두 마디씩 얹어 그녀의 분노에 동조해 주었다.

16630317296015.jpg“어떻게 나한테 그렇게 덮어씌울 수가 있어요?”

1663031729606.jpg“카멜리아가 레오나티 자작가의 일 도메스티코한테 관심 있는 거 아니냐고 그래놓고 본인은 시뇨르 오타비오의 얼굴을 만졌지. 내가 다 봤어!”

리날디 백작 영애인 코르넬리아가 함께 분개해 주었다.

16630317296015.jpg“그런데 오타비오는! 제 편은 들어주기는커녕 이사벨라한테 신경 쓰느라 바빴잖아요!”

카멜리아가 기어코 눈물을 터트렸다. 다정한 펠리시테가 카멜리아에게 손수건을 건네주었다.

16630317300071.jpg“시뇨르 오타비오가 잘못했네.”

가브리엘레는 태도가 글러 먹은 오타비오와 파혼하면 안 되냐고 카멜리아에게 권하려다가 혀끝을 깨물었다. 오타비오의 잘못을 지적하자 카멜리아는 이제 숫제 엉엉 울기 시작했다. 사실 카멜리아에게 오타비오는 객관적으로 훌륭한 것을 넘어 과분한 혼처였으므로, 카스틸리오네 남작가 측에서 이 약혼을 파기하면 오타비오만한 남자를 다시 만날 기약이 없었다. 그래서 가브리엘레는 버릴 수 없는 오타비오의 욕을 하느니 카멜리아의 기분이나 나아지라고 이사벨라의 욕을 해주기로 했다.

16630317300071.jpg“이사벨라 그거, 예쁜 얼굴 믿고 나대다가 언젠가 큰코다칠 거예요.”

하지만 카멜리아는 지금 감정이 너무 북받쳐서, 듣기 좋은 소리도 즐길 여유가 없었다.

16630317296015.jpg“저, 저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16630317296022.jpg“그래요, 같이 안 가줘도 되겠어요?”

16630317296015.jpg“금방 다녀올게요.”

예쁜 외모가 최대 강점인 카멜리아는 남들 앞에서 표정이 무너지는 것을 몹시 싫어했다. 화장실에서 한번 펑펑 울고 올 모양이었다. 카멜리아가 떠난 발데사르가의 응접실에서는 이사벨라에 대한 의구심이 허공을 날았다.

16630317300071.jpg“그런데, 이사벨라는 정말로 시뇨르 오타비오에게 관심이 있는 걸까요?”

그 질문에는 아리아드네가 답할 수 있었다.

16630317300106.jpg“그럴 리가요.”

이사벨라가 오타비오에게 관심이 있다는 오해를 불식시켜 주었으나 그것은 언니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

16630317300106.jpg“우리 언니는 좀 더 높은 곳을 바라볼 위인이에요.”

그녀는 자조적으로 혀를 찼다.

16630317300106.jpg“그냥 건드려 보는 것뿐이에요. 시뇨르 오타비오가 파혼하고 갈아타려고 진지하게 시도를 한다면 꼬리를 싹 말고 도망갈 것이 틀림없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전생에 체자레에게 그랬듯이. 관심은 받고 싶으니 꼬시고, 막상 넘어오면 뒤처리가 골치 아프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발을 빼고. 오타비오가 갑자기 어느 나라 왕위라도 계승하지 않는다면 이사벨라가 오타비오에게 눈독을 들일 일은 없었다.

1663031729606.jpg“아리아드네한테는 좀 불편한 자리였을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래도 친언니인데.”

예의범절을 신봉하는 코르넬리아가 조금 민망한 얼굴로 덧붙였다. 하지만 아리아드네는 작은 미소를 띠고 고개를 저었다.

16630317300106.jpg“어차피 같은 집안의 형제는 한정된 재화를 놓고 경쟁하는 사이이기도 하니까요. 괜찮습니다.”

직설적인 줄리아가 크게 웃으며 말했다.

16630317296032.jpg“그런데 경쟁? 말이 경쟁이지, 지금 혼처 잡기 게임에서는 아리아드네가 월등하게 앞서 나가시는 것 같던데요?”

펠리시테가 눈을 반짝이며 말을 더했다.

16630317296022.jpg“맞아! 데뷔탕트 무도회에 무려 알폰소 왕자님과 함께 입장했다면서요!”

이 자리에 있던 사람 중 펠리시테만 아리아드네의 데뷔탕트 무도회에 참석하지 못했다. 그날의 이야기를 남으로부터 전해 듣기만 한 펠리시테로서는 주인공을 만나다니 돌고래 비명을 지르고 싶을 지경이었다.

16630317296022.jpg“왕자님 어땠어요? 어쩌다가 참석하시게 된 거예요?”

1663031729606.jpg“그런데 막상 데뷔탕트 무도회 파트너는 체자레 백작이었잖아요!”

남자 얼굴에 진심인 가브리엘레가 끼어들었다.

16630317300071.jpg“체자레 백작, 가까이서 보니 진짜 잘생겼던데!”

16630317296022.jpg“아리아드네는 둘 중 누가 더 좋아요?”

16630317296032.jpg“그래, 왕자님이야 체자레 백작이야!”

16630317300106.jpg“그, 그런 게 아니고. 어쩌다 보니…….”

16630317296032.jpg“아리아드네, 여기까지 와서 뒤로 빼기에요? 이야기 좀 해 봐요!”

1663031729606.jpg“나는 왕자님!”

교과서적인 삶을 사는 모범적인 코르넬리아의 선택은 알폰소였다.

16630317300071.jpg“나는 체자레 백작!”

남자 얼굴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가브리엘레의 초이스는 체자레였다.

16630317300071.jpg“얼굴만 뜯어먹고 살 수 있을 거 같지 않아요? 그 파란 눈으로 날 이렇게 지긋이 바라봐주면 화가 다 풀릴 거 같아!”

16630317305831.jpg“꺅!”

16630317296032.jpg“잘생기기는 진짜 잘생겼어요.”

16630317296022.jpg“간드러진 미남이야. 어떨 때 보면 여자보다도 더 가늘고 예뻐.”

1663031729606.jpg“옆에 서긴 싫지 않아요?”

체자레의 옆에 서서 얼굴이 비교될 생각을 하자 소녀들이 다 같이 움츠러들었다. 몇 명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고 몇몇은 비명을 질렀다.

1663031729606.jpg“전 역시 왕자님이 좋은거 같아요. 단정한 미남!”

16630317296022.jpg“저도, 저도 왕자님! 선 굵지, 덩치 크지, 몸 두께! 전 몸 두께 두꺼운 부분이 제일 좋아요!”

16630317300071.jpg“아니, 펠리시테, 왕자님 몸 두께도 유심히 봤어요?”

16630317296022.jpg“마치 본인은 안 본 양! 본 적 없는 자만 나에게 돌을 던지시오!”

왁자지껄한 수다에 응접실이 터져나갈 듯했다. 알폰소 파 대 체자레 파의 팽팽한 접전은 체자레 팬덤에 발생한 악재로 인한 알폰소 파의 근소한 우위였다.

1663031729606.jpg“어느 모로 보나 왕자님이 낫죠. 체자레 백작은 유부녀도 건드린다는데. 최근에는 라구사 부인이라는 미망인이랑도 놀아났대요!”

16630317296022.jpg“세상에, 미망인? 유부녀? 그런 남자랑 어떻게 만나?”

1663031729606.jpg“체자레 백작은 이쁘게 생겨서 도대체 왜 그래?”

홀로 남은 가브리엘레의 지원군은 역시 얼굴에 진심인 줄리아였다.

16630317296032.jpg“근데, 진짜 잘생기기는 했잖아. 얼굴값 하는 거지. 결혼하기는 싫지만 썸은 한 번 타봤으면 좋겠다.”

16630317296022.jpg“떼끼! 그러다가 라구사 부인 돼요!”

16630317296032.jpg“아 말이 그렇다는 거죠!”

소녀들은 단체로 까르르 웃었다. - 끼익. 그때 조용히 응접실 문이 열리고, 한바탕 울러 갔던 카멜리아가 돌아왔다. 줄리아가 깜짝 놀라서 문을 쳐다보았다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누가 새로 왔나 다들 응접실 문을 쳐다봤던 소녀들은 이제는 카멜리아까지 끼워서 왁자지껄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16630317300071.jpg“깔깔깔!”

1663031729606.jpg“어우, 말도 안 돼!”

16630317296022.jpg“난 왼쪽! 난 왼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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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리아드네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또래들과 맘 놓고 웃고 놀아본 적이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어쩌면 처음일지도 모르겠다. 카멜리아가 화장실에서 돌아와서 선택한 자리는 아리아드네의 옆자리였다. 그녀는 눈물 자국을 정리한 얼굴로 아리아드네에게 미안한 양 말을 걸었다.

16630317296015.jpg“이사벨라 양이 데 마레 영애의 데뷔탕트 무도회에서 좀 안 좋은 이야기를 했죠.”

16630317300106.jpg“네? 어떤…….”

16630317296015.jpg“왕자님이 계시니 옷을 일부러 찢은 거라느니, 뭐 이런…….”

아리아드네는 피가 머리로 확 몰리는 기분이었다.

16630317300106.jpg‘이사벨라, 이 끔찍한 인간 같으니!’

옆에서 카멜리아가 ‘그때 말리지 못해서 미안했어요’ 같은 의미 없는 이야기를 해대고 있었지만 그저 웅웅대는 소음처럼 들렸다. 아리아드네는 이사벨라에게도 몹시 화가 났지만 눈앞의 카멜리아에게도 그렇게까지 좋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당사자에게 험담을 전달하는 사람은 그 험담을 직접 하는 사람만큼이나 나쁘다. 그렇지만 모든 일은 어느 쪽으로든 이용될 수 있었고, 아리아드네는 들어온 기회를 놓치는 종류의 사람이 아니었다.

16630317300106.jpg“카스틸리오네 남작 영애.”

16630317296015.jpg“카멜리아라고 불러주세요.”

온화하게 웃는 카멜리아에게, 아리아드네가 마찬가지로 웃으며 답했다.

16630317300106.jpg“그럼 카멜리아. 하지만 이사벨라 언니는 그 말을 처음 한 게 카멜리아라고 하던걸요?”

16630317296015.jpg“뭐라고요?!”

카멜리아는 화들짝 놀랐다. 이사벨라 이 나쁜 계집애가, 처음에는 내가 일 도메스티코 따위를 좋아한다고 덮어씌우더니 어디까지 내 이름을 팔고 다닌 거야!

16630317300106.jpg“추궁하시는 아버지께 고하길 카멜리아가 먼저 그런 말들을 하고 다녔다고 하더라고요. 자기는 말리지 못한 죄밖에 없다고…….”

얼굴이 새빨개진 카멜리아를 영애들이 발견하고는 무슨 일이냐고 한두마디씩 물어보았고, 카멜리아는 다시금 울 것 같은 표정이 되어서 지금 아리아드네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낱낱이 전했다.

16630317296032.jpg“어머, 세상에 무슨!”

16630317300071.jpg“이사벨라가 제일 먼저 꺼낸 이야기 맞아요.”

1663031729606.jpg“맞어, 가슴에 광목천이라던가…….”

16630317296022.jpg“카멜리아가 아리아드네의 데뷔탕트 드레스가 어느 의상실…… 아니 양장점 작품인지 어떻게 알겠어요.”

현장에 있던 다른 영애들이 나서서 그 이야기가 카멜리아가 아닌 이사벨라가 처음 꺼낸 말들이라는 것을 확인해주었고, 오늘 영애들의 결론은 하나였다.

1663031731366.jpg- ‘이사벨라 데 마레, 참 나쁜 사람이네!’

오늘 이런 대화가 오갈 수 있었던 이유는 절반 정도는 참석자의 구성이 절묘했기 때문이었다. 카멜리아가 이사벨라와의 친분을 아예 끊지 않은 것을 이유로 초대되지 않았다면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못 들었을 것이지만, 카멜리아 말고도 이사벨라와 친한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면 이런 이야기를 아예 못 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줄리아는 사실 응접실 문이 열리고 카멜리아가 들어왔을 때 절반 정도는 안도했고, 절반 정도는 실망했다. 오늘의 티파티에 그녀가 초대장을 보냈던 사람 중 한 명은 초대를 거절하고 참석하지 않았다. 그것은 레오나티 자작 영애, 레티시아였다. 그녀는 이사벨라의 절친이었으니까 안 오는 것이 맞았다. 그리고 엄밀히 따진다면 부르지 않는 것 역시 맞았다. 하지만 줄리아는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레티시아의 집에 꼭 한 번 더 방문할 핑계를 만들고 싶었다.

16630317296032.jpg‘……프랑수아.’

딱 한 번 보았을 뿐인 일 도메스티코의 얼굴이 뇌리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 * * 체자레 백작이 보낸 장미꽃이 아리아드네의 방에서 쫓겨나 도착한 곳은 소녀들의 응접실이었다. 세 자매가 공동으로 사용하는 곳이었지만, 아리아드네가 서쪽 끝의 스위트로 옮기게 되면서 전용 응접실이 생겨 이제 아리아드네는 잘 사용하지 않는 곳이었다.

16630317313669.jpg“우와!”

아라벨라가 신이 나서 화병에 담긴 화려한 붉은 장미꽃을 구경하고 있었다. 아라벨라는 요새 살 맛이 나는 참이었다. 터울 지는 여동생의 취미 생활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언니의 물건을 뒤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사벨라는 엄격한 감시자이자 자비 없는 고자질쟁이였다. 자기 물건에 손을 댄 흔적이 있으면 난리를 쳤다. 어머니인 루크레치아에게 득달같이 이르는 것은 물론이었다. 하지만 새로 생긴 작은 언니는 너그러웠고, 많이 나눴고, 들켜도 크게 혼내지 않았다. 유일한 단점이라면 재미있는 물건들이 별로 없다는 점이었는데, 최근에는 그 단점이 급격히 보완되고 있었다.

16630317313669.jpg“이렇게 큰 장미 송이는 처음 봐!”

작은 찻잔만 한 붉은 장미꽃의 화관을 들여다본 막냇동생의 감탄사에 이사벨라는 버럭 화를 냈다.

16630317313678.jpg“너 좀 조용히 해! 뒷골이 울리잖아!”

아라벨라가 움찔하며 주눅이 든 것을 보고도 이사벨라의 화는 풀리지 않았다.

16630317313678.jpg“이것도 저것도 다 맘에 안 들어!”

레티시아의 고자질로 이사벨라는 이미 줄리아 데 발데사르가 자신만 쏙 빼놓고 티파티를 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리아드네가 오늘 외출복을 차려입고 나간 것을 보면 자신의 여동생도 필시 그 티파티에 간 것이 틀림없었다. 최근에는 방물 장수에게서 큰돈 주고 산 무어 제국에서 쓴다는 가슴 발육 성장 촉진 크림을 성수 다루듯이 모시며 바르는 중이었지만 가슴이 커지기는커녕 체모가 진해지는 것 같았다. 아까워서 버리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바르기도 찜찜하고 이사벨라는 이도 저도 못 하는 처지에 처해 있었다.

16630317313678.jpg“아악! 짜증 나!”

신경질을 낸 이사벨라는 바깥으로 나가서 정원을 빙빙 돌았다. 눈꼴신 사생아 여동생이 나타난 이후로 되는 일이 없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마르케즈 백작 부인에 의해 사교계에서 동생 뒷말이나 하는 아이로 찍힌 것이 못내 속이 쓰렸다.

16630317313678.jpg‘나는 예쁘고 사랑스러운 산 카를로 최고의 영애 이사벨라 데 마레였는데!’

그녀의 자리를 못생긴 이복 여동생이 빠르게 잠식해 들어오고 있었다.

16630317313678.jpg“예쁘지도 않은 게!”

1663031731366.jpg“응? 누가 안 예뻐?”

이사벨라의 혼잣말을 들은 것은 사촌오빠인 자노비였다. 이사벨라는 영애들의 모임에서 험한 말을 하다가 영애들이 기겁했던 것이 생각나서 움찔했지만, 자노비는 수도보다는 덜 세련된 남부 출신이었고, 그중에서도 특히 험한 말이 일상적으로 오가는 기사들의 종자 출신이었다.

16630317313678.jpg“자노비 오빠.”

1663031731366.jpg“우리 예쁜 이사벨라가 왜 이렇게 속이 상해 있을까?”

자노비는 아름다운 산 카를로의 아가씨인 이사벨라에게 말이라도 붙여 보는 이 상황이 너무나 짜릿했다. 고향으로 돌아가면 한 달은 자랑할 거리가 될 터였다. 이사벨라가 사촌이라 잘 보여봤자 소용이 없다던가, 사촌을 그런 식으로 보면 안 된다는 도덕의식 따위는 자노비에게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 순간 말초적인 즐거움을 좇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의기소침해 있던 이사벨라는 자기를 받아 주는 듯한 자노비의 말에, 물 만난 고기처럼 하소연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16630317313678.jpg“오빠! 저 너무 속상해요!”

이사벨라는 데 마레 추기경 관저의 후원을 한 바퀴 돌면서 자노비에게 아리아드네가 자기에게 욕을 한 얘기, 아리아드네가 남들이 보는 앞에서 착한 척을 하며 거짓말로 이사벨라를 욕보인 얘기, 아리아드네가 왕자에게 착 붙어서 알랑방귀를 뀌는 얘기 등등을 자노비에게 다 털어놓기 시작했다. 물론 이사벨라의 시점으로 양념을 많이 쳐서 각색된 이야기들이었다.

1663031731366.jpg“그거 그 계집애 진짜 안 되겠네!”

16630317313678.jpg“그렇죠, 그렇죠?”

모친마저도 믿어주지 않던 억울함에 몸서리치던 이사벨라에게 자노비의 말동무는 너무 반갑고 기쁜 일이었다. 자노비는 이사벨라가 무슨 소리를 하건 토 달지 않고 다 들어 주었다. 자노비도 이 기회가 기껍기는 매한가지였다. 그의 처지에 이렇게 예쁘고 귀한 아가씨와 친밀하게 대화를 나누는 것은 원칙적으로 꿈도 꿀 수 없는 것이었다. 그는 이 꿈만 같은 상황이 계속될 수만 있으면 친엄마라도 내다 팔 수 있었다. 하물며 평소에 입을 꾹 다물고 근엄하게 구는 사촌 동생이 욕을 했다는 이야기 정도 믿어주는 것은 누워서 떡 먹기였다.

1663031731366.jpg“이사벨라, 오빠 믿어! 내가 그 계집애 아주 혼쭐을 내줄게!”

16630317313678.jpg“응! 응!”

무슨 짓이든 해서 이사벨라의 눈에 들어야겠다. 그럼 이사벨라도 날 봐주지 않을까? 자노비의 궁리에 화답하듯, 마침 국왕 폐하의 정례 가을 사냥대회가 다가오고 있었다. 하늘은 높고, 연약한 여자애한테 겁을 주기엔 딱 좋은 날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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