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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화> 자노비 데 로시의 처벌 (574/733)

<제57화> 자노비 데 로시의 처벌2021.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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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에 했던 짓 때문에 제풀에 불안해진 자노비는 그 일말의 두려움을 잊으려고 술을 퍼마셨다. 파티의 공식 음료는 갈리코 왕국 산 샴페인이었다. 상쾌하게 술술 들어가는 기포 서린 과실주를 한 잔 두 잔 들이붓다 보니 저녁 무렵이 되었을 때의 자노비는 이미 자기 엄마 얼굴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는 갑자기 사람들이 몰려들어서 자신을 포박해서 천막 중앙의 귀빈석으로 끌고 가자 혼비백산하기는 했지만 만취한 덕에 변변찮은 저항 하나 하지 못하고 꽁꽁 묶여 귀빈석 아래의 맨바닥에 무릎을 꿇고 강제로 납작 엎드렸다.

16630317636463.jpg“타란토 사람 자노비 데 로시!”

그의 앞에서 추상같은 호령을 치고 있는 것은 에트루스칸의 단 하나 있는 태양, 지엄하신 레오 3세 폐하 본인이었다. 기념주화에서나 봤던 얼굴이 정말로 코앞에서 말을 하고 움직이자 현실감이 전혀 없었다. 자노비는 홀린 듯이 대답했다.

16630317636467.jpg“예, 예!”

16630317636472.jpg“어허! 국왕 폐하께 제대로 된 예를 취하지 못할고!”

갈리코 사절단이 보고 있다고 생각하자 레오 3세는 평소보다 더 거칠었고 레오 3세의 신하들도 격식과 예에 더욱 엄격했다. 어디선가 날아온 발길질에 등허리를 얻어맞은 자노비는 머리를 아예 바닥에 박게 되었다. 발길질을 한 사람은 ‘에트루스칸의 태양을 뵙습니다’라는 인사를 원한 것이었지만 자노비는 너무 취하고 놀라서 그럴 겨를이 없어 보였다. 레오 3세도, 인사를 받는 것을 포기하고 빠른 추궁을 했다.

16630317636463.jpg“네가 데 마레 가문의 차녀인 아리아드네 데 마레에게 석궁을 쏜 것이 정녕 맞느냐?”

자노비는 취해서, 혹은 취했기 때문에 더더욱 저 말을 긍정하면 안 된다는 확신이 들었다.

16630317636467.jpg“아니, 아닙니다! 절대 제가 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횡설수설하며 말을 마구 덧붙였다.

16630317636467.jpg“저는 천막 안에만 있었는데, 어떻게 아리아드네의 말 궁둥이에 화살을 쏘겠습니까?”

그런 자노비를 체자레가 정말 하등 생물을 본다는 표정으로 한심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아리아드네가 이때 시의적절하게 끼어들었다.

16630317636489.jpg“영명하신 국왕 폐하, 이런 사소한 일로 폐하의 심기를 어지럽혀서 송구스러울 따름이옵니다.”

사건의 피해자 본인이 나서자, 레오 3세는 고개를 끄덕여 그녀에게 발언권을 허락해 주었다.

16630317636489.jpg“체자레 백작은 애초에 자노비 데 로시가 저에게 ‘석궁을 쐈다’라고만 했지, 그 석궁이 저에게 맞았는지, 빗맞았는지, 말에게 맞았는지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한 적이 없습니다.”

아리아드네가 지적한 점을 깨달은 사람들이 웅성웅성했다. 레오 3세도 미간을 찌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바닥에 강제로 꿇어 앉혀진 자노비는 고개를 번쩍 들어 도리질을 쳤다.

16630317636467.jpg“아닙니다! 오해예요! 그저, 저는 아리아드네가 말이 없이 도보로 걸어온 걸 보고 말한테 맞았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순발력 하나는 끝내줬다. 하지만 명명백백한 증거가 있었다. 아리아드네는 체자레에게 고갯짓을 했고, 그녀의 신호를 받은 체자레는 품에서 자노비의 화살을 꺼내서 레오 3세 앞에 공손하게 내려놓았다.

16630317640725.jpg“폐하, 이것이 말의 엉덩이에 박혀 있던 화살입니다.”

아직 말의 선혈이 말라붙어 있는 화살은 사냥감이 누구의 전리품인지 구분할 수 있도록 그 깃털을 가문별로 다른 색깔과 문양으로 물들여 놓은 물건이었다. 게다가 자노비는 하필이면 그날 장전해놓은 첫 화살을 아리아드네에게 쏘았다. 첫 번째 화살에는 대개 무운을 기원하는 뜻으로 화살대에 가문의 문장과 이름을 새겨 놓기 마련이었다. 자노비의 화살에도 데 로시 가문의 문장과 이름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레오 3세가 노안 탓에 화살에 음각된 데 로시 가문의 이름을 읽지 못하자, 옆에 시립하고 있던 레오 3세의 비서가 재빨리 대신 화살에 적힌 이름을 읽어주었다.

16630317636472.jpg“타란토의 데 로시⋯⋯! 데 로시 가문의 화살이 맞습니다.”

옆의 시종에게서 귓속말을 들은 비서관은 큰 소리로 모두가 들을 수 있게 외쳤다.

16630317636472.jpg“오늘 타란토의 데 로시 가문에서 참가한 사냥대회 참가자는 자노비 데 로시 한 명뿐입니다!”

관중들이 다시금 숨을 들이켰다.

16630317636472.jpg- “아니 왜 저렇게 금방 들통날 거짓말을 해.”

16630317636472.jpg- “답 없는 인생이니 사냥대회에서 사람한테 석궁을 쏜 것 아니겠어요?”

16630317636472.jpg- “강궁도 아니고 석궁이에요! 세상에! 미친 것 아니에요?”

아리아드네가 불에 기름을 부었다.

16630317636489.jpg“자노비 데 로시가 오전에 사냥터 주변 오솔길에서 산책하고 있던 저를 다짜고짜 따라와서 제 등 뒤에서 저한테 석궁을 쐈습니다! 이건 살인 미수예요!”

그때 군중 사이에서 찢어지는 비명 소리가 들렸다.

16630317640755.jpg“오해입니다, 오해가 틀림없습니다!”

루크레치아였다. 그녀는 미끄러지듯이 달려 들어와 자노비 옆에 서서 아리아드네에게 삿대질했다.

16630317640755.jpg“결국 말한테 맞았잖니. 너한테 쏜 게 아닐 거야! 우리 조카 자노비가 얼마나 순하고 착한 아이인데, 사람한테 석궁을 쐈다는 게 말이나 되니! 그리고 네가 뭔가 자노비의 심기를 거슬렸겠지! 그러니까 자노비가 말한테 화살을 쐈겠지!”

자노비가 기가 살아서 루크레치아의 도움을 받아먹었다.

16630317636467.jpg“맞아요! 그게, 아리아드네가 이사벨라를 괴롭힌다고 해서 제가 훈계를 좀 했더니 아리아드네가 말을 안 듣길래, 경고 조로 말에 화살을 쐈어요! 친척 오빠로서 이 정도는 할 수 있는 훈계 아닙니…… 컥!”

발언 허락도 받지 않고 혼자서 떠들어대는 자노비를 예의 레오 3세의 신하가 재차 발길질을 해서 입을 막았다. 그는 루크레치아도 두들겨 패서 입을 막고 싶은 모양이었으나, 추기경의 정부에게 감히 손을 댈 수는 없었다. 루크레치아가 마뜩잖은 것은 무관뿐만이 아니라 문관들도 마찬가지였다. 협상장에서 힘든 하루를 보내고 간신히 사냥대회의 천막으로 복귀한 마르케즈 백작이 갈리코 사절들의 눈치와 국왕의 눈치를 동시에 보며 루크레치아에게 낮은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16630317636472.jpg“부인! 여기가 어느 안전이라고 함부로 나서시는 겝니까!”

그러나 신하들이 편을 들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아리아드네의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아리아드네는 실질적으로 입이 틀어막힌 것과 다름없었다. 루크레치아는 대외적으로 아리아드네의 적모였기 때문에 아리아드네는 공개적인 장소에서 루크레치아와 논박을 할 수가 없었다. 자노비는 아리아드네가 이사벨라를 괴롭힌다고 주장했고, 루크레치아는 자노비의 행동을 아리아드네가 그저 ‘오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거기에 대해 해명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여기서 그녀를 구해 준 것은 체자레 백작이었다.

16630317640725.jpg“국왕 폐하! 석궁에는 다행히 말이 맞았지만, 말이 한참을 날뛰는 바람에 데 마레 영애는 오르테 숲속 깊은 곳에서 낙마해서 죽을 뻔했습니다. 제가 구하지 않았다면 죽었을 겁니다. 사람에게 맞았건 말에 맞았건 살인 미수인 점은 똑같습니다.”

그리고 그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16630317640725.jpg“그 와중에 저도 죽을 뻔했습니다. 날뛰는 말에서 사람을 구하는 건 위험한 일입니다. 이건 당당한 대 에트루스칸 국의 백작위를 가진 귀족을 죽일 뻔했던 것 아닙니까. 저치는 뭐죠? 남작? 남작의 아들? 아, 남작 집안도 아니던가? 작위가 있긴 있나?”

말은 귀족이라고 했지만 레오 3세와 갈리코 사절단을 포함해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은 체자레의 진정한 혈통을 알고 있었다. 이건 비록 반쪽짜리 오염된 피이기는 하지만 왕의 핏줄이 죽을 수도 있었던 사건이었다. 자노비는 취중임에도 불구하고 이건 정말 큰 일이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16630317636467.jpg“저 화살이 제 화살은 맞지만⋯⋯! 오해입니다⋯⋯!”

레오 3세의 신하가 세 번째 발길질을 했고, 정통으로 옆구리를 얹어 맞은 자노비는 그제서야 닥쳤다. 레오 3세는 치밀어오르는 화를 누르며 지금 그가 눈앞의 놈을 처벌하는 데에 있어서 고려해야 하는 사항들을 머릿속으로 가늠해 보았다. 우선, 자노비가 추기경의 서출 딸의 등에다가 화살을 쏜 것은 사실이지만 그가 서출 딸을 노린 것인지 아니면 그녀의 말을 노린 것인지는 확인이 불가능했다. 살인 미수인가, 아니면 재물손괴인가? 아니면 체자레의 말대로, 말을 쏜 것 그 자체로 살인 미수인가? 이 판단에 따라 자노비의 형이 결정적으로 갈릴 것이었다. 두 번째로, 체자레가 다친 부분은 체자레가 제멋대로 아리아드네를 구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지, 자노비가 예측할 수 있었던 사항이 아니었다. 왕의 핏줄을 죽이려고 했다는 죄목을 자노비에게 씌우기는 어려워 보였다. 게다가, 갈리코 사절단이 눈 시퍼렇게 뜨고 보고 있는데 체자레를 왕의 핏줄이라고 인정해 줄 수도 없었다. 세 번째로, 그는 데 마레 추기경과의 관계를 좋게 유지하고 싶었다. 데 마레 추기경의 자식이 그의 처조카에게 큰일을 당할 뻔한 사건이기는 하지만, 루크레치아가 이렇게 사람들 앞에서 자노비를 있는 대로 감싸고 있는데 그것을 무시하고 자노비에 대해 엄격한 처벌을 내릴 경우에 데 마레 추기경이 그것을 과연 좋아할지에 대한 확신이 레오 3세에게는 없었다. 남자는 결국에는 자식보다는 침대를 같이 쓰는 여자에게 너그럽기 마련이었다. 네 번째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자노비라는 놈은 입만 열면 거짓말에 위아래도 가리지 못하는 것이 싹이 아주 노래 보였다. 다섯 번째로, 갈리코 사절들이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에 레오 3세는 자비로운 성군처럼 보여야 한다는 압박과 현명한 판결을 내려 위엄을 떨쳐야 한다는 압박을 동시에 느꼈다. 레오 3세는 이 모든 사실을 비교 형량한 끝에, 자노비에게 내릴 죗값을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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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30317636463.jpg“자노비 데 로시, 너는 기사로서 지켜야 할 대상인 레이디를 도리어 괴롭히고, 또한 그에 대해서 덮으려고 거짓말을 했다. 따지고 보면 사촌 여동생인 영애를 공격한 것이니 친족의 우애마저 없구나.”

여기까지 들으니 아리아드네에 대한 살인 미수를 긍정하는 것처럼 들렸다. 그러나 레오 3세의 판결을 계속되었다.

16630317636463.jpg“그러므로 말에게 석궁을 쏜 것에 대해 채찍 20대, 거짓말에 대해서는 채찍 10대, 그리고 친족에 대한 정을 저버린 데에 대해서 채찍 10대, 총 40대의 채찍형에 처한다.”

군중 속에 소요가 일었다. 사람들이 생각보다 자비로운 형벌에 약간 놀란 모양이었다. 채찍형은 물론 잘못 맞으면 죽기는 하지만 도둑질 같은 경한 죄에 선고하는 형벌이었기 때문이었다. 꿇어앉아 있던 자노비와 조마조마하게 지켜보고 있던 루크레치아도 아리아드네에 대한 살인 미수가 아니라 말에 대한 석궁 발사가 인정되었다는 점, 그리고 금고형이나 추방형이 아닌 채찍형이 선고되었다는 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명예가 상한 것이 아니었다. 이 정도는 해프닝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모두 다 잊고 넘어갈 수 있을 것이었다. 자노비를 고향으로 돌려보내기만 한다면 고향 땅에서는 아무도 모르게 지나갈 일이었다. 그러나 레오 3세의 선고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16630317636463.jpg“다만! 자노비 데 로시는 기사도의 개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우둔한 자에게 날카로운 날붙이를 쥐여줘 보았자 백성에게 해가 될 뿐이다. 이에, 자노비 데 로시의 기사 서임을 평생 금하노라. 이상!”

자노비는 머리를 망치로 두들겨 맞은 것 같은 충격에 예법 따위는 까맣게 잊고 고개를 번쩍 들어 레오 3세를 쳐다보았다.

16630317636467.jpg“안 돼요!”

자노비는 돼지 멱따는 소리를 지르며 길게 울부짖었다.

16630317636467.jpg“그것만은 안 됩니다! 기사! 기사! 나는 기사가 되어야 하는데!”

16630317636472.jpg“어허! 그만! 저놈을 끌어내라!”

레오 3세의 비서가 주변의 군사들을 재촉했다. 완전군장을 한 군사들 대여섯 명이 뛰어들어와서 발광하는 자노비를 붙들고 레오 3세의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끌어내기 시작했다.

16630317636467.jpg“되바라진 계집애 따위 좀 괴롭힌 게 뭐가 어떻다고! 아악! 나는 큰 사람, 큰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비명을 지르는 자노비를 보며 루크레치아는 머리에서 피가 쭉 빠져나가며 세상이 핑그르르 도는 것을 느꼈다. 저 막돼먹은 놈은 그래도 데 로시 가문의 희망이었다. 오늘, 언젠가는 친정 가문이 번듯한 기사의 가문이 될 것이라는, 자노비가 스스로 밥벌이를 해서 더는 고모의 눈치 보이고 비굴한 생활을 담보로 한 원조가 필요 없어질 것이고, 본인도 자노비와 친정 식구들을 믿고 떵떵대며 큰소리칠 날이 올 거라는 루크레치아의 희망의 문이 닫혔다. - 쿵!  

16630317636472.jpg“세상에, 여기 누가 쓰러졌어요!”

16630317636472.jpg“데 마레 추기경의 정부가 쓰러졌네! 정신을 잃었어!”

16630317647827.jpg“엄마!”

이사벨라의 뾰족한 비명이 하늘을 찔렀다. 온 사방에 난리가 났다. 하지만 자노비를 기다리는 수난은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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