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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화> 점성술사의 속셈 (598/733)

<제81화> 점성술사의 속셈2021.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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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리아드네는 커튼을 닫고 산차에게 말을 건넸다.

16630319158813.jpg“'미스 로시'가 외출이 잦네.”

책상 정리를 하던 산차는 아리아드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16630319158818.jpg“루크레치아 마님은 평소엔 외출을 거의 안 하시지요.”

정확하게는 ‘안’이 아니라 ‘못’이었다. 루크레치아는 수도 사교계에 인맥이 없었다. 그녀를 초대하는 사람들도 없었고, 집으로 부를 부인들도 없었다. 그저 정례 대미사나, 산 에르콜레 대성황당 관련한 자잘한 외출, 아니면 물건을 사기 위한 상점 방문이 다였다. 일주일 사이에 행선지가 명확하지 않은 외출 두 번이라니, 전혀 루크레치아답지 않았다.

16630319158818.jpg“바람이라도 나신 걸까요?”

산차의 말에 아리아드네도 모처럼 빵 터졌다. 알폰소 왕자가 편지 한 통 남기지 않고 타란토로 떠난 이후로 처음 지어보는 큰 웃음이었다.

16630319158813.jpg“돈도 없을 텐데 인제 와서 바람이라니.”

16630319158818.jpg“왜, 늦게 찾은 진실한 사랑일 수도 있죠.”

산차와 허튼소리를 주거니 받거니 하던 아리아드네는 스스로의 처지에 볼멘소리했다. 언제나 인내심이 넘치는 아리아드네답지 않은 짓이었다.

16630319158813.jpg“이럴 때 미행을 붙일 하인이 있으면 딱 좋으련만.”

체자레의 날개 밑에서 섭정공의 약혼자로 지낼 때는 그저 체자레의 사람을 빌어 쓰면 됐었다. 누군가의 여인이 된다는 것은 그의 위세를 빌린다는 거였다. 달콤한 피난처다.

16630319158818.jpg“그러게요. 합법적으로 하인들을 부릴 핑계만 있으면⋯⋯!”

하지만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씹으면 된다. 아리아드네는 다른 꾀를 산차에게 귀띔했다.

16630319158813.jpg“오늘 루크레치아 마님을 모시고 나간 마부가 누군지 알아 와.”

산차는 주인의 의중을 한마디만 듣고도 모두 알아들었다.

16630319158818.jpg“아! 그런 방법이 있었군요!”

아리아드네는 미소를 띠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루크레치아와 동행한 마부에게 약간의 사례를 해서 행선지를 알아낼 생각이었다. 황금은 죽은 사람의 입도 여는 법이다. * * * 루크레치아가 점성술사가 빌린 단독주택을 다시 찾자 집시 여인은 만면에 미소를 띠며 현관까지 뛰쳐나왔다. 루크레치아는 대어였다. 집시 여인은 루크레치아를, 정확하게 말하면 ‘푸른 심해의 심장’을 놓칠 수 없었다. 루비나 백작 부인은 집시 여인에게 ‘푸른 심해의 심장’을 가져오면 1000 두카토(약 10억 원)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황금으로 일시불이었다. 루비나 백작 부인은 돈과 보상 관련한 약속은 칼같이 잘 지켰다.

16630319164206.jpg‘이거 한 건만 성공하면 신세 고치는 거지!’

집시 여인은 미리 완벽하게 준비를 마쳤다. 그녀는 루크레치아가 ‘푸른 심해의 심장’을 가지고 오면 바꿔치기할 모조품까지 미리 큰돈 들여 마련해 두었다. 그저 언제 루크레치아가 돌아오나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던 차였다.

16630319164206.jpg“부인! 성공하셨군요. 어서 안쪽으로 들어오세요. 그 망할 물건은 어디에 있습니까?”

반색한 집시 여인의 시선을 부담스러워한 루크레치아는 고개를 옆으로 비스듬히 내리깔고 대답했다.

16630319164216.jpg“그게⋯⋯. 사정이 좀 있었네.”

루크레치아와 그 하녀를 방 안으로 들여서 그 ‘사정 설명’을 들은 집시 여인은 분통이 터진 나머지 타로를 던질 뻔했다.

16630319164206.jpg“뭐라고요? 목걸이를 못 가져왔다고요?”

16630319164216.jpg“어쩔 수가 없었어, 그 계집애가 어찌나 꼼꼼한지⋯⋯.”

루크레치아는 구구절절이 왜 자신이 목걸이를 가지고 올 수가 없었는지에 대해 변명했고, 루크레치아 옆에 앉은 지아다는 마치 자신의 잘못은 하나도 없다는 양 딴청을 피웠다. 숫제 남의 이야기를 듣는 듯한 태도였다. 집시 여인은 저 한심한 듀오를 한 대 치고 싶었다. ‘푸른 심해의 심장’의 모조품을 만드는 데 들어간 금화를 생각하니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었다.

16630319164216.jpg“……그래서, 혹시 실물이 없더라도 정화 의식이 가능하겠나?”

답답해하던 집시 여인의 귀가 번뜩 뜨였다. ‘정화 의식’이라니! 고객이 먼저 꺼내는 정화 의식 이야기는 호구의 표식 같은 거였다. 목걸이는 못 가져오더라도 들인 비용을 회수할 기회였다.

16630319164206.jpg“……실물이 없다면 쉽지 않기는 합니다만⋯⋯.”

그녀는 일부러 말꼬리를 느릿하게 끌며 몸을 뒤로 뺐다. 목걸이를 손에 넣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여기까지 다시 찾아온 루크레치아였다. 미련이 아주 많이 남은 것이 틀림없었다. 조금 튕겨도 먹힐 것 같았다.

16630319164206.jpg“재료도 많이 들어가고, 정성도 많이 들어가고⋯⋯. 하실 수 있으시겠어요?”

16630319164216.jpg“효과는, 효과는 똑같은가?”

멍청하기 짝이 없는 여자, 라고 중얼거리고 싶은 입을 꾹 다물며 집시 여인은 대신 요사스러운 눈웃음을 쳤다.

16630319164206.jpg“천지신명께 가서 닿는 기도입니다. 닿는 게 어려워서 그렇지 닿기만 하면 효과는 아주 똑! 같죠.”

루크레치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16630319164216.jpg“내 뭐든 하겠어. 이것만 성공하면 내 딸이 근신에서 풀리고 추기경께서 마음이 누그러지시겠나?”

16630319164206.jpg“그뿐이겠습니까. 푸른 혈통께서는 큰따님에게 한눈에 반해 큰따님을 에트루스칸에서 가장 고귀한 여인으로 만드실 것입니다.”

기왕 하는 거짓말, 스케일이 좀 커지면 어떠랴. 게다가, 이사벨라가 왕의 여자가 될 것이라는 자신의 예언은 진실이었다. 그녀는 루비나 백작 부인의 운명을 보았을 때도 같은 기운을 느꼈다. 집시 여인이 엿본 이사벨라의 운명은 심지어 루비나 백작 부인의 운명보다도 더 강하게 타올랐다.

16630319164206.jpg“부인과 큰따님의 기운이 작은 따님의 기운과 상극인 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정화 의식을 통해서 귀보석의 힘을 뚝! 떨어트리면 모든 것이 술술 풀리고 다 예전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고 루크레치아를 바라보았다.

16630319164206.jpg“오명을 뒤집어쓴 큰 따님의 명예 회복을 하고, 마땅히 그녀의 것이었던 영광을 되찾아 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집시 여인은 이 판을 마련하기 전에 이미 데 마레 추기경 가에 대한 뒷조사를 했다. 지금 사교계는 데 마레 추기경의 장녀가 캄파 후작의 내연녀라는 소문이 파다한 상태였다. 딸을 사랑하는 모친이라면 정화 의식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리라.

16630319164206.jpg“할 수 있는 일이 있는데도 손 놓고 있는 건 어미의 태도가 아니지요.”

과연, 루크레치아의 귀에는 이 이야기가 정화 의식을 거행하기만 하면 이사벨라가 어떻게든 알폰소 왕자와 결혼할 수 있을 거라는 이야기로 들렸다. 그리고 정화 의식을 하지 않으면 아리아드네가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루크레치아의 마음을 가득 메웠다. 루크레치아는 집시 여인의 손을 덥석 잡았다.

16630319164216.jpg“하십시다.”

그러나 이번에는 집시 여인이 튕길 차례였다. 그녀는 의심스럽다는 듯이 루크레치아를 빤히 쳐다보며 한발 뒤로 물러났다.

16630319164206.jpg“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16630319164216.jpg“내 뭐라도 다 하겠네.”

16630319164206.jpg“죽은 개구리의 피, 독각사의 내단, 무어 제국에서 공수해 온 몰약과 예사크 산 유향. 납처럼 녹인 황금. 그리고 주술사가 치러야 할 대가.”

집시 여인은 루크레치아를 빤히 바라보았다.

16630319164206.jpg“재료도 귀하고 할 수 있는 사람은 더더욱 귀합니다. 전 이 정화 의식의 대가로 ‘인과율’을 바쳐야 해요.”

그녀는 손가락 두 개를 펼쳐 보였다.

16630319164206.jpg“200 두카토(약 2억 원). 그 밑으론 불가능합니다.”

루크레치아는 입을 쩍 벌렸다. * * * 집으로 돌아가는 마차 안에서 지아다는 루크레치아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16630319164206.jpg“마님. 아무래도 200 두카토(약 2억 원)는 무리이지 않을까요.”

그녀는 눈치를 보며 말을 덧붙였다.

16630319164206.jpg“타란토에도 돈을 못 보내게 된 지 조금 되었습니다. 지금 가계부에 남은 여유분이 있겠어요?”

사실은 있었다. 부자는 망해도 3대는 간다고, 루크레치아가 데 마레 추기경의 가계부 전권을 잡고 관리해 온 지는 20년이 넘었다. 집 안에도, 집 밖에도 약간의 목돈은 꿍쳐 놓은 터였다. 다만 다시 쌓을 기약이 없으니 쉽사리 못 건들고 있을 뿐이었다. 루크레치아는 로시 가문에서부터 따라와서 사정을 손바닥 보듯이 다 알고 있는 지아다에게 분통을 터트렸다.

16630319164216.jpg“말이야 바른 말이지, 타란토로 보내는 돈은 녹아내리는 돈이야. 내 말이 틀렸나?”

루크레치아가 보내오는 생활비를 받는 로시 가문은 그것을 아주 흥청망청 썼다. 데 마레 추기경은 매월 20두카토(약 2000만 원)를 의심했지만 사실 루크레치아가 친정 식구들에게 보내는 돈은 월 30두카토(약 3000만 원)가 넘었다. 30에서 35두카토를 매월 받는다면 그것으로 저축도 하고 투자도 할 법했지만 로시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이제껏 루크레치아가 보낸 돈으로 땅을 사서 농사를 지었으면 생활비는커녕 소지주라고 불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대신 그것들은 술과, 비단과, 도박자금으로 물 새듯 흘러나갔다.

16630319164206.jpg“아이고 마님, 그렇지만 안 보낼 수도 없지 않습니까⋯⋯.”

지아다의 친정어머니는 로시 가문 밑에서 일하고 있었다. 지아다 역시 로시 가문이 쫄딱 망하면 곤란해지는 면이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좀 더 근원적인 부분에서 지아다는 타란토의 로시들을 외면하라고 루크레치아에게 조언할 수가 없었다. 지아다가 가진 것은 친정을 외면하면 큰일 난다는, 친정에서 받은 게 없더라도 친정 오라비를 위해서 누이는 모든 것을 해야만 사람 노릇을 하는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그리고 그 믿음은 루크레치아 역시도 공유하는 것이었다.

16630319164216.jpg“자네 말이 맞아, 자네 말이 맞네. 하지만 이번 달까지만 기다려 보세.”

집시 여인은 떠나가는 루크레치아의 뒤통수에다 대고 기한도 박아주었다.

16630319164206.jpg“2주! 2주일 뒤에 ‘뱀주인자리’ 별자리가 닫히고 ‘사수자리’로 넘어갑니다! 어둠의 별자리가 떠 있는 동안만 이 제사를 지낼 수 있고 정상적인 황도 12궁의 시대로 넘어가면 문이 닫혀요!”

정화 의식을 실제로 거행하기까지 일주일 정도의 준비 기간이 있으므로, 결국 일주일 안에 돈을 마련해 와야 한다는 소리였다. 그동안 데 마레 추기경과 아리아드네의 눈치를 보느라 타란토에 보내지 못한 돈이 60두카토(약 6000만 원) 정도 쌓여 있었으므로, 140두카토(약 1억 4000만 원)만 융통하면 어떻게든 해볼 만했다.

16630319164216.jpg“이 일만 잘 풀리면 예전이랑 똑같이 돌아갈 수 있어! 내 딸이 왕비가 된다고 하네, 응?”

의무감과 탐욕 사이에서 이긴 것은 역시 탐욕이었다. 지금 루크레치아는 근 10여 년간 느꼈던 것들 중 가장 큰 압박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사벨라는 루크레치아의 자랑이자 보물이었다. 그녀는 딸이 으리으리한 남자의 정실부인으로 당당히 입성해서 어머니의 평생의 한을 풀어주는 날을 평생 고대해왔다. 하지만 앞으로 그녀를 정처로 원할 남자가 있을는지 의심스러웠다. 아름답지만 평판에 치명적인 흠이 있는 사생아. 누가 봐도 정부(情婦) 감이다.

16630319164216.jpg“안 돼……. 이사벨라를 나처럼 살게 할 수는 없어!”

신분이 낮은 남자에게 간다면 정부인이 될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죽기보다 싫었다. 그런 와중에 왕족의 반려라니⋯⋯! 이건 해야만 했다. 거래처들에 맡겨 놓았던 돈들을 여기저기서 찾아오고, 숨겨 놓았던 쌈짓돈을 찾느라고 루크레치아는 서너 번의 외출을 더 했다. 그중에는 라지오네 양장점도 있었다. 루크레치아의 동선은 대부분의 외출에 동행했던 늙은 마부와, 한두 번의 외출을 따라갔던 젊은 마부 주세페의 입을 통해 아리아드네의 귀로 술술 들어왔다. 늙은 마부의 밀고는 황금을 통해 왔지만 젊은 마부 주세페의 밀고는 미인계를 통해 왔다.

16630319158813.jpg“너, 재주가 좋구나?”

아리아드네는 빙긋이 웃으며 산차를 놀렸다.

16630319158818.jpg“아가씨 무슨 말씀이세요!”

산차가 주근깨로 덮인 얼굴을 시뻘겋게 붉히며 화를 냈다. 산차의 피부는 평소에는 몹시 창백했다. 지금 산차는 피부와 머리카락이 같은 색깔이었다.

16630319158818.jpg“그런 거 아니라고요!”

16630319158813.jpg“왜, 정말 좋아하는 게 눈에 보이더니만.”

십 대 후반인 주세페는 말수가 적고 조용한 견습 마부였다. 마구간에서 성실하게 일을 배우는 젊은이였다. 아리아드네는 주세페에게도 약간의 돈을 건네주며 질문을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산차를 내려보내서 주세페에게 운을 띄우자마자 주세페는 바로 귀뿌리까지 새빨개졌다. 그리고 산차에게 아리아드네가 듣고 싶었던 것을 모두 알려주었다.

16630319158813.jpg“내가 주세페가 원래 떠벌이기를 좋아하는 편이냐고 물어봤더니 네가 아니라고 했잖아!”

산차는 주세페가 과묵하고, 입이 무겁고, 믿을만하다는 평판이 있는 젊은이라고 단언했다.

16630319158813.jpg“남자는 반하지 않은 이상 그렇게까지 해 주지 않는다고!”

16630319158818.jpg“몰라요! 아니에요 아가씨, 미워요!”

16630319158813.jpg“너도 마음 있는 거 아니야? ‘과묵하고 듬직하다’라며!”

16630319158818.jpg“과묵하고 믿음직하다고 했거든요?!”

16630319158813.jpg“그게 그거지.”

16630319158818.jpg“몰라요! 아니에요!”

아리아드네는 산차를 그만 놀리기로 했다. 산차의 덕에 얻은 증언에 따르면, 루크레치아는 주로 상점들을 돌며 돈을 모았다. 라지오네 양장점에서도 리베이트 금액으로 받기로 한 30두카토(약 3000만 원)를 미리 받아갔다고 했다.

16630319158813.jpg‘지금 루크레치아가 돈을 쓸 만한 데가 어디 있지?’

타란토에 보내야 하는 돈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러기엔 액수가 지나치게 컸다. 게다가 타란토에 보낼 돈은 애초에 루크레치아가 집 안에서 충당할 수 있었던 금액이었다. 바깥에 숨겨둔 돈을 이렇게 끌어모을 필요까진 없을 터였다.

16630319158813.jpg‘목돈을 써야 하는 곳이 생긴 모양인데.’

아리아드네의 의문점에 대한 답변은 금방 돌아왔다.

16630319182519.jpg“루-크-레-치-아!!!!”

데 마레 추기경 관저를 뒤흔든 한 차례의 고함이 울렸다. 그리고 소녀들의 응접실에서 아라벨라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던 아리아드네에게 집사 니콜로가 황급하게 달려와 귓속말을 했다.

16630319164206.jpg“둘째 아가씨, 추기경 예하께서 지금 빨리 아가씨의 방으로 올라오시랍니다. 당장이요!”

16630319158813.jpg“그래? 산차, 준비하렴.”

16630319164206.jpg“그것이……. 아가씨. 아무도 대동하지 말고 본인만 오셨으면⋯⋯. 하셨습니다.”

아리아드네의 왼쪽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16630319158813.jpg“내 방으로?”

왜 데 마레 추기경의 서재가 아니고 내 방으로 부르는 거지? 왜 산차조차도 동행하지 말라는 거지? 의구심에 가득 찬 아리아드네의 얼굴을 본 집사 니콜로는 고개를 끄덕여 긍정했다.

16630319164206.jpg“예, 둘째 아가씨 방이 맞습니다.”

데 마레 추기경이 아리아드네만 부른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집사 니콜로의 인도를 따라 2층으로 올라가는 복도에는 달콤하고 끈적한 냄새가 묻어났다. 진한 밤색의 떡갈나무 바닥에 시커먼 액체가 점점이 떨어져 있었다. 그 액체의 꼬리는 아리아드네의 처소 안쪽까지 이어져 있었다. 시커먼 액체의 전경은 아리아드네의 처소 안쪽까지 들어가서야 보였다. 그 액체는 피였다. 아리아드네의 처소 안에 깔린 상앗빛 카펫 위에는 시커먼 오망성이 있었다. 시커멓게 눌어붙고 끔찍한 냄새가 나는 정체 모를 피로 그려진 오망성. 별의 각 꼭지에는 유향과 몰약이 버너 위에서 타오르고 있었다. 누가 봐도 분명하기 짝이 없는 흑마술의 흔적이었다. 그리고 그 오망성 한가운데에는 아리아드네의 금고가 자리 잡고 있었다. ‘푸른 심해의 심장’이 들어있는 바로 그 금고였다. 그 금고 옆에는, 데 마레 추기경에게 뺨을 호되게 얻어맞은 루크레치아가 널브러져 있었다.

16630319182519.jpg“당신이란 인간은 도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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