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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0화> 객체의 착오 (627/733)

<제110화> 객체의 착오2021.12.22.

16630321464179.jpg“에이, 도대체 여기서 빨간 머리 여자를 어떻게 찾으라는 거요!”

두 시간 동안이나 랑부예 구휼원 주변을 빙빙 돈 장년 남자는 허탕에 약이 올라 골목길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를 발로 찼다.

16630321464179.jpg“이 시간에 여자들은 다 집 안에 들어가 있겠지. 어디 아직까지 바깥에 돌아다니고 있겠어?!”

부랑자들은 이 골목에 오후에 도착했지만, 겨울 해가 짧은 탓에 아직 다섯 시도 채 되지 않았는데 벌써 어스름이 지고 있었다. 확실히, 몸가짐이 단정한 처녀라면 집에 들어가 있어야 할 시간이다.

16630321464179.jpg“우리도 답이 없는 인생이지만 이딴 의뢰를 한 놈들도 정말 답이 없다!”

16630321464179.jpg“투덜거리지 말고 조용히 해! 사람들이 쳐다보잖아!”

이 골목길은 가난한 사람들이 몰려 사는 구역이었다. 외지인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한 어린애들이 집 안에서 빠끔히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십여 쌍의 조약돌처럼 윤기 나는 운동자들이 몰려다니는 부랑자 아저씨들을 빤히 쳐다보았다.

16630321464179.jpg“그냥 대충 이 동네 사람한테 맡기고 우리는 돌아갈까? 선금 받은 걸로 술이나 먹으러 가자. 그 계집이 언제 기어 나올지 어떻게 알…….”

투덜거리던 장년 남자는 자기의 입을 막는 동료의 더러운 손에 인상을 찌푸렸다.

16630321464179.jpg“쉿! 저기, 저거 봐!!”

동료의 재촉에 장년 남자는 앞을 바라보았다. 붉은 머리의 젊은 여자가 랑부예 구휼원의 뒷문을 통해 나오고 있었다. 그녀는 품 안에 왕골 바구니를 하나 안고 망토를 걸친 채 장화를 신고 잰걸음으로 걷는 중이었다.

16630321464179.jpg“빨간 머리다!”

여자의 옷차림은 과연 귀족이라고 하기엔 모자라 보였지만 평민치고는 부유해 보였다. 부랑자 두 명은 서로 눈을 마주치고 의미심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16630321464179.jpg‘저 여자가 틀림없어!’

주변을 둘러보니 돌아다니던 사람들도 다 들어가고 아무도 없었다. 거사를 벌이기 최적의 장소다. 장년 남자는 단도를 소매 안에 감춰 쥐고 붉은 머리 여자에게 다가갔다.

16630321464179.jpg“저기, 아가씨.”

16630321464179.jpg“네?”

순진한 푸른 눈의 처녀는 고개를 돌려 자신을 부른 장년인을 돌아보았다. - 푹! 장년인의 단도가 붉은 머리 여자의 배를 찔렀다. 여자는 윽, 소리조차 내지 못한 채 무게중심을 놓치고 앞으로 무너져내렸다.

16630321464179.jpg“됐다!”

장년인은 쓰러진 여자를 둘러업었다. 으슥한 곳에 끌고 가서 의뢰인이 주문한 대로 살인의 증거를 확보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의 동료가 그의 어깨를 급하게 쳤다.

16630321464179.jpg“아, 또 왜.”

16630321464179.jpg“저기, 저기 봐!”

장년 남자는 짜증스럽게 고개를 들어 앞을 보았다.

16630321464179.jpg“……!”

거기에는 공포에 질린 표정의 빨간 머리 여자가 한 명 더 있었다. 죽은 여자의 머리카락이 단풍 같은 붉은색이라면 살아 있는 여자의 머리카락은 불타는 오렌지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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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30321464179.jpg‘분명히 빨간 머리에 고급스러운 옷을 입은 ’퉁퉁한 여자‘를 죽이라고…….’

장년 남자는 자기가 둘러업고 있는 죽은 여자의 무게를 가늠해 보았다. 장년인이 업은 시체는 아무리 후하게 봐줘도 보통 체격이었다. 아니, 솔직히 마른 편이었다.

16630321464179.jpg- “저 여자야! 저 여자를 잡아!”

장년인은 소리를 죽여 속삭이듯 동료에게 외쳤다. 부랑자 둘은 눈빛을 교환하고 바로 새로 나타난 여자를 쫓았다.

16630321476709.jpg“꺄악!”

불타는 오렌지색 머리를 한 ‘퉁퉁한’ 여자, 말레타는 험상궂은 남자 두 명이 자기를 쫓아오자 기겁했다. 그녀는 랑부예 구휼원 안으로 다시 뛰어들어가려고 몸을 돌렸다. 젖먹던 힘까지 다해서 뛰었지만 몸 쓰는 일을 하는 남자들 쪽이 압도적으로 빨랐다.

16630321464179.jpg“잡았다!”

16630321476709.jpg“악!”

16630321464179.jpg“입 막아!”

장년 남자가 말레타를 붙들었다. 동료 쪽은 장년 남자가 시키는 대로 말레타의 입을 막는 대신에 단도로 그녀를 바로 찔렀다.

16630321476709.jpg“억!”

말레타는 단말마의 비명만 남기고 축 늘어졌다. 숨이 끊겼다. 욕심 많던 말레타의 최후였다. 부랑자들은 골목 중앙에 서서 난처한 눈빛을 교환했다.

16630321464179.jpg“어떡하지? 한 명 더 죽여버린 거 같은데.”

16630321464179.jpg“안 걸리면 장땡이지. 빨리 내빼자.”

16630321464179.jpg“시체에서 목을 잘라오라고 그랬지?”

16630321464179.jpg“둘 중 누구?”

16630321464179.jpg“두 번째 같지 않냐?”

16630321464179.jpg“혹시나 첫 번째면 어떡해. 머리 잘못 가져가면 돈 안 주는 거 아냐?”

16630321464179.jpg“그럼 둘 다 잘라가지 뭐.”

16630321464179.jpg“알았어.”

부랑자들은 각자 시체 한 구씩을 맡아 둘러업고 랑부예 구휼원 뒷골목 길을 황급히 떠났다. 구휼원 뒷골목은 언뜻 보아서는 아무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가난한 이들이 밀집해서 살아가는 구역에는 언제든 어디에서든 보고 있는 눈이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나무판을 얼기설기 대서 만든 판자촌 안에서 저 사건을 목격한 눈들 여럿이 반짝였다. * * *

16630321464179.jpg“다녀왔습니다.”

랑부예 구휼원의 관리, 스캄파 씨는 오늘 평소보다 조금 늦게 퇴근했다.

16630321464179.jpg“어머니, 저녁은요?”

그는 까칠한 인상과 다르게 거동이 불편한 노모와 시집갈 때가 다 된 딸을 부양하는 가장이었다. 세 식구는 랑부예 구휼원에서 걸어서 30분 정도 떨어진 중산층 지구, 카스텔 라비코에 살았다.

16630321464179.jpg“못 먹었다. 파올라가 아직 안 들어와서 챙겨주는 사람이 없었어.”

16630321464179.jpg“네? 파올라가 아직 도착 안 했어요? 어머니 저녁 챙겨드리겠다고 분명히 저보다 먼저 나갔는데요.”

모친은 역정을 냈다.

16630321464179.jpg“그럼 내가 거짓말이라도 한다는 소리야!”

16630321464179.jpg“아니, 아니에요. 그럴 리가요.”

스캄파 씨는 더럭 겁이 났다.

16630321464179.jpg“파올라가 귀갓길에 다른 데로 빠질 애가 아닌데…….”

무남독녀 외동딸 파올라는 그의 자랑이자 삶의 이유였다. 빠듯한 살림에도 딸이 입고 먹고 사용할 것은 가능한 선에서 가장 훌륭한 것으로 마련했다. 최근 스캄파는 파올라의 남편감을 물색하고 있었다. 딸이 결혼하면서 면이 상하지 않도록 지참금도 저축해놓은 터였다. 파올라는 아버지의 저축을 건드려서 시집가기는 죄송하다면서 랑부예 구휼원에 일손이 필요할 때마다 구휼원에서 단기로 잡일을 돕고 일당을 받았다. 오늘도 그런 날이었다. 딸은 낮에는 랑부예 구휼원에서 텃밭 순무 파종을 도왔고, 저녁에는 할머니의 식사를 챙겨드린다고 집으로 일찍 돌아갔다. 파올라는 집에 있어야 했다. 이 시간까지 밖에 있을 애가 아니었다.

16630321464179.jpg“찾으러 나가봐야겠어요.”

스캄파 씨가 벗어놓았던 외투를 다시 걸치는데 옆집 팜피놀라 아주머니가 현관문에 들어와 전했다.

16630321464179.jpg“저기, 스캄파 씨. 지금 거리가 난리가 났어요. 들었어요?”

16630321464179.jpg“아뇨? 무슨 일입니까?”

16630321464179.jpg“구휼원 뒷골목에……. 여자 시체 두 구가 나왔다고…….”

16630321464179.jpg“예?!”

16630321464179.jpg“그런데 둘 다 목이 없답니다.”

  * * * 루크레치아는 로레타를 하루에 한 번씩 캄포 데 스페지아 8번지에 있는 생선가게에 보냈다.

16630321464179.jpg“화물 들어온 게 있습니까?”

‘화물 들어온 것 있습니까’라는 루크레치아가 생선가게와 정해놓은 암호였다. 루크레치아는 생선가게 측에 ‘귀부인에게 맡긴다’는 상자가 들어오면 열어보지 말고 자기가 보낸 하인에게 전달해달라고 부탁했고, 최근에는 거래가 끊겼지만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루크레치아 덕에 많은 매상을 올렸던 가게 주인은 루크레치아의 면을 봐서 승낙했다. 상자가 들어왔으면 건네주면 될 것이고 상자가 오지 않았으면 ‘아니오. 오늘은 화물이 없습니다.’라고 말하면 될 것이었다. 하지만 캄포 데 스페지아 8번지의 생선가게 주인은 몹시 난감한 표정으로 로레타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16630321464179.jpg“화물, 없어요?”

로레타가 재차 물었다. 그때 상점 안쪽 방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로레타를 둘러쌌다.

16630321464179.jpg“잡았다!”

16630321464179.jpg“어느 집 하녀야!”

16630321464179.jpg“도대체 어떤 으리으리한 귀족 집이길래 이런 끔찍한 짓을 해?!”

로레타를 둘러싼 사람들의 행렬 맨 앞에는 고통과 분노로 눈에서 실핏줄이 터져 머리칼뿐만이 아니라 눈알까지 시뻘게진 스캄파 씨가 서 있었다.

16630321464179.jpg“내 딸을 네가 죽였지!!!”

16630321464179.jpg“뭐라고요?!”

어젯밤, 목이 없는 여자 시체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에 스캄파 씨는 정신없이 그곳으로 뛰어갔다. 시체는 랑부예 구휼원과 스캄파 씨의 자택 사이 중간 즈음에서 발견되었다. 카스텔 라비코와 코뮨 누오바 사이의 어디였다. 시신을 버려진 헛간에 내버려 둘 수는 없으니 일단 카스텔 라비코의 주민협동조합 건물로 옮겨왔다고 했다.

16630321464179.jpg“내 딸, 내 딸이 혹시 여기에 있습니까?!”

스캄파 씨가 뛰어들어오자 카스텔 라비코의 대표는 반색을 했다. 협동조합 대표는 지역의 치안도 맡고 있었다. 그는 얼른 시신 두 구를 그에게 보여주었다.

16630321464179.jpg“안 그래도 연고자를 찾던 중이었소. 옷차림이 동네 마실용인 걸 보니 이 동네 주민 같은데…….”

16630321464179.jpg“파올라!”

스캄파 씨의 찢어지는 목소리가 협동조합 건물이 떠나가라 울렸다.

16630321464179.jpg“내 딸!”

금지옥엽 키우던 하나뿐인 딸이 목 없는 시체가 되어 돌아왔다.

16630321464179.jpg“누굽니까!”

스캄파 씨는 울부짖었다.

16630321464179.jpg“누가 이런 짓을 했습니까!”

16630321464179.jpg“그건 차차 알아봐야…….”

16630321464179.jpg“카스텔 라비코 대표 계십니까?”

협동조합 현관을 밀고 다른 남자 하나가 더 들어왔다. 코뮨 누오바의 지역 협동조합 대표였다. 랑부예 구휼원은 코뮨 누오바에 위치해 있었으므로, 스캄파 씨는 그 대표와도 안면이 있었다.

16630321464179.jpg“우리 쪽 아이들이 랑부예 구휼원 주변을 돌아다니던 수상한 남자들을 봤답니다.”

16630321464179.jpg“네?”

16630321464179.jpg“그뿐만이 아닙니다. 살인 현장 자체를 봤다고 나서는 사람은 없는데, 남자 둘이 여자들을 하나씩 둘러업고 골목길을 나가는 걸 본 사람들이 있어요. 한두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이 봤대요.”

스캄파 씨는 벌떡 일어섰다.

16630321464179.jpg“이럴 때가 아닙니다! 잡으러 갑시다!”

그 뒤로는 일사천리였다. 코뮨 누오바에서 어린애들이 본 부랑자들의 목격담을 모아보자 인상착의가 확실하게 나왔다. 부랑자들은 멀리 가지도 않았다. 그들은 하필이면 바로 근처의 선술집에서 일의 성공을 자축하며 거나하게 한잔하고 있던 차였다. 반쯤은 집도 절도 없는 여자이니 뒷일은 걱정할 필요 없다는 고용주의 말을 지나치게 철석같이 믿은 탓이었고, 나머지 반쯤은 알코올 중독 탓에 뒷일 따위 생각하지 않는 생활양식을 영위하던 관계로 일어난 일이었다.

16630321464179.jpg“이놈들!”

16630321464179.jpg“잡았다!”

16630321464179.jpg“히익!!!”

부랑자들이 파올라 스캄파와 성명 불상의 빨간 머리 여자를 살해한 범인이라는 점은 확실했다. 그들이 톱밥에 묻어놓은 머리 두 개를 상자 안에 잘 넣어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16630321464179.jpg“도대체 왜 사람을 살해하고 목을 잘라간 거야!”

16630321464179.jpg“의뢰……. 의뢰를 받고…….”

16630321464179.jpg“누구의 의뢰!”

16630321464179.jpg“우리도 몰라요! 그냥 캄포 데 스페지아 8번지에 있는 생선가게에 상자를 가져다주고 ‘귀부인이 부탁한 화물을 맡깁니다’라고 말하면 잔금을 마저 줄 거라고 들었을 뿐이오!”

그래서 스캄파 씨와 두 자치구의 치안 담당 자경대원들은 캄포 데 스페지아의 생선가게에 잠복하고 상자를 찾으러 오는 사람을 기다렸다. 그리고 지금 로레타가 딱 걸린 상황이었다.

16630321464179.jpg“너 어느 집 하녀야!”

로레타는 왜인지 말을 하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필사적으로 입을 다물고 도리질만 쳤다.

16630321464179.jpg“소지품을 뒤져 봐!”

장정들이 우르르 달려들어서 로레타의 손가방을 뺏고 그 안에 있는 물건들을 뒤졌다. 손가방 안에는 플로린 은화 약간과 입술연지가 하나 들어있을 뿐이었다. 로레타의 신분을 알아내지 못해서 낭패한 사람들 중 하나가 그녀의 옷차림을 보고는 문득 소리쳤다.

16630321464179.jpg“나 저 하녀복 알아!”

16630321464179.jpg“응? 어느 집 하녀복이오?”

16630321464179.jpg“저건……. 데 마레 추기경 저택에서 입는 옷이야! 이 근처에서 야채를 구매하는 하녀가 저런 옷을 입고 있었어!”

귀족이 아니라 성직자의 식솔이라는 말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일제히 경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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