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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1화> 목숨값은 금화로 얼마? (628/733)

<제111화> 목숨값은 금화로 얼마?2021.12.26.

생선가게에 모인 평민들은 거칠게 로레타를 추궁했다.

16630321529456.jpg“당신, 데 마레 추기경 관저 하녀가 정말로 맞아?”

로레타는 겁에 질려 도리질만 쳤다. 하녀에게서 만족할만한 답을 얻지 못하자 사람들은 좀 더 확실한 방법을 취하기로 했다.

16630321529456.jpg“우리가 알아내면 되지!”

16630321529456.jpg“갑시다, 데 마레 추기경 관저로!”

스캄파 씨, 카스텔 라비코와 코뮨 누오바의 자경단원들은 로레타를 질질 끌고 우르르 데 마레 대저택으로 향했다. 로레타는 반항조차 못 하고 눈을 질끈 감은 채 끌려가는 수밖에 없었다. * * * - 쿵쿵쿵!  

16630321529456.jpg“문을 여시오!”

데 마레 대저택의 입구를 지키고 있던 경비들은 당황했다.

16630321529456.jpg“이게 무슨 일이오? 사전 약속을 하지 않은 사람은 추기경 관저에 들어갈 수 없소!”

16630321529456.jpg“지금 사람이 죽었는데 약속이 문제요?!”

난리를 치던 와중에 경비 중 하나가 로레타를 알아보았다.

16630321529456.jpg“로레타 아주머니? 왜 거기 붙잡혀 계세요? 물건이라도 훔쳤나요? 사람이 죽었다뇨!”

16630321529456.jpg“맞네, 이 집 하녀가 맞구먼!”

스캄파 씨는 더더욱 기세등등해져서 외쳤다. 뒤의 두 지역구의 자경단원들이 합세했다.

16630321529456.jpg“문을 열어!! 나는 데 마레 추기경을 만나야겠어!!!”

분노한 장정들의 목소리는 점점 커져만 갔다. * * * 추기경 관저의 경비들은 제대로 훈련된 베테랑들이었다. 그들은 분노한 자경단원들을 단호하게 막았다. 다만 추기경께 언질을 드리겠다는 약속은 안 할 도리가 없었다.

16630321529456.jpg“오늘 이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추기경 예하께 보고드리겠소.”

16630321529456.jpg“우리가 당신을 어떻게 믿고!”

16630321529456.jpg“안 믿으면 어쩔 거요! 지금은 어차피 출타 중이시라 뵐 수도 없습니다. 연락처를 두고 가시오.”

스캄파 씨와 자경단원들은 경비에게 데 마레 추기경께 반드시 알리라고 협박했다. 그들은 세 시간 정도 경비들과 실랑이를 벌인 끝에 내일 아침 일찍 돌아오겠다며 벼르며 돌아갔다. 집안은 발칵 뒤집어졌다. 추기경은 산 에르콜레 대성황당에 출근한 상태라 자택에 없었다. 이 이야기를 제일 먼저 들은 것은 아리아드네였다.

16630321532238.jpg“뭐? 사람을 죽였다며 추기경 관저에 사람들이 쳐들어왔다고?”

그녀는 깜짝 놀라 산차에게 물었다.

16630321532238.jpg“쳐들어온 사람들이 대체 누구냐?”

산차는 조심스러워하며 아리아드네에게 고했다.

16630321532248.jpg“저기, 아마 아가씨도 아시는 분일 거예요…….”

16630321532238.jpg“혹시……?”

아리아드네는 불현듯 드는 예감이 있었다. 그녀는 산차의 다음 말을 기다리며 무심코 자신의 왼쪽 손끝을 내려다보았다.

16630321532248.jpg“항의하러 오신 분은 랑부예 구휼원의 운영지원 과장이신 스캄파 씨였어요. 스캄파 씨의 외동딸이 죽었다고 합니다.”

16630321532238.jpg“역시…….”

데 마레 추기경 관저와 스캄파 씨의 외동딸 사이에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필시 아리아드네가 말레타를 랑부예 구휼원에 맡긴 탓에 일어난 일일 것이다.

16630321532238.jpg“말레타는 잘 있는지 확인해 보았니?”

16630321532248.jpg“안 그래도 스캄파 씨의 소동을 전해 듣자마자 주세페를 보내서 확인하고 왔습니다.”

산차는 인상을 찌푸린 채 파악한 내용을 고했다.

16630321532248.jpg“랑부예 구휼원 어디에도 말레타가 없답니다. 그리고…….”

산차는 한숨을 내쉬었다.

16630321532248.jpg“죽은 여자는 두 명이랍니다. 한 명은 스캄파 씨의 딸인 파올라 스캄파고, 다른 한 명은 신원 미상의 빨간 머리 여자라고…….”

아리아드네는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역시, 그녀가 말레타를 랑부예 구휼원에 밀어 넣은 것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그러나 왼쪽 약지의 끝 손마디는 평소보다는 약간 더 쑤시는 것도 같았지만 미미한 정도였다. 사람의 목숨값이 고작 이 정도일 거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었다. 그 말인즉슨, ‘황금률’은 이번 두 명의 사망에 대해서 아리아드네를 크게 탓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사망의 죄는 다른 사람의 직접적인 행동 때문에 벌어졌다는 이야기가 되었다.

16630321532238.jpg“……루크레치아가 사고를 쳤구나.”

16630321532248.jpg“그런 것 같지요?”

그녀는 이해득실을 재빨리 따져 보았다.

16630321532238.jpg“루크레치아의 손발을 다 잘라 놨는데 도대체 무슨 수로 이런 사고를 친 거지?”

16630321532248.jpg“파올로 스캄파를 죽인 자들은 거리의 부랑자들이래요. 떼로 몰려다니고, 노숙하고, 술 먹고 그런 치들…….”

16630321532238.jpg“……제대로 부릴 사람이 없으니까 아무나 사서 쓰다가 이 사달이 났구나.”

곧바로 사태를 파악한 아리아드네는 혀를 끌끌 찼다.

16630321532238.jpg“돌아가는 꼴을 지켜보자. 내 생각보다 일이 커졌어. 그렇지만 위기는 기회야. 이폴리토 오빠에게 흠집을 내려고 시작한 일인데…….”

그녀는 똑바로 앞을 바라보았다.

16630321532238.jpg“더 큰 목표물을 잡을지도 모르겠구나.”

  * * * 귀가한 데 마레 추기경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천장을 바라보았다.

16630321535031.jpg“내가 제명에 못 죽지.”

집안의 누군가가 평민을 건드렸다. 그 누군가는 평민들에게 잡혀있는 하녀가 로레타인 것을 볼 때 필시 루크레치아일 것이다. 그리고 그 평민은 하필이면 인망이 좋은 집의 딸이었다. 덕분에 지역 공동체가 단체로 몰려와서 데 마레 추기경 관저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었다.

16630321535031.jpg“이런 건 빨리 묻어버리는 게 최선이야.”

데 마레 추기경은 보고를 마친 집사 니콜로에게 물었다.

16630321535031.jpg“죽은 사람이 랑부예 구휼원 관리의 딸이라고 했지? 노모와 딸 하나 있는 집이었다고.”

16630321529456.jpg“예, 그렇습니다, 추기경 예하.”

16630321535031.jpg“당장 내 이름으로 사과문을 발표해. 같이 죽은 애가 우리 집 하녀지?”

16630321529456.jpg“맞습니다.”

16630321535031.jpg“도둑질을 하고 도망친 하녀를 징계하려다가 오인하여……. 아, 제길. 머리를 잘라오라고 그랬다지?”

16630321529456.jpg“……그렇습니다, 추기경 예하.”

데 마레 추기경은 아무 말 없이 손에 쥐고 있던 깃펜을 내던졌다. 잉크가 사방으로 흩뿌려졌고 순백색 추기경의 예복에 검은 잉크가 얼룩덜룩 묻었다. 데 마레 추기경은 아무리 화가 나도 물건을 던지거나 손찌검을 하는 법이 없는 상관이었다. 드물게 보이는 그의 분노에 집사 니콜로는 목을 자라처럼 어깨 사이에 묻었다.

16630321535031.jpg“그 여자는 도대체 어떻게 이런 기상천외한 사고를 계속 치는 거야? 누가 시켜서 하라고 해도 이렇게는 못 하겠다!”

데 마레 추기경은 분을 이기지 못한 나머지 뒷머리를 의자에 쿵쿵 박았다.

16630321535031.jpg“뇌 구조가 어떻게 생겨 먹어야 하녀를 죽이는 거로도 모자라서 그 머리를 잘라오라고 시킬 수가 있어?!”

니콜로는 머리만 조아릴 뿐이었다.

16630321535031.jpg“아니, 그게 남들 눈에 어떻게 보일지 감이 없어? 미친 연쇄살인마 같지 않나! 생각을 안 해?”

그는 주먹을 흔들며 화를 냈다.

16630321535031.jpg“누가 착하게 살래? 산 카를로에 신실함과 자애로움으로 모범을 보이래? 그저 눈에 안 띄게, 사고 안 치고 조용히 가만히 있는 게 그렇게 어려워?!”

데 마레 추기경이 당장 루크레치아에게 쳐들어 갈 기세로 화를 내자 집사 니콜로는 추기경을 달랬다.

16630321529456.jpg“예하. 심정은 백번 이해하오나 일단 상황 수습이 먼저입니다.”

16630321535031.jpg“아오!”

그는 책상을 쿵 주먹으로 쳤다. 가느다란 손가락뼈가 마호가니 책상에 부딪혀 몹시 아팠다. 그는 찡그린 채 손등을 부여잡았다. 데 마레 추기경은 심호흡을 하고는 니콜로에게 청산유수로 지시를 내렸다.

16630321535031.jpg“이렇게 가지. 하녀가 도둑질을 하고 도망쳐서 다시 잡아 오라고 사람을 풀었다. 엄한 처자를 데려오면 안 되고, 우리 하녀를 제대로 잡아 와야 하니 얼굴 확인을 시켜달라고 했다. 다만 의사전달이 잘못되어 죽여서 목을 잘라오게 되는 대참사가 일어났다.”

그는 손가락으로 마호가니 책상을 톡톡 치며 뒷말을 이었다.

16630321535031.jpg“다만 이것은 어떻게 보더라도 데 마레 추기경 관저의 전적인 잘못이다. 데 마레 추기경 관저는 사람 관리를 잘못한 점에 대하여 가장 정중한 사과를 드리며, 억울한 유가족의 심정을 위로드린다.”

그는 머릿속으로 금액을 어림짐작해 보더니 집사 니콜로에게 물었다.

16630321535031.jpg“니콜로. 200 두카토(약 2억 원)를 지급하는 거, 어떻게 생각하나.”

집사는 고개를 갸웃했다.

16630321529456.jpg“될 것 같습니다. 큰돈이니, 받아들이지 않을까요?”

16630321535031.jpg“아냐, 아냐. 지역협동조합이 붙었다고 했지?”

16630321529456.jpg“그렇습니다. 카스텔 라비코와 코뮨 누오바가 유가족의 뒷배를 봐주고 있습니다.”

16630321535031.jpg“그놈들이 맨입으로 떨어져 나갈 놈들이 아니지. 아마 유가족이 지역협동조합에 성의 표시를 해야 할 거야. 위로금 액수를 300 두카토(약 3억 원)으로 올리세. 인심은 쓸 때 크게 써야 뒤에 말이 안 나와.”

16630321529456.jpg“그럼 말씀하신 대로 전달하겠습니다, 추기경 예하.”

16630321535031.jpg“그래. ‘유족께 깊은 애도의 마음을 표하며, 유가족께 100, 지역협동조합에는 각 100씩, 총 300 두카토를 출원한다.’ 자네가 직접 다 처리하도록 해. 다른 놈들은 믿을 수가 없어.”

데 마레 추기경은 의자에 기대 천장을 바라보았다. 루크레치아를 징벌하고, 화를 내고, 지금은 이런 일들마저 힘겨웠다. 다 잊고 자고 싶었다. * * *

16630321529456.jpg“300 두카토요?!”

코뮨 누오바 지역협동조합의 장은 반색을 했다.

16630321529456.jpg“이건, 받아야지요. 이렇게 너그러운 위로금을 주는 귀족이라니 듣도 보도 못했습니다. 역시 성직자, 역시 추기경 예하십니다!”

코뮨 누오바는 낙후된 저소득층 밀집 지역이었다. 자연히 지역에 필요한 돈은 많았지만 지역 주민이 협동조합에 출원할 수 있는 돈은 극히 적었다. 코뮨 누오바는 지역협동조합에서 일하는 사람의 월급조차도 밀릴 때가 있었다. 월급을 못 주면 대표가 욕을 먹는다. 항상 재정난에 시달리던 코뮨 누오바의 대표는 옳다구나 하고 위로금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죽은 사람은 어차피 옆 지역구 사람 아닌가. 카스텔 라비코의 지역협동조합의 장은 양측의 눈치만 보았다. 그는 중립이었지만, 코뮨 누오바가 빠진다면 카스텔 라비코 단독으로 추기경 관저에 압력을 넣게 된다. 그런 모양새는 부담스러웠다.

16630321529456.jpg“하지만 내 딸이 죽었소! 돈으로 사람 목숨을 사요?”

스캄파 씨는 울분이 터져서 코뮨 누오바의 대표에게 소리를 질렀다.

16630321529456.jpg“조문도 안 왔고 장례 절차에 대한 말도 없어요. 돈으로 막겠다는 소리뿐이 더 됩니까 이게!”

하지만 코뮨 누오바의 대표는 태연하게 반론했다.

16630321529456.jpg“성의는 황금으로 보이는 거요. 난 이만큼 큰 성의를 보이는 귀족은 듣도 보도 못했어.”

그는 물었다.

16630321529456.jpg“재작년에, 캄파 후작이 카람판의 코르티잔한테 줬던 위로금 생각나오?”

50 두카토(약 5000만 원). 어린 코르티잔에게 주기에는 지나치게 후한 액수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카람판의 포주가 반색하며 받은 돈이기도 했다. 하지만 스캄파는 분노했다.

16630321529456.jpg“내 딸은 몸 파는 아이가 아니오!”

16630321529456.jpg“또래 여자아이이기도 하지. 아니, 파올라의 나이가 더 많았으니 사실 상품 가치는 더 떨어지는 거 아니오.”

코뮨 누오바의 대표는 차가웠다.

16630321529456.jpg“이건 전례 없이 너그러운 제안이야. 안 받으면, 스캄파, 당신은 천치 머저리요.”

카스텔 라비코의 대표도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권했다.

16630321529456.jpg“스캄파 씨, 이게 사실 몹시 후한 제안이라는 건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겁니다. 유가족의 심정은 알겠어요. 천금을 줘도 합의하고 싶지 않겠지요. 하지만 세상일이 다 마음대로 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몹시 유리한 제안이라는 건 알고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스캄파 씨는 몹시 흥분해 있었다. 카스텔 라비코의 대표가 코뮨 누오바의 대표를 설득해서 오늘의 모임은 이대로 파하기로 했다.

16630321529456.jpg“스캄파 씨, 오늘 저녁에 생각 잘 해 보세요. 내일 다시 이야기합시다.”

스캄파 씨의 깔끔하지만 검소한 거실에서 지역 대표 두 명이 일어서서 떠났다. 스캄파 씨는 손님들이 나간 거실에서 넋이 나가 소파에 널브러졌다.

16630321529456.jpg“파올라…….”

그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다. 그저 죽은 딸이 돌아오기만을 바랐다. 그의 노모가 와서 스캄파 씨의 옆구리를 찔렀다.

16630321529456.jpg“그만 정신 차려라.”

16630321529456.jpg“어머니?”

16630321529456.jpg“높으신 분들이 좋은 제안이라지 않니! 언제까지 계집애 하나에 목을 멜 테야?”

스캄파 씨의 어머니는 딸 일곱을 줄줄이 낳은 다음에 막내아들을 낳은 것을 인생의 가장 큰 업적으로 여기는 분이었다. 손녀딸 하나만 낳고 죽은 며느리를 못마땅해했고, 며느리가 죽은 후에 손녀딸을 키우며 재가하지 않는 아들을 더더욱 못마땅해하는 양반이기도 했다.

16630321529456.jpg“주신다고 할 때 받아.”

16630321529456.jpg“어머니!”

16630321529456.jpg“아무 재주 없는 계집애다. 걔 일당이 하루에 2 플로린(약 2만 원)이었어! 300 두카토 이상의 금액이 언감생심 가당키나 하니?”

현관문에서 기척이 울렸다.

16630321532238.jpg“잠시 실례 좀 하겠습니다.”

스캄파 씨와 그의 노모는 동시에 현관을 쳐다보았다. 젊은, 아니 어린 여자의 목소리가 현관을 울렸다.

16630321532238.jpg“300 두카토보다 더 높은 금액도 당연히 가능하지요.”

두꺼운 로브를 뒤집어쓴 검은 머리칼의 소녀가 거실 안으로 발을 디뎠다.

16630321550059.jpg

  그녀는 스캄파 씨가 널브러져 있는 소파 앞으로 다가와 머리를 숙여 보았다.

16630321532238.jpg“하지만 목숨은 목숨값으로 받아야지, 돈으로 받으면 안 됩니다.”

녹색 눈을 반짝이는 아리아드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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