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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4화> 루크레치아의 최후 (1) (631/733)

<제114화> 루크레치아의 최후 (1)2022.01.05.

북쪽 지하실은 말이 좋아 지하실이지 지하 감옥이나 마찬가지였다. 지하층은 쇠창살이 완비된 것은 물론이었고, 사람을 괴롭힐 각종 고문 도구들이 가득했다. 이곳은 자노비가 사지의 힘줄이 끊겼던 장소이기도 했다. 루크레치아는 스며드는 한기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바깥 사정이 안 좋게 돌아가는 것이 틀림없었다. 루크레치아는 남편이 바깥에서 난 난리에 대해 그녀에게 한 마디도 묻지 않았을 때 분명히 불안감을 느꼈다. 하지만 괜히 조용한 아궁이를 들쑤실까 봐 무서워서 가만히 있었는데, 그때 달려가서 뭐라도 했어야 했다.

16630321726859.jpg‘괜찮아, 괜찮을 거야.’

루크레치아에게는 자랑스러운 아들과 똘똘한 딸이 있었다. 장성한 자식들이 엄마를 돌봐줄 것이다. 루크레치아는 평생 신경 쓰지 않고 살았던, 묵주에 달린 십자가를 손가락으로 매만지며 속으로 조용히 기도를 올렸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기도뿐이 없었다.

16630321726859.jpg‘천신께서 아이들의 힘이 되어 주시길, 나를 이 끔찍한 감옥에서 얼른 꺼내 주시길.’

  * * * 루크레치아의 희망과 달리 그녀의 장성한 자식들은 아무도 엄마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도리어 그녀의 구명 노력을 조금이라도 한 것은 입으로는 그녀를 완전히 버린 것 같았던 남편뿐이었다. 데 마레 추기경은 쩔쩔매며 상대방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16630321726874.jpg“스캄파 씨. 어떻게 유배로는 안 되겠습니까. 아이들 엄마기도 하고……. 애들 엄마가 막내를 잃은 지 얼마 안 되었기도 하고…….”

그러나 데 마레 추기경의 노력은 차갑게 거절당했다.

16630321726878.jpg“막내를 잃은 지 얼마 안 되셨으면 남의 딸 귀한지도 아셨을 것 아닙니까!”

스캄파 씨는 목에 핏대를 세우고 호통을 쳤다. 살아생전 추기경 예하같이 높으신 분과 겸상할 일이 있을까 했는데, 세상에, 화가 나니 소리도 칠 수 있었다.

16630321726878.jpg“내 딸은요! 어미 한번 못 되어보고 사그라진 내 불쌍한 딸은요! 시체마저 온전하게 남지 못한 불쌍한 내 아가……. 나는 그 여자의 수급을 내 눈으로 확인하기 전에는 이 자리를 못 떠납니다!”

데 마레 추기경은 본전조차 찾지 못하고 물러나야 했다. 자식을 잃은 유가족의 요구는 어떻게 보면 합당했고 어떻게 보면 지나치게 감정적이었다. 스캄파 씨와 두 지역협동조합이 내세운 것 중에는 ‘진실한 사과를 하시오’ 같은 당연한 요구도 있었지만 ‘당장 루크레치아의 목을 매달고 그 수급을 잘라 산 카를로 시내를 한 바퀴 돌려라’ 같은, 데 마레 추기경으로서는 도무지 들어줄 수 없는 요구도 섞여 있었다. 그 와중에는 ‘저 분노에 뇌가 절여진 유가족을 말려줄 테니 지역협동조합에 1000 두카토만 기부하시라’는 코뮨 누오바 지역 대표의 꼬드김도 알뜰하게 끼어 있었다. 여차여차해서 합의에 다다른 것은 자정이 조금 넘은, 심야에 이르러서였다.

16630321726874.jpg“손님들 가시는 길 봐 드려라.”

피곤에 전 추기경이 집사 니콜로에게 손짓했다. 땀과 승리감, 약간의 분노에 취한 상대방 일행도 추기경의 서재에서 나와 현관으로 향했다. 집사 니콜로를 손님 배웅을 위해 보낸 그는 하녀장 대행인 산차에게 일렀다.

16630321726874.jpg“넌 독약을 준비해 놔라.”

그는 기운이 빠진 말투로 이야기했다.

16630321726874.jpg“마시면 즉사하는 종류로. 내일 아침 첫닭이 울면 루크레치아에게 보낼 거다.”

산차는 고개를 깊숙이 숙이며 추기경에게 다소곳이 답했다.

16630321726903.jpg“그리 처리하겠습니다, 예하.”

그리고 데 마레 추기경이 시야에서 사라지자마자 날 듯이 달려 아리아드네 아가씨에게 고했다. 산차는 아리아드네의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 이미 침대에 든 아가씨의 귓가에 대고, 속삭임치고는 다소 큰 소리로 외쳤다. 흥분을 숨기지 못한 목소리였다.

16630321726903.jpg“아가씨! 추기경 예하께서 독약을 준비해 놓으래요! 내일 아침 일찍 루크레치아 마님께 하사하실 거랍니다!”

1663032173114.jpg“!”

늦은 밤임에도 불구하고 아리아드네의 녹색 눈에 생기가 번쩍였다. 그녀는 비단 이불을 차고 일어나 침대 위에 똑바로 앉았다. 이제는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친모가 루크레치아에게 채찍으로 두들겨 맞던 모습. 어린 아리아드네를 자기 몸 뒤로 숨긴 어머니를 루크레치아가 발로 차고 아리아드네의 머리채를 잡았던 기억. 체자레에게 던져줄 딸이 없다며 그녀를 산 카를로로 데리고 올라온 이후 알뜰하게 각양각색의 방법으로 아리아드네를 괴롭히던 루크레치아.

16630321726859.jpg- “너만 없었어도 내 인생이 이거보다는 나았어! 이거보단!”

그리고 황금률이 보여준, 아라벨라의 마지막 기억. 복수의 때가 왔다.

1663032173114.jpg“독약 따위는 준비할 필요도 없지 않으냐. 그런 건 광에 널려 있을 텐데.”

16630321726903.jpg“부엌 창고에 여러 병 있지요. 다 루크레치아 마님께서 쓰시던 것들입니다.”

루크레치아 치하에서 하인 한둘이 죽어 나가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이번에는 좋은 집 자제를 건드려서 문제가 되었을 뿐이지 빈민 몇 명은 없어져도 사라져도 아무도 찾지 않았다. 후환 따위는 원래 없었다. 루크레치아는 아예 독약을 그때그때 새로 사느니 사다 쟁여놓고 한 병씩 꺼내 쓰는 편을 택했다.

1663032173114.jpg“지금 당장 꺼내 오렴. 내가 직접 가지고 내려가겠다.”

16630321726903.jpg“예? 아가씨께서요?”

1663032173114.jpg“그래. 아무도 지하에 못 오게 해.”

산차는 부엌 광에서 벨라돈나 달인 즙 한 병을 꺼내왔다. 두꺼운 반투명 유리병 안에서 보랏빛 액체가 요요한 빛을 반사했다. 아리아드네는 코르크 마개로 잠긴 유리병을 은쟁반 위에 손수 얹어 북쪽 지하실로 향했다. * * * 루크레치아는 잠도 안 올 정도로 추운 북쪽 지하실에서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16630321726859.jpg‘우리 애들이 날 내버려 둘 리가 없어.’

16630321726859.jpg‘아니, 근데 왜 아무도 안 찾으러 오지.’

16630321726859.jpg‘애들이 무슨 힘이 있겠어. 그이가 못 가게 막는 거지.’

혼자서 오르락내리락하는 감정의 기복은 사람을 미치게 했다. 그때였다. - 끼익. 복도 쪽에 있는 떡갈나무 문이 열리는 소리가 울렸다. 사람이 들어온 것이다.

16630321726859.jpg“이폴리토?!”

루크레치아는 구석에 쭈그려 앉아 있다가 벌떡 일어섰다. 그러나 들어온 사람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16630321726859.jpg“이사벨라?”

이폴리토는 쿵쿵대며 걷는다. 들어온 사람은 거의 기척을 내지 않고 조용히 들어왔다. 이사벨라 같지는 않았지만, 이폴리토보다는 이사벨라가 그래도 더 조용히 걷는다. 하지만 그래서 불러 본 딸의 이름에도 들어온 사람은 아무 말이 없었다.

16630321726859.jpg“여……보?”

루크레치아는 조심스레, 가장 오지 않을 것으로 추측되는 사람의 이름을 불러 보았다. - 달칵. 열쇠로 루크레치아가 갇혀 있는 방의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인영은 안으로 들어섰다. 그녀는 침착하게 방문을 다시 잠그고 루크레치아를 향해 돌아섰다.

1663032173114.jpg“찾으시던 사람이 아니라서 죄송하군요.”

16630321726859.jpg“너!”

루크레치아는 들어온 사람의 모습에 대경실색했다. 아리아드네였다. 그녀는 마치 대귀족의 안주인, 아니 무슨 군주의 일원인 양 차려입고 있었다. 점잖게 재단한 값비싼 공단, 땋아 올린 머리카락, 귀에 매단 커다란 진주 귀걸이. 인위적으로 꾸민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행동거지 하나하나에서 부티가 배어 나오는 자태였다. 그녀의 길고 가느다란 손에는 안주인의 황금 인장이 끼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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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크레치아는 안주인의 황금 인장을 보자마자 이성을 잃고 비명을 질렀다.

16630321726859.jpg“너! 이 썩을 것! 망할 것! 왜 네가 내려와! 우리 이폴리토는, 이사벨라는 어디 있어?”

1663032173114.jpg“기세등등하시네요.”

아리아드네는 들고 온 은쟁반을 검은 탁자에 내려놓았다. 달그락, 소리가 지하실을 울렸다. 예의는 여기까지였다. 힘과 힘, 눈물과 눈물, 피와 피가 맞부딪힐 시간이었다.

1663032173114.jpg“아버지는 어머니를 버렸어요.”

16630321726859.jpg“뭐라고?!”

1663032173114.jpg“오늘 파올라 스캄파의 유가족과 지역협동조합 대표들이 저택에 다녀갔어요. 지금 막 떠났네요. 아버지는 위로금 300 두카토를 아끼는 대신에 어머니의 시체를 내주기로 했어요.”

사실 위로금 300 두카토의 지급은 그대로이고, 그저 루크레치아의 목만 얹어 주기로 했다. 약간의 사실 왜곡이 들어간 것은 아리아드네의 분풀이였다.

16630321726859.jpg“그럴……. 그럴 리가 없어!”

1663032173114.jpg“데 로시들에게 보내는 황금이 지긋지긋하셨나 보죠. 못 믿으시겠으면 한 모금 해 보시던가요.”

아리아드네는 목조 탁자 위의 유리병을 가리켰다.

1663032173114.jpg“익숙하시죠?”

유리병 안의 자주색 액체가 빛나는 것을 보며 루크레치아는 숨을 들이쉬었다. 못 알아볼 수가 없었다.

1663032173114.jpg“벨라돈나 추출액이에요. 효과가 그렇게나 좋답니다. 물론 어머니께서 제일 잘 아시겠지만.”

아리아드네는 싱긋 웃었다. 루크레치아는 너무 놀라서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그녀는 쌕쌕대며 부르짖었다.

16630321726859.jpg“이폴리토는, 내 아들은!”

1663032173114.jpg“어머니의 금쪽같은 아들은 어머니를 팔아넘겼어요. 어머니를 내치자는 아이디어를 가장 먼저 낸 건 아버지이시긴 했는데, 듣자 하니 오라버니를 설득하시는 데에 15분도 안 걸렸다고 하더군요.”

루크레치아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16630321726859.jpg“그럴, 그럴 리가 없어!”

1663032173114.jpg“애지중지하시는 따님에 대한 소식도 알려드릴게요. 이사벨라 언니는 바보 흉내 참 잘 내더군요.”

씨근덕거리는 루크레치아를 앞에 두고 아리아드네는 친절하게 바깥소식을 전달해 주었다.

1663032173114.jpg“이폴리토 오빠가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이기로 결정하셨다’고 이사벨라 언니에게 알렸어요. 그래도 딸이 아들보다는 낫데요? 이사벨라 언니는 한 번 말려주기는 했어요.”

루크레치아의 표정에 약간의 안도가 떠올랐다. 그 뒤에 나올 말을 이렇게 예상하고 있는 듯했다. ‘그렇지만 이사벨라 언니가 무슨 발언권이 있겠어요. 모두 아버지의 뜻대로 흘러갔답니다.’ 하지만 아리아드네의 이야기는 루크레치아의 기대를 무참히 부쉈다.

1663032173114.jpg“그랬더니 이폴리토 오빠가 반문하더군요. ‘너, 살인자의 딸이 돼서 시집갈 자신 있어?’”

루크레치아의 얼굴이 파리해졌다. 루크레치아는 자기 자식들의 성격을 제일 잘 알았다. 그 뒤에 나올 이야기가 짐작이 가는 모양이었다.

1663032173114.jpg“이사벨라 언니는 그 뒤로 입 싹 다물고 아무 말도 안 하셨어요!”

루크레치아는 그만 지하실 돌바닥에 주저앉았다.

16630321726859.jpg“아니야……. 다 거짓말이야…….”

1663032173114.jpg“어머니, 어머니, 우리 어머니. 그토록 헌신적으로 자식들을 키웠는데 이를 어쩌나?”

루크레치아는 숫제 바닥에 엎드려서 오열하고 있었다. 어미는 자식을 알았다. 아리아드네가 코앞에서 저 잘난 입으로 종알대는 이야기들은 다 그녀의 자식들이 할만한 짓이 맞았다. 하지만 인정할 수가 없었다. 인정하기 싫었다. 인정한다면 이제껏 살아온 그녀의 인생이 통째로 쓰레기가 되고 만다.

1663032173114.jpg“어머니는 이번 일을 다 오빠 때문에 벌이신 거죠?”

아리아드네는 생긋 웃었다. 어딘가 일그러진 미소였다.

1663032173114.jpg“죽기 직전에 말레타가 그러더군요. 이폴리토 오빠는 아버지가 다르다고!”

루크레치아는 대경실색해서 고개를 번쩍 들고 아리아드네를 쳐다보았다.

16630321726859.jpg“무슨 끔찍한 헛소리야!”

1663032173114.jpg“그동안 수소문을 좀 해봤어. 당신, 배가 좀 부른 상태에서 데 마레 추기경에게 왔더군?”

아리아드네는 말레타에게서 위 이야기를 들은 이후로부터 타란토에서부터 올라온 옛 하인들 위주로 탐문을 했다. 내밀한 사연까지 들을 수는 없었지만 루크레치아 마님이 처음으로 데 마레 추기경과 함께 살러 들어왔을 때의 상황은 일부 건너 들을 수 있었다.

1663032173114.jpg“이폴리토 오빠는 칠삭둥이라며? 젊어서 낳은 첫 아이가 칠삭둥이?”

아리아드네는 코웃음을 치며 크게 웃었다.

1663032173114.jpg“초산으로 일곱 달 만에 낳은 애가 이폴리토 오빠처럼 건강할 확률이 더 높을까, 아니면 십 대 산모가 임신 시점을 두 달 거짓말했을 확률이 높을까?”

16630321726859.jpg“아니야!”

루크레치아는 있는 힘껏 비명을 질렀다.

16630321726859.jpg“네가 하는 말, 죄다 ‘이랬을 것이다’ 하는 추측뿐이잖아. 증거가 어디 있어! 증거가 없잖아!”

1663032173114.jpg“말레타가 그 증거지! 당신이 죽여 없앴고!”

16630321726859.jpg“걔도 다 어디서 주워들은 말에 불과해! 그게 어떻게 증거가 돼!”

루크레치아의 째지는 비명을 무시하고, 아리아드네는 성큼성큼 루크레치아에게 다가가 그녀의 어깨를 붙들었다.

1663032173114.jpg“무의미한 저항은 집어치워. 당신의 아들은 당신을 버렸어. 이대로 혼자 죽을 거야? 지옥까지 같이 들어가야 할 거 아니야!”

아리아드네는 루크레치아의 어깨를 마구 흔들었다.

1663032173114.jpg“도대체 왜! 아라벨라한테는 그따위로 군 거야! 내가 언제 나한테 잘해 달랬어?! 당신은 왜 친자식한테도 그런 끔찍한 부모였던 거야!”

16630321726859.jpg“……걔가, 내 인생을 망쳤어.”

1663032173114.jpg“뭐라고?”

16630321726859.jpg“나는 산 카를로를 떠날 수 있었어. 이폴리토 아빠와 같이 산 카를로를 떠날 수 있었다고. 아라벨라가 생겨서……. 아라벨라가 다 망쳤어! 그 년만 없었어도!”

  - 철썩! 아리아드네가 루크레치아의 따귀를 갈겼다.

1663032173114.jpg“네가 그러고도 엄마야?”

16630321726859.jpg“넌 아무것도 몰라, 어린 년아!”

루크레치아가 바닥에 쓰러져 눈물이 뒤범벅이 된 채 악을 썼다.

16630321726859.jpg“여자가 애를 낳으면, 아 나는 이제 엄마로구나. 여자로서의 인생은 끝이 났구나. 이렇게 순순히 포기가 되는 줄 알아?!”

루크레치아는 돌바닥에 널브러진 채 포효하듯 울부짖었다.

16630321726859.jpg“나는 그냥 내게 주어진 삶에서 그때그때 제일 필요한 선택을 했을 뿐이야. 근데 그게 내 목줄을 죄어와!”

루크레치아는 눈물로 엉망으로 젖어서 사람의 몰골이 아니었다. 단어들은 뭉그러졌고 거의 알아들을 수 없었다. 이제 루크레치아는 숫제 흐느끼며 단어들을 반쯤 먹어들어갔다.

16630321726859.jpg“이폴리토를, 친정 식구들을 먹여 살려야 하니까 시몬과 살았어. 시몬과 살다 보니 애가 더 생겼어. 그런데 그랬기 때문에 내 사랑과 떠날 수 없대! 왜! 도대체 왜!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아리아드네는 차가운 눈으로 루크레치아를 내려다보았다.

1663032173114.jpg“보통, 사람들은 그래서 죄를 안 짓고 살아. 누가 부른 배로 다른 새의 둥지에 기어들어 가서 뻐꾸기 노릇 하래? 당신이 혼자서 이폴리토를 키웠으면 당당하게 이폴리토의 아버지를 따라갈 수 있었겠지!”

루크레치아는 눈물에 젖은 얼굴을 들어 아리아드네를 노려보았다.

16630321726859.jpg“너 잘났다! 인생이 그렇게 정론대로 풀리는 줄 알아?!”

1663032173114.jpg“당신 아들을 위하겠다고 다른 사람을, 남의 집 귀한 딸을 죽이지 않았으면 오늘 지하 감옥에 갇혀서 독주를 받을 일도 없었어!”

16630321726859.jpg“남의 집 귀한 딸? 내 귀하디귀한 아들을 위해서 허드렛일 하녀 하나, 평민 하나 죽이는 게 뭐가 대수야? 운이 나빴을 뿐이지 원래 평민 한둘로는 문제도 안 돼!”

1663032173114.jpg“당신이 이따위로 사니까 인생이 이따위로 끝나지!”

루크레치아는 이를 빠드득 갈았다.

16630321726859.jpg“꼭 너 같은 딸년 낳아서 똑같은 소리 들어라!”

그녀는 아리아드네에게 소리를 질렀다.

16630321726859.jpg“어린 것이 기만 살아서는, 인생이 네 맘대로 흘러가는 줄 알아? 살다 보면 더러운 짓도 해야 하고 그냥 인생 따라 흘러가는 거야!”

루크레치아의 현재 나이와 아리아드네가 죽었을 때의 나이는 고작 열 살 남짓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1663032173114.jpg“난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이 보고 많이 겪었어, 루크레치아.”

아리아드네는 발악하는 계모를 혐오를 담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1663032173114.jpg“더러운 짓 많이 했지. 인정해. 과오도 많았어. 인정해. 그렇지만 당신처럼 막살진 않았어.”

루크레치아는 가까이 다가오는 아리아드네를 두려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아리아드네는 나지막이 속삭였다.

1663032173114.jpg“당신 아들은 당신을 버렸어. 배은망덕하게. 자기 살길 찾아서. 그렇게나 본인을 끼고돈 엄마를 말이야. 죽는 김에 복수라도 하고 가.”

아리아드네는 루크레치아에게 물었다.

1663032173114.jpg“이폴리토의 아비는 누구지?”

루크레치아가 천천히 입을 오므렸다가, 입술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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