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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5화> 발데사르 가의 소후작 (642/733)

<제125화> 발데사르 가의 소후작2022.02.13.

프랑수아는 태어나서 초면에 남의 월급부터 물어보는 여자를 만나본 적이 없었다.

16630322378964.jpg“에트루스칸에서는 처자들이 지나가는 남자 월급부터 물어봅니까?”

그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밝은 갈색 머리카락의 여자를 쳐다보았다. 여자는 쏟아지는 봄 햇빛 아래에서 당근색 눈동자를 빛내며 당돌하게 말했다.

16630322378971.jpg“월급이 얼마냐고요. 그거 두 배, 내가 줄게요.”

프랑수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는 간신히 평정을 찾았다. 지금 돈이 필요한 것은 맞았지만 그의 새 직업은 정말로 적은 금액만을 벌었다. 티끌 모아 티끌이었다. 그 월급이 두 배가 된다고 해도 그가 필요한 금액에는 터무니없이 모자랐다.

16630322378964.jpg“됐습니다. 가던 길 마저 가시죠.”

그는 몸을 돌려 떠나려고 했다.

16630322378971.jpg“잠깐만요!”

여자는 굳이 그를 불러세웠다.

16630322378971.jpg“프랑수아. 레오나티 자작가의 일 도메스티코. 갈리코 왕국 출신. 충분히 더 큰 집에서 일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작가에서 근무 중. 당신, 엄청 수상한 거 알아요?”

16630322378964.jpg“제 이름은 어떻게 아셨습니까? 뒷조사라도 하셨나요?”

프랑수아는 인상을 쓰며 줄리아를 노려보았다. 공격성이라기보단 긴장감의 발로였다. 그는 지금 타인의 눈에 띄면 안 된다.

16630322378971.jpg“뒷조사라뇨. 당신 고용주가 나한테 말해 줬어요.”

16630322378964.jpg“원하는 게 대체 뭡니까.”

줄리아는 눈알을 굴렸다. 내가 원하는 게 뭐지?

16630322378971.jpg“당신.”

16630322378964.jpg“예?”

프랑수아는 진심으로 당황해서 반문했다. 줄리아는 단어를 입 밖으로 내뱉은 다음에야 그게 어떻게 들렸을지를 뒤늦게 깨달았다. 그녀는 얼굴이 빨개져서 횡설수설했다.

16630322378971.jpg“그게, 당신이 갖고 싶다는 게 아니고, 그러니까, 당신을 고용하고 싶다는 거죠! 우리 집에 와서 일 도메스티코로 일해 주세요!”

16630322378964.jpg“당신 집이 대체 어딘데요?”

줄리아는 프랑수아가 정말로 자신이 누군지 까맣게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뭔가 진 느낌이었지만 괜찮았다. 오늘 이 남자를 잘 꾀어서 우리 집으로 데려가면 다음 승부를 겨룰 타이밍이 생긴다. 다음 판에서 이기면 된다. 줄리아는 자신 있었다.

16630322378971.jpg“줄리아 데 발데사르, 발데사르 후작가의 여식입니다.”

그녀는 우아하게 무릎을 굽혀 예를 취해 보였다. 프랑수아는 후작 영애가 자신에게 취하는 예에 당황해 마주 예를 취했다. 급한 와중에도 각이 딱딱 맞는 것이 예사로운 품새는 아니었다.

16630322378971.jpg“레오나티 자작가 대신 발데사르 후작가에서 일해볼 생각이 없나요?”

16630322378964.jpg“너무 급작스러워서…….”

16630322378971.jpg“급료는 두 배, 독방 사용 가능, 일 년에 일주일 연차휴가.”

독방 사용 가능이라는 말에 프랑수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는 8명이 한 방에 끼여 자는 새로운 생활에 정말이지 적응을 힘들어하고 있었다. 프랑수아의 고민하는 기색을 알아챈 줄리아는 쐐기를 박았다.

16630322378971.jpg“급료 세 배. 보너스 별도. 더 이상은 못 줘요.”

16630322378964.jpg“……진지하게 고민해 보겠습니다. 어디로 연락하면 됩니까?”

16630322378971.jpg“발데사르 후작가에서 날 찾으세요. 말해 놓을게요.”

줄리아는 호언장담하면서도 일 도메스티코에게 급료 세 배를 주자고 했을 때 어머니에게 들을 잔소리에 몸서리쳤다. 하지만 설득하고 애원하면 어머니는 져 주실 것이다. 솔직히 프랑수아의 얼굴을 어머니가 보신다면 설득이나 애원도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저만치 잘생긴 일 도메스티코는 구하기 쉬운 것이 아니었다.

16630322378971.jpg‘내가 왜 이런 짓을 했지?’

그렇지만 손끝에서부터 기운차게 생기가 돌았다. 비로소, 살아 있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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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왕궁 무도회의 날이 밝았다. 아리아드네는 저녁에 있을 무도회를 위해 이른 오전부터 준비를 시작했다.

16630322389456.jpg“아가씨! 향유 목욕 들어갑니다!”

명실상부하게 집안의 안주인이 된 아리아드네의 몸단장은 이전과는 차원이 달랐다. 시골 농장에서 수도의 대저택으로 올라온 직후와, 아세레토의 사도를 무찌르고 사교계에서 명성을 높이며 집안에서 입지를 다지게 된 이후에 아리아드네의 생활 수준은 한 번씩 수직 상승했다. 그것은 집안의 관리 권한을 얻은 뒤에 한 번 더 높아져, 지금은 누가 보아도 중앙 대륙 최고의 문화와 유행를 향유하는 산 카를로의 대귀족이라고 할 만했다.

16630322389456.jpg“머리카락에 바르실 향유는 무엇으로 할까요?”

거대한 도자기 욕조에 아리아드네를 넣어 놓은 산차가 물어보았다. 아리아드네는 고개를 갸웃했다.

16630322389466.jpg“그저 발데사르 가의 후계자를 만나러 가는 것뿐인데 향기까지 신경 써야 할 필요가 있어?”

왕궁 무도회에서는 각자의 파트너가 있다. 알폰소와 아리아드네는 서로 눈인사 이상의 것을 나누지는 못할 것이다. 모르는 남자를 위해서 향유까지 바를 생각은 들지 않았다.

16630322389456.jpg“우와, 우리 아가씨, 발데사르 가의 후계자 따위는 눈에도 안 차시는 거예요?”

산차의 경탄 섞인 놀림에 아리아드네는 얼굴을 붉혔다.

16630322389466.jpg“아니, 그게 아니고…….”

16630322389456.jpg“소후작 따위 겸상도 안 한다?”

16630322389466.jpg“아니 아니…….”

그저 애인이 있어서 다른 남자가 눈에 안 찰 뿐이다. 남자친구가 왕자이기는 했지만 신분 문제는 우연의 일치에 불과했다. 새빨개진 얼굴을 물속에 묻어버린 아리아드네를 보며 산차는 킬킬 웃었다.

16630322389456.jpg“그리고, 제아무리 그분이 눈에 차시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무도회에서는 온갖 사람들을 다 만나게 된다고요. 잠깐 스쳐 지나가면서도 향기가 남으면 사람들은 기억할걸요?”

16630322389466.jpg“너는 무도회에 백 번쯤 다녀온 사람 같아.”

아리아드네의 경탄이었지만 무도회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던 산차는 얼굴을 붉혔다.

16630322389456.jpg“그게, 상상하기에 그렇다는 거죠! 사실이 아니면 말고요!”

16630322389466.jpg“아니야, 네 말이 맞아.”

아리아드네는 고개를 끄덕이며 순순히 화이트 자스민 향유를 골랐다. 무어 제국에서 수입해 들어온 특상품이었다. 흑단 같은 검은 머리카락에 숙련된 손놀림으로 향유를 찹찹 바르는 하녀들에게 몸을 맡긴 채 아리아드네는 눈을 감았다.

16630322389456.jpg“아가씨. 드레스가 진한 파란색이니 보석은 ‘푸른 심해의 심장’으로 하시겠어요?”

16630322389466.jpg“음. 아니야. 그렇게까지 눈에 띄고 싶지는 않아. 화이트 토파즈로 엮고 사파이어 메달 여러 개가 달린 것으로 가져오려무나. 귀걸이도 그것과 같은 것으로.”

아리아드네는 콜레지오네로 거래처를 옮기면서 보석 일습도 새로 맞췄다. 마르그리트 왕비의 하사품은 어린 소녀를 위한 자잘한 보석들이었기 때문에 3캐럿 이상의 위엄 있는 보석은 거의 없어서 호화로워진 의복에 걸맞은 세트가 새로 필요했기 때문이다.

16630322389456.jpg“다홍색 드레스를 못 입게 된 것은 너무 아쉬워요.”

대미사에 입고 가려던 드레스 이야기였다. 밝은 적색 공단이 빛을 받을 때마다 붉게 빛나 마치 한 떨기의 장미 같은, 콜레지오니의 회심의 역작이었다.

16630322389466.jpg“언젠가 입을 일이 있겠지.”

아리아드네도 아쉬웠던지,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오늘은 탈상(脫喪) 후 처음 있는 외부 일정이었다. ‘봄의 축제’의 일환인 왕궁 무도회인 만큼 봄꽃 같은 색을 입고 싶었지만, 상을 치른 지 며칠이나 됐다고 수군대는 사람이 있을까 봐 일부러 음전한 스타일을 골랐다.

16630322378964.jpg“대신 아가씨 머리카락과 화장은 최고로 만져 드릴게요.”

안나가 웃으며 말했다. 아리아드네는 미소로 화답했다.

16630322389466.jpg“우리 안나 솜씨야, 언제나 산 카를로 제일이지.”

  * * * 그리고 그것은 빈말이 아니었다. 산차가 입혀준 콜레지오니 작의 짙푸른 드레스와 안나가 그려준 고혹적인 눈매는 아리아드네에게 그림처럼 잘 어울렸다. 풍성한 머리카락은 반묶음으로 화관처럼 땋아 올린 다음에 다이아몬드가 흩뿌려진 끈으로 장식했다. 머리와 화장이 푸른 드레스, 화이트 토파즈와 사파이어의 장신구 세트와 어우러지자 아리아드네는 마치 이교도들이 모시던 사냥의 여신, 아르테미스 같았다.

16630322389456.jpg“아가씨, 제가 반해버릴 것 같아요!”

아리아드네는 예전처럼 질색하는 대신에 산차를 웃음으로 맞았다. 시간은 이미 늦은 오후였다. 무도회의 파트너가 그녀를 데리러 올 시간이었다.

16630322389466.jpg“발데사르 소후작은 도착하셨느냐.”

16630322378964.jpg“예, 지금 아래층 메인 응접실에서 대기하고 계세요.”

16630322389466.jpg“언제 도착하셨어? 오래 기다리셨나?”

16630322378964.jpg“아뇨, 지금 막 오셨어요.”

손님에게 실례를 범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아리아드네는 안심하며 아래층으로 잰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녀는 줄리아의 오빠가 이상하거나 불쾌한 사람이 아니길 빌면서 아래층 응접실로 향했다. 줄리아의 성정이나 성품을 생각해보면 아주 이상한 사람이기야 하겠냐만, 줄리아가 하도 자기 오라비에 대해 악담을 해대니 혹시나 싶었다.

16630322389466.jpg‘반사교적이라고 그랬지……. 집 안에서 잘 나가지 않고 자기 방에만 틀어박혀 있다고…….’

아리아드네는 메인 응접실로 들어서며 생각했다.

16630322389466.jpg‘같이 있을 때 어색하지만 않았으면 좋겠는데.’

- 차르르. 아치형 문간에 걸려 있던 휘장을 젖히며 아리아드네가 손님에게 인사를 건넸다.

16630322389466.jpg“발데사르 소후작님, 인사드립니다.”

그녀는 고개를 숙여 예를 갖추며 말했다.

16630322389466.jpg“데 마레 가문의 차녀, 아리아드네 데 마레예요.”

16630322396501.jpg“라파엘 데 발데사르입니다. 알폰소, 아니 왕자 전하께 이야기는 전해 들었어요.”

몹시 보드라운 목소리였다. 아리아드네는 고개를 들어 앞을 보았다. 눈부시게 빛나는 은발의 젊은 귀족이 그녀에게 예를 취하고 있었다.

16630322396501.jpg“편하게, 라파엘이라고 불러 주세요.”

아리아드네는 그를 뚫어져라 쳐다보려는 자신의 시선을 황급하게 아래로 내리깔았다. 실례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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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앞의 청년은 순백으로 빚은 듯이 새하얬다. 그의 전신에서 색이 다른 것이라고는 갈색이라고 치기엔 지나치게 붉은 눈동자밖에 없었다. 그의 여동생 줄리아는 갈색 머리카락에 다갈색 눈이었다. 게다가 선이 가늘고 이목구비가 조그만, 다소 차가운 첫인상을 가졌다. 하지만 발데사르 소후작은 선이 가늘고 이목구비가 조그만 것까지는 동일했으나 여동생과는 달리 약간 처진 눈꼬리와 무표정일 때에도 웃는 상인 입매를 지녔다. 여동생과는 180도 다른 인상이었다.

16630322396501.jpg“이런, 놀라셨나요?”

그는 머리카락을 뒤로 넘겨 보였다. 포슬포슬한 얇은 머리카락이 손가락 사이에서 떨어져 내리며 반짝거렸다.

16630322396501.jpg“머리 색과 눈 색깔이 남들과 다르죠. 처음 보신 분들은 많이 놀라요.”

16630322389466.jpg“아니, 아니에요. 죄송해요.”

그는 고요히 웃었다. 아리아드네의 죄책감을 읽은 듯했다. 그는 의연하게, 하지만 살짝 변명하듯 덧붙였다.

16630322396501.jpg“햇빛을 보면 좀 따갑고 눈이 아프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 외로는 별달리 특이하진 않아요.”

그녀는 주제를 바꾸기 위해 무도회의 파트너를 칭찬하기로 했다. 그는 은발과 붉은 눈에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리는 밝은 회색의 더블렛과 적포도주색의 하의, 그리고 짙은 갈색의 부츠를 신고 있었다. 어깨에 걸친 붉은 망토가 멋스러웠다.

16630322389466.jpg“밝은 옷이 잘 어울리세요.”

16630322396501.jpg“감사합니다. 알폰소의 부탁을 받고 온 차라 신경 좀 쓰고 왔습니다.”

아리아드네는 여기에서 참지 못하고 큰 미소를 띠고 그에게 물었다.

16630322389466.jpg“알폰소와는 어떻게 아는 사이세요?”

그는 아리아드네의 기꺼움이 반가운 모양이었다.

16630322396501.jpg“본인에게서 못 들으셨나요?”

아리아드네는 사실 요즘 알폰소를 만날 때에는 대화를 나누기보다는 다른 일들을 많이 했다. 그 생각이 들자 무의식중에 얼굴을 붉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16630322389466.jpg“아뇨, 못 들었어요.”

16630322396501.jpg“이거 너무한데요.”

그는 싱긋 웃었다.

16630322396501.jpg“어려서부터 친구입니다. 전하께서 여섯 살이 되셨을 때 왕궁에서는 또래의 놀이 동무를 수소문했고, 연령대가 맞아서 들어가게 되었어요. 그 뒤에 전하께서 함께 훈련할 소년 기사들을 모을 때 자연스럽게 합류하게 되었지요.”

16630322389466.jpg“아, 완전히 소꿉친구시네요.”

16630322396501.jpg“그렇다고 볼 수 있겠지요? 다만 파도바로 공부하러 떠나게 되면서 왕자 전하와는 조금 격조하게 되었습니다.”

라파엘은 모든 내막을 다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첫 만남인 상대에게 지나치게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하는 사교적인 제스처일 수도 있었으나 잘 보이고 싶은 무의식이 자아낸 행위일 수도 있었다. 둘 중 어느 것인지는 본인조차 몰랐다.

16630322396501.jpg“아리아드네 양은, 아, 이렇게 불러도 될까요?”

16630322389466.jpg“저는 괜찮아요.”

16630322396501.jpg“알폰소가 많이 아끼시는 사람이신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알폰소에게서 편지를 받아서 ‘이게 무슨 일인가’ 했는데, 글쎄 편지 한 통 내내 아리아드네 양 이야기만 하면서 잘 챙겨달라고 신신당부를 하지 뭡니까.”

라파엘은 반사회적이고 은둔형 외톨이라는 줄리아의 묘사와는 정반대로,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잘 가렸고, 상대방에게 잘 대해주는 법을 알고 있었으며, 몹시 사교적이었다. 전혀 낯을 가리는 것 같지도 않았고 대화 주제가 마치 여자인 친구를 만난 것처럼 술술 흘렀다. 아리아드네는 이 사람이 퍽 마음에 들었다.

16630322389466.jpg“발데사르 소후작님, 오늘 하루 잘 부탁드려요.”

라파엘은 선선히 웃으며 친구의 여자에게 왼팔을 들어 에스코트를 청했고, 아리아드네는 라파엘의 에스코트를 따라 발데사르 가의 마차에 올라탔다. 마차에 올라탄 라파엘은 미소지으며 말했다.

16630322396501.jpg“숙녀분, 왕자님께서 기다리시는 왕궁으로 가실까요?”

기분 좋은 일정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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