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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이번 생엔 내가 왕비야-357화 (660/733)

<제357화> 의외의 지원군

로레단 남작부인과 그 일행에게 분기탱천해서 일침을 놓은 사람은 코르넬리아의 큰 여동생, 베델리아였다.

“왕자님께서 자기가 데 마레 백작님과 교제 중이시라고 직접 밝히셨다는데, 사귀는 게 아닐 거라는 둥 억측을 하는 건 도대체 누구의 생각인가요?”

시뇨라 베델리아는 로레단 남작부인 쪽을 쓱 째려보았다.

로레단 남작부인은 기가 막힌다는 듯 ‘어머어머’하며 부채로 얼굴을 부쳤지만 베델리아 양에게 뭐라 대꾸하지는 못했다.

시뇨라 베델리아는 거기에다 대고 속사포처럼 자기 할 말을 퍼부었다.

“뭐 데 마레 백작님이 흑마술이라도 부려서 왕자님 입에서 사귄다는 말을 강제로 뱉게 만드셨다 그런 소리는 아니시겠지요?! 왕자님께서 자기 입으로 직접 말씀하셨다니 말이에요! 흑마술을 사용했다는 발고는 아주 중대한 일인 것도 아실 거고요!”

아리아드네는 멀리서 베델리아 양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몰아가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로레단 남작부인은 숫제 ‘어머어머어머어머’를 반복하고 있었으나 뭐라고 말을 하진 못했다.

‘아니면 말고’ 식으로 가볍게 던져본 거였으니 할 말도 없었다.

여기는 베델리아 양의 홈그라운드였다. 리날디 가문에 호의적인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이 와중에 말이 지나치게 많은 로레단 남작부인을 평소 좋게 보지 않던 사람들과, 순전히 한 쪽을 구박하는 분위기를 제대로 탄 사람들이 끼어들었다.

- “왜 사귀는지 모르겠다니, 딱 보니 알겠구먼.”

- “저런 말은 보통 질투잖아요. 왜 나보다, 혹은 내 딸보다 낫지도 않은 상대가 왕자님과 사귀냐는.”

웃음소리 몇 개가 뒤따랐다. 로레단 남작부인과 그녀의 딸을 생각한 모양이었다. 누군가가 뼈 있는 힐난을 했다.

- “로레단 가에는 거울이 없나 봐요.”

너는 거울이나 보라는 무언의 힐난이었다. 다른 누군가도 웃으며 던졌다.

- “족보도 없는 게 틀림없어요.”

남작가가 분수도 모르고 백작에게 까분다는 비난이었다.

분위기가 점차 험악해지자, 이 상황을 초조하게 바라보고 있던 코르넬리아가 끼어들었다.

“데 마레 백작님, 너무 아름다우시지 않아요?”

같은 말을 해도 예쁘고 좋은 말로 하자는 무언의 제의였다.

다행히 다들 교양 있는 사람들이라 금방 만면에 미소를 띠고 코르넬리아의 의도에 동참했다.

- “그럼요! 귀티가 말도 못 해요.”

- “몸매는 어떻고!”

한 노부인이 치하했다.

- “내가 20년 전 저 몸매였으면 매일 밤 무도회에 다녔을 거예요.”

애매한 방향으로 대화가 빠질 것 같자 누군가가 재빠르게 수습했다. 이게 사교계의 힘이었다.

대충 뭉쳐 놓아도 무슨 말을 하는 게 ‘옳은’지에 대한 무언의 합의가 있기 때문에 큰 사고가 나지 않았다.

- “저렇게 기품 있게 매력적이기가 쉽지 않은데, 제가 왕자님이라도 반하겠어요.”

초대객 중에는 리날디 노백작부인의 지인들인 노부인들도 꽤 있었다.

그들은 아리아드네를 어려서 보았던 선대의 미녀들, 역사책에 나온 미인들에 빗대어 연이어 찬탄했다.

사실 할머니들이 시간 보내기 가장 좋아하는 유희 중 하나는 자기가 호의를 가진 젊고 예쁜 아가씨들을 칭찬하는 일이었다.

- “사실 이미지로는 왕자비 자리에 꼭 맞으시기는 하죠. 우아하지, 지적이지, 세련됐지.”

- “그뿐이에요? 덕망은 말할 것도 없죠. 사재를 헐어서 빈민을 구휼한 젊은이가 또 누가 있나요.”

- “똑똑하기도 하잖아요. 아세레토의 사도 사건, 이 신실한 늙은이는 아직도 잊지 못해요.”

다들 왕비 자리를 염두에 두고 아리아드네를 칭찬했다.

영리하고 덕망 있으며 빈민 구휼에 힘쓰는 것은 사실 왕자비가 아닌 왕비의 일이었다.

그래도 왕비 언급은 금물이었다.

아리아드네가 알폰소 왕자와 정식으로 교제하고 있는 지금, 그녀를 왕비 감이라고 칭하는 건 알폰소 왕자가 왕이라고 말하는 것이나 매한가지였기 때문이다.

아직 레오 3세가 정정한 이상 그건 큰 불경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생각하는 건 다 똑같았다.

- “예전에 그 언급 있었던 갈리코 왕국 여자? 대공의 직계라고는 하는데, 갈리코 인인걸 감안하고 보더라도 품위가 너무 없었어요.”

- “솔직히 공식 석상에 에트루스칸 왕국의 얼굴로 세우기 민망했어요.”

- “외국인⋯⋯. 어휴. 왕자비가 내국인이면 얼마나 좋아.”

그 뒤로는 외국인 왕족이 국내로 시집왔을 때의 임팩트와 장단점, 그리고 그에 대한 호불호를 토로하는 주제로 대화가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고 마르그리트 왕비께서는 낙후된 갈리코 왕국에서 왔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참 점잖았다는 이야기, 저 북쪽에서 에트루스칸 왕국으로 시집오셨던 레오 3세의 모후 이야기로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대충 이 상황을 수습하고 다시 아리아드네 옆으로 코르넬리아는 정말로 얼굴이 빨개져서 사과했다.

“미안해⋯⋯. 로레단 남작부인 일행을 누가 불렀는지 모르겠어. 저런 교양 없는 손님들은 초대를 안 했어야 맞는데⋯⋯.”

“괜찮아.”

아리아드네는 덤덤하게 답했다.

그러나 아리아드네의 대답에도 불구하고 코르넬리아가 여전히 불편한 기색을 지우지 못하자 한마디 덧붙였다.

“인간 본성이지. 네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어.”

아리아드네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사실, 어떻게 보면 저 정도에서 그치는 거라면 충분히 신사적이었다.

대놓고 쳐다보거나 만지려고 들지는 않았으니까 말이다.

사교계가 아닌 저잣거리에서는 아리아드네 데 마레 백작이 알폰소 왕자와 사귄다는 말이 흘러나가자마자 그 소문이 변형되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소문이 원본 그대로 옮겨지는 법은 없다지만 상상도 못 한 방향으로의 변이였다.

- “알폰소 왕자님과 데 마레 여백작님이 연애를 하신다는구먼!”

- “어떻게 만났대?”

- “왕자님께서 전쟁 중이실 때, 랑부예 구휼원의 성녀께서 하늘을 날아 예사크에 임하셨대!”

허공을 날게 된 ‘아리아드네’는 초능력도 부렸다.

- “성녀께서 축복을 내리시니 기사들이 쓰러졌다가도 벌떡 일어나 용감하게 싸웠다더라!”

이는 급기야는 성황청에서 들으면 그녀를 체포하려고 들 소문으로까지 번졌다.

- “성녀께서 어루만져주시면 만병이 낫고 앉은뱅이가 벌떡 일어서며 장님이 눈을 번쩍 뜬다!”

- “자식을 못 갖던 집안도 애가 씀풍씀풍 생기고 노인이 젊어졌다더라!”

- “죽은 사람도 벌떡 일어난다! 아? 죽은 사람이 아니라 앉은뱅이라고?”

소문이 이렇게까지 변한 채로 떠도는 줄은 생각도 못 했던 아리아드네는 라파엘이 떠나고 없는 스쿠올라 디 그레타를 살피러 시내로 나갔다.

날씨가 좋은 바람에 평소와 다르게 말을 타고 말이다.

아주 많이 잘못된 판단이었다. 사람들은 ‘랑부예 구휼원의 성녀가 오셨다―!!’라고 외치며 그녀에게 다가왔다.

삽시간에 백여 명 넘는 사람들이 개미 떼처럼 몰려들어 아리아드네는 혼자 고립될 뻔했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달려와 그녀의 손을 잡으려 들었다. 머리를 올려 묶고 나간 게 천운이었다.

머리채라도 잡혔으면 다들 머리카락을 뽑아다 성물이라도 만들 기세였다.

다행히 기겁한 주세페와 호위 인력이 몸을 날려 그녀가 완전히 갇히기 전에 그녀를 빼 왔다.

누군지 모르니 책임을 물을 수도 없었고 재발을 방지할 대책을 딱히 마련할 수도 없었다.

그저 그녀가 사람 많은 곳에 가지 않는 것이 상책이었다.

길바닥에서는 바로 며칠 전에 그런 일을 당하고, 오랜만에 방문한 친구의 집에서는 자기에게 적대적인 일행을 딱 맞닥뜨린 아리아드네는 한숨을 내쉬었다.

‘피곤해⋯⋯. 당분간 밖에 나다니지 말고 집 안에만 박혀 있을까.’

그렇지만 그녀는 이내 도리질을 쳤다. 할 일이 많았다. 당면한 과제는 카루소 대표의 부탁이었다.

그녀는 카루소 대표의 염원을 이뤄주기 위해 몇 가닥의 끈을 당겨 보았지만, 유지보수가 원활하지 않았던지 아주 예전에 마련해놨던 방책들이 다 삭아 있었다.

‘하필이면 그 집행관이 인사이동으로 다른 곳으로 가버렸을 줄이야.’

레오 3세의 집행관 중 돈에 눈이 먼 자가 있었다. 황금이라면 무엇이든지 해내는 작자였다.

아리아드네는 그 자에게 뇌물을 주고 콘타리니 백작가에 걸려 있는 압류를 실행시켜 버릴 작정이었다.

그럼 콘타리니 가문의 앞마당에서 큰 장이 서고, 그 집 안에 있는 귀중품이란 귀중품은 깨끗하게 털리고, 유서 깊은 대저택에는 새 주인이 들어갔었으리라.

한 집이 털리고 나면 나머지 집들이 따라 털릴 건 안 봐도 자명했다.

이런 건 맨 처음에 시작한 사람이 두들겨 맞기 때문에 후발주자는 부담 없이 뛰어들 수가 있었다.

헐값에 물건을 사들여 큰돈을 벌 기회가 있는데 나만 뒤로 빼면 손해다.

인간의 탐욕은 혼자서 뒤처지는 걸 참지 못한다.

그러나 해당 집행관은 상습적으로 다수에게서 뇌물을 받아온 게 꼬리가 밟혔는지 강제집행을 하는 부서에서 밀려나 한직으로 이동한 상태였다.

지금 그 자리에는 강직하기로 소문난 레오 3세의 심복이 앉아 있었다.

시간만 있다면 누구나 움직일 수 있다고 확신하는 아리아드네였지만 지금 당장은 무리였다.

‘안면을 터놨던 수사님께서도 노환으로 돌아가셨고.’

노수사는 성황청에서 종교재판소의 집행을 돕는 사람이었다.

종교재판소의 재판에 의해 압류된 재산을 돈으로 바꾸려면 레오 3세의 집행관이건 성황청 직속의 집행관이건 둘 중 아무나 일을 하면 됐다.

그러나 데 마레 추기경은 국왕의 인력은 국왕을 통해, 성황청의 인력은 자신의 명으로 일에 착수하는 것을 막아둔 상태였다.

아리아드네에게는 상부의 명으로 생각지도 않은 태업에 돌입한 노수사를 움직일 카드가 몇 장 있었다.

전생에서도 알던 사람이라 내밀한 가정사까지 모두 알았던 덕분이었다.

그러나 그는 노환으로 앓아누워 있었고, 끝내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숨이 끊어진 사체는 황금, 욕심, 가족 중 그 무엇으로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때쯤 돌아가실 거라고 대충 알고는 있었지만⋯⋯.’

제아무리 전생의 기억이 있더라도 노수사의 조력이 필요한 일이 그의 명이 다한 다음에 터지는 건 아리아드네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오늘 이 낭송회도 허탕인 것 같고⋯⋯.’

오늘도 사실 코르넬리아만을 위해 나왔다기보다는 필요한 사람과 연결될 수 있을 만한 끈을 찾으러 왔다.

그런데 딱히 그녀가 노리던 사람은 참석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허탕이네, 허탕이야⋯⋯.’

그녀는 오늘 루바 자작부인, 파퀴토 씨, 에도아르도 선생 중 누군가와 자연스럽게 안면을 트러 왔다.

셋 중 하나만 만나도 되었다. 모두 리날디 가와 약간의 친분이 있는 하급 귀족 내지는 하급 귀족 출신의 점잖은 사람들이라 이런 낭송회에서 만나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운이 없었던지 세 명 모두 오늘은 참석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리날디 가의 현관 쪽이 어수선해졌다. 손님들의 소요가 여기까지 느껴졌다.

‘내가 찾던 사람이 온 건가?’

그녀는 혹시나 해서 적어온 쪽지를 다시 읽었다. 남의 이름을 잘못 발음하는 실례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녀가 만나고자 하는 사람들은 평범한 사람들이었으므로 그 사람들이 들어온다고 좌중이 소란해질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실수를 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고개를 숙이고 이름의 스펠링을 재차 떠올리는 그녀의 앞에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다.

“좋은 시간 보내고 있었나?”

아주 익숙한, 하지만 여기서 들리면 안 되는 낮은 저음이었다. 아리아드네는 고개를 들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알폰소!”

그녀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서 어투를 바꿨다. 사교계에서 이러쿵저러쿵하는 말들이 더 퍼져나가는 것은 일색이었다.

“⋯⋯아니, 왕자님. 기체후 일향만강 하셨습니까.”

그녀는 약식 예를 취하며 그녀를 부축해 일으키는 알폰소에게 목소리를 낮추어 속삭였다.

“여기서 뭘 하는 거야?”

금발의 왕자는 싱긋 웃었다. 귓속말이 아니라 낭송회장을 가득 울리는 큰 목소리였다.

“내 여자친구를 데리러 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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