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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이번 생엔 내가 왕비야-373화 (676/733)

<제373화> 혼인서약서를 무르러 왔습니다

외드 대공은 그들의 회동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을만한 장소에서 만나기를 원했다.

그 목적을 달성하려면 서로의 숙소에서 만날 수는 없었다.

특히나 갈리코 왕국 일행은 트레베로 성 안쪽, 법황의 거처에서 머물고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결국 접선 장소로 선택된 곳은 알폰소 왕자 측에서 제의한, 트레베로 외곽으로 한참 떨어진 낡은 고성이었다.

“왜 여기로 골랐어?”

“팔라지오 델리체로 부르는 것보다 중립적으로 보이는데, 사실은 중립지가 아니어서.”

이 고성(古城)은 알폰소가 숙소—사실상 주둔지—를 고민할 때 후보로 올렸던 곳이었다.

시설이 지나치게 낡아 아리아드네를 배려하는 차원에서 후순위로 미뤘지만, 성 안팎으로 군사를 주둔시켜 둘 자리가 쏠쏠하게 많았다.

알폰소는 숫자적 열세에 몰린 채 외드 대공을 만날 생각이 절대로 없었다.

갈리코 왕국인들을 다시 대면하게 된 알폰소는 치밀했고,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외드 대공은 좀⋯⋯. 급해 보이더군.”

접선 장소를 제의하며 알폰소는 외드 대공 측에 몇 가지 무리한 요구를 했다.

그러나 대공은 별다른 저항 없이 이를 순순히 받아들였다. 일정도, 시간도, 장소도, 왕자의 선호가 전적으로 반영되었다.

대공은 정말로 알폰소 왕자를 만나고 싶은 모양이었다.

“라리에사 대공녀의 상태가 상당히 좋지 않은 것 아닐까.”

아리아드네는 추론의 물꼬를 텄다.

“건강에 문제가 있다든지 해서 도저히 다른 혼처를 찾을 방도가 없어졌고, 너와의 혼인 서약을 강제하는 것 외에는 탈출구가 없는 상태인 거야.”

외드 대공이 이렇게까지 몸이 달을 이유가 사실 없었다.

물론 과년한 딸자식 결혼식을 치러버리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이겠지만 기왕 늦은 거, 슬슬 해치워버리면 된다. 손해까지 보면서 당길 일은 아니었다.

사실 이렇게 기왕 확보해두었던 혼담에 목을 매는 경우는 추문일 때가 가장 많았다.

젊은 하인과 눈이 맞아 사고를 쳤다거나, 결혼 전에 사생아를 만들어 버렸다거나 등등.

하지만 라리에사 대공녀는 그럴 사람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일단 그녀가 알폰소 왕자에게 푹 빠진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나온 생각이 건강이었는데, 알폰소는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건강이 아주 안 좋으면 굳이 나와 결혼을 시킬 의미도 없을 텐데?”

혼인동맹은 배우자 살아생전에 국가 간의 의(義)를 돈독히 하고 그 사이에서 후계자를 생산해 우호적인 관계가 계속되게 하는 데에 의의가 있었다.

자식을 낳기 전에 사망해버릴 만큼 건강이 나쁘다면 엄청난 상승혼이어서 신부가 살아 있는 동안 제대로 호가호위할 수 있는 게 아닌 이상 시집을 보내는 게 도리어 더 손해였다.

이득은 아주 짧은데 지참금만 남편 쪽 나라에 먹히는 꼴이니 말이다.

지금 알폰소 왕자가 대륙 최고의 신랑감인 건 사실이었지만, 갈리코 왕국 역시 기세가 등등했다.

알폰소가 에트루스칸 왕국이 아닌 갈리코의 왕자였다면 훨씬 몸값이 좋았을 정도였다.

‘외드 대공이 순전히 아버지로서 딸을 위해 읍소한다?’

아리아드네는 고개를 저었다.

외드 대공이 갈리코 왕국 최강의 딸바보라고 쳐도 저건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다. 정치는 그렇게 녹록하지 않았다.

‘건강도 아니고, 추문도 아닌데 혼처로서의 상품성이 떨어질 다른 이유가 있나⋯⋯?’

나이가 차서? 지금 라리에사 대공녀는 스물세 살로, 중앙대륙 결혼 시장에 남은 군주의 딸 중에 최고령이기는 했다.

남들은 자식을 두셋쯤은 낳고도 남았을 나이다.

하지만 라리에사 대공녀는 애초에 그 신분—갈리코 왕국에 대한 상속권이 없으니 정확하게는 갈리코의 실권자인 외드 대공이 자신의 아버지라는 후광—으로 인해 혼처로서의 가치가 있는 것이지, 젊거나 예뻐서 훌륭한 혼처인 것이 아니었다.

애당초 미모가 강점이 아니었기 때문에 피부가 좀 상했다거나, 체중이 좀 불었다거나 정도로는 문제조차 되지 않을 것이다.

누구처럼 코가 부러져 내려앉았거나 하는 정도가 아니라면 말이다.

아리아드네는 생각의 흐름을 끊기 위해 고개를 저었다. 곧 알게 될 일이었다. 그리고 사실 어느 쪽이건 상관없었다.

“우리 측에서 외드 대공에게 카드로 쓸 수 있는 부분은 두 가지야.”

아리아드네는 ‘우리’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어딘가 좀 간지럽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단어는 알폰소의 마음에 쏙 들었다. 그는 빙긋이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진지한 얘기 하잖아!”

지분거리는 알폰소를 정리한 아리아드네는 사안을 간략하게 정리했다.

첫 번째로는 사제가 참관한 결혼이 아니라서 알폰소가 비록 혼인서약서에 서명했어도 이는 약혼의 효력밖에 없다는 것.

두 번째로는 그 혼인서약서가 애초에 강요로 성립했기 때문에 어쩌면 약혼의 효력조차도 없을 수 있다는 점.

아리아드네의 정리를 들은 알폰소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번째, 혼인서약서가 강요로 체결되었다는 부분을 외드 대공에게 상기시켜 주면 이 일은 생각보다 쉽게 풀릴 수도 있었다.

“혼인서약서가 강요로 성립했다는 이야기를 공개하려면 필연적으로 라리에사 대공녀가 팔레 드 몽펠리에에 불을 질렀다는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고.”

아리아드네 역시 알폰소의 생각의 맥에 동의했다.

“그건 필리프 4세에 대한 노골적인 불복종이지. 국왕의 목숨까지 위협한 거잖아.”

“맞아. 외드 대공이 감수할 수 있는 위험이 아니야.”

“다만⋯⋯. 주의해야 할 점이 있어.”

알폰소는 아리아드네에게 레오 3세가 했던 법률 검토의 결과와 함께 현재까지의 진행 상황을 알려주었다.

아리아드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 문서가 성황당에 보관되어 있을 수도 있다고? 그러면 ‘성황청 문서는 진실하다’는 추정력이 미치게 되잖아?”

‘성황청 문서의 추정력’이란 일단 성황청 금고에 들어가 있는 서류는 진실하게 성립된 것으로 본다는 교회법상의 원칙이었다.

“응. 성직자가 부재했더라도, 혹은 협박으로 서명했더라도, 그 모든 문제가 치유되고 올바른 혼인서약서로 취급받는다는 거.”

그 말인즉슨 그 혼인서약서가 멀쩡한 혼인서약서가 되어 알폰소가 혼인 상태일 수도 있단 소리였다.

아리아드네의 동공이 잠시 흔들렸지만, 그녀는 이내 침착을 찾았다.

“상관없어.”

유부남과 불륜하는 파혼녀가 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알폰소의 혼인은 성립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가 그렇게 만들 테니까.

아리아드네는 품 안에서 아주 잘 보관된 양피지 한 장을 꺼내어 테이블 위에 놓았다.

“라리에사 대공녀의 친필 쪽지 원본.”

아리아드네 데 마레의 목숨을 거두어 달라는, 라리에사 대공녀의 친필과 본명이 드러난 서명이 있었다.

“이걸 공개해 버리겠다고 하면 외드 대공 측에서는 할 수 있는 게 많이 없어.”

전적으로 맞는 말이었다.

왕자비의 위에 오르기는커녕 약혼도 확정되지 않았을 당시에 투기로 사람을 죽여달라고 청약하는 대공녀가 에트루스칸 왕국에 왔다간⋯⋯.

외국으로 시집가 그 사교계에 자리 잡는 일이 몹시 어렵다는 건 고 마르그리트 왕비만 봐도 자명했다.

하물며 라리에사야. 사교행사 참여가 전혀 불가능할 것이다. 왕자비로서의 기본적인 업무가 안 되는 것이다.

“협박이 안 통하더라도.”

알폰소는 아리아드네의 기분을 북돋워 주기 위해 짐짓 유쾌하게 말했다.

“마침 법황도 가까이 있겠다, 이혼시켜 달라고 하지 뭐.”

이혼은 법황의 특별 인가를 받아서 하는 것인데 마침 법황은 아주 가까운 곳에 계셨다. 이혼 사유도 명확했다.

혼인서약서에 따르면 그들은 결혼한 지 4년을 넘어 5주년이 다가오는 차였는데 부부가 함께 밤을 보낸 적이 없었다.

혼인서약서 종이에 서명 잉크가 그어진 이후로 같은 나라에서 거주한 적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이 사실은 객관적으로도 명약관화했다.

아리아드네가 웃으며 답했다.

“중앙대륙이 뒤집어지겠네.”

중앙대륙을 뒤흔드는 스캔들이 될 것이다. 가뜩이나 손가락질당하는 이혼인데 하다못해 사유가 무동침이라니.

게다가 미남으로 유명한 기사 왕자와 가진 건 아버지 뒷배밖에 없는 대공녀의 이혼이다.

라리에사의 꼴이 아주 우스워질 것이고, 그런 만큼 알폰소가 비난받을 것이다. 레이디한테 할 짓이 아니었다고 말이다.

하지만 알폰소는 그 어떤 욕이라도 기꺼이 먹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내가 이혼남 돼서 오더라도 받아 주기다?”

뭐가 되었건 아리아드네를 정부로 만들어 버리는 짓, 혹은 아리아드네 없는 여생을 보내는 것보다는 나았다.

반면에 아리아드네는 나쁜 생각이 자기의 뒷덜미를 타고 오르는 것을 느꼈다. 알

폰소가 차라리 이혼하고 오면 자기가 파혼녀라서 느끼는 미안함이 훨씬 덜해질 텐데.

여기까지 생각한 그녀는 자신에게 소름 끼쳐 하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알폰소는 체자레의 일로 그녀에게 단 한 번도 눈치를 준 적이 없었다. 그런데 자기 마음이 편해지겠다고 알폰소가 안 되는 것을 빌다니.

‘세상에. 내가 무슨 생각을.’

아리아드네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까맣게 모르는 알폰소는 웃으면서 마저 치댔다.

“사내구실 못 한다고 온 중앙대륙에 소문나도 어쩔 수 없어.”

아리아드네는 재차 고개를 흔들며 정신을 차렸다. 본인 스스로가 혐오스러웠지만, 알폰소에게 그런 티를 낼 수는 없었다.

그녀는 짐짓 쾌활하게 웃으며 그를 놀렸다.

“그런 사람 아니라고 내가 중앙대륙 전역에 인증해 줄게.”

알폰소는 아리아드네를 격하게 껴안았다.

“오. 그건 내가 싫어.”

그의 향기가 훅 끼쳐왔다. 깨끗한 발삼나무 냄새와 약간의 땀 냄새가 그녀를 사로잡았다.

알폰소는 아리아드네의 귓가에 가볍게 입을 맞추며 웅얼거렸다.

“인증 과정을 상상할 거 아니야. 남들이 널 가지고 그딴 상상을 반 온시아라도 한다면 살려 두지 않을 거야.”

“응, 으응. 간지러워.”

“날 도시 전체를 몰살시킨 살육마로 만들 거 아니라면 그만둬.”

“알았어⋯⋯. 아, 그만⋯⋯.”

공격과 수비가 바뀌고 말았다. 아리아드네는 간신히 알폰소를 밀어냈다. 시간 제약이 이유의 절반, 죄책감이 이유의 절반이었다.

“외드 대공을 보러 가야 하잖아.”

“좀 기다리라고 해.”

“알폰소.”

그는 그녀를 더 강하게 끌어안았다.

“차라리 내가 모자란 녀석이라고 욕먹고 말게. 남들이 뭐라고 생각하든 전혀 안 중요해.”

순도 백 퍼센트의 진심이었다.

알폰소는 상냥한 소년 왕자 시절에도 타인의 욕망을 위해 자기가 참을지언정, 타인의 욕망을 내재화 한 적은 없었다.

남이 좋다고 하는 게 그의 눈에도 좋아 보이는 일은 없었다. 정말로 그의 마음에 들어야 했다.

“너만 중요해.”

그리고 아리아드네 데 마레는 그렇게 그가 고른 사람이었다.

아리아드네는 고개를 들어 알폰소와 눈을 맞췄다. 그의 청회색 눈동자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맑았다.

아리아드네는 그래서 더더욱, 등골을 스멀스멀 타고 기어 올라오는 서늘한 죄의식을 느꼈다. 아니, 죄의식은 서늘할지 몰라도 죄는 뜨거웠다.

살만 무녀 할머니의 도움으로 가라앉혀놓은 왼손이 오랜만에 다시 화끈대는 기분이었다.

아리아드네의 이런 속내는 그녀가 알폰소의 애정 표현에 아무런 답을 하지 않고 소심하게 굳어 버린 모양새로 나타났다.

알폰소는 이럴 때는 직진하는 남자였다. 그녀가 되돌려주지 않으면 그는 두 배로 퍼부었다. 언젠간 마음이 열릴 거라 믿으면서.

“가 볼까?”

알폰소는 아리아드네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주었다.

어린 시절 타인의 욕망을 실현시키기 위해 그에게 강제로 주어졌던 대륙 최고의 혼처를 정리할 시간이었다.

“아리, 거기에 얌전히 잘 있을 거지?”

“⋯⋯내가 굳이 거기까지 들어가야 해?”

알폰소가 섭외한 장소에는 비밀 공간이 하나 있었다.

신경쇠약에 시달리던 성의 원래 주인이 자신을 24시간 지킬 기사를 주둔시켜 두던 옷장과 드레스룸 사이의 무언가라고 했다.

그 성의 주인은 그렇게 공을 들였음에도 불구하고 기사가 잠시 한눈을 판 사이에 뇌졸중으로 죽었다. 뭐 별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이상한 소리 하면 뛰쳐나와서 날 멈춰줘.”

“외드 대공 앞에 나타날 수는 없잖아!”

알폰소는 아리아드네에게 자기가 외드 대공과 협상하는 동안 그 뒤에 들어가 앉아 이야기를 들어 달라고 했다.

말로는 자기가 실수하지 않도록 힘을 달라고 했지만, 그의 본심은 아리아드네에게 비밀을 만들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그녀가 걱정하는 것도 싫었고, 의심하게 되는 것도 싫었다.

“라리에사 대공녀와는.”

알폰소는 아리아드네의 손을 꼭 잡았다.

“이번에야말로 정말 끝이야.”

“믿어.”

“그렇게 선선히 믿지 말고 의심 좀 해보라니까?”

“뭐?”

“뒤에 서서 좀 들어줘.”

알폰소는 웃으며 재차 아리아드네의 볼에 자기 볼을 마주 댔다.

“절대로 안 들킬 수 있는 거 맞지?”

“응. 내 수하들이 몇 번이고 가서 점검했어.”

거절하는 그녀에게 알폰소는 여러 번, 재차 권했다. 아리아드네가 오지 않는다면 자기는 외드 대공을 만나지 않겠다고까지 했다.

어쩔 수 없이 그녀는 옷방에 앉아 있는 것에 동의하고 말았다.

* * *

외드 대공과 알폰소가 만나기로 한 방은 생각보다 크고 깔끔했다.

아주 오래된, 백 년은 넘은 태피스트리며 양탄자에서 퀴퀴한 냄새가 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오래된 고재 테이블이며 나무로 깎은 촛대에선 최신 유행이 훅훅 바뀌는 산 카를로에서는 느낄 수 없는 고풍스러움을 느낄 수 있었다.

넓은 나무 탁자—만들 당시에는 갓 자른 떡갈나무였겠지만 이제는 고재가 되어버린—에 외드 대공을 마주 보고 앉은 알폰소 왕자는 가볍게 목례했다.

“오랜만입니다, 대공 각하.”

“신수가 훤하니 좋아 보이십니다, 왕자 저하.”

알폰소는 외드 대공과 지리한 탐색전을 할 생각이 없었다.

오늘은 피차 원하는 것이 명확한 상태로 만나는 것이었고 그 목표는 서로 상충되었다.

원만한 제3의 결론 같은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결국 통하는 것은 힘의 논리뿐이다. 그는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혼인서약서를 무르러 왔습니다.”

외드 대공이 아무 말 없이 알폰소 왕자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

그 침묵은 생각보다 길었다. 아리아드네는 커튼으로 출입구가 가려진 드레스룸 안에서 긴장감에 숨을 삼켰다.

지금 외드 대공의 표정이 너무 궁금했다.

한참이 지난 뒤에야 외드 대공은 느리게 입을 열었다.

“그 여백작 때문입니까. 검은 머리카락에, 백성을 위한다는.”

알폰소는 무표정하게 외드 대공을 바라보았다. 여기에서 아리아드네의 이름이 거론된 것 자체로 왕자는 기분이 상했다.

알폰소의 무표정은 이유가 무엇이건 당신과는 상관없다는 의사의 표현이었다.

그런데 옷장 속의 아리아드네는 외드 대공의 말에서 뭔가 이상함을 포착했다.

사윗감이 다른 여자 때문에 내 딸을 내친다는데, 여기서 당연히 나와야 할 수순은 그 다른 여자에 대한 폄하다.

신분이 천하다, 몸가짐이 어땠길래 아내 있는 남자를 꾀냐, 이런 식의 비난이 자연스러웠다.

그런데 외드 대공은 도리어 깍듯하게 아리아드네의 작위를 언급했고, 그녀의 공을 치하했다.

‘이게 어딘가 앞뒤가 안 맞는데⋯⋯?’

과연, 외드 대공의 다음 문장은 아리아드네가 했던 그 어떤 예측에서도 벗어난 파격이었다.

“취하십시오. 그 여자와의 사이에서 자녀를 보아도 좋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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