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6화> 이폴리토의 행복한 꿈
이폴리토는 간신히 마르코와 피차 만족할만한 합의 조건에 도달했다.
마르코는 건달 수괴답게 자기 요구조건을 마구잡이로 고집했으나 이폴리토는 어떻게든 자기의 최대 목표—손가락을 모두 보존한 채로 마르코의 무리와 우호적으로 헤어지기—를 달성해냈다.
마르코를 설득시킨 핵심 사항은 이폴리토가 하려는 게 이적이 아니고 이 업계에서 아예 손을 떼려 한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를 마르코에게 전달하기는 쉽지 않았다.
“뭐? 일할 거라고? 니가? 궁전에서?”
마르코는 전혀 믿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이폴리토를 바라보았다. 궁의 관리로 일하면 1년에 15 두카토 남짓의 연봉을 받았다.
15 두카토면 그들 밀수조직의 소규모 구역장이 일주일이면 벌어들이는 돈이었다.
산 카를로 총괄인 이폴리토 밑에는 소규모 구역장이 서른 명 조금 못 되게 있었다.
그러니까 이는 이폴리토가 구역장에게 한 푼도 떼주지 않고 혼자서 착복하면 산술적으로 한 달에 2천 두카토까지 벌 수 있다는 소리였다.
“내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너 돈이 그렇게 많았냐?”
궁의 관리라면 완전한 명예직이다.
물론 산 카를로의 물가를 감안했을 때 알뜰하게 아껴 살면 15두카토로도 충분히 생계를 꾸려나갈 수 있었지만, 어쨌건 마르코나 이폴리토 같은 씀씀이를 가진 사람에게는 그랬다.
그리고 마르코의 저 말은, 콧잔등이 무너져 내린 채 풍찬노숙하는 걸 주워 왔는데 네가 그럴 리가 없지 않느냐는 힐난이었다.
“아, 저, 그게⋯⋯.”
이폴리토는 말을 더듬었다.
그는 최대한 노골적이지 않게, 자기 아버지가 높은 자리에 오르셔서 고생이 많으신데 내가 순전히 효심으로 아버지를 보위하러 간다는 내용을 주절주절 떠들었다.
저쪽으로 가면 이권이 생긴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면 절대로 안 됐다.
마르코같이 막 굴러먹던 놈이 추기경의 출셋길을 담보로 협박하면 어쩌나.
하지만 이폴리토의 아버지가 누군지는 온 산 카를로가 다 알았다.
산 카를로 추기경, 성황청의 대리인, 실세 중의 실세라고 이름을 떨치는 아버지를 순전히 효심으로, 그것도 무급이나 다름없는 돈으로 도와드리러 간다는 이야기를 마르코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하기란 참 어려운 일이었다.
유명세는 이게 나빴다. 아빠가 안 유명했으면 그냥 아빠가 돌아가셔서 이제 엄마를 내가 모셔야 한다고 거짓말하면 간단했을 텐데.
게다가 마르코는 힘과 피와 황금 일시불의 언어로 소통하는 종류의 인간이었다.
이폴리토가 생기는 것도 없는데 순전히 ‘효심’ 때문에 지금 술술 들어오는 돈을 다 마다하고 궁의 관리로 간다는 이야기는 마르코를 전혀 설득하지 못했다.
그럴 리가 없지 않나. 그렇지만 마르코는 의외의 곳에서 반응했다.
“뭐? 이런 일을 하는 게 천신님 앞에서 부끄럽다고?”
이폴리토는 흠칫, 몸을 사렸다. 마르코가 ‘내가 하는 사업이 부끄러워?!’라며 불붙은 장작이라도 움켜쥐고 뛰어들어오면 이폴리토로서는 개 패듯 두들겨 맞는 것 외엔 방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르코의 반응은 정반대였다.
“그래, 그럴 수 있지. 아버지가 성직자이신데 이런 일 하는 거, 천신님께도 죄송하고 사후세계와 환생을 관장하시는 일곱 천사님들 보시기에 안 좋을 수 있지.”
마르코를 움직이는 키워드는 신앙이었다.
“내가 이런 업을 하는 놈이지만 항상 우리 어머니 말씀이 기억나. 천사님들 보시기에 등 쭉 펴고 떳떳할 수 있게 살라고.”
신앙에 한 가지를 굳이 더 추가하자면 엄마였다.
마르코는 자기 어머니가 얼마나 좋으신 분인지, 어려서 엄마가 자기한테 무슨 가르침을 주셨는지에 관해 한참을 떠들고는 이폴리토를 보내주겠다고 확약했다.
“우리 엄마가 아직도 살아계셨으면 나도 너처럼 했을 거야. 가 봐. 인수인계는 자네 밑에 있는 친구한테 해 두고. 마무리하기 전에 인사 한번 오라고.”
말도 안 되게 우호적으로 헤어지긴 했지만 마르코는 괜히 항구의 우두머리가 된 게 아니었다.
그는 이폴리토를 사지 멀쩡하게 보내주는 대신 속옷 한 장까지 다 털어먹었다.
이폴리토는 파왁의 거래처와 배합식을 마르코에게 넘겼고, 그간 들어왔던 수입으로 매수한 창고용 부지도 넘겼다.
마르코가 네 개인 돈으로 사긴 했지만 연초를 쌓아두려고 샀던 것이니 조직에 두고 가는 게 합당하다고 우겨서였다.
그걸 다 마르코에게 넘기고 나니 이폴리토에겐 정말이지 100 두카토 남짓의 쌈짓돈 외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하지만 이폴리토는 기분이 의외로 나쁘지 않았다. 되레 상쾌하기까지 했다. 건달 세계의 문법상 이건 마르코가 진짜로 자신을 보내주려 한다는 뜻이었다.
아무것도 필요 없다며 이것보다 더 곱게 보내줬으면 마르코는 분명히 야밤에 데 마레 대저택으로 찾아와 아버지 좀 나오시라고 했을 것이다. 건달 세계란 그런 곳이었다.
‘홀가분해. 이제 아버지 밑에서 관리로 시작해서 각종 인사의 중심이 되면⋯⋯!’
이폴리토는 상상 속에서 성황청의 핵심 보직을 본인이 알선하는 사람에게 넘겨, 청탁 착수 시 일시금으로 1천 두카토를 받고 청탁 성공 시 그 사람이 다음 직급으로 갈 때마다 교구 수입의 2할을 자기가 빼먹는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보았다.
요새 하는 것보다 수입 자체는 줄어들지 몰라도 여러 건 쌓이면 노동 시간 투입 없이 자동으로 돈이 들어온다!
지금 하는 유통업은 여기저기 발로 뛰어야 하고 남의 비위 맞추며 술도 먹어야 하고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금 본인이 하려는 짓은 더 발전된—더 악독한—형태의 매관매직이었지만 이폴리토는 그게 나쁘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이폴리토의 세계에서는 저렇게 해 먹는 게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결혼도 안 했겠다, 성직에 투신해도⋯⋯.’
이폴리토는 행복한 꿈에 빠져들었다.
그는 결혼이 하고 싶었지만, 어디까지나 자기에게 없는 작위를 확보해 줄 대단한 마누라를 구하기 위함이었다.
어느 특정한 여자와 사랑에 빠졌다던가, 꼭 그녀와 살고 싶다던가 하는 마음은 없었다.
대단한 미녀라면 좋지만 그 어떤 여자라도 결국엔 질리기 마련이니 자주자주 갈리면 좋았다. 계속 같은 여자랑 살고 싶은 생각도 전혀 없었다.
자기가 받아 마땅한 높은 직위를 성직자가 되어 확보할 수 있다면 그것 또한 나쁜 선택지는 아니었다.
남들이 여동생한테 백작위를 뺏기고 밀려서 성직에 투신한 것처럼 볼 것은 좀 빡쳤지만, 그는 실리적인 남자였으니까.
수행 봉사 같은 행정적인 허들은 있었지만 이폴리토는 아버지가 다 알아서 해줄 거라고 생각했다.
거⋯⋯. 발데사르 놈도 성지순례나 격오지 포교 안 가고 바로 사제 되지 않았던가? 내가 라파엘 데 발데사르보다 뭐가 못해서?
이폴리토는 히죽 웃었다. 케이크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고 있는데 피클 국물만 통으로 들이붓는 짓이었다. 달고 짜니 정말로 맛있었다.
* * *
아리아드네는 고대하던 손님을 맞이했다.
“겐나로소 자작님이⋯⋯. 여기로 찾아가면 된다고⋯⋯.”
겐나로소 자작은 타란토 공작가에서 일체의 실무를 맡아 하는 비앙카의 오른팔이었다.
“어서 들어오세요!”
이 손님이 누구인지 바로 눈치챈 산차가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주의하며 새 손님을 재빨리 아리아드네의 서재로 올렸다. 아리아드네는 손님에게 의자를 권했다.
“앉아요.”
이 사람은 루크레치아의 부정과 이폴리토의 출생의 비밀에 대해 증언해 줄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 손님은 아리아드네가 생각했던 것과 조금 달랐다.
우선, 인적 사항부터 상이했다. 그녀의 상상 속에서 증인은 루크레치아의 유모뻘인 나이 지긋한 노부인이었다.
당시의 상황을 속속들이 알려면 아무래도 루크레치아를 지근거리에서 돌봐주던 사람이어야 했다.
아리아드네는 내막을 다 알려면 그중에서도 지위가 높은 사람이어야 할 거라고 생각했다.
아리아드네는 루크레치아가 영 멍청이가 아니라면 이런 일을 부주의하게, 어떻게 보면 오락거리로, 또래 친구한테 털어놓기보단 믿음직한 사람에게 조언을 구하는 형식으로 말했을 거라 여겼다.
그런데 지금 그녀 앞에 선 사람은 40살 언저리의, 루크레치아 또래의 여자였다.
‘내가⋯⋯. 루크레치아를 과대평가했나?’
충분히 가능한 가설이었다. 아리아드네는 자기의 의구심을 타파하기 위해 중년 부인에게 이것저것 질문을 던졌다.
“타란토 출신이신가요?”
“아니요.”
“루크레치아를 직접 아셨나요?”
“아니요.”
점점 더 아리아드네가 생각한 정답에서 멀어져갔다. 태어난 동네도, 출신도, 삶의 궤적도 다 달랐다.
아리아드네의 표정을 주의 깊게 살피며 중년 부인은 서툴게 자기 소개를 했다.
“즈이 어머니 이름은 잔 갈레아초입니더.”
잔 갈레아초라는 말에 아리아드네의 포커페이스가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무너졌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녀는 어려서 아리아드네를 학대한 베르가모 농장의 관리인이었다. 오래 잊고 지냈던 이름이었다.
아리아드네가 표정관리를 하는 동안 중년 부인은 자기 소개를 계속했다.
“지는 갈레아초 마리아라고 허는디⋯⋯. 데 마레 집안에서 허드렛일을 하다가, 나중엔 북쪽 창고 관리일을 하라고 뽑혀서 유수 마을에 있었습니다.”
유수 마을은 성황청 직할 농지로, 베르가모 농장보다 좀 더 북쪽에 있는, 에트루스칸 교구에 딸린 마을이었다.
갈레아초 마리아 부인은 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루크레치아는 저희 어머니와 썩 친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를 농장 관리자 자리로 발령 내 준 거기도 하고요.”
이때까지 아리아드네는 비판적인 견지에서 부인을 관찰하고 있었다. 혹시나 약을 팔아 한턱 뜯어내려는 사기꾼일지도 몰랐다.
그리고 이 여자가 현출하는 줄거리도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잔 갈레아초라니. 갈레아초 마리아의 어머니는 아리아드네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 5위 안에 들기는 어려웠지만 10위 안에는 너끈히 드는 사람이었다.
그 딸이 딱히 도덕적이거나 착할 거라는 기대는 없었다.
게다가 루크레치아는 서열 의식이 확실하고 위계를 따지는 편이었다.
자기 수발드는 하녀도 아니고 농장 관리자로 내보낸 평민 아낙에게 자기 속마음을 이야기할 위인이 아니었다.
아리아드네는 눈앞의 이 아주머니가 ‘우리 엄마가 루크레치아 마님에게서 들었는데’ 운운하면 그냥 그 자리에서 내보내기로 내심 마음을 먹었다.
“친했다고 해서 루크레치아가 저희 어머니에게 시시콜콜하게 자기 이야기를 다 한 건 아닙니다만⋯⋯.”
오, 플러스 원. 그러고 보니 호칭도 ‘루크레치아 마님’이 아니라 ‘루크레치아’였다.
“정말로 친했으면 그렇게 죽이진 않았겠죠.”
루크레치아는 사람을 보내 잔 갈레아초를 죽였다.
아리아드네의 양육비를 횡령한 일이 데 마레 추기경의 귀에 들어갈까봐였다. 그 사건에 일말의 책임이 있는 아리아드네는 입을 꼭 다물었다.
“하지만 최소한 이런 걸 맡길 정도로는 친했었어요.”
중년 부인은 공책 한 권을 앞으로 내밀었다. 아리아드네는 그 공책을 집어 들었다. 일기장이었다.
“루크레치아는 우리 어머니가 글을 모르니 마음 놓고 이걸 맡겼던 모양입니다. 친정에서 가져온 어릴 적 추억인데, 저택이 좁아 둘 곳이 없으니 농장에서 맡아달라고 했댔어요.”
작아져 버린 드레스, 낡은 장신구 같은 몇 가지 다른 물건들과 함께였다.
똑똑하지 못한 루크레치아는 자기가 댄 핑계가 최악의 핑계였다는 걸 깨닫지 못했다.
데 마레 대저택은 괜히 ‘대’자가 붙은 게 아니었다. 거기에 창고 공간이 없을 리가 없었다.
누가 봐도 남편에게는 들키면 안 되는 추억이 있는 물건 아닌가.
잔 갈레아초는 여기서 돈 냄새를 맡았다. 언젠가 현금이 필요해지면 루크레치아를 협박할 작정이었다.
하지만 루크레치아가 잔 갈레아초를 없애 버리는 게 더 빨랐다. 역시 악당의 급수를 결정하는 것은 실행력이다.
“추기경 예하가 간혹 베르가모에 가시자, 루크레치아는 불안했는지 이걸 유수 농장으로 옮겨달라고 했었죠.”
그 말을 듣는 순간 아리아드네는 루크레치아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 무엇인지 기억해냈다. 유수 농장은 튤립 구근을 키웠던 농장이었다.
‘이래서 이폴리토에게 어머니가 좋아하는 꽃을 찾아가라고 했었구나!’
튤립의 원산지가 무어 제국인 관계로 성황청 직할지에서 그런 걸 키우면 어떡하느냐는 비판에 유수 농장에서 튤립을 키워 수익원으로 삼으려던 사업은 엎어졌지만, 이건 한때 추기경의 역점 사업 중 하나였다.
‘잠깐, 아버지가 베르가모 농장에 자주 왔었다고?’
그러나 그녀는 손안의 공책에 정신이 팔려 이 생각을 이내 잊어버렸다.
“열어봐도 되겠습니까?”
“그러믄요. 아, 공책 말고 이것도 있었습니다.”
갈레아초 마리아는 중간 크기의 나무 상자를 건넸다.
그 안에는 좀이 슨 옛날 유행의 비단 드레스와, 아주 오래되어 삭아버린 꽃다발 비슷한 것과, 은으로 주조한 단추 하나가 들어 있었다.
루크레치아가 잔 갈레아초에게 맡겼던 물건 전체였다.
아리아드네는 상자를 자기 앞에 놓은 채 공책의 낱장을 옆으로 넘기기 시작했다.
「로렌조가 떠났다. 전쟁에 뛰어들면 죽을지도 모르니 데려가지 못할 뿐이고 자리 잡으면 꼭 데리러 온다고 약속했지만, 안 돌아올 것 같다. 그냥 그런 기분이 들었다.」
아리아드네는 속으로 감탄사를 읊었다. 오호, 이름이 로렌조란 말이지? 남자가 돌아오지 않을 걸 알았다니 감은 예나 지금이나 귀신같았군.
「로렌조가 남기고 간 은 단추를 하루에도 스무 번씩 들여다보았다가 내려놓는다. 이러다가 가문의 문장이 닳아버릴지도 모른다. 거기까지 생각했다가 화가 났다. 아들을 낳으면 찾아오라고 했는데, 애초에 자기 아버지와 싸워서 호적에서 파였다면서. 자기 자식도 안 받아줄 거라면서. 도대체 나더러 어딜 찾아오라는 거지?」
아리아드네는 갈레아초 마리아가 건넨 나무 상자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녀는 은 단추를 집어 들었다. 거기에는 입에서 불을 뿜는 뱀의 문장이 그려져 있었다.
불을 뿜는 뱀⋯⋯. 불을 뿜는 뱀이라⋯⋯.
「시몬 사제가 미사 때 나랑 자꾸 눈을 마주치려고 노력한다. 이래 봬도 우리 외증조할아버지가 남작이셨는데 내가 한낱 사제랑? 게다가 성직자면 첩으로 들어가란 소리 아닌가! 잘생겼으면 말이나 안 해, 말라비틀어진 앤초비처럼 생긴 조그만 녀석이랑? 급도 안 맞는 놈이 들이대서 화나고 수치스럽다. 불쌍한 날 이렇게 괴롭히다니, 시몬 사제에게 천신님의 벼락이라도 떨어졌음 좋겠다.」
아이고. 아프다. 아리아드네는 이 일기장을 통째로 아버지에게 보여줘도 되나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이폴리토의 친아빠가 나오는 부분만 발췌해서 보여줄 방법이 있지 않을까?
「로렌조가 떠난 지 두 달째, 계속 생리가 없다. 저번 달에는 그냥 슬퍼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번 달마저 건너뛰면 변명이 없다. 빼도 박도 못한다.」
이거다. 아리아드네의 눈이 빛났다.
「시몬 사제가 마을 떡갈나무 밑에서 만나자고 했다. 정말 나가기 싫은데⋯⋯. 이제 입덧도 한다. 로렌조가 남겨둔 단추를 들고 로렌조네 본가로 갔다가 쫓겨나면 어떡하지? 로렌조가 죽어버리면 그 집에서 날 책임져 줄까? 시몬은 나에게 날 평생 책임지겠다고 했다. 진도를 나가고 싶어 하는 모양이었지만 쳐냈다. 순수하다고 더 좋아하는 꼴에 구역질이 났다. 싫다. 싫다. 죽고 싶다.」
정말이지 적나라한 기록이었다.
아리아드네는 확신했다. 이 일기장을 보고도 뻐꾸기 새끼를 용서해 줄 남자는 세상에 아무도 없다.
설사 그게 대자대비의 현신이어야 할 예삽교의 차기 법황이라도 말이다.
꼴 보기 싫은 이폴리토 놈은 이것으로 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