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벤트마스터-3화 (3/74)

1. 제 2 이벤트 관리과

간단한 한 마디가 오고 가고 긴장감 어린 침묵이 장내를 휘감았다. 양 진영은 잔뜩 숨죽인 채 둘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곧 천천히...... 아주 느리게 둘의 무기가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커다란 함성과 함께 성난 파도 두 개가 맞부딪쳤다. 라크세인에서 악을 몰아내려는 정의의 용사들과 바로 그 악의 사도들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마법사들의 화려한 이팩트가 돋보이는 각종 마법들과 궁사들이 쏘아대는 화살이 마치 비처럼 서로의 진영에 쏟아졌다.

검과 검이 맞부딪치는 소리와 죽어 가는 자들이 내지른 마지막 단말마. 고함, 외침, 욕설까지. 엄청난 소란이 고요했던 평원을 뒤흔들었다.

그런 와중에 다이는 상대 길마인 에디크를 그 거대한 낫으로 압박하면서 연신 로이드에게 메시지를 날려댔다. 그의 길드원들에게 내리는 총체적인 명령이 로이드에게 전달되고 로이드는 그 것을 각각 나누어 적절한 길드원들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애초에 명령권이 다이 하나에게 집중되어 마치 한 몸처럼 움직이는 수천 명의 블러드 나이츠와 수십 개의 길드가 뭉치는 바람에 명령권 집중이 이뤄지지 않은 길드 연합 윈드는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열 손이 뭉쳤으니 하나의 손을 막는 것이 참 쉽다고 생각하겠지만, 어린애 손 열 개로 거인의 손을 막을 수는 없는 법이다. 차라리 어른 손 열 개라면 어떻게 해볼 수나 있었을까.

하지만 조금 크고 반항적이다 싶은 길드는 죄다 블러드 나이츠의 발길질에 채여 산산이 부서져 버렸기에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다.

대략 삼십 여분이 지나자 결과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길드 워 중에 사망한 플레이어는 만 하루 동안 다시 접속하지 못했기에 그 인원수에서 확연한 차이가 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는 워가 아니라 블러드 나이츠의 일방적인 학살이 진행되었다.

"크으. 제대로 덤벼라! 다이! 지금 나와 장난하자는 거냐!"

방어에 열중하며 길드를 지휘하는 다이에게 에디크는 버럭 화를 냈다. 상황은 그의 길드 연합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는데 길마라고 하는 자신은 그 어떤 결과도 내보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지휘조차 포기한 채 다이 하나만을 노리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제대로?"

순간 다이의 몸이 흐릿해졌고 놀란 에디크는 얼른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그 것은 그의 실수였다.

"커억!"

등을 관통하고 자신의 가슴 앞으로 삐죽 튀어나온 거대한 낫의 모습에 에디크는 믿을 수 없다는 눈빛을 했다. 흐릿하긴 하지만 다이가 분명 눈앞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름대로 친절한 성격이라고 자신을 생각하는 다이는 그런 에디크의 귀에 살짝 속삭였다.

"이건 일루전(Illusion)마법과 도둑의 백 스텝(Back Step)을 혼합해서 사용해 본 거야. 꽤 괜찮지?"

에디크는 더 이상 몸을 움직이지 못함을 느꼈다. 정통으로 데미지가 들어갔기도 했지만 다이의 낫에 독이라도 발라져 있었던지 체력이 계속해서 떨어졌다. 어서 낫을 가슴에서 뽑고 해독과 치료를 하지 않는 한 에디크의 사망은 확정된 상황이다. 그러나 에디크에게는 그럴 체력?남아있지 않았다.

그는 남은 힘을 간신히 짜내어 물었다.

"너...... 넌 기사......가 아니었......나?"

라크세인은 체력이 한계 수위 아래로 떨어지면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현실적인 시스템이었기 때문에 그의 목소리는 저절로 떨리고 있었다. 다이는 이죽거리며 대답했다.

"아, 보통은 길드 이름이 블러드 나이츠라서 날 기사라고 생각하는데 말야. 낫 든 기사는 너무 우습지 않아?"

"그...... 럼 클......래스가......?"

"미안하지만 그건 비밀이야. 그걸 알려주면 내 본전이 다 드러나서 부끄러워지잖아. 그러니까 계속 궁금해 해줬으면 좋겠어. 신비함은 내 매력의 원천이거든?"

끝까지 남의 속을 긁어대는 다이였다.

"그러고 보니 상황이 거의 끝나가네."

임시라고는 하나 그들의 마스터가 다이에게 당하자 길드 연합 윈드는 하나 둘 전의를 상실하고 있었다.

"결과도 난 것 같으니 이제 죽어."

다이는 에디크의 가슴에서 낫을 확 뽑아 냈다. 바로 시커멓게 죽은피가 분수처럼 쏟아졌다.

"비...... 비겁한...... 이......런 독을......"

"몬스터에게는 마구 저주 마법을 걸고 독을 뿌려서 사냥하면서. 사람한테만 쓰면 비겁하다고 하는 이유를 모르겠어. 욕을 하려면 독이 포함된 게임을 만든 회사를 욕하던가."

"으......"

에디크는 뭐라 더 말하고 싶어하는 듯 했지만 그의 체력은 더 이상 그에게 말을 허락하지 않았다. 곧 에디크의 몸이 힘없이 바닥으로 쓰러지고 순간 사방에서 승리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남은 길드 연합 윈드의 플레이어들이 항복을 선언한 것이다.

"블러드 나이츠 만세!"

"길마님 만세!"

수천 명의 함성이 평원 위를 맴돌다 멀리 멀리 퍼져 나갔고, 그렇게 (주)테이머의 가상 현실 멀티유저 게임 '라크세인'의 하루가 지나갔다.

"로그 아웃."

[로그 아웃합니다. 다이님. 캐릭터 정보를 저장하기 위해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잠시 어둠 속에 멍하니 서 있던 지원은 곧 몸의 감각이 돌아오는 아릿한 저림을 느꼈다.

"하하하."

지원은 캡슐에서 몸을 빼내며 크게 웃었다. 그는 지금껏 한번도 패배한 적이 없다. 항상 이기기만 했기에 조금은 그 기쁨이 퇴색하긴 했지만 승리가 기쁘다는 점만은 언제나 변함이 없었다.

"에디크라고 했던가. 자칭 정의의 사도님을 밟아 주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란 말야."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룰루랄라 넷룸(Net Room)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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