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 2 이벤트 관리과
이름 서 지원. 올해 나이 스물 한 살. 바로 세 달 전에 버추얼 스쿨을 졸업한 그는 하루 16시간을 게임 속에서 보내고 나머지는 먹고 자고 하는 필수적인 일에 투자하며 하루 하루를 소일했다.
애초에 그가 열여덟 살이면 졸업해야할 버추얼 스쿨을 스물 한 살까지 다닌 것도 다 게임에 빠져 낙제를 한 탓이었다. 원래 머리는 영특했기에 테스트 포인트는 부족하지 않았으나 출석 일수가 부족했던 것이다.
집안이 워낙 빵빵하기에 어딘가에 취직할 필요가 전혀 없는 그다. 그렇기에 게임에 그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있는 것이고 말이다.
그는 될 수 있으면 평생 그렇게 살리라 마음먹었다. 어차피 돈은 썩어날 만큼 많고 하고 싶은 일은 없었으니까. 있다면 오직 가상 현실 게임으로 또 다른 세상을 즐기는 것뿐이다.
"지원아."
그가 늦은 점심 식사를 위해 아래층으로 내려서자 거실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던 그의 어머니가 그를 불러 세웠다.
"네~"
지원은 쪼르르 그녀에게로 달려갔다. 하나뿐인 외동아들이기에 그를 애지중지하는 어머니. 그녀 앞에서만은 언제나 본성을 숨기고 열살 어린 아이가 되는 지원이었다. 그런 그를 따스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그녀는 차분하게 용건을 얘기했다.
"그 이가 오늘 너랑 저녁을 함께 하고 싶다고 하더구나. 아까 알려주려 했는데 캡슐에 들어가 있어서 못 했단다."
아버지가 웬일로? 지원은 고개를 갸웃했지만 그냥 얌전히 대답했다.
"네. 그럼 제가 회사로 가볼게요."
"그러렴."
지원은 어머니의 뺨에 살짝 키스하고는 얼른 욕실로 달려갔다. 식사를 하러 내려온 것이긴 했지만 어차피 두어 시간 후면 저녁을 먹어야 할 시간이다. 곧장 씻고 아버지의 회사로 가려는 것이 더 합리적인 선택이라 생각한 것이다. 지원의 아버지인 서 승익은 아마 몇 일 이내엔 집에 오지 않을 테니 같이 저녁을 먹으려면 회사로 가야만 했다.
옷을 벗고 욕실 한 쪽의 샤워 부스 안으로 들어간 지원은 짧은 단어 한 마디를 내뱉었다.
"샤워."
곧 따뜻한 바람이 그의 몸을 휘감았다. 과거엔 물로 샤워를 했다지만 이젠 깨끗한 산소로 몸을 씻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었다. 물론 산소만이 아니라 몸의 이물질을 제거해주는 성분들이 다수 포함된 바람이다.
간단히 샤워를 끝내고 깔끔한 새 옷으로 갈아입은 그는 다시 거실로 돌아왔다.
"다녀올게요."
"그래."
또 다시 어머니의 뺨에 키스한 그는 곧장 집을 나섰다. 문 앞엔 그의 어머니가 대기시켜둔 오토 카(Auto Car)가 떡 하니 주차되어 있었고 지원이 다가가자 소리 없이 문이 열렸다. 그가 느긋하게 안의 소파에 몸을 기대자 곧 문이 닫혔고 몸이 살짝 붕 뜨는 느낌과 함께 오토 카?출발했다.
창문은 없었다. 워낙 속도가 빠르기에 쏜살같이 지나가는 주변 풍경에 넋을 빼다간 눈 돌아가기 딱 좋기 때문이다.
그렇게 십분 정도 지났을까. 다시 오토 카의 문이 소리 없이 열렸다.
"이렇게 가까운데 왜 그렇게 집에 안 들어오시나 몰라."
사실 그의 오토 카 속도가 빠르기 때문이지. 절대 가까운 거리가 아니다. 단지 걸리는 시간에 비례한 느낌상으로 가까울 뿐.
지원은 (주)테이머의 본사 건물을 한번 올려다보고는 곧장 안으로 들어섰다. 그런 그를 맞이한 것은 철제 갑옷 모형이었다. 누가 게임 회사 아니랄까봐 인공지능 안내원의 모습을 저렇게 만들어 놨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지원이 회사로 그의 아버지를 찾아오는 것은 2~3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한 일이기에 안내원이 그를 몰라보는 것은 당연했다. 기록된 정보에 있는 그의 얼굴은 몇 년 전의 것이니 말이다.
"기록이 있을 거다. 서 지원."
[확인합니다.]
지원은 무언가 몸을 스치는 듯한 미세한 느낌을 언뜻 받았다. 인체 스캔이었다.
[확인되었습니다. 서 지원님. 약속이 잡혀 있으니 79층으로 올라가시면 됩니다.]
"수고!"
지원은 바로 고속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섰다. 곧 문이 닫히고 잠깐의 시간이 흘렀다.
"어서 와요. 지원군."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 이미 연락을 받은 듯, 지원이 익히 알고 있는 여비서 주 진영이 나와 서있었다. 이제 이십대 후반인 그녀는 거의 이십대 초반의 젊음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고 옷을 비집고 나와 터질 듯한 큰 가슴과 잘록한 허리가 인상적인 미녀였다.
저런 미인비서를 몇 년째 곁에 두고 있다니. 지원은 그의 아버지가 혹시 바람을 피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의심했다. 하지만 평소 닭살을 풀풀 날리는 부모님의 애정 행각들이 떠오르자 절대 그럴 리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입니다. 누님."
"네. 오랜만이에요. 마지막으로 본 것이 언제더라. 일년 전이던가? 지원군은 일년만에 더 미남이 됐네요. 호호."
"하하. 그런가요?"
일년만에 변해봐야 얼마나 변했겠냐만은 지원은 그런 칭찬이 싫지 않은 듯 밝게 웃었다. 순전히 미인의 칭찬이기 때문이다. 남자가 이런 인사를 건넸다면 살살 꼬고 비틀어서 비웃어 주었을 그였다.
"이 쪽으로 와요. 안 그래도 부사장님이 계속 기다리고 계셨어요."
진영의 안내에 따라 지원은 곧장 부사장실로 향했다.
그렇게 도착한 부사장실은 아담했다. 벽 한 면을 완전히 다 뒤덮고 있는 커다란 유리창. 그리고 고풍스런 책상과 소파가 가구의 전부이니 국내 최고의 기업인 (주)테이머의 부사장실이라기엔 너무 초라한 것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였다.
하지만 지원의 생각이야 어떻든, 이 방의 이런 모습은 서 승익의 성격상 이 것 저 것 잔뜩 늘어놓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었다. 사실상 모든 일 처리를 넷으로 하기에 사무실은 큰 의미가 없었다. 그저 상징적인 장소일 뿐.
서 승익은 지원이 들어온 것조차 모른 채 소파에 기대앉아 넷 접속 전용 헤드기어를 머리에 쓰고 웃고 있었다. 지원은 그 희미한 미소가 왠지 불안하게 느껴졌지만 애써 속으로 삭이며 아버지에게 다가갔다.
"저 왔습니다. 아버지."
승익은 그제야 넷 접속기를 벗고 지원을 올려다보았다. 훤칠한 키에 장난기 많은 미소년 같은 이미지의 지원과 달리, 승익은 꽤 작은 키에 고집이 엿보이는 각진 턱과 날카로운 눈매를 가지고 있었다.
지원은 어머니를 많이 닮았다는 평을 듣는 편이다.
"앉아라."
승익은 거의 한달 만에 본 아들에게 별다른 인사말도 없이 무뚝뚝하게 앞의 소파를 가리켰다. 지원은 냉큼 소파에 가 앉으며 물었다.
"무슨 일로 부르셨는지......"
승익이 괜히 저녁만 먹자고 부른 것은 아닐 것이라 짐작하는 지원이었다. 지금껏 그런 적이 한번도 없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승익은 곧장 용건을 꺼냈다.
"너도 학교를 졸업한지 벌써 세 달이 지났지?"
"네."
"노는 것은 그 정도면 실컷 했다고 보아진다."
취직이라도 하라고 하는 건가 하는 생각에 지원은 냉큼 말대꾸를 했다.
"아직 덜 놀았는데요."
승익은 지원을 지그시 노려보았다. 그 눈길에 찔끔했던 지원이었지만 여기서 지면 순순히 아버지 뜻대로 해야만 한다는 것을 그동안의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다. 지원은 애써 태연을 가장하며 승익의 눈을 마주보았다.
잠시의 눈싸움이 벌어지고, 먼저 눈을 돌린 것은 승익이었다.
"그럼 더 놀아야 한다는 거냐?"
승익의 물음에 지원은 얼른 대답했다.
"네."
"얼마나?"
"한 십 년만 놀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