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 2 이벤트 관리과
평생 놀고 먹을 속셈인 지원 딴에는 아주 적게 부른 숫자였지만 승익은 어이가 없었다. 아들이라고 하나 있는 것이. 그 것도 새파랗게 젊은 놈이 십 년을 그냥 놀고 먹겠다니 당연한 일이다.
사실 그는 열 달 정도면 그냥 봐주려 했다. 아니, 한 이삼 년 정도까지도 봐주려 했다. 그도 게임을 만드는 사람이기에 게임에 빠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원은 십 년을 불렀다. 용서가 안 되었다.
"내일부터 당장 우리 회사로 출근해라."
승익의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에 지원은 냉큼 말을 바꿨다.
"그럼 구 년만 놀겠습니다."
"출근해."
"아버님께선 협상의 정석을 모르시는군요. 제가 일 년을 줄여서 불렀으니 조금 더 줄여서 부르시고 그럼 제가 또 부르고 그러면서 서로 타협점을 찾는 것이 제대로 하는 것입니다."
누구 아들인지 참 잘났다고 생각하는 승익이었다.
"네 말대로 그게 협상의 정석이라는 것은 맞다."
승익의 말에 지원은 의기양양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승익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
"하지만 네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 하나 있다. 내가 지금 하는 것은 협상이 아니라 통보다."
"일방적인 통보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지요."
"말 참 잘하는 구나?"
"감사합니다."
승익은 또 다시 지원을 노려보았고 지원은 뻔뻔한 표정으로 마주 쳐다봤다. 그의 행복한 게임 폐인 생활을 위해. 평소라면 생각도 안 할 아버지에 대한 반항을 서슴지 않고 하는 그였다.
"그래. 네 뜻은 잘 알겠다."
"알아주시니 감사할 뿐입니다."
"하지만 출근해라."
"그렇게는 못합니다."
"왜 못하겠다는 거냐?"
"전 아직 무언가에 얽매이기엔 너무 젊습니다. 저 넓은 세상을 좀 더 겪어보며 경험을 쌓고 나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좀 더 성장한 후에 아버님의 일을 성심껏 돕고 싶습니다."
정말 말만으로는 이길 수 없는 상대라는 것을 승익은 직감했다. 아들에게 그런 느낌을 받게될 날이 올 줄은 생각도 못한 그였다. 어떻게 보면 참 대견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괘씸했다.
"좋다. 그럼 놀아라."
너무 쉽게 떨어진 허락에 지원은 덜컥 의심부터 들었다. 승익은 이 정도로 자신의 뜻을 굽힐 사람이 아니었다.
"정말이십니까?"
"그래."
"진심이시죠?"
"물론이다."
두 번이나 확인한 후에야 지원은 안심했다. 승익은 아예 말을 하지 않을지언정 거짓말은 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감사합니다. 아버지."
지원의 정중한 인사에 승익은 비릿한 미소를 띄웠다.
"그래. 네 뜻대로 넓은 세상을 마음껏 둘러보거라. 대신 게임은 절대 금지이며 네가 벌어서 네 돈으로 세계를 돌아보고 와라. 나나 네 엄마에게서의 금전적 지원은 절대 없다는 것을 명심하고."
지원이 모아놓은 돈도 꽤 되는 편이고 또 사이버 머니와 현실의 돈이 동일시되는 요즘이기에 금전적 지원을 끊는다는 말은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게임이 금지라는 것은 절대 허용할 수 없는 조건이었다. 몰래라도 할 수 있다면 모르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모든 사람의 접속 기록이 남기 때문이다. 게다가 승익은 요즘 지원이 하고 있는 게임인 라크세인을 만든 회사의 부사장이다. 원한다면 지원의 접속 기록쯤은 쉽게 얻어내리라.
"그건 절대 안 됩니다. 아버지. 게임 접속 금지 조건만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이 이상은 나도 양보 안 한다. 세상을 돌아보겠다는 녀석이 무슨 게임이냐. 정 게임을 하고 싶다면 우리 회사로 들어와. 하루 종일 게임만 붙들고 살게 해주마."
지원은 솔깃함을 느꼈다.
"하루 종일 게임만 할 수 있는 직책이 있습니까?"
"있다."
"어떤 직책이죠?"
"GM. 즉 게임 마스터(Game Master)다."
지원은 더더욱 솔깃함을 느꼈다. 열 살 때부터 게임을 즐겨온 지원이었지만 아직껏 게임 마스터와 마주친 적은 한번도 없었다. 단지 얘기만 들었을 뿐이다.
한 게임 내에서 거의 신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는 GM. 운영자라고도 불리는 그들은 일반 플레이어의 입장에서 보면 동경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지원 역시 다른 플레이어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을 동경했다. 게임 내의 거의 모든 것을 손짓 하나로 좌지우지하는 그 능력 때문에 말이다.
그의 맘대로 플레이가 되지 않아 화가 났던 것이 몇 번이었던가. 하지만 만약 그가 GM이 된다면? 압도적인 권한과 능력으로 또 다른 세계를 그 맘대로 주무를 수 있을 지도 모른다고 그는 생각했다.
게다가 거의 플레이어들의 눈앞에 나타나지도 않는 것을 보면 무척 한가한 직책 같기도 했다. 비록 지금도 거대 길드의 길드 마스터라는 권력을 제 멋대로 휘두르고 있긴 하지만 GM의 힘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을 것이라 확신하는 지원이었다.
물론 이 것은 지원이 잘못 생각해도 한참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실체를 모르는 그로선 이 이상은 생각할 수가 없는 것이 사실이다. 영특하다고는 하나 어디까지나 그것은 자신이 아는 부분에 한해서인 것이니 말이다.
어차피 이런 GM에 대한 선입관은 대부분의 다른 플레이어들도 마찬가지다.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아버님."
"그래?"
"네. 내일부터 당장 출근하겠습니다."
불쌍한 지원은 승익이 내민 미끼를 너무도 쉽게 덥석 물고 말았다. 게다가 그는 기대감에 가슴을 두근거리기까지 했다. 그의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이 뭔지 전혀 알지 못한 채 말이다.
만약 알았다면?
아마 짐 싸들고 화성으로 튀었을 가능성이 제일 높다.
아니면 목성이라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