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 2 이벤트 관리과
2178년 3월 5일.
지원이 낙하산 인사로 생애 처음 가진 직장에 첫 출근을 한 날.
(주)테이머의 라크세인 운영팀 사무실 한 구석에서 지원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눈앞에 떠오른 그가 해야할 일들과 알아야할 것들이 적힌 홀로그램을 노려보았다.
또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또 눈앞의 홀로그램을 노려보았다. 지원은 지금 이 행동을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른다. 너무 어이없고 실망스러웠기에 다른 행동은 전혀 하지 못하는 그였다. 속았음에도 불구하고 화를 낼 수조차 없다. 자세히 알아보지 못한. 혹은 물어보지 못한 그의 잘못이 컸기 때문이다.
지원은 GM으로서 게임에 관여하는 것에 어느 정도 제한이 있을 것은 당연히 예상했지만 이토록 강력한 제재들이 걸려있는지는 몰랐다. 모든 것은 플레이어 위주였고 GM은 숨은 서비스맨-혹은 우먼-이었다. 행여나 모습이 드러날까 꼭꼭 숨은 채 뒤에서 게임을 보조하기만 하는 존재. 그래서 보기가 힘든 존재였던 것이다.
GM은 게임에 관여하는 것이 규칙상 절대 불가능하다. 플레이어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거나 그들의 행동에 간섭하는 것조차 절대 금지되어 있으니 말 다한 것 아닌가. GM이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경우는 단 몇 가지뿐. 아주 치명적인 버그가 생기고 그걸 GM의 능력으로 해결할 수 있을 때 같은 것뿐이었다. 그것조차 상사의 허락을 받아야만 했다.
하지만 요즘 V.M.G치고 버그가 있는 게임은 극히 드물다. 있다해도 초기에 한 두 번? 허나 프로그래머들이 눈에 불을 켜고 대기중이니 애초에 GM이 버그를 해결할 기회는 없다.
게다가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이러면 안 된다. 저러면 안 된다는 등의 규칙은 또 얼마나 많은지. 그걸 다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하루를 꼬박 보내야 할 것 같았다.
또한 지원은 GM으로서 많은 능력을 가지게 될 것이란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 많은 것을 외우고 배워야 하는지는 몰랐다. 그가 플레이어 시절 획 하고 넘겼던 그 길고 긴 가입약관은 물론, 수천 가지 GM 행동 수칙과 게임 내에서 GM의 능력을 사용하기 위한 프로그래밍적인 수만 가지 명령어. 위치 좌표. 그리고 그 게임에 대한 사소하고 자잘한 정보까지 모두 외워야했다.
게다가 가상 현실 게임의 기초가 되는 가상 환경(Virtual Environment)시스템에 대해서 빠삭하게 공부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지원은 절망했다.
하도 한숨을 내쉬자 지원의 옆을 지나던 선배 GM이 혀를 차며 말했다. 가상 현실이 아닌 일반 멀티유저 게임시절의 GM은 존재하는 모든 NPC, 아이템, 던전, 몬스터, 도시, 상점 등등, 하다 못해 길가의 솟은 풀뿌리하나의 코드와 좌표까지 싸그리 외워야만 했다고.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정말 쉽고 편해진 것이라고 말이다.
그 외에도 GM에게는 지원이 상상도 못한 엄청난 일거리들이 있었다. 한가한 직책? 밥 먹을 시간조차 없어 보인다. 게임에 접속해 있지 않을 때는 각종 문의나 건의, 항의 전화와 메일에 시달렸고, 게임 내에 있을 때는 밀린 일거리에 치였다. 소소한 일들이지만 인공지능만으로는 불가능한 부분을 GM들이 숨어서 메우고 있는 것이다.
하루 평균 4~5시간 자면 많이 자는 거라고 한다. 그렇게 열심히 일해놓고도 전화나 메일, 메시지로 욕만 잔뜩 먹는다고 한다. 플레이어들은 무언가 잘못되면 GM에게 메일이나 전화를 해 욕하고 따졌기 때문이다.
'네'와 '죄송합니다','감사합니다','되도록 빨리 처리해드리겠습니다','논의해 보겠습니다'가 GM의 기본 멘트였다. 거의 저 다섯 가지 문장만 반복하면 모든 플레이어와의 대화가 성립된다고 한다.
지원은 견습 GM에게 주는 선배의 조언이란 홀로그램을 그 정도까지 읽고 난 후, 허탈한 미소를 짓고는 사무실을 나섰다. 그리고 곧장 화장실로 들어가 차가운 벽에 머리를 박으며 결심했다.
"달아나자."
그가 바랬던 것은 이런 것이 아니다. 강력한 권력과 힘을 가지기를 원한 지원. 그러나 GM이란 존재는 그런 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걸 사용하지 못하는 직책이다.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었다. 이런 GM은 지원의 성격에 맞지 않았다.
그렇게 지원의 첫 출근은 단 두 시간만의 도망으로 마무리지어졌다.
...... 라는 것을 바랬던 지원이지만 이미 그런 그의 행동을 예상한 서 승익은 출입구에 지원의 출입 통제 명령을 내려놨다. 건물 내부를 돌아다니는 것은 상관없지만 만약 나가려 한다면 절대 저지하라고 해놓은 것이다.
막 1층으로 내려서자마자 자신을 제지한 안내원에 의해 그걸 알게된 지원은 이를 악물었다. 빠져나갈 길은 전혀 없다. 있다면 그의 아버지와의 담판뿐.
지원은 곧장 79층의 부사장실로 향했다.
"올 줄 알았다."
승익은 그의 예상대로 행동하는 지원의 모습에 희미하게 미소를 띄웠다.
"저 사표 내겠습니다."
예상했던 말에 승익은 생각하고 있던 답변을 내뱉었다.
"안 된다."
"안 되도 내렵니다."
"세계 기록이구나. 첫 출근 두 시간만에 사표라니. 기네스북에 올려도 되겠다."
"더 빨리 낼 걸 그랬던가요?"
지원의 저 뻔뻔함은 대체 누구를 닮은 건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드는 승익이었다. 그의 아내는 분명 아니었고, 자신도 저 정도의 뻔뻔함은 없었다.
"남들이 이루지 못한 기록을 세우고자 하는 네 맘은 알겠다만. 허락할 수 없다."
"하나뿐인 아들내미를 그렇게 교묘히 속여서 옭아매시다니. 좀 너무한 것 아니십니까?"
"건방지구나. 그럼 하나뿐인 아들놈이 아비의 말에 꼬박꼬박 말대꾸를 하며 대드는 것은 안 너무하냐?"
"원인이 있으니 결과가 나오는 법이죠.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랴. 라는 말도 있습니다."
"시끄럽다. 가서 일해."
"제 사표를 받으세요."
"내가 네 아버지이긴 하지만 엄연히 직장 상사이기도 하다. 지금 내게 명령하는 거냐?"
"명령이 아니라 부탁입니다. 아주 간절하고 애달픈 부탁이지요."
"전혀 그렇게 안 보인다."
"감정이 메마르셨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