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 2 이벤트 관리과
건방지기까지 한 태도로 끝없이 자신의 원하는 바를 요구하는 지원과 강경한 태도로 그 것을 거부하는 승익. 부자(父子)는 그렇게 계속 말싸움을 벌였다.
언제까지나 이어질 것 같던 그 말싸움에 종지부를 찍은 것은 불쑥 부사장실로 난입한 승익의 여비서. 주 진영이었다.
"정말 시끄러워서 못 살겠네. 대체 언제까지 싸우실 거예요!"
앙칼진 그녀의 목소리에 승익과 지원은 움찔하며 입을 다물었다. 진영은 양손을 척하고 허리에 올리며 말을 이었다.
"부 사장님. 원하시는 것이 아드님의 백수 생활 청산이시죠?"
승익은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여 긍정을 표했다. 진영은 이번엔 지원을 향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지원군은 라크세인 운영팀에 대해 뭐가 불만이에요?"
지원도 이 끝나지 않는 대립 상황을 종식시켜줄 누군가를 간절히 원했기에, 진영의 참견을 고맙게 받아 들였다.
"팀에 불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GM 직책이 저와 맞지 않아요."
"왜죠?"
"제가 생각했던 GM과 너무 다릅니다."
"지원군이 생각한 GM은 어떤 것인데요? 아, 설마 일반적인 선입관처럼 엄청난 능력을 마구 휘두를 수 있는 게임 내의 신적인 존재?"
지원은 잠시 생각하다 간단히 대답했다.
"저도 지금까지 일반 플레이어였으니까요."
진영은 손바닥을 딱 소리나게 마주쳤다.
"뭐예요. 이런 간단한 문제를 가지고."
지원과 승익은 동시에 의아한 눈빛을 띄우며 진영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그러자 그녀는 승익을 향해 의기양양하게 말을 이었다.
"롤플레잉 프로젝트를 잊으셨나요. 부사장님?"
승익은 익숙한 그 이름에 눈을 빛냈다.
롤플레잉 프로젝트. (주)테이머가 지난 10년간 심혈을 기울여 기획, 개발한 전혀 새로운 가상 현실 멀티유저 게임 계획과 그 팀의 이름이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만들어진 게임 '에피소드'에서라면 지금 지원의 요구를 충분히 수용할 수 있다. 물론 에피소드의 GM들도 철저한 활?제한을 두지만 거기엔 아주 특별한 GM들이 투입되기 때문이다.
바로 EM(Event Master). 이벤트 전담 마스터다. 지금껏 다른 게임들에도 이벤트 전담 마스터가 있긴 했지만 그 활동이나 효과는 미미했다. 하지만 에피소드는 달랐다.
이 게임의 EM들은 플레이어들의 일에 아주 적극적으로 관여하게 되며 일반 GM들보다 더 많은 권한과 능력. 행동의 자유를 보장받는다. 비록 이벤트에 국한된 것이긴 하지만 자율적으로 각종 이벤트를 만들어낼 권한과 능력이 있기에 게임 내에서만큼은 그야말로 신적인 존재나 다름없는 것이다.
단지 EM들에게는 상당한 연기력이 필수 조건이었는데 지원이 가진 뻔뻔함을 본 승익은 그가 그 직책에 적임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 지원."
어리둥절한 눈으로 진영과 승익을 번갈아 쳐다보던 지원은 승익의 부름에 얼른 대답했다.
"네. 아버지."
"네가 원하는 대로의 게임 마스터 자리를 주마. 말 그대로 커다란 권한과 행동의 자유. 물론 약간의 제한은 있지만 말 그대로 약간이며 지금의 일반 GM들과는 전혀 다르다. 그럼 불만 없겠지?"
지원은 진영과 승익이 짜고서 또 다시 자신을 속이는 것이 아닐까 의심했다. 하지만 이번엔 왠지 느낌이 좋았다. 그래도 그는 어제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선 꼭 제대로 알아봐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거. 이런 저런 것들 잔뜩 외워야 하는 것 아닙니까?"
"지금의 백 분의 일 수준이다. 거의 자동 처리되는 시스템이라 그런 일은 없다."
"그럼 새로 배워야 하는 것이 많은가요?"
"새로운 시스템의 게임이니 적응 시간이 필요하겠지. 하지만 말 그대로 오토다. 익숙해지기만 하면 돼."
"플레이어들에게 모습을 보여서도 안되고 관여할 수도 없는 거죠?"
"플레이어들과 어울리기를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바이다."
"매일 욕 메일과 항의 전화에 시달리고 너무 바빠서 퇴근도 못하고 잠도 거의 못 자겠죠?"
"게임 외부에서의 안내와 상담은 전문 상담 부서에서 총괄할 것이다. 넌 게임 내의 일에만 집중하면 돼."
지원은 너무 좋은 조건에 문득 이렇게 말하고 말았다.
"아버지. 농담이 많이 느셨네요?"
그리고 얻어맞았다.